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민: 라인 앤 스모크

2024.01.31 ▶ 2024.03.02

갤러리 학고재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 (소격동, 학고재)

Map
  • 장재민

    깊은 웅덩이 끝 Edge of a Deep Puddle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구아슈 Acrylic gouache on canvas, 200 x 150cm (2), 200 x 300cm (전체)

  • 장재민

    새들의 자리 Birds Territory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구아슈 Acrylic gouache on canvas, 194x259cm

  • 장재민

    먼 곳의 밤 Night in a Distance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구아슈 Acrylic gouache on canvas, 194x259cm

  • 장재민

    덤불 Undergrowth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구아슈 Acrylic gouache on canvas, 162x130cm

  • 장재민

    기울어진 집 Tilted House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구아슈 Acrylic gouache on canvas, 145x112cm

  • 장재민

    나무 A Tree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구아슈 Acrylic gouache on canvas, 145x112cm

  • 장재민

    입구 Entrance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구아슈 Acrylic gouache on canvas, 91x73cm

  • 장재민

    불꽃 Embers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구아슈 Acrylic gouache on canvas, 190x150cm

  • 장재민

    Boards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구아슈 Acrylic gouache on canvas, 190x150cm

  • 장재민

    접힌 길 Folded Path 2023, 캔버스에 아크릴릭 구아슈 Acrylic gouache on canvas, 95x110cm

Press Release

시간성이 희미해질수록 더 가까이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그곳은 지도에도 없고, 애써 떠올린 단어들을 말하는 대신 입에 머금게 하는 곳이다. 풍경이 작가의 감정과 경험을 응축하는 한점의 비유라면, 장재민은 풍경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오히려 비유의 바깥을 살핀다. 그가 그려내는 것은 존재하는 것과 잔상으로 남은 것, 그리고 작가 내면의 무언가가 서로 공명하는 순간들이다. 그는 장면 안에서 부차적인 감각과 화자의 시선이 어긋날 때 새롭게 발생하는 맥락을 관찰한다. 풍경을 떠오르게 한 본질과 그 안에 머물게 된 대상의 처지를 번갈아 떠올리며 다양한 시점으로 장소를 바라보고, 그 이면에 머무는 감각을 잡아 표면 위로 드러내는 작업을 해왔다. 학고재에서 열리는 《라인 앤 스모크》에서 선보이는 그림 속 이미지들은 실재하지 않는 곳이며, 경험으로부터 자라났지만 상상을 통해 열매처럼 맺히고 개별적인 그림으로 수확된 독자적인 풍경이다. 작가의 필적을 통해 마음에 스며있던 시간들이 캔버스 위로 우러난다.

이번 전시에서 장재민은 아크릴릭 구아슈(acrylic gouache)의 물성을 응용하여 풍경을 전시 공간으로 환기시키는 작업을 선보인다. 그는 자신의 회화적 언어를 확장하기 위한 새로운 방안을 고민해 왔고, 이 고민은 아크릴릭 구아슈를 연구하고 활용해 보는 것으로 이어졌다. 수성 매체인 구아슈는 빨리 마르기 때문에 작가의 손짓이 여실히 드러나고, 수분에 따라 물성을 얕고 부드럽게 쌓을 수 있어 유화와는 다른 결의 매트한 층위를 구현할 수 있다. 구아슈의 이러한 특징은 붓의 운동성을 드러내 화면을 개방하고, 은유의 테두리 밖에서 서성이는 미지의 서사를 감지하게 한다. 기존 작업에서 유화의 점도 있는 물성을 통해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을 손으로 빚어내듯 비유의 형태로 구현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건조한 듯 얇은 레이어들이 뭉근한 깊이감을 자아내고, 관찰자의 시선을 구름처럼 드러난 풍경 속으로 스며들게 한 그림을 보여준다. 장재민은 드러나는 것들과 그 이면으로 사라지는 것 사이의 밀도를 들여다보며, 넓고 시원한 필치로 화면을 열고 묵직한 선으로 힘을 실어 풍경의 중력을 조절한다. 장재민의 풍경은 특유의 색감과 함께 드러나는데, 그는 자신의 그림에 쓸 수 있는 색과 쓸 수 없는 색을 구분한다. 예를 들어 먹에서 농도가 부각되는 것처럼, 신중하게 선택된 색들은 장면에서 시간성, 온도, 낮과 밤을 지우는 대신 그곳에 맴도는 공기를 드러낸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라인 앤 스모크》처럼, 장재민은 연기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감각과 서사를 가변적으로 공간에 부유하게 하고, 체화된 형상을 운동성 있는 획(line)으로써 포착한다. 캔버스는 창문처럼 열려 풍경과 전시장을 연결하고, 그림을 바라보는 자신 혹은 관객으로 하여금 장면 속에 머물게 하거나, 혹은 그곳에서 빠져나와 관망하게 한다. 그는 빠르게 얹히는 구아슈의 물성을 통해 과거와 현재, 부유하는 서사와 그림 사이를 끊임없이 경유하고, 마르고 덧대어짐을 통해 드러나는 궤적은 풍경을 입체적으로 만든다. 장재민에게 회화란 다중적인 시간과 감정의 교차점이다. 시간을 통해 원래의 경험에서 분리된 기억들은 작업 속에서 추상처럼 드러나기도 하고, 구름처럼 보는 이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될―나무였다가 새가 되기도 하고, 호수인 줄만 알았는데 다가가니 하늘이 되는―형체로 그려지기도 한다. 형체는 수많은 모습으로 드러나지만, 가령 판자, 나무, 새, 산의 모습으로 운동성 있게 뻗어나가는 획들과 함께 단서처럼 펼쳐지기도 한다. <섬>(2023)처럼 액자식으로 화면을 분할해 꿈속의 꿈처럼 분리된 두 세계를 한 폭에 담기도 하고, <정물들>(2023)처럼 풍경의 조각들을 모으거나, 모호한 형상이 대상을 해체하듯 다른 풍경 위에 녹아들거나 중첩되기도 한다. 하지만 화면 위의 이 형상들은 지표라기보다는 징후로서 결말을 열고, 풍경 속에 고여있던 시간을 전시 공간으로 퍼져 나오게 한다.

장재민의 풍경은 '화폭에 담겼다'라는 표현보다는, 작가의 감정을 복기하며 소생하는 자연처럼 유기적으로 드러났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의 그림은 결론을 향해 진행되기보다는, 끝을 의식하지 않고 작업을 이어나가는 작가의 시간과 공생하며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진다. 때로는 신속하게, 혹은 긴 호흡으로 장면과 교감하며 레이어를 축적하고, 이러한 캔버스와의 짧고 긴 조우를 반복하며 풍경의 스펙트럼을 넓혀나간다. 유리창에 말라붙은 빗자국처럼 손쓸 틈 없이 납작하게 굳어버린 시간이 있다. 완결되고 나서야 발견하게 되는 그런 시간들은 하늘하늘한 간지처럼 우리의 대화 사이에, 잊혀진 책 속에, 당연한 장면들 사이에 몰래 끼워져 있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 모습을 드러내 부재를 환기시킨다. 회화는 부재가 깨우쳐준 시간이 끊어진 지점을 지우거나 다시 연결하는 일이 아닐까. 풍경은 작가가 담아낸 시간과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간이 만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장재민은 모든 이야기를 설명하는 대신 머물던 자리를 담백하게 보여준다. 완결된 문장이 아니라, 얼마든지 이어질 수 있는 형태로.

문소영 | PS Sarubia 큐레이터

전시제목장재민: 라인 앤 스모크

전시기간2024.01.31(수) - 2024.03.02(토)

참여작가 장재민

관람시간10:00am - 06:00pm

휴관일매주 월요일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갤러리 학고재 Gallery Hakgojae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 (소격동, 학고재) )

연락처02-720-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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