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말기 민속공예
한국미술사 l 조선말기 민속공예
실용적인 일상생활의 투영
개인의 자아의식이 높아진 조선말기에는 다기(茶器)와 같은 관상용 민예품이 나타나고,
귀족공예와도 같은 부유층을 위한 귀족적 공예가 각광을 받는다.
경제발달과 함께 민예품의 상품적 성격이 강해지면서 도자기·금속공예·목공·피혁 등 전문제품이 급격히 증가하고, 민중 자체의 생활문화가 투영되면서 오늘날의 민예품으로 이어진다.
조선말기 민속공예
한국미술사 l 조선말기 민속공예
실용적인 일상생활의 투영
개인의 자아의식이 높아진 조선말기에는 다기(茶器)와 같은 관상용 민예품이 나타나고,
귀족공예와도 같은 부유층을 위한 귀족적 공예가 각광을 받는다.
경제발달과 함께 민예품의 상품적 성격이 강해지면서 도자기·금속공예·목공·피혁 등 전문제품이 급격히 증가하고, 민중 자체의 생활문화가 투영되면서 오늘날의 민예품으로 이어진다.
나전칠기공예품, 작자미상
좌-16세기 당초문양 나전상자(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조선후기 나전쌍학십장생문서류함(용인민속촌 소장)
서안, 작자미상, 19세기, 59×29.5×23.7cm, 국립중앙박물관
책상 역할을 했던 서안(書案)은 독서용의 경우 상판의 길이가 짧은 것을, 두루마리에 글을 쓸 경우 상판의 길이가 긴 것을 사용했다. 이 작품은 다리의 양 옆에 여의두문(如意頭文;영지버섯과 서운(瑞雲)등 상서로운 형상을 본뜬 도안)을 투각해 장식한 것이 특징이다.
책갑, 작자미상, 19세기, 21×16.5×9.7cm, 국립중앙박물관
책갑의 윗면에 ‘어사(御賜)’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임금이 하사한 물건임을 알 수 있다.
3층장, 작자미상, 19세기, 104×51.3×165.2cm, 국립민속박물관
3층장은 서민들이 쓰기 힘들었던 고급가구로 조선후기 이후에 사용되었다. 화려한 경첩이 달린 것으로 보아 사랑방이 아닌 안채에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여성용 좌경, 작자미상, 조선말기
빗이나 작은 소지품을 넣을 수 있는 서랍이 있으며, 지금의 화장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
화조자수병풍 부분, 작자미상
화조의 경우 주로 한 쌍으로 수놓아진 예가 많은데, 그 이유는 부부 금슬을 기원하는 의미 때문이다.
백수백복(百壽百福) 자수병풍, 작자미상, 조선말기
긴 수명과 온갖 복을 받으라는 의미로 사용한 병풍으로, 주로 회갑연 등에서 많이 쓰였다.
백수백복의 문양
여러 가지의 전자(篆字)로 써 놓은 ‘壽福’ 글자. 수복을 기원하기 위하여 지게문이나 두껍닫이 따위에 써 붙였다.
오색항라 조각대보, 작자미상, 조선말기
여성들이 일상생활에서 만드는 보자기는 쓰다 남은 천 조각들을 이어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까지 궁중에서 만든 조각보는 발견되지 않을 정도로, 가장 서민적인 민속 공예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조각보는 여름용으로 쓰이는 항라천들을 이어 만든 것으로, 조각을 이을 때 솔기 부분의 실이 풀리지 않도록 이중으로 홈질해서 솔기를 싸는 것이 특징이다.
개인의 자아의식이 높아진 조선말기에는 다기(茶器)와 같은 관상용 민예품이 나타나고, 귀족공예와도 같은 부유층을 위한 귀족적 공예가 각광을 받는다. 경제발달과 함께 민예품의 상품적 성격이 강해지면서 도자기·금속공예·목공·피혁 등 전문제품이 급격히 증가하고, 민중 자체의 생활문화가 투영되면서 오늘날의 민예품으로 이어진다.
일상생활의 반영, 민속공예
민속공예를 통해서 만들어진 물건을 민속공예품 또는 민예품(民藝品)이라 한다. 구체적으로는 각 지역마다 전승되어온 전통적 기법과 그 고장 산물을 이용하여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조형예술을 말한다.
이렇듯 사람들의 필요와 장식적인 욕구에서 생겨난 실용적인 물건들은 주로 서민들이 사용한 물건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민화와 마찬가지로 세도 있는 양반이나 부유한 상인층에게도 각광을 받았다. 모든 민속공예품을 미술작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민속공예품에는 당시의 일상생활과 사회상이 반영돼 있어 옛 선조들의 멋스러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민속공예의 종류
대부분의 공예품은 조선 말기의 것이지만, 칠공예품은 조선 전기의 것도 다수가 보존돼 있다. 목공예는 질박하고 자연스러운 멋을 추구하는 유교적 미의식과 가장 잘 부합되는데, 그 가운데 목재가구는 목공예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드러낸다. 목재가구는 조선시대 남녀유별사상의 영향으로 인해 크게 남성용과 여성용으로 나뉜다. 이는 그들의 생활공간이 완전히 분리돼 있었기 때문이다.
유교의식의 반영, 남성용 민예품
남성들의 주된 생활공간인 사랑방에는 문방사우를 비롯한 가구와 책상 책꽂이 등이 주를 이뤘고, 이러한 가구들은 조촐하고 장식이 없어야 하며 문갑도 유난스러운 꽃모양을 배제하였다. 화려하고 번잡스러운 것을 피했던 이유는 사랑방이 학문을 위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남성을 위한 민속공예에는 오늘의 책상에 해당하는 서안(書案), 벼루를 넣어두는 연상(硯箱), 책을 보관하기 위한 책갑(冊匣), 책장(冊欌) 등이 있다.
규방문화의 반영, 여성용 민예품
자유로이 바깥출입을 못했던 여성들은 안채에서 주로 생활했기 때문에 여성을 위한 민예품은 주로 안방에 자리하는 예가 많았다. 많은 식구들의 옷과 이불을 수납하기 위한 안방가구로 장롱(欌籠)이 있다.
장과 농을 구분했던 조선시대에는 장은 단층장, 2층장, 3층장 등으로 구분되었고, 사랑방가구와 달리 금속 경첩으로 화려하게 장식돼 있었다. 여성을 위한 민예품으로는 함(函), 좌경(坐鏡), 반짇그릇 등이 있다. 그 중 규방칠우(閨房七友)로 불리는 반짇그릇은 바늘, 실, 자, 인두, 골무, 가위, 다리미를 담아두는 상자를 말한다.
그 밖에 여성들의 공예작품인 자수(刺繡)가 있다. 바느질과 길쌈을 여성의 미덕으로 생각했던 예전에는 자수를 이용한 복식과 병풍, 조각보 등이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뮤움 미술사연구팀 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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