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초기 도자예술

한국미술사 l 조선초기 도자예술

청·백의 조화로운 미감, 분청사기

고려시대보다 검소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조선초기에는 화려한 고려청자보다 수수하고 질박한 미감을 가진 그릇을 더욱 선호했다.
회흑색의 태토(胎土) 위에 백토니(白土泥)를 분장한 분청사기(粉粧沙器)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의 과도기 단계에 있던 것으로, 조선초기를 대표하는 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공안부명 대접, 1400~1420년, 높이9.4cm, 입지름16cm, 밑지름5.5cm, 국립중앙박물관

    분청사기는 비교적 국가의 통제가 심하지 않는 편이었기 때문에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기법을 보이게 된다. 이 대접은 1421년 세종의 어명이 있기 전에 생산되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장흥고명 대접, 1438년 이전, 높이6.5cm, 입지름20cm, 밑지름6.7cm, 국립중앙박물관

    세종의 어명이 있던 1421년 이후에 제작된 대접으로 분청사기의 문양과 전반적인 형태가 상당한 안정감을 보이고 있다.

  • 분청사기 상감유어문 매병, 15세기 전반, 높이29.9cm, 입지름4.6cm, 몸지름16.5cm, 국립중앙박물관

    이 매병은 ‘상감 분청사기’로 원하는 무늬를 그린 뒤 무늬 부분을 칼로 도려낸 후 그 자리에 백토와 자토를 넣고 유약을 발라 구웠다. 상감청자의 기형(器形)과 운학문(雲鶴紋;구름과 학을 반복적으로 그린 것)을 유지하고 있어 상감청자에서 분청사기로 넘어오는 과도기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중앙의 물고기 문양은 분청사기에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서민적인 정서를 반영한다.

  • 분청사기 인화 ‘사선(司膳)’명 대접, 15세기 초, 높이8.2cm, 입지름18.7cm, 밑지름6.1cm, 호림박물관

    접시의 중앙부에 적혀 있는 ‘사선(司膳; 훗날 사옹원)’이란 궁중의 술과 음식을 담당하는 사선서를 의미한다. 국가에 진상한 작품으로, 관청이름이나 지방이름을 인화기법으로 새긴 예는 상당히 많다.

  • 분청사기인화운룡문호, 15세기 중엽, 높이49.7cm, 국립중앙박물관

    태토는 밝은 회색을 띠며 조밀하고 가는 빙렬이 있는 담청색을 머금은 투명한 분청유가 입혀져 있다. 7개의 문양대로 구획되어 인화소국문과 상감당초문 사이에 운룡문이 상감돼 있다.

  • 분청상감인화운룡문호의 용문

    발가락이 4개인 4조룡으로, 용의 모습은 비상(飛上)한다기 보다는 힘차게 달려나가는 듯한 자세를 띤다. 명나라의 자기에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이다.

  • 분청사기 조화절지문 편병, 15세기, 높이20.5cm, 입지름5cm, 밑지름8.3cm, 개인소장

    편병이란 도자기 몸체의 좌우를 눌러 납작하게 만든 병을 말하는데, 주로 술병으로 쓰였다. 이 편병은 선각기법이라고도 불리는 조화기법을 사용했다.

  • 분청사기 철화연지어문 장군, 15세기, 높이15.4cm, 몸지름12.8×23cm, 일본 오사카 시립동양도자미술관

    충남 공주의 계룡산 기슭에서는 15세기 후반부터 철화기법의 분청사기가 다수 제작된다. 처화기법은 백토 분장을 한 도자기에 철분이 많이 함유된 석간주(石間硃)라는 녹물을 가지고 그리는 기법이다. 이 안료의 특징은 마치 화선지의 먹처럼 물에 닿으면 빨리 번지는 특성을 갖고 있어 빠른 필치로 그려야 한다는 점이다. 양쪽의 연꽃과 그 사이에 새가 물고기를 잡으려는 장면이 묘사돼 있다.

  • 분청사기 귀얄문 항아리, 15~16세기, 높이39.8cm, 입지름14.5cm, 밑지름16cm, 호암미술관

  • 분청사기 덤벙문 대접, 16세기, 높이8.1cm, 입지름18.5cm, 밑지름6.8cm,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귀얄기법과 덤벙기법은 백자와 가까워지면서 등장한 기법으로, 16세기가 되면 분청사기의 활달한 서민정서가 백자에 흡수되기 시작한다.

Description

고려시대보다 검소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조선초기에는 화려한 고려청자보다 수수하고 질박한 미감을 가진 그릇을 더욱 선호했다. 회흑색의 태토(胎土) 위에 백토니(白土泥)를 분장한 분청사기(粉粧沙器)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의 과도기 단계에 있던 것으로, 조선초기를 대표하는 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분청사기의 역사적 배경

분청사기란 말은 1930년대 고유섭(高裕燮, 1904~1944) 선생이 당시 일본인들이 사용하던 ‘미시마[三島]’란 용어에 반대하여 새롭게 지은 약칭(略稱)이다. 고려가 무너지자 상감청자를 만들던 도공들은 전국 각 지역으로 흩어져 개인적으로 도자기를 굽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국가에 진상하는 도자기뿐 아니라 일반 서민들을 위한 도자기도 만들게 된다. 조선초기의 도공들은 달라진 환경과 변화된 수요층에 맞춰 분청사기라는 새로운 그릇을 만들게 된 것이다. 

 

퇴락한 상감청자(象嵌靑瓷)에 그 연원을 두는 분청사기는 14세기 후반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여 조선왕조의 기반이 닦이는 세종연간(1419~1450)을 전후하여 그릇의 질(質)이나 형태 및 무늬의 종류, 무늬를 넣는 기법[施文技法] 등이 크게 발전·세련되어 그 절정을 이루게 되었으며, 조선 도자공예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이게 된다. 이러한 배경에는 1421년 세종의 어명에 의해 세금 대신 국가에 진상하는 모든 도자기에 도공의 이름을 쓰게 했기 때문인데, 이 조치로 인해 분청사기의 격이 한층 높아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15세기 후반부터 경기 광주 일대에 백자(白瓷)를 생산하는 관요(官窯)가 운영되면서 왕실과 관아에서 필요로 하는 자기의 공급은 광주분원(廣州分院)에서 맡게 되자 관장제수공업체(官匠制手工業體)로서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 분청사기의 생산은 점점 소규모화되면서 민간용을 주로 생산하게 되었다. 더욱이 중앙관요의 영향이 지방으로 파급되면서 백자의 생산이 계속 증가되었으며, 16세기 중엽 이후에는 분청사기의 생산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임진왜란 이후에는 백자만이 남아 조선시대 도자기의 주류가 되었다.

 

 

자유분방한 미감

분청사기의 특징은 청자나 백자에서는 볼 수 없는 자유분방하고 활력에 넘치는 실용적인 형태와 다양한 백토 분장기법(粉粧技法), 그리고 의미와 특성을 살리면서도 때로는 대담하게 생략, 변형시켜 재구성한 무늬라 할 수 있다. 백토분장기법이란 정선된 백토를 그릇표면에 바름으로써 원래의 회색의 태토가 드러나지 않으며 때로는 백토를 바른 후 조각을 하거나 긁어내어 무늬를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이때 새겨지는 무늬에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에서 볼 수 없는 특별한 아름다움이 표현된다. 이렇게 새겨진 무늬는 속기(俗氣)가 없는 천진난만한 익살이 깃들여 있다. 기교가 없이 아무렇게나 백토를 긁거나 조각한 것 같으면서도 기교가 넘쳐흐른다. 이러한 특징은 분청사기가 유교(儒敎)의 사회기반 위에서 성장하였고 고려 이래의 불교와 함께 표면상으로는 크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은연중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지방마다 특색이 있는 전통의 영향이었다고 생각된다.

 

 

기법 및 변화양상

분청사기는 분장과 무늬를 나타내는 기법에 따라 7가지로 분류한다. 첫째는 표면을 선이나 면으로 판 후 백토나 자토(裏土)를 감입(嵌入)해서 무늬를 나타내는 상감기법, 둘째는 무늬를 도장으로 찍고 백토분장(白土粉粧)을 한 후에 닦아내서 찍힌 무늬가 희게 나타나는 인화기법(印畵技法), 셋째는 분장 후 무늬 이외의 백토를 긁어내 태토의 어두운 색과 분장된 백색을 대비시켜 무늬를 표현하는 박지기법(剝地技法), 넷째는 분장 후 선으로 무늬를 새기는 조화기법(造花技法), 다섯째는 분장 후 철분(鐵分)이 많은 안료(顔料)로 무늬를 그리는 철화기법(鐵畵技法), 여섯째는 귀얄로 분장만 하는 귀얄기법, 일곱째는 백토물에 담궈서 분장하는 덤벙기법이다. 이들 각각의 기법들은 시대성과 지역성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분청사기는 크게 4시기로 구분된다. 전기(발생기, 1360~1420)는 고려청자 상감무늬의 퇴화된 여운과 그 변모 및 인화기법이 발생한 시기이고, 중기(발전기, 1420~1480)는 상감·인화·조화·박지 등 다양한 기법의 분청이 생산된 시기이며, 후기(쇠퇴기, 1480~1540)는 상감 ·인화기법의 쇠퇴하고 철화·귀얄·덤벙분청이 성행한 시기이며, 말기(소멸기, 1540~1600)는 귀얄 ·덤벙분청이 소멸된 시기이다.

 

 

뮤움 미술사연구팀 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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