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제작 조건이 불리했던 시대의 여류 3인방 롯데갤러리 본점에서 마련한 이번 전시는 롯데백화점 개점 31주년을 기념하여 ‘여성’의 가치를 존중하고 여성예술가들의 입지를 재발견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국내 대표적인 여류작가 이성자(李聖子, Rhee Seund Ja 1918-2009), 윤영자(尹英子,Youn Young Ja 1924-), 천경자(千鏡子,Chun Kyung Ja 1924-)의 작품을 전시한다. 세 여성 모두 1950년대 6.25 전쟁과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도 불구하고, 작업에 열정을 쏟으며 국내외 미술계에 큰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재불작가인 이성자(작고) 화백의 경우, 프랑스에서 활동하면서 동양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작업으로 김환기, 이응로 등과 함께 활발히 한국미술을 세계로 알렸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었던 부분이 적지 않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이성자 화백의 작품 15점은 우주와 근원을 고민해왔던 화백의 독특한 시각을 시대별로 살필 수 있다. 한편 홍익대 미술학부 최초 여성 졸업생이면서 목원대학 미술학부를 창설하고 석주문화재단을 만들어 여성미술의 발전을 위해 안팎으로 애써온 윤영자 화백은 그 역시 여인상과 모자상을 주제로 여체와 모성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를 해왔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 특별히 자신의 소장작품들을 선보임으로써 일반적으로 보기 힘들었던 작품 15점을 소개한다. 활발한 작업활동과 미술계를 위한 다양한 노력은 많은 미술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일반인들이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천경자 화백의 꽃과 미인도 시리즈, 그리고 아프리카 풍광이 담긴 이국적 풍물도가 선보인다. 오로지 예술의 길에 천착했던 여성화가의 대표적 인물인 천경자화백은 화려한 색채와 현대적 구성미, 그리고 주제의 특수성으로 한국의 채색화를 새롭게 창조한 화가이다. 천경자화백의 흔치않은 대작, <정원>(130x162, 종이에 채색, Color on Paper, 1962)을 비롯한 13점의 작품들은 평소에 보기 힘들었던 작가의 대표작들로 여러분의 예술적 호기심을 만족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뿐만 아니라 이번 전시부터 롯데갤러리 본점에서는 작품마다 QR코드를 부착, 보다 풍부한 작품해설을 첨부함으로써 전시관람객들의 다양한 관람포인트를 제공할 예정이다.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을 활용하면 보다 이해하기 쉬운 관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성자(李聖子, Rhee Seund Ja 1918-2009)는 이성자의 작품들에 대해 단적으로 이렇게 평했다. 이성자의 유화와 목판화 도자기에 이르는 작품세계는 이처럼 동양적인 감성이 번득인다. 2009년 작고한 이성자화백은 1918년 전남 광양 출생으로 한국전쟁 때인 1951년 파리로 유학을 떠나 본격적인 미술 공부를 시작한다. 미술계의 거장 이응로, 김환기 등과 파리에서 함께 활동했으며 파리를 무대로 중견작가로 성장한다. 이성자는 프랑스 생활을 통해 세계화단의 조류를 관통할 수 있었으며 이후 자신의 작품에 원초적으로 타고난 동양적인 것에 대한 갈망을 화폭에 구현하면서 오리엔탈적인 향취로 프랑스 자연에 정통한 작가라는 프랑스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즉 이성자의 작품 속에는 어린 시절 한국에서 느꼈던 정신적인 사유와 파리에서 실시간으로 호흡한 세계미술의 도도한 조류가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고 있다. 이러한 그녀의 작품세계를 인정한 프랑스는 2001년 예술문화공로훈장을 수여하고 2009년 한국에서 보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이성자 작품에서는 기호체계와 같은 상징물이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상징물은 프랑스의 삶에서 천착된 작가의 자기암시이자 일종의 소통으로 보여진다. 암호같은 고유한 회화 언어를 다양한 재료로 재구성한 것이 이성자작품의 특징이다. 상징물의 추상적인 의미는 삶과 죽음이 윤회하는 불교, 유교, 도교적인 동양정신과 맞닿아있다. 미당 서정주시인은 이성자의 작품에서 자신의 시적 풍경에서 흐르고 있는 동양적인 미감과 처녀성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특히 그녀가 주목한 것은 ‘도(道)’였다. 그녀에게 ‘도(道)’는 ‘길’이며 '뜻'을 의미한다. 길은 헤쳐가야 할 모험이며, 열어야 할 처녀림이자, 무질서 가운데에서 질서를 세우는 창조의 도그마로서 작용한다. 통일의 원칙으로 보면 ‘도(道)’는 음과 양의 조화라고 볼 수 있다. '정립(these, 테제)'와 '반정립(antithese, 안티테제)'에서 '종합(synthese, 진테제)'의 정반합적인 요소가 휘몰이로 만나면서 조화를 이루는 상징성은 이성자의 작품 안에서 끊긴 선(음)과 뻗은 선(양)의 그래픽 요소로 표현된다.
이성자의 작품은 시기별로 1954-1960년의 구상과 추상, 1961-1968년 여성과 대지, 1969-1974년 겹침과 도시, 1974-1976년 음과 양, 초월, 1977-1979년 자연, 1980-1994년 대척지로 가는 길, 1995-2008년 우주로 구분 할 수 있다.작가 초기 작품에서 구상과 추상은 어우러지면서 표현된다. 이성자는 이후 여성과 대지시대를 통해 생명의 근원을 보편적 기호언어로 내세우면서 기하학적인 상징물을 통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확장시킨다. 작가는 시간 속에서의 생명, 지구와 우주의 관계 등 근원적인 것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탐구를 통해 겹침과 도시, 자연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회화 표현으로 일관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작가는 작고하기 전까지 우주라는 주제에 탐닉해왔다. 인간과 우주의 존재론적인 성찰이 화폭에 표출 된다. 생명, 인간, 자연, 우주 이러한 주제들은 결국 하나의 범우주적인 공간 안에서 조화를 이루기 위해 접근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 우주는 존재와의 상관관계를 통해 펼쳐지는 작가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자 시공간을 초월하는 상징적인 요소로 자리매김한다. 이성자 작품의 톤은 밝은 색채로서 삶에 대한 긍정적인 비전을 투영시킨 듯 하다. 또한 동양적인 향취는 이성자 작품의 전 과정을 통해 수렴되어있다. 이성자의 작품세계는 어린 시절 숲에서 뛰놀던 조국의 산하에 대한 추억의 편린을 프랑스에서의 자연이 주는 이미지와 결합시켜 화폭에 풀어낸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성자의 작품세계는 이와 같이 세월을 거치며 다양한 스타일의 변화된 작품을 잉태했지만 동양적인 관조의 철학적인 상징성과 인생과 자연에 관한 겸허한 태도는 그의 작업 전 과정을 통해 예술적 통합성을 보여주었다고 평가 받는다.
윤영자(1924-)의 작품세계는 인체의 볼륨을 리듬감 있는 곡선의 미학으로 풀어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한국여성조각의 선구자로서 석주미술상을 만들어 창작과 평론에 이르는 여성미술계인사들을 지원한 공로 또한 큰 작가이다. 1955년 홍익대학 미술학부를 졸업하고 1953년, 54년 국전에서 특선, 1955년 국전에서 문교부장관상 등 다수 특전에서 큰 상을 수상한다. 또한 목원대 교수로 후학 양성에도 힘을 쏟아왔다. 윤영자는 여성으로서의 조각 작업은 거칠고 과격한 영역이기에 결코 쉽지 않다는 선입견이 편견이라는 점을 60년 작품활동을 통해 입증시켰다. 작가가 즐겨 다루는 대상은 여인상과 모자상이다. 많은 여성 조각가들이 흔히 다루는 주제이기도 하지만 윤영자만큼 초기작에서부터 현재까지 일관된 한가지 주제를 가지고 치열하게 작품세계를 형상화 한 경우는 흔하지 않다. 여인상과 모자상은 여성작가의 자전적인 요소가 짙다는 점에서 여류 조각가에게 친밀한 소재이다. 윤영자의 여인상과 모자상에는 생명의 외경과 부드러운 곡선의 아름다움 속에서 때론 리드미컬하게 드러나는 원초적인 율동의 충만함이 작가의 독특한 개성으로 다가온다.
이 같은 소재의 한정은 윤영자의 의식세계가 지나치게 제한적이지 않은가에 대한 의문도 품을 수 있다. 하지만 보편적인 소재를 자신의 삶의 주제를 관통하는 화두로서 조각작품의 중심에 놓았다는 것은 특수한 것이며, 조각작품의 형상화를 통해 존재의 원형질을 체로 쳐서 걸러내듯 인체의 신비를 가다듬은 솜씨는 작품 하나 하나를 깊이 음미할 수록 대화하는 듯 감흥을 주는 카타르시스로 우리들에게 다가온다. 윤영자 작품은 초기에는 석고상이나 돌을 다뤘으며 이후 대리석 등을 이용해 따스한 질감이 주는 특성을 조화로운 선의 미학으로 표현해왔다. 한 주제 안에서 다른 재료를 사용하거나, 같은 형태의 입상과 와상 등의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유사한 형태이지만 각각 야누스와 같은 독자의 언어로 호흡하는 작가의 창의성을 엿볼 수 있다. 브론즈 혹은 금속의 소재는 깔끔한 형태 처리를 부각시키며 날렵한 공간성을 보여주는 한편, 대리석의 질감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이 덧입혀져 ‘애(love),’ ‘정(warm feeling)’과 같은 주제가 선명한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도록 만든다. 윤영자 작품의 모태는 여심(女心) 모성(母性)이다. 윤영자의 작품은 리듬감 있는 곡선의 유려한 흐름이 절제된 단순한 형상화를 통해 생명과 사랑이라는 이중주로 탄주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일관된 주제로 본질을 추구하는 작가의 음성이 윤영자의 작품 속에 녹아있다.
천경자(1924-)의 작품은 몽환적이며 환상적이다. 자기자신의 꿈과 환상 내면의 은밀한 욕망이 투사되어있기 때문이다. " 나는 나의 슬픈 눈만을 내놓은 채 사막을 달리고 싶다" 해외 여행 스케치 전을 하면서 느낀 작가자신의 심정을 옮긴 글이다. 천경자의 작품을 관통하는 정신은 작가의 생에 점철된 내면의 아픔과 낭만, 정신의 환상여행, 갈등이 유려한 채색의 독특한 화풍으로 탄생되었다. 천경자는 자신의 내면에 자리잡은 한(恨)이 그림 속에 투영되었다고 말한다. 천경자는 1924년 도쿄여자전문학교를 수학했으며 당시 일본 선전에 입상한 바 있다. 1979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83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대표적인 한국화가로서 한국화단 원로의 한 명이다. 서울시립미술관에 자신의 작품 93점을 기증한 후 미국으로 건너간 천경자의 작품은 크게 1960년대와 그 이후로 나눠 볼 수 있다. 자전적인 자화상이나 초상화 요사한 기운을 내뿜는 뱀무리 등 인물화 등을 그린 것이 전기작품들이다. 70년대 이후 세계여행스케치를 통해 이국적인 여인상이나 풍물도, 미인도로 대변되는 여인초상화는 천경자의 독특한 인물화이자 대표작의 하나로 후기작품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아프리카풍광에서 뛰노는 동물이리든가 꽃과 여인은 천경자 작품 세계의 대표적인 테마이다. 이국적인 정취의 풍물도나 동물들이 펼치는 작품 세계에는 원시를 동경하는 작가의 내면풍경이자 생명의 약동이 화폭에 일렁이는 듯 하다.
천경자의 미인도는 우수가 깃들인 여인의 눈망울이 보는 이를 끌어 당긴다. 화려한 채색의 꽃관이나 꽃바구니가 그로테스크한 환상과 낭만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여인의 수심에 찬 눈망울에는 허허로운 인생의 내면적인 갈등과 이루지 못한 낭만의 아쉬움을 머금은 듯 한 상징성이 내포되어 있다. 천경자 자신의 삶에서 윤색된 인생의 이미지가 화폭에서 재생산되었기 때문이다. 천경자의 작품세계는 상당 부분 자전적인 작가의 내면여행이라고 보여진다. 환상은 삶과 죽음의 교차로에서 변주와 합주로 만나는 이미지에 다름 아니다. 천경자의 그림은 이처럼 인생의 속베일을 한꺼풀 벗기면 우리 앞에 그대로 펼쳐지며 실현될 것 같은 환상의 치명적인 유혹과 맞닿아있다. 나는 미완성의 작품, 미완성의 인생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나는 꿈을 향해 부지런히 그림을 그리며 현실을 거짓없이 살았다. 꿈과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 곧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기에 나는 불행하지 않다.
– 천경자 전시제목아름다운 대화
전시기간2010.10.27(수) - 2010.11.15(월)
참여작가
윤영자, 이성자, 천경자
관람시간10:30am - 08:00pm 주말 오전10:30~오후8:30
휴관일없음, 백화점 휴무시 휴관
장르회화와 조각
관람료무료
장소롯데갤러리 본점 Avenuel Lotte gallery (서울 중구 남대문로2가 130번지 롯데백화점 본점)
연락처02-726-4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