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미술
한국미술사 l 백제의 미술
세련된 우미(優美)의 창출
한강유역에서 일어난 백제는 마한지역을 통합하면서 일어난 나라로, 이후 웅진(지금의 공주)과 사비(지금의 부여)로 도읍을 옮기면서 독특한 문화를 꽃피웠다.
백제는 중국 남조와의 교류를 통해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국제적인 안목을 가진 세련되고 우아한 문화를 창출했다.
백제의 미술
한국미술사 l 백제의 미술
세련된 우미(優美)의 창출
한강유역에서 일어난 백제는 마한지역을 통합하면서 일어난 나라로, 이후 웅진(지금의 공주)과 사비(지금의 부여)로 도읍을 옮기면서 독특한 문화를 꽃피웠다.
백제는 중국 남조와의 교류를 통해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국제적인 안목을 가진 세련되고 우아한 문화를 창출했다.
서산마애삼존불, 국보 제84호,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6세기~7세기
백제 말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서산마애삼존불은 중국 남북조 말기인 제나라와 주나라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보원사지입구 좌측 가야산록의 고란사 왼쪽에 있는 큰 바위 동남면에 조각되어 있다. 이 불상은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미소 짓는 모습이 각기 달라서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석촌동백제초기적석총 제3,4호분
사적243호, 고분
석촌동백제초기적석총 발굴모습
한성기 토기, 4~5세기, 서울 몽촌토성 외, 높이(가운데) 45.5cm
이 시기에는 백제고유의 특징을 지닌 흑색마연토기와 세발접시 등의 토기가 출현하며 곧은 목항아리, 장란형토기, 굽다리접시 등이 만들어졌다. 흑색마연토기는 칠기(漆器)의 재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토기 겉면을 마연한 것으로 당시 지배계층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충남 공주의 무령왕릉 외부
분구(墳丘)는 지름 약 20m의 원형(圓形) 플랜을 가지며 널방[墓室]의 바닥면에서 분정(墳頂)까지 7.7m이다.
무령왕릉 내부
널방[玄室]은 연화문전(蓮華文塼)·문자전(文字塼) 등으로 쌓여진 단실묘(單室墓)로 평면 4.2m×2.72m의 크기이다.
무령왕 묘지(墓誌)
국보 제163호, 6세기, 길이41.5cm
관꾸미개, 무령왕릉출토, 국보 154호(左왕)․155호(右왕비), 6세기, 길이(左) 30.7cm
무령왕비 관의 좌우에 꽂은 꾸미개로 얇은 금판을 뚫어 무늬를 새긴 것이다. 중앙의 꽃병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연꽃잎들이 그 위로는 넝쿨이 펼쳐진 모습이다.
목걸이, 무령왕릉출토, 국보 158호, 6세기, 지름16cm
금으로 된 관꾸미개나 목걸이 등은 백제의 고유한 특징을 따르고 있어 백제가 주체성을 가지고 중국의 선진문화를 수용했음을 알 수 있다.
전남 영암 내동리 독널무덤
독널무덤 해부도
영산강 유역의 토기
전남 영암 만수리 외, 5~7세기, 높이(오른쪽)18.5cm
금동관(金銅冠), 국보 제295호, 전남 나주 신촌리, 5세기, 높이25.5cm
백제지역에서 출토되는 관은 나주 신촌리와 함평 예덕리 신덕고분 출토품처럼 금동관으로 아직 금관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나주 신촌리 관은 옹관고분에서 출토되었고, 관과 관모가 함께 발견되어 당시 지역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 받아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백제금동대향로, 국보287호, 충남 부여 능산리 절터, 6~7세기, 높이61.8cm
1993년 부여군 능산리 절터의 목곽 수로 안에서 발견된 이 향로는 연꽃을 모태로 한 불교사상과 우주의 삼라만상이 음양의 조화로 구현한 도교사상이 잘 어우러져 있다. 그 안에는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후 정치적 안정을 되찾은 7세기 초에 백제인들의 정신세계와 예술적 역량이 함축되어 있다. 이 향로가 오랜 세월에도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는 진흙과 범벅이 되어 진공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산수무늬벽돌[山水文塼], 보물 제343호, 충남 부여 외리, 7세기, 길이29.5cm
1937년 충남 부여군 규암면 외리에 있는 한 폐사지(廢寺址)에서 출토된 산경(山景:2종)·귀형(鬼形:2종)·반룡(蟠龍)·연화(蓮花)·와운(渦雲)·봉황(鳳凰)무늬 등 8종류의 의장(意匠) 중 하나이다.
수막새, 충남 부여, 6~7세기, 지름(오른쪽)14.2cm
사비기에는 연꽃무늬를 중심으로 한 백제 특유의 기와장식이 완성된다.
전달린 토기, 충남 부여 관북리, 7세기, 높이(가운데)21cm
사비기 토기는 세발접시, 병, 단지, 뚜껑접시, 굽다리접시, 손잡이 잔, 그릇받침, 전달린 토기, 합, 접시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특히 생활유적에서 대량으로 출토되는 회백색의 전달린 토기와 합은 크기가 몇 종류로 통일되어 있어 토기 생산이 규격화되고 전문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양직공도>에 나오는 백제사신, 6세기
<양직공도>는 양나라의 원제(元帝)인 소역(蕭繹, 505∼554)이 제위(帝位)에 오르기 전인 형주자사(荊州刺史) 재임시(526∼539)에 편찬한 도서(圖書)이다.
초두(鐎斗), 서울 풍납토성, 3~4세기, 높이21.7cm
초두란 술 등의 액체를 데우는 그릇을 말한다.
달머리 모양 주전자[鷄首壺]
충남 공주 수촌리, 5세기, 높이23cm
칠지도, 백제 4세기, 일본 이소노가미 신궁[石上神宮], 74.9cm
일본 나라현 덴리시 이소노카미 신궁[石上神宮]에 보관 중인 칠지도(七支刀)는 양 옆으로 모두 6개의 가지가 뻗은 철제 칼로 칼에는 표면(앞면)에 35자, 이면(뒷면)에 27자로 총 62자의 금상감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는데, 명문의 해석을 둘러싸고 한일 역사학계에서는 서로 해석을 달리하고 있다. 해석 문제는 광개토대왕릉비와 더불어 임나일본부설의 실재 여부를 입증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한강유역에서 일어난 백제는 마한지역을 통합하면서 일어난 나라로, 이후 웅진(지금의 공주)과 사비(지금의 부여)로 도읍을 옮기면서 독특한 문화를 꽃피웠다. 백제는 중국 남조와의 교류를 통해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국제적인 안목을 가진 세련되고 우아한 문화를 창출했다. 이러한 백제문화는 일본에 전해져 아스카(飛鳥)문화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백제미술의 시대구분
백제는 마한(馬韓)의 한 국읍(國邑)세력의 일파로써 백제국(伯濟國)이 성장, 발전하여 이룩한 국가이다. 기록에 의하면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한 북방 이주민으로, 종족적으로 고구려와 같은 뿌리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백제미술의 근간은 고구려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백제시대 미술의 발전 단계는 정치적인 변천과 맥락을 같이하여 3기(期)로 나누고, 제1기 한성시대(漢城時代, 기원전18∼475), 제2기 웅진시대(熊津時代, 475∼538), 제3기 사비시대(泗沘時代, 538∼663)로 왕도의 천도와 같이 구분하고 있다.
백제미술의 특성은 북방적인 고구려 문화 요소를 토대로 하여 시대성·자연환경·토착성·인위적 창조성을 갖고, 서남의 바다를 통해 중국의 선진 문물을 외교를 통해 받아들여 진취적으로 수용, 창조적으로 융화하여 찬란한 백제적인 미술품을 재창조하였다. 나아가 일본에 백제문화를 전파하여 일본문화 형성의 기조를 이루게 하였다.
제1기. 한성에 도읍한 백제
한성시대는 초기의 약 500년간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발달하였으나 현존하는 미술품은 거의 전무하며, 고고학적 발굴자료에 의해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전쟁과 방어를 위해 풍납토성․몽촌토성 등의 성곽이 축조되었고, 고구려계의 돌무지무덤[積石塚]인 경기 양평·문호리·삼곶리·가락동·석촌동․·연천 등에서 토기·대롱옥[管玉]·흑유(黑釉)거치무늬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문헌자료에 의하면 마한이 3세기 후반부터 진나라에 조공무역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중국 동진에서 수입된 4∼5세기 미술품으로 청자 도연편(陶硯片)·흑갈유 전문편(錢文片)·청자 사이호(四耳壺)·법천리 청자양형기(羊形器)·화성군 천계호(天鷄壺) 등이 출토되었다. 또한 불교의 전래와 함께 한산에 절을 세우고 승려를 두었다고 하나 현재는 유적과 유물이 없다. 이 시기에 예배대상인 불상 등은 전래되거나 제작되었지만 귀걸이 이외의 장신구 등의 금속공예품은 거의 없다.
제2기. 백제의 중흥, 웅진기
웅진시대는 고구려의 남진정책으로 백제세력이 위축되면서 64년간 천도했던 시기로 초기에는 지방호족과의 다툼으로 혼란하였으나 곧 국내를 정비하여 신라와 동맹을 맺고, 불교를 발전시키는 한편, 중국 양(梁)나라와 문물을 교류하여 새로운 발전의 기틀을 만들었다. 6세기 전반기에 축조된 무령왕릉(武零王陵)에서 출토된 금속공예품을 위시하여, 새로운 전축분 축조, 대통사(大統寺) 창건, 수원사(水源寺) 등이 보여 주는 바와 같이 불교중흥의 바탕을 이룩하였다. 불교에서 외래양식 수용은 북위와 동·서위 양식을 받아들여 강건한 기상이 보이는 한편, 백제적인 우아함과 세련된 기법을 볼 수 있다.
-무령왕릉과 출토유물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錦城洞)에 있는 무령왕릉은 백제 무령왕과 왕비의 능으로, 송산리(宋山里) 제5,6호분과 서로 봉토(封土)를 접하고 있다. 1971년 7월 1,400여년의 침묵을 깨고 그 모습을 드러냈으며, 백제고분으로서 전례가 없을 정도로 풍부하고 화려한 2,9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무령왕릉은 연화문(蓮花文)의 벽돌로 된 아치형의 벽돌무덤으로 여기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금관·석수(石獸)·동자상(童子像)·청동경·자기·지석(誌石)·금은 장신구 등이 있다. 이 고분을 통해서 백제의 국가상, 사회생활, 양(梁)나라와의 문화교류, 장사를 지내는 예법은 물론, 삼국간의 문화교류, 문화의 특수성과 공통성을 확인할 수 있다.
영산강 유역의 독자세력
영산강 유역에는 3세기 후반 4세기 초가 되면 흙을 높게 쌓고 그 속에 여러 개의 커다란 독널을 매장하는 대형분구묘(大形墳丘墓)가 출현한다. 일반적으로 독널에서는 목걸이, 큰 칼, 창, 화살촉, 항아리나 단지 등이 출토되지만 전남 나주 신촌리 9호 무덤에서는 금동관, 금동신, 금동 봉황장식 고리자루칼 등의 화려한 꾸미개와 무기류가 출토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백제 중앙과 계통을 달리하는 이 지역 지배자의 무덤으로 추정되는데, 여기에서는 백제 고유의 토기인 세발접시가 출토되지 않는 점이 특징이다. 영산강 유역의 대형 독널무덤은 5세기 후반 점차 굴식돌방무덤으로 바뀌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이 지역이 점차 백제세력에 의해 통합되었음을 보여준다.
제3기. 백제의 마지막 수도, 부여
사비시대는 백제의 웅비(雄飛)의 시기이며, 부여는 마지막 천도로 123년 동안 수도였다. 성왕(523∼554)은 백제의 중흥의 왕으로 불교를 장려하고, 중국 양나라와 교류을 통해 새로운 문물을 흡수하였다. 미륵사(彌勒寺), 왕흥사(王興寺)와 같은 대찰을 창건하여 “사찰과 탑이 매우 많다”라고 기록될 정도로 부흥하였다.
사비시대의 백제미술은 중국 양쯔강[揚子江] 유역의 남․북조 예술을 수용해 국제적이고 개방적인 면모를 찬란하게 승화시켰다. 이러한 문화적 특징은 사비기의 사찰이나 무덤 등에서 출토되는 토기와 기와, 벽돌, 금속 공예품 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 대표작으로는 우주의 삼라만상을 표현한 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 국보287호), 산수무늬 벽돌 등이 있다. 한편, 충남 서산에 있는 마애삼존불상(磨崖三尊佛像)은 백제말기 화강암 벽에 새겨진 마애석불로, 소박한 옷차림과 엷은 미소를 띤 온화한 아름다움으로 ‘백제의 미소’로 알려져 있다.
국제문화의 교차로, 백제
백제는 양을 비롯한 중국 남조의 각국과 활발하게 문화를 교류하는 한편, 우수한 문물을 일본에 전파했다. 한성시대에는 아직기·왕인 등이 일본에 한학과 유교를 전했는데, 특히 왕인은〈천자문〉을 전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오경박사가 교대로 일본에 파견되었으며, 기술자인 봉녀(縫女)·야공(冶工)·양주인(釀酒人)을 비롯해 와박사(瓦博士)·조사공(造寺工) 등의 건축기술자도 파견되었다. 백제문화는 일본 고대문화에 큰 영향을 미쳐 아스카(飛鳥) 문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와 관련한 유물로는 백제왕실이 일본 왕에게 선물한 것으로 전해지는 일본의 칠지도(七支刀)가 있다.
한성기 유적인 풍납토성의 초두(鐎斗), 몽촌토성의 전문도기, 강원 원주 법천리․충남 천안 화성리․충남 공주 수촌리 등지에서 출토된 중국 도자기 등은 중국과의 활발한 교류관계를 보여준다. 웅진 천도 이후에는 양의 무덤을 본떠 만든 벽돌무덤과 무령왕릉의 껴묻거리에 포함된 중국도자기와 청동거울, 양을 방문한 백제 사신을 그린 양직공도(梁職貢圖)를 통해 중국과의 공식화된 교류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사비기에도 중국화폐인 개원통보(開元通寶)가 유통됐고, 중국 도자기가 들어오는 등 지속적인 교류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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