로코코미술

서양미술사 l 18C 이전

화려한 장식의 미

로코코미술은 1723년부터 1772년 동안 파리에서 유행했던 사조이다.
프랑스 뿐 아니라 다른 여러국가에 전파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세력이 강했던 곳은 오스트리아와 독일이었다.
장식을 위해 쓰이던 조약돌, 혹은 조개, 곡선적이고 우아한 장신구들을 진열해 놓은 공간에 사용되는 용어이다.

  • 그네

    프라고나르, 1768년, 윌러스 콜렉션, 런던

  • 목욕하는 다이아나

    프랑소와 부셰, 1742년, 루브르박물관, 파리

  • 시테라섬의 출항

    와토, 1712-1717년, 루브르박물관, 파리

  • 목욕하는 여인들

    캔버스에 유채, 64x80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 비너스의 화장

    프랑소와 부셰, 1751년,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뉴욕

  • 시장에서 돌아옴

    장밥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1739년, 루브르박물관, 파리

  • 로버트 앤드루스와 그의 아내

    토마스 게인스버러, 1478-1450년, 내셔널갤러리, 런던

  • 시돈스부인

    토머스 게인스버러, 1785년, 내셔널갤러리, 런던

  • 건축물 외벽(부분)

Description

로코코미술은 1723년부터 1772년 동안 파리에서 유행했던 사조이다. 프랑스 뿐 아니라 다른 여러국가에 전파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세력이 강했던 곳은 오스트리아와 독일이었고 장식을 위해 쓰이던 조약돌, 혹은 조개, 곡선적이고 우아한 장신구들을 진열해 놓은 공간에 사용되는 용어이다. 비실용적이고, 유희적이며, 인공적이고 소용돌이 무늬 등이 섬세한 것이 특징이다. 

 

 

섬세한 실내장식

로코코미술은 루이 15세가 통치한 1723-74년 동안 파리에서 성행했던 미술사조다. 1760년 무렵에는 프랑스에서는 유행에 뒤떨어진 것이 되어 쇠퇴하였으나, 오스트리아, 독일을 비롯한 중부유럽에서는 18세기 말까지 널리 유행하였다. 로코코란 용어는 원래 더위를 피하기 위한 석굴이나 분수를 장식하는데에 쓰이는 조약돌 혹은 조개장식을 말하는 로카이유(rocaille)에서 유래된 것으로 주로 실내장식에서 쓰이는 용어다. 혹은 신고전주의 미술가인 자크-루이 다비드의 한 제자가 경멸조로 만들어낸 단어로서 피서용방의 벽의 가장자리를 두르는데 사용하는 조개껍질이나 자갈 장식만큼이나 현란하고 복잡한 미술을 가리킨다고 전해진다. 

 

로코코 양식이란 말 그대로 장식적인 예술로서 곡선적이고 우아한 장신구들을 진열해 놓은 공간에 사용되는 용어이다. 그러한 저택의 마루는 나무판위에 복잡하고 섬세한 문양들을 상감하였고, 가구들은 주로 곡선형으로 최고급 고블랭산 소파천을 씌우거나 상아와 귀갑으로 장식했다. 로코코 예술은 장식적이었으나 당시의 무능한 귀족만큼이나 비실용적이었다. 

 

로코코 건축의 최초 작품은 로베르 드 코트의 베르사유궁전 예배당인데 메소니에, 보프랑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이어서 오베르, 가브리엘 부자(父子)와 쿠르톤 등이 활약하였고, 보프랑이 만든 오텔 드 수비즈의 타원형 살롱, 또는 가브리엘의 퐁텐블로궁의 회의실이나 베르사유궁전의 여러 홀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장식은 당시의 취미를 잘 전해주고 있다. 가구 분야에서는 C.크레상이 일찍이 레장스 양식을 완성하였고, 루이 15세의 궁정소속 가구목수인 A.고드로라든지 P.미종, 독일 출생인 J.F.에벤이나 그의 제자인 J.H.리즈너 등도 유명하다.

 

 

경쾌한 필치와 풍부한 색채의 회화

회화부문은 귀족 뿐 만 아니라 서민층으로도 취미가 확산되어 살롱전을 통하여 화가와 대중의 교류가 이루어졌으며 ‘미술평론’이라는 분야도 이 시기에 처음 등장했다. 엄격한 데생을 주장하는 푸생파와 색채를 강조하는 루벤스파가 대립하다가 경쾌한 필치와 풍부한 색채, 화려한 구도로 정서적인 표현에서 유리한 신파가 우세한 상황이 되었다. 

 

색채와 함께 풍속화의 양식도 유입되어 사물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객관적인 묘사가 사랑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돈 많은 향락가인 예술애호가들이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보다 자극적이고 정교한 것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로코코미술은 아카데미에서 행해지는 고전고대에 대한 교육을 개혁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노력은 미술작품에서 쾌활한 성향을 강조하고 섬세하고 감정적인 분위기를 중요시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예로 와토의 작품을 들 수 있다. 로코코미술은 바로크 미술과 형태 면에서 비슷한 점이 있지만, 이러한 유사점들은 색채사용과 표현방식에서의 차이로 인해서 크게 변형된 양상으로 나타난다. 로코코미술에서는 훨씬 더 감각적인 색채가 자주 사용되며, 또한 바로크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격렬한 감정표현대신 가볍고 유유자적한 우아함과 재치가 선호된다.

 

 

로코코 대표작가- 와토, 부셰, 프라고나르, 샤르댕

와토(Watteau)의 <시테라 섬의 출항>을 보면 낭만적인 연인들이 흥겹게 떠돌며 영원한 젊음과 사랑이 넘치는 섬으로 가고 있는 장면이다. 부셰(Boucher)는 깃털 같은 나무와 구름, 양떼들 사이에서 사랑의 유희를 즐기고 있는 잘 차려 입은 목동과 양치는 아가씨를 즐겨 그렸다. 이는 또한 바로크 고전주의의 거장이었던 푸생의 화풍을 공식화해서 기계적으로 모방하는 관행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다. 

 

로코코는 화면에서 진지함과 엄숙함을 포기하고 대신 에로티시즘과 장식성, 그리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길을 열었다. 부셰의 스타일은 다소 인공적이었는데 그는 자연이 너무 침침하고 색깔이 짙다는 이유로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요염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분홍빛 피부의 누드화로 방탕한 귀족계급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프라고나르(Fragonar)의 연회 그림도 또한 가볍고 경박한 것이었다.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인 <그네>를 보면 젊은 아가씨가 희희덕거리며 자신의 슬리퍼를 벗어던지고 있고 밑에 있는 그녀의 연인은 그녀의 치마 속을 훔쳐보고 있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샤르댕(Chardin)은 소시민 사회의 겸허한 생활을 관찰한 실내화나 정물화에 뛰어난 솜씨를 발휘했다. 특히 정물화에 뛰어났던 그는 가정에서 사용하는 생활용품을 예술적으로 그려 호평을 받았다.

 

 

로코코 실내장식과 조각

로코코의 실내장식은 실내에 있는 그림, 조각, 공예, 거울 등의 모든 것을 통일된 분위기로 조화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는데 그것은 바로크와 공통되는 성격이다. 공예품도 마찬가지여서 지나치게 장식적이라는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구나 집기류의 경쾌하고 우아한 형태와 무늬가 갖는 자연스러움은 매우 아름답다. 또한 자기 문양의 좌우 대칭형 전통이 깨지고 자유로운 디자인이 선보이기 시작했는데 당시 유럽에 유행하던 중국문물의 영향 등 동양 공예품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편, 형식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로코코는 직선적인 요소를 결여한다. 로코코 미술에서 지배적인 선은 S자이고 로코코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은 정교하게 장식되거나 조각을 새긴 구부러진 형태의 가구들과 장식판자, 미술작품들로 가득 찬 사적인 방이다. 로코코 조각에서는 J.B.피갈과 E.M.팔코네를 꼽을 수 있다. 로코코 양식은 먼저 프랑스에서 일어나 프랑스 왕권의 흥성과 함께 전 유럽에 파급되었다. 

 

그 중에서도 이것을 대폭적으로 받아들인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에서는 1720년경부터 약 50년간 로코코 양식이 건축계를 지배하였다. 다만 독일의 로코코 양식에는 바로크적인 장중미가 많이 남아 있는데, 장중한 건축과 경쾌 화려한 내부장식이 색다른 대조를 드러낸다.

 

 

뮤움 미술사연구팀  김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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