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미술2
한국미술사 l 한국현대미술2
새로운 정체성의 추구와 다원화 현상
1970년대 한국미술은 구상과 추상, 구세대와 신세대, 국전과 전위 등 끊임없는 대립상황 속에서 한국적 정체성을 모색하고 새로운 미술양식을 추구한다.
이후 한국적 정체성을 추구한 모노크롬 미술, 80년대의 수묵화 운동, 미술의 사회참여를 강조한 민중미술 등이 등장해 다원화의 길을 걷게 된다.
한국현대미술2
한국미술사 l 한국현대미술2
새로운 정체성의 추구와 다원화 현상
1970년대 한국미술은 구상과 추상, 구세대와 신세대, 국전과 전위 등 끊임없는 대립상황 속에서 한국적 정체성을 모색하고 새로운 미술양식을 추구한다.
이후 한국적 정체성을 추구한 모노크롬 미술, 80년대의 수묵화 운동, 미술의 사회참여를 강조한 민중미술 등이 등장해 다원화의 길을 걷게 된다.
임옥상, <땅 Ⅱ>, 1981년, 캔버스에 먹, 아크릴릭, 유채 기법, 135×36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 작품은 동양화풍과 서양화풍을 한 화면에 융합하고 있어 시각적인 충격을 준다. 멀리 보이는 산은 동양화의 수법으로, 가까이 보이는 땅은 서양화의 수법으로 표현하여 정열과 절제가 공존하는 듯하다. 산과 농지를 어두운 먹의 색조로, 땅의 기운을 강렬한 붉은색 유채로 몽타주(Montage)하듯 겹쳐놓은 이 작품은 작가의 비상한 발상이 돋보이는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박서보, <묘법No.43-78-79-81>, 1981년, 면천에 유채, 흑연 기법, 193.5×259.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1970년대부터 시작된 <묘법> 연작은 1982년까지 일관된 색채와 테크닉을 보여주었다. 박서보는 크림색에 가까운 유채를 캔버스 전체에 칠한 다음, 그 바탕색이 마르기 전에 위에서 아래로 선을 그었다. 아무런 색채도 없는 그 선들은 움푹 패인 자국만 남기는데, 이는 캔버스에 작가 자신만의 ‘침묵의 흔적’을 남기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윤형근, <청다색(靑茶色)>, 1973년, 캔버스에 유채, 흘리기, 번지기 기법, 99.5×181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1950년대 말 한국의 추상표현주의 시기를 접하면서 앵포르멜 미학을 경험한 윤형근은 1960년대 초기 회화를 통해 수직적 제스처에 의한 표현주의적 화면을 남겼다. 그는 1975년에 결성된 ‘에꼴드 서울(Ecole de Séoul)’에 모인 다른 모든 작가들처럼 단색을 선택하여 넓은 면으로 확대된 화면의 기둥들을 능동적으로 결합하는 경향의 작품을 작고하기 전까지 추구하였다. <청다색>(1973)은 인디고 청색과 엄버(Umber)색으로 된 넓은 기둥들의 능동적인 교합을 통해 색채가 스며들고 번지면서 경계선이 불분명하도록 표현하였다. 토양에서 유래한 물감의 명칭인 ‘엄버’는 떨어진 낙엽들이 서서히 부패되어 흙이 되어가는 순간을 암시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송수남, <나무>, 1985년, 화선지에 수묵 기법, 94×138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남천(南天) 송수남은 꾸미거나 살을 붙이지 않는 동양 정신의 정수(精髓)를 바탕으로 색채를 배제한 수묵만을 사용하여 작업하였다. 이 작품의 화면 구성은 단순하지만 먹의 농담 조화는 깊고 넓은 화면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순수한 자연의 정서와 수묵의 본질적 특성을 잘 드러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임옥상, <귀로 2(부분)>, 1984년, 종이부조에 수묵채색 기법, 84×138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1980년대에 민중미술 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임옥상은 매우 다양한 장르와 내용을 제작했다. 예를 들면 종이 부조와 흙을 재료로 한 조각 작품과 농촌의 모습, 땅, 기지촌, 농민과 노동자의 생활, 아프리카 민족의 역사 등을 소재로 한 다양한 회화 작품 등이 그것이다. 그는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소외된 계층의 현실이나 분단 같은 시대적 화두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 작품은 고단한 노동 뒤에 귀가를 서두르고 있는 소시민들의 남루하지만 강한 삶의 애착을 보여준다.
신학철, <가투>, 1989년, 캔버스에 유채, 53×45.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신학철은 전통적인 사실주의 방식을 기본으로 포토 리얼리즘(Hyperrealism)을 구사한다. 또한 1980년대 후반 <한국 근현대사> 연작의 대상이 되었던 노동자, 중산층,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을 미화하지 않고 그려낸다. 이 작품 역시 1980년대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시위현장의 젊은 청년을 그려내고 있다.
오윤, <원귀도> 습작
1984년, 캔버스에 유채, 69×462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오윤, <원귀도> 미완성작
미완성작인 <원귀도>는 현실비판이라는 리얼리즘의 시각에서 초월적인 한(恨)의 정서를 표출한 두루마리 형식의 대작이다. 동학혁명, 한국전쟁, 5월 민중항쟁 등 한국역사의 비극적 상황 속에서 희생된 민중의 모습이 한을 품고 죽은 귀신들의 형상으로 그려져 있다. 매우 비극적인 상황이지만 작가는 서술적 시간의 구상과 미묘한 색채, 기(氣)의 형상화를 통해 담담하고 따뜻한 작가적 감성을 엿볼 수 있도록 하였다.
백남준 , <다다익선>, 1988년, 영상설치 작품,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다다익선>은 1003대의 TV 모니터로 구성된 작품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이 ‘88서울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추진한 것이다. 1003이라는 숫자는 10월 3일이 개천절을 상징하는 것으로 백남준의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비디오 예술이 생방송을 활용함으로 텔레비전의 모체 역할을 하였는데, 1960년대와 1970년대 비디오 예술이 TV체제를 해체하는 시기였다면, 1980년대는 TV체제를 재구성하는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때 TV는 대중매체로서, 비디오는 현실을 창조하는데 능동적이고 직접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비디오 예술은 현실을 재현한다기보다 현대인의 ‘담화, 사고, 형태’의 양상을 바꾸어 버리는 이미지를 산출한다.
1970년대 한국미술은 구상과 추상, 구세대와 신세대, 국전과 전위 등 끊임없는 대립상황 속에서 한국적 정체성을 모색하고 새로운 미술양식을 추구한다. 이후 한국적 정체성을 추구한 모노크롬 미술, 80년대의 수묵화 운동, 미술의 사회참여를 강조한 민중미술 등이 등장해 다원화의 길을 걷게 된다.
한국적 정체성의 추구, 모노크롬 미술
1970년대 한국미술은 여러 그룹 운동에 의한 오브제미술과 서구의 여러 미술사조를 모델로 한 전반기, 그리고 회화의 평면화 경향과 모노크롬회화가 급부상한 후반기로 나눌 수 있다. 이 시기의 추상은 미니멀적인 성격이 강했지만, 서구적 의미에서의 미니멀리즘과는 다른 한국적 미감을 추구했다.
독자적인 우리의 자연관을 바탕으로 한, 한국미술을 해외시장에 알리기 위해 서구와는 다른 한국 특유의 정체성을 추구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탈미니멀적’이라는 평과 함께, 엄격하고 규격화된 미니멀리즘을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자연관을 바탕으로 한 모노크롬의 단색회화가 우리의 독자적인 추상회화로서 각광받기에 이른 것이다.
대표작가로는 박서보, 윤형근, 하종현, 최명영, 권영우, 정창섭 등이 있다. 이들은 회화에서 배경과 대상의 구별을 없애고 캔버스를 하나의 평면으로 취급했으며, 흰색이나 회색 등의 무채색 혹은 중성적인 색채를 사용해 무한한 공간의 가능성을 실험하였다.
1980년대의 수묵화 운동
우리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한 모노크롬 운동의 영향은 1980년대 동양화에서의 수묵화 운동으로 이어졌다. 송수남과 홍석창 등을 중심으로 한 작가들은 ‘동양화’라는 이름대신 ‘한국화’라는 이름을 사용했으며, 수묵(水墨)만을 사용한 미묘한 농담(農談) 변화를 통해 과거에 대한 동경과 내면의 정신적 세계를 탐구하고자 하였다.
집단화된 사회비판 운동, 민중미술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논의는 민중미술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광주항쟁 등 본격적인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민중미술은 권위적․제도적이 된 모노크롬 미술에 반발하면서 이를 ‘서구의 형식주의의 아류’라며 전면 공격을 퍼부었다. 내용이 없는 형식만 남은 추상미술은 공허하기 때문에, 미술가들은 사회의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실주의적 양식을 사용하면서 농부나 노동자, 또는 억압받는 서민층의 모습을 권위주의적인 관리나 부유한 자본주의자들과 대조시키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회비판적 미술운동을 경험해 본적이 없는 우리나라의 기존화단에서는 민중미술에 대해 ‘예술성이 결여된 정치적 선전’이라고 공격하는 등 양분화 된 갈등을 겪어야 했으며, 이는 다양한 시각모색의 시련과 반성을 향한 자극이 되었다. 대표작가로는 민중미술의 선구적 그룹이었던 ‘현실과 발언’을 이끈 임옥상, 신학철, 오윤 등이 있다. 민중미술은 이후 공장이나 대학가에서 목판화를 가르치고, 걸개그림․벽보 등을 협동 제작하는 등 민중의 삶과 밀접하게 관계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한국현대미술의 다원화 경향
1980년대 후반에는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즘 미술 및 이와 비슷한 경향을 보인 이탈리아의 트랜스 아방가르드, 독일의 신표현주의 미술 등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활발히 제작되어, 이른바 민중미술과 모더니즘의 대결은 급속히 관심 밖으로 사라지게 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 가운데 새로운 변화의 계기를 마련한 것이 백남준의 비디오 설치미술의 등장이다. 백남준의 등장은 한국 현대미술이 세계미술의 현장에 직접 편입되고 국제화되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으며, 90년대에 한국 미술에서 비디오 등 매체미술과 설치미술이 붐을 이루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1997년 IMF 이후 국내 경제의 위축으로 미술시장은 붕괴되었고, 작가들의 작품 활동은 커다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제작환경 속에서 ‘대안공간’이라는 새로운 전시문화가 형성되었으며, 국내에서도 광주 비엔날레, 서울의 미디어시티, 부산의 국제 아트페스티벌 등 국제미술행사가 정기적으로 개최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 한국 현대미술은 화단의 전반적인 활성화와 수준향상의 목소리가 높아진 가운데, 국제미술계에 대한 흐름을 파악하고 진출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들을 요구하고 있다.
뮤움 미술사연구팀 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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