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도자예술
한국미술사 l 조선후기 도자예술
사치풍조의 반영, 청화백자
사회적으로 팽배한 사치풍조와 사회․경제적인 발전에 의한 신분상승으로 조선후기의 도자기는 중기보다 더 다양한 장식과 기교를 부리게 되었다.
영․정조연간 백자와 청화백자 등 갑번(匣燔;형태와 질·색이 아주 우수한 도자기)을 정책적으로 금지하였음에도 청화백자를 비롯한 갑번자기는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널리 유통되었다.
조선후기 도자예술
한국미술사 l 조선후기 도자예술
사치풍조의 반영, 청화백자
사회적으로 팽배한 사치풍조와 사회․경제적인 발전에 의한 신분상승으로 조선후기의 도자기는 중기보다 더 다양한 장식과 기교를 부리게 되었다.
영․정조연간 백자와 청화백자 등 갑번(匣燔;형태와 질·색이 아주 우수한 도자기)을 정책적으로 금지하였음에도 청화백자를 비롯한 갑번자기는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널리 유통되었다.
분원리 초등학교 운동장 내 분원 운영자들의 선정비
청화백자 산수매죽문 항아리, 18세기 후반, 높이37.5cm, 입지름13.5cm, 밑지름14.3cm, 국립중앙박물관
조선후기 이전에도 분청사기나 철화백자 등 도자기에 그림을 그린 예는 많았다. 그러나 조선 후기의 청화백자는 대부분 화창(化窓; 꽃 모양의 가장자리를 한 테두리)이라는 테두리 속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때 화창에 그려진 문양은 난초, 매화, 대나무, 패랭이꽃, 문자, 산수 등이다. 특히 오래전부터 사랑을 받아 온 <소상팔경도>가 많이 그려졌다. 화창을 이용한 이 작품은 소상팔경 중 <신시청람도>와 <동정추월도>를 그려 넣고 그 사이에 대나무와 매화를 끼워 넣은 조선후기 청화백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백자청화운룡문호, 18세기 후반, 높이54.6cm, 국립중앙박물관
이 작품은 구연부에서 저부에 이르기까지 당초문, 여의두문, 연판문, 화문의 순서로 여러 문양대가 빽빽이 장식되어 중국청화백자와 유사한 면모를 보여준다. 자기 중앙의 넓은 면에 운룡문이 배치되었는데, 구름은 십자형으로 꼬리가 긴 고식이며, 용은 입을 벌리고 엉금엉금 기어가는 듯한 모습으로 다소 힘이 빠진 듯 묘사돼 있다. 유약에 가는 빙렬이 많고 저부가 부분적으로 변색돼 있으나, 궁궐의식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백자청채각병
19세기, 높이14.8cm, 국립중앙박물관
백자청채반룡식묵호, 19세기, 높이4.3cm, 국립중앙박물관, 동원 이홍근 기증
청화백자 중에는 전면에 청채를 한 후, 백자유를 입힌 예들도 다량 제작되었다.
청화백자 죽문각병, 18세기, 높이40.6cm, 입지름7.6cm, 밑지름11.5cm, 호암미술관
각병은 조선이 전통적인 기형(器形)인 떡메병과 달리 중국에서 유래된 기형으로 기형이 길어 준수한 느낌을 준다. 조선 후기 청화백자의 대표적인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백자청화진사채연적류,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연적은 일반적으로 연상(硯床) 위에 놓고 주로 실용적 목적으로 사용했지만 비교적 큰 것은 서재의 문갑이나 사방탁자 위에 얹어놓고 바라보는 완상품으로도 애호되었다. 연적에는 보통 2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데 하나는 물이 나오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물을 담는 곳이다. 형태가 매우 다양하여 동자·주전자·무릎·용·개구리·원숭이·오리·연봉오리·복숭아·반달 모양 등으로 만들어졌다.
청화백자 진사채 복숭아 연적, 18세기 후반, 높이10.8cm, 밑지름6cm, 호암미술관
조선후기에는 다양한 형태의 연적이 만들어지는데, 이 작품은 구부러진 가지를 받침삼아 잎사귀가 붙은 복숭아를 표현한 것으로 신선들이 먹었다는 ‘천도(天桃)’를 상징한다.
달항아리, 18세기 전반, 높이40.7cm, 입지름20.3cm, 밑지름16.2cm, 국립중앙박물관
금사리 분원(1720~1751)에서 생산되던 달항아리는 숙종 말부터 약 100여 년간 집중적으로 제작됐던 18세기를 대표하는 백자다. 최대 지금과 높이가 1대 1을 이루고 있으며, 보름달처럼 둥글고 큰 모양을 가졌다 하여 ‘달항아리’라 불린다.
사회적으로 팽배한 사치풍조와 사회․경제적인 발전에 의한 신분상승으로 조선후기의 도자기는 중기보다 더 다양한 장식과 기교를 부리게 되었다.
영․정조연간 백자와 청화백자 등 갑번(匣燔;형태와 질·색이 아주 우수한 도자기)을 정책적으로 금지하였음에도 청화백자를 비롯한 갑번자기는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널리 유통되었다.
조선후기 도자예술의 배경
도자사에서 조선후기는 분원이 분원리로 이설한 영조 28년(1752)에서 고종 21년(1884) 민영화될 때까지 가장 오랜 기간 요업이 지속된 시기이다. 조선의 왕실자기는 130여 년 간 이곳 분원리에서 제작되었으므로 여러 기의 가마가 있던 현재 분원리 초등학교 운동장 한쪽에는 사옹원 도제조, 제조, 번조간의 업적을 기념하는 선정비가 14기나 세워져 있다. 이러한 외형적 안정에도 불구하고, 분원은 내부적으로 많은 변화와 동요가 있어 결국 1884년에 민영화되기에 이르렀다.
조선후기의 도자기는 사회적으로 팽배한 사치풍조와 급격한 신분변화(족보매매로 인한 양반계층의 붕괴) 등이 반영돼 장식과 기교가 다양화되는 현상을 보였다. 이에 따라 영․정조연간에는 형태와 질이 상급(上級)인 백자와 청화백자 등의 갑번자기 유통을 정책적으로 금지시켰는데, 이는 도자기가 왕실의 권위를 드러내는 상징물이었다는 점을 드러낸다. 표면적으로는 사치풍조를 경계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분원의 청화백자가 민간에 유통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왕실 도자의 수준을 일반과 구분함으로써 권위를 유지하려는 의식이 깔려있던 것이다.
그럼에도 민간에서 질 좋은 도자기를 찾는 일은 더욱 늘어났고, 상인들과 연계된 분원의 도공들은 관청이나 왕실에 납품하는 도자기보다 민간에 몰래 유통하는 값비싼 도자기를 더욱 열심히 제작했다. 이를 보다 못한 고종은 1884년에 관요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국가주도의 사기제조장, 분원
조선시대에는 왕과 왕족, 그리고 궁중에서 사는 모든 사람들의 식사 제공을 담당한 부서로 사옹원(司甕院)이 있었다. 분원은 이 사옹원의 분원이란 말이며, 궁중과 중앙정부에서 필요한 그릇들 중 사기를 제조하는 수공업장으로 설치되었기 때문에 분원이 바로 사기제조장을 가리키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한양 근교에 설치되었으나 원료와 연료생산지를 따라 경기도 광주로 옮겨갔다. 그러나 분원이 광주로 가게 된 정확한 시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광주로 옮겨간 후에도 한자리에 고정되어 있던 것이 아니라 몇 곳을 옮겨 다니다가 지금의 광주 분원리에 정착했고 이곳에서 조선의 멸망과 함께 폐쇄되었다.
청화백자의 대유행
청화백자와 관련된 조선시대의 여러 문헌에는 청화(靑花)·화자기(畵磁器)·화사기(畵沙器)·화기(花器)·화기(畵器) 등의 용어가 보인다. 현재는 '푸른색의 무늬'라는 의미에서 청화(靑華·靑畵·靑花) 등의 용어가 통용되고 있다.
당시 청화백자의 안료인 회회청(回回靑)은 조선에서 생산되지 않는 물건이었다. 그 때문에 조선초기에는 회회청이 너무 비싸서 왕실용 도자기에만 조금씩 사용할 수 있었다. 특히 조선중기에는 임진왜란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으로 청화백자의 제작이 줄고 철화백자가 그 자리를 대신하기도 했다. 청화백자 안료가 많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청나라와의 무역이 재개된 조선후기부터이다.
청화백자의 생산이 증가되었다는 것은 요업(窯業) 자체가 회복·안정되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왕실전용 사기제조장이었던 분원이 왕실상납용뿐만 아니라 일반 판매를 목적으로 사사로이 번조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18~19세기 이후 이와 같은 상황은 더욱 가속화되었고 갑발에 넣은 청화백자는 정교하게 만들어지면서 감상용 자기로서의 성격이 강해진다.
제작방법에서도 여러 가능성이 시험되었으며, 기물의 종류도 급격히 많아지게 된다. 그 가운데 문방구류의 증가는 특히 눈에 띄는데, 이러한 사치풍조를 견제하려는 왕실의 노력이 있었지만 막을 수 없었다.
청화백자의 문양은 화훼(花卉), 초충(草蟲), 길상(吉祥), 산수문, 사군자문, 문자문, 민화풍 문양 등으로 다양해졌고, 청화안료의 사용범위도 단순히 문양을 그리는 것 외에 다른 안료와 혼용하거나 채색을 하는 등 폭넓게 사용되었다. 특히 능화형 창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발색이 진해졌다는 특징이 있다. 이 시기 청화백자들이 수습된 가마터로는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금사리·분원리 등이 있다.
뮤움 미술사연구팀 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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