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호, 리움 안에 집을 짓다
작가 서도호는 1990년대 중반 이후 꾸준히 '집'을 탐구해 왔고, 이번 리움에서의 전시 역시 '집'을 주제로 구성하였다. 렘 쿨하스(Rem Koolhaas)라는 독창적 건축가가 만든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 전시는 독특한 리움 건축물에 대한 서도호의 조각적 해석이며, 둘 사이에 일어나는 흥미진진한 다이얼로그이기도 하다.
서도호가 짓는 집은 그것이 전시되는 공간과 반응하며 새로운 해석을 가져오는 것이 특징적이다. 특히 렘 쿨하스라는 뚜렷한 개성에 대한 서도호의 시도들은 주목할 만하다. 리움의 기획전시실은 그라운드갤러리와 블랙박스라는 두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서도호는 기획전시실 안과 밖을 십분 활용하여 자신의 작품에 새로운 시각과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였다. 기획전시실로 향하는 입구 경사로에 설치된 <투영(Reflection)>은 전시 도입부의 역할을 한다. 이는 전시실로 향하는 문과 같으면서 이 전시의 출발이 집이라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그로부터 이어져 내려가는, 압도적인 콘크리트 공간 안에 서도호는 부드럽고, 가벼운, 반투명한 천으로 집을 지었다. 이러한 상반된 재료의 해석은 서로 충돌하는 듯 하면서 상호 보완적이기도 하다.
한편 렘 쿨하스의 건물에서 블랙박스는 매우 독특한 존재이다. 흰색의 그라운드갤러리 위에 있으면서도 그라운드갤러리라는 거대한 공간 안에서 부유하는 듯이 보이는, '집 속의 집'과 같은 공간이다. 이는 이번 전시 제목이 『집 속의 집』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서도호는 블랙박스 안에 그의 대표적인 작업 중의 하나인 <집 속의 집(Home within Home–1/11th–Prototype)>을 배치하여 렘 쿨하스의 공간에서 친숙하면서도 낯선, 생경하면서도 익숙한 대화를 이끌어 냈다.
서도호는 자아와 타자, 과거와 현재, 상상과 현실, 개인과 집단, 순간과 영원 등과 같이 상반된 요소들의 경계를 집을 통해 넘나들고 있다. 서도호 작가가 지은 집은 양극단을 오갈 수 있게 하는 통로와도 같아 보인다. 섬세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그의 작품은, 특정한 비평적 관점에서 해석되기 보다는, 좀 더 보편적이며 존재론적인 관점에서 그 의미를 가진다. 이번 서도호의 개인전 『집 속의 집』은 '집'을 중심으로 한 그의 작품 세계를 심도있게 조망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작품세게
서도호의 작품 세계는 '집'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서 출발한다. 서도호의 집에 대한 일관된 관심은 어떤 담론이나 미학적 관점에서 출발하는 것이 라기 보다는, 어쩌면 본능에 가까운 작가에게 내재된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서도호는 서울 성북동 한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한국에서 한옥에 사는 것이 별 특별할 것 같지 않기도 하지만, 아주 특별한 일이기도 하다. 특히 작가가 한옥에서 유년기를 보냈던 1970, 80년대는 우리나라가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는 시기였기에, 한옥 보다는 양옥, 한복 보다는 양복 등 모든 면에서 한식 보다는 양식이 선호되었다. 창덕궁의 연경당 사랑채를 본떠 지었다는 성북동 한옥은, 주변에 새로 들어서는 양옥들과 대비되어 매우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이처럼 한옥과 양옥의 문화적 충돌에 대한 작가의 체득은, 작가가 후일 미국에서 느꼈던 문화적 충돌을 극대화 하는 근본이 되었을 것이다.
미국 문화에 대한 경험은 성북동 한옥에서 겪었던 양옥과 한옥의 충돌 경험의 전이에 다름 아니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과거의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하는 실마리가 되었다. 미국이라는 새로운 세상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의 출발점은 작가가 유년을 보냈던 바로 그 집이었다. 따라서 서도호의 작품 세계는 집을 떠나 '나'를 찾아가는 여정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에게 집은 아주 사적인 공간이며, 또한 개인과 개인이 관계를 맺는 사회적 공간이기도 하며,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우주적 공간이기도 하다.
떠도는 집
서도호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천'으로 지은, 이동 가능한 '집'이다. 우리말로 '짓다'라는 동사는 재료를 들여 옷을 만든다는 뜻과 집을 건축한다는 뜻 두 가지를 포함하는데, 이는 서도호의 작업을 설명하기에 매우 적절하다. 서도호는 이 단어가 가진 두 가지 의미를 천으로 집을 짓는 작업에서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렘 쿨하스 건물의 전시실로 들어가는 경사로에 설치되어 전시실로 들어가는문의 역할을 하는 <투영(Reflection)>은 한옥의 작은 문을 천으로 재현한 작품이다. 넓게 펼쳐진 푸른 색조의 수평천을 사이에 두고 위 아래로 마주보고 있는 두 개의 문은 수면에 비친 반영(reflection)과 같이 보이고, 관람객은 물 속에서 수면을 올려다 보며 걷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된다. 자신의 모습을 호수면에 비추어 보는 나르시스처럼, 관객들은 서도호의 집을 돌아봄으로써 자아를 숙고(reflection)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담고 있다.
이 문을 지나 도착하게 되는 그라운드갤러리에서는 뉴욕 아파트, 베를린 아파트, 성북동 한옥 등 그가 살았던 집들을 경험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은 실제 집이 아니라 천을 재료로 삼아 섬세하게 손바느질로 '지은' 집이라는 점이 다르다. 한지처럼 반투명한 천의 은은한 겹침과 섬세한 손바느질이 자아내는 아름다움은 서도호의 집이 주목받게 하는 최고의 요소이다. 작가는 자신이 살았던 뉴욕의 스튜디오, 서울 집, 뉴잉글랜드의 집, 베를린 집의 내부 하나 하나를 천으로 만들어 냈다. 세면기, 스위치, 손잡이 등과 같은 아주 작은 부분까지도 충실하게 재현하는데, 과장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는 섬세함과 정교함으로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한다. 이와 더불어, 꼼꼼하게 바느질된 천들의 겹침은 그의 집이 갖는 의미의 층위들을 암시한다.
서도호가 세계 미술계의 관심을 받게 된 대표적인 작품은,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성북동 한옥의 일부를 옥색 은조사로 지은 <서울 집/LA 집/뉴욕 집...>(1999)이었다. 한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는 한옥에 사는 독특한 경험 뿐만 아니라, 한옥의 건축적 특징에 대한 생각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다. 1991년 유학시절, 작가는 자신이 서울에서 살았던 한옥과 뉴잉글랜드에서 살게 된 18세기 양식의 서양식 건축물의 차이점을 거의 즉각적으로 감지한다. 한옥은 창과 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많으며, 한지로 마감된 창과 문은 집 안과 집 밖의 구분이 모호하게 한다. 집 안에서도 자연의 변화를 듣고 느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서양집은 대체로 두꺼운 벽으로 지어져 안과 밖의 구분이 분명하여,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기 보다는 외부와 단절되고 닫힌 건축적 상황이 만들어진다. 서도호가 천으로 지은 집은 벽이면서도 벽 너머의 공간이 보이고, 방 안에서 방 바깥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만들어졌다. 이는, '집'이라는 공간에서의 경험의 재현이라 할 수 있다. 그가 기억하는 집은 안과 밖의 구분이 모호하며, 자아와 타자, 집 안의 사람과 집 밖의 자연이 더불어 살아가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가 집을 짓기 위해 선택한 반투명한 천은 '집'에 대한 작가의 개념을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재료였다.
사실, 집은 한 장소에 고착되어 있기 때문에 집이라는 건축물을 옮기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서도호는 천이라는 가벼운 재료로 1:1 스케일로 재현하여 전시실에 옮겨 놓음으로써 이동 가능한, 떠도는 집을 지었다. 이 중에서도 그라운드갤러리의 중심이 되는 작품은 작가가 살았던, 높이가 13미터에 달하는 3층짜리 뉴욕 타운하우스의 전면부를 푸른 천으로 만든 <청사진(Blueprint)>과 성북동 한옥의 본채를 천으로 재현한 <서울 집/서울 집(Seoul Home/Seoul Home)>이다. <청사진>은 2010년 베니스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에 전시되었던 작품으로, 리움에서는 높이 18미터의 그라운드갤러리 안에 자리를 잡았다. 천창에서 내려오는 빛을 받은 푸른 색의 건물 전면부는 투명하게 빛난다. 작가는 '청사진'이라는 건축적 개념을 예술 작품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예술과 건축의 경계에 위치하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성공적으로 각인시켰다. 이 작품 만큼이나 거대한 스케일의 작품은, 이번 전시를 위해 오랜 시간 공들여 제작한 신작 <서울 집/서울 집>으로, 가로가 15미터에 이른다. 작가는 하나의 장소, 하나의 의미에 자신의 '집'을 고착시키고 싶어하지 않기에 작가가 지은 집은 여기 저기를 떠돌면서 작품의 제목도 계속 변하게 된다. <서울 집/서울집>은 다음 전시 장소로 이동하게 되면 <서울 집/서울 집/00 집/00 집...>과 같이 다른 도시의 이름을 붙인 제목을 갖게 될 것이다.
서도호의 집이 존재했던 장소와 시간은, 세계 각지를 떠돌면서 새로운 의미들을 더하게 된다. 그의 작품은 대중적이고 공적인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재맥락화되면서 '집'은 그 상황에서 발생하는 여러 의미들을 부여받게 된다. 관객은 반투명한 천으로 재현된 작가의 집을 들여다 보며 작가의 과거와 관객의 현재가 중첩된 새로운 시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각기 다른 시간을 작가와 보낸 한옥, 뉴욕집, 베를린집이 한 공간에 전시됨으로써 작가가 경험한 과거의 시간들은 현재의 관객에게 전달되면서 다양한 기억들을 불러 일으킨다. 따라서 그의 집은 과거와 현재, 자아와 타자가 공존하고 교차되는 공간이다. 이제 그의 집은 서도호 만의 집이 아닌 것이다.
충돌하는 집
전시실 안의 전시실이라는 독특한 개념으로 지어진 리움의 블랙박스에 전시되는 또다른 집 작업은 <별똥별–1/5(Fallen Star–1/5thScale)>과 <집 속의 집–1/11(Home within Home–1/11th Scale–Prototype)>이다. 이 두 작업은 작가가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하면서 겪었던 문화적 충격을 시각화한 일련의 작업에 속한다.
성북동 한옥의 모형이 뉴잉글랜드의 아파트 모퉁이에 날아와 박힌 형태의 <별똥별–1/5>은 하나의 장소가 다른 장소로 전이되고, 충돌하고, 전치되면서 나타나는 과정을 조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시 한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작가의 개인적 경험과 과거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작가는 자신이 살았던 너무도 전통적인 양식의 한옥은 어떤 면에서는 양옥으로 채워지는 외부와 단절된 세계와도 같았다고 회상한다. 작가에게 미국 유학 경험은 한옥에서 겪었던 고립감, 동양과 서양의 충돌이라는 경험의 전이였고, 이는 서로 다른 개인이나 특성이 충돌하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건축적 공간에 대한 관심으로 번역되었다. 특히 <별똥별–1/5>(2008-2011)은, 그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집 내부, 작가가 살았던 집 안을 구성하였던 수없이 많은 물건들을 세밀하게 재현한 흥미로운 작품이다. 옷, 그릇, 책상을 비롯하여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음식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그대로 보여 주는 모형들의 세밀함과 정확함은 경이로우며 아름답기까지 하다. 서도호의 '떠도는 집'들이, 수많은 관계들 속에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인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재현하는 과정 역시 작가가 보낸 시간과 공간, 그로 인해 만들어진 관계들을 숙고하면서 자신을 찾아가는 제의적 과정으로, 종교적 수행에 비견될 만한 행위이다.
부서졌던 벽돌을 다시 붙이고, 망가진 부분을 고쳐 나가는 과정을 거쳐 <집 속의 집(Home within Home)>에 이르러서는 한옥이 뉴잉글랜드의 집 속에 안착해 있는 모습으로 존재하게 된다. 반투명한 재료로 만들어진 두 채의 집은 이제, 재료와 색감이 동일해져 있어 하나의 안정된 존재로 보인다. <집 속의 집>에 이르는 과정은 매우 위트있으며, 작가의 의도는 분명한 표현으로 전달된다. 한옥에서 자라며 만들어진 한국적 정체성은 서양에서 머물렀던 집과 충돌하고 적응하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생성한다. 이는 문화적 충돌을 겪었던 작가 개인적 경험이기도 하지만, 개인간의 차이, 문화의 차이, 지역의 차이 등 다름에서 비롯되는 충돌을 늘 경험하며 상황에 적응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리움에서 보여지는 집 속의 집이라는 개념은 인연과 윤회의 관점에서도 의미를 가진다. 집 속의 집, 또, 그 집 속에 놓인 집 이라는 상황은, <카르마 (Karma)>와 같은 집적 조각이 보여 주는 관계와 윤회의 개념을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 다시 말하면, 그가 보여 주는 집은 개인이기도 하며, 그 개인은 시작과 끝을 찾을 수 없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어 무한히 반복되며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서도호의 집은 개인, 지역을 넘어서는 보다 보편적인 관점에서 존재 의미를 획득한다.
상상의 집
이번 전시에 포함되는 다이내믹한 영상작품 두 점 <문-리움 버전(Gate-Leeum Version)>과 <완벽한 집: 다리 프로젝트(A Perfect Home: The Bridge Project)>는 서도호의 조각 작품들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는다. 블랙박스 안쪽에 배치된 <문-리움 버전>은 전시장 도입부의 <투영>에서 처럼 한옥의 문을 천으로 만들고, 양 옆에 천을 덧대어 이미지를 투사하는 영상 작품이다. 이 작품은 원래 2011년 시애틀미술관(Seattle Art Museum) 에서 개최되었던 아시아 전통미술 전시, 『빛을 발하는: 아시아의 예술 (Luminous: The Art of Asia)』에 유일한 컨템퍼러리 예술로 포함되었던 작품이다.
리움의 한국 전통미술 전시관 M1과 현대미술 전시관 M2를 잇는 통로에 설치된 <계단(Staircase)>, 복도(베를린 아파트의 복도), 문, 다리 등과 같이 두 공간을 연결하는 요소들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시애틀미술관의 동양미술 소장품 전시에 새로운 해석의 관점을 제시하게 되었다. 서도호는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전통미술을 바라보는 연결고리로서의 역할을 자신의 작품에 부여하고자 하였고, 이를 위해 작가는 한옥의 본채와 사랑채를 연결하는 문(Gate)을 중심 요소로 택하였다. 그리고 문 양쪽에 같은 천으로 스크린을 덧대어 마치 문과 연결된 담처럼 만들어 이 문을 통해 전시실로 들어가게 하였다. 여기에 투사된 영상은 시애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일본 전통회화에서 모티프를 딴 사슴, 한국 그림 속의 매화나무, 이 밖에도 새, 소나무 등을 결합하여, 잠자리와 나비들이 날아다니고, 사슴들이 문턱을 넘어 사라지는 장면들이 어우러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전통예술 작품들로부터 분리되어 차용된 각각의 요소들은, 원래의 맥락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보다는, 작가의 상상력과 결합되어 현대적 관점에서 전통을 바라보는 역동적인 영상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실제와 일루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이 작품의 주제는 전통과 현대 간의 다이얼로그였다. 작가는 현재 시점에 시애틀이라는 장소에서 일어나는 동양의 전통미술에 관한 전시로서의 의미, 동양인 서도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동양유물의 전시의 의미를 재고하게 하며,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존재하는 전치(displacement)의 대표적 장소로서의 미술관을 재인식시켰다. 서도호는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유물은 모두 본래의 맥락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며, 이 유물의 파편들로 쓰여진 역사는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라는 말로써, 미술관이 전이의 역할을 하는 공식적인 장소이며, 자신의 작품 역시 전시되는 장소와 공간의 특징에 따라 그 의미가 변모함을 설명한다. 즉, 미술관에 놓인 예술 작품이 갖는 의미는 그것이 본래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이들이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동양 미술의 파편들로 이루어진 <문-리움 버전>은 미국이 아닌, 서울이라는 동양의 도시로 귀환하여 새로운 맥락에 놓임으로써 시애틀에서와는 전혀 다른 의미들을 만들어 내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영상 작품 <완벽한 집: 다리 프로젝트>에서는 작가의 상상력이 최대한 발휘된다. 이는 작가가 추구하는 완벽한 집을 실현하고자 하는 가상의 계획을 다루는 프로젝트이다. 6채널로 이루어진 이 영상 작품은 다리를 짓기 위한 드로잉과 건축적인 데이터들로 채워진다.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작업하던 서도호는 두 도시를 잇는 다리를 만드는 계획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 다리의 정확한 중간 지점(그곳은 태평양의 어느 지점이 된다고 한다)에 태평양의 조류와 풍력, 자연환경의 변화 등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을 짓는 것이 그의 상상이다.
<완벽한 집: 다리 프로젝트>는 서도호의 예술 세계가 가지고 있는 많은 의미들을 함축한다. '완벽한 집'은 경계와 통로에 대한 이야기이다. 서울 집과 뉴욕 집 사이의 중간 지점에서 작가가 거주한다면 그 곳에서의 삶은 서울에서의 삶도 아니고 뉴욕에서의 삶도 아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경계인으로서의 삶, 이곳 저곳을 떠도는 글로벌 유목인으로서의 삶 그 자체의 상징이 될 것이다. 작가는 경계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 곳곳에 담고 있는데, 특히 이 작품에서는 경계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역설적으로 던지고 있다. 경계의 의미는 불명확하며 부정확하며 정확한 경계짓기라는 행위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현대적 삶에서의 경계의 의미를 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추구하는 완벽한 집은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수 있는, 자유로이 떠도는 마음을 담는 심리적 공간이자, 경계인으로서의 현대인이 거주하는 물리적 공간이자, 관계와 관계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것 모든 것을 품는 상상의 공간이다. 그의 작품은 완벽한 집을 찾아가는 영원한 미완의 프로젝트로, 문고리, 경첩, 전등, 자신이 입는 옷, 침대, 그가 재현하는 모든 것은 완벽한 공간으로서의 집을 짓고자 하는 욕망의 상징이다. 그러나 그것이 실현되지 못할 프로젝트임을 작가는 알기에, 그 치밀한 재현과 데이터와 연구들 속에서도 상상력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상상'은 완벽한 집을 지을 수 있는 궁극의 길인 것이다.
<카르마>, <인과(Cause and Effect)> 등과 같은 그의 대표적인 집합적 조각 작품들은 이번 전시에는 대부분 배제되었지만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의 관계와 경계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는 개념이 같다. (리움의 로비에 설치된 <카르마>는 '로툰다' 라는 독특한 건축적 공간에 대한 해석 으로 전시에 포함되었다.) 한편 리움 워크숍룸(Kids & Family Workshop Room)에서는 서도호 작품들의 사진자료와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작가의 생각 등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상영하여 서도호의 예술 세계를 다각도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리움에 전시된 작품들과 더불어 다큐멘터리 속에 보여지는 많은 자료들은 서도호의 작품을 매우 익숙하게 여겨지게 한다. 그런데, 사실 거의 대부분의 작품이 한국에서는 전시된 적이 없었거나 신작이기 때문에 이 전시에서 보여지는 작품들은 낯익은 듯하면서도 새롭다. 내가 한옥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한옥에서 살아 본 적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서도호의 공간에 대한 일관된 관심은 자유로운 발상과 표현으로 드러나며, 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기에, 그가 짓는 집은 늘 새롭다.
전시제목서도호 - 집 속의 집(Home within Home)
전시기간2012.03.22(목) - 2012.06.03(일)
참여작가
서도호
관람시간10:30am~18:00pm
휴관일월요일
장르미디어와 공연예술
관람료일반 7,000원
초중고생 4,000원
장소삼성미술관 리움 Leeum Samsung Museum of Art (서울 용산구 한남동 747-18 삼성미술관 리움)
연락처02-2014-6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