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미술관 Leeum은 2010년 8월 26일부터 2011년 2월 13일까지『미래의 기억들(Memories of the Future)』展을 개최한다. Leeum은 그 동안 한국과 외국,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다양한 전시들을 선보여 왔다. 이번 『미래의 기억들』展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갖춘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현대미술의 여러 양상을 조명하고, 동시대 미술의 흐름과 담론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회화, 조각과 같은 전통적인 미술은 아름답고 숭고한 절대적인 가치를 가진 것으로 숭배되어 왔다. 그러나 1910년대 마르셀 뒤샹의 출현 이후 1960년대에 팝 아트, 개념미술, 플럭서스 등으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미술의 내용과 형태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자 참여 작가 로랑 그라소의 작품이기도 한 미래의 기억들(Memories of the Future)은 과거에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미술의 영역을 탐구하고자 하는 현대미술을 상징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시간과 공간, 과거와 미래, 평면과 입체, 예술과 일상, 영원함과 사라짐 등과 같은 상반된 의미의 경계를 넘어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을 탐구해 온 현대미술의 개념적인 측면을 "유동적 진실", "영원에서 순간으로", "기념비를 기념함" 이라는 주제들로 선보인다. 전시장을 비롯하여 Leeum 미술관 전체에서 보여지는 작품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예술작품, 작가, 그리고 전시 공간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참여하도록 유도하여 Leeum의 공간과 현대미술을 보다 친근하게 경험하고 이해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진실한가? - 유동적 진실
오늘날의 현대미술은 눈에 보이는 것은 진실한가, 예술은 무엇인가, 이미지는 진실을 전달하는가 등과 같은 예술의 본질적 의미들을 탐구한다. 프랑스 작가 로랑 그라소는 현대물리학에 기초하여 예술의 상대적이며 모순적인 개념을 전달하고자 한다. 그가 말하는 '미래의 기억들'은 실제로는 불가능한 시간 개념이나, 미래는 과거의 사건들에 의해 변화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미립자들의 연결인 끈(string)의 진동에 따라 우주가 변한다는 끈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의식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하이퍼 링크시키는 것처럼 로랑 그라소의 불가능한 시간의 조합은 가능해진다. 건물의 벽면에 섬세한 패턴으로 장식을 하는 창 킨-와의 작품은 작가가 쓴 문장으로 이루어진다. 주로 창 킨-와는 사회에 대한 발언들로 글을 쓰는데, 이번 작품에서 그는 아름다움과 추함, 겉으로 보이는 진실과 그 이면에 숨은 위선에 대해 끝없는 질문을 던지면서 우리 스스로 그에 대한 답을 구하기를 요구한다. 소피 칼은 실제와 허구를 뒤섞어 관객을 혼란에 빠뜨린다. 소피 칼은 과거와 현재 혹은 존재하지 않는 미래까지도 넘나들면서 자신만의 '진실된 허구'를 만들어 냈다. 그의 작품에서 어느 것이 허구이고 어느 내용이 진실인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마치 미로를 끊임없이 오가는 듯한 혼란 그 자체인 것이다. 독일 작가 디르크 플라이쉬만도 진실 혹은 실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개념주의적인 관점에서 고찰한다. 탄소배출권 비지니스에서 거래 대상으로서의 '공기'의 거래 문제를 비지니스와 예술, 기표와 기의의 대립항의 문제로 풀어내는 그는 눈에 보이는 것 이면의 보이지 않는 의미들을 전달하고자 한다.
예술작품은 영원불변하는 것인가? - 영원에서 순간으로
예술작품은 회화와 조각 등과 같은 고유의 재질과 형태를 가지고 있어 왔다. 또한 이것은 유구한 문화유산으로서 역사를 통해 그 가치를 부여받는다. 그러나 현대미술에서 작가의 아이디어가 더욱 중요해지면서 영원히 존재하는 물리적 존재로서의 예술 작품 개념은 변화하고 있다. 특히 1960년대에 등장한 대지미술은 예술을 미술관 밖으로 불러내고 자연이나 우리 주변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일시적인 예술의 형태를 제시하였다. 이후 현대미술에는 영원불멸하는 것이 아닌, 일시적이고 사라지는 탈물질화 경향이 점차 두드러진다. 따라서 미술관이나 자연이나 삶의 공간을 변화시키는 장소-특정적 설치작업이 본격화되고, 그것을 감상하는 사람이나 자연의 변화에 의해 변하고 사라지는 일시적 존재로 변모하게 된다. 로랑 그라소의 네온 설치작업은 전기가 흐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푸른 색에서 옅은 색으로 빛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자신의 조각이 물리적 볼륨이 없으며 사라지는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창 킨-와, 마이클 린, 곽선경 등 건물의 내외부의 벽면에 설치된 작품들 또한 전시 기간 이후에는 사라지는 작품들이다. 이들 작품은 전시가 끝나면 실체는 사라지고, 제작을 위한 도면과 드로잉, 설치 사진으로만 존재하게 된다. 권오상의 사진 조각은 독특한 경계에 위치한다. 권오상의 작품은 조각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표면을 뒤덮고 있는 것은 순간을 다루는 사진이라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순간은 영원으로, 영원은 다시 순간으로 교차하는 불가능한 영역이 권오상의 조각에서 발견된다. 실제로 작품이 사라지는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작품도 있다. 화장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신미경의 비누로 만든 비너스상이 그것이다. 미인의 기준으로 인용되어 왔던 비너스의 두상은 화장실에 설치되어 관람객들의 실제 사용을 유도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손으로 비너스의 두상을 문지르는 과정에서 예술작품은 마모되어 닳아 없어지게 된다. Sasa[44]는 전시의 개막식을 기념하기 위한 케이크를 주문제작하였다. 케이크는 개막식에 참여한 관람객들의 케이크를 먹는 행위를 통해 눈앞에서 사라진다. 관람객은 유일무이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했던 예술작품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순간을 목격하게 된다.
예술가의 독창성은 독창적인가? - 기념비를 기념함
일찌기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가 도래하면서 예술의 유일무이함으로부터 비롯되는 아우라는 사라질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현대는 대량생산과 매스미디어 등으로 특징 지워지는 대량 문화의 시대이다. 이러한 사회, 문화, 과학에 변화는 독창성 개념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개성없는 일상용품의 무한반복과 복제를 통해 예술의 영역을 확장한 앤디 워홀 이후 디지털시대에 이르면 '원본성'의 개념도 무의미한 것이 된다. 독창성, 원본성, 유일무이함 등과 같은 모더니즘적 가치들은 절대적인 의미를 상실하고 대신 모든 창조의 근원에는 모방이 있으며,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는 역설을 통해, 과거로부터 빌어오기, 즉 '차용'이 독창성의 새로운 개념으로 제시되기에 이른다. 현대의 작가들은 개념, 형태 등을 차용하여 새로운 독창성을 부여받게 되며, 작가들은 이러한 과정에서 유머, 조롱, 비틀기 등과 같은 개념을 덧붙여 자신만의 새로운 원본성을 획득하게 된다. 매끈하게 연마된 반짝거리는 표면과 귀여운 형태가 대표적인 제프 쿤스의 조각을 차용한 김홍석의 (개 같은 형태)와 (토끼 형태)는 보는 이로 하여금 실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일상적 오브제를 차용해서 만든 조각을 쓰레기 봉투, 쇼핑백 등과 같은 일상용품으로 어설프게 재현한 조각은 작품의 의미가 아닌 조각의 표면에 집중하게 하여, 작품 내부에 담긴 의미를 감추어 보이지 않게 하는 불투명함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조각의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전달한다. 잭슨 홍의 (땀샘)은 리처드 세라의 기념비적 구조물에 비견될 만하다. 전시장 내부에 설치된 길고 높은 벽은 다른 작품을 거의 보이지 않게 하는 훼방꾼과 같다. 그의 거대한 조각은 싸구려 향기를 내뿜는 거대한 땀샘에서 냄새를 발산하는 피부이다. 그는 땀구멍이 확대되어 보이는 피부, 화장실 향분사기, 땀냄새 등을 거대한 조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미술관에 전시되는 기념비적 조각 작품들을 조롱한다. 사사[44]의 조각은 호랑이해를 맞아 호랑이를 '기념'하기 위해 호랑이에 관련된 아이콘들을 모아 만든, 다시 말하면, '기념'의 의미를 차용한 '기념비적' 조각이다. 현대미술에서 모방과 복제에 근거한 차용은 이제 새로운 독창성으로 의미를 부여받았다.
이렇듯 현대미술은 상식과 논리를 너머 존재하지 않는 영역을 탐구하고 있다. 예술과 일상, 과거와 미래, 평면과 입체, 가상과 실제, 진실과 허구, 영원함과 사라짐, 시각예술과 언어 등과 같이 상반된 두 영역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예측이 불가능한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를 통해 예술의 영역은 무한히 확대되어 간다. 이는 예술 개념의 확장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예술작품이 미술관을 넘어 일상의 영역으로 확장되어 설치되고 관람객과의 상호소통과 경험을 통해 이해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마치 식물덩굴이 자라 건물을 뒤덮은 듯 보이는 창 킨-와의 당초문 패턴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듯 투명한 유리벽 처럼 미술관 밖과 미술관 안을 연결시키는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까페를 이국적 분위기로 전환시킨 마이클 린의 페인팅, 로랑 그라소의 네온 설치, 블랙박스 전시실 꼭대기나 화장실처럼 뜻밖의 공간에서 발견되는 조각들은 미술관의 영역을 확장하며, 예술의 개념 자체를 전환시킨다. 이제 미술에서는 단일한 형태, 양식, 매체, 의미 등이 아니라, 그것의 전환적 가치가 중요한 것이다. 회화는 캔버스를, 조각은 형태를, 사진은 평면을, 미술관은 전시장을 떠나, 새로운 의미와 장소로 전환시키며, 시각과 사고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것이 예술의 진정한 의미가 되었다. 이를 통해 미술관은 시간을 박제하는 곳이 아닌, 살아 숨쉬고 움직이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전시제목미래의 기억들(Memories of the Future)
전시기간2010.08.26(목) - 2011.02.13(일)
참여작가
곽선경, 권오상, 김홍석, 신미경, 잭슨 홍, 사사, 소피 칼, 디르크 플라이쉬만, 로랑 그라소, 마이클 린, 창킨와
초대일시2010년 08월 25일 수요일 05:00pm
관람시간10:30am~18:00pm
휴관일월요일
장르특별전시
관람료일반 5,000원
초중고생 3,000원
장소삼성미술관 리움 Leeum Samsung Museum of Art (서울 용산구 한남동 747-18 삼성미술관 리움)
연락처02-2014-6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