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유성: Play And Its Connnection

2024.04.18 ▶ 2024.05.25

갤러리 마크

서울 서초구 사평대로20길 3 (반포동, 신화빌딩) B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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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유성

    Follow me,140x140cm,oil on canvas,2023

Press Release

어둠 속 생기, 발랄하게 구축되는 공간
1980년대 으스스한 분위기의 차갑고 두텁고 묵직한 분위기를 자아낸 작업을 거쳐, 1990년대에는 아이들의 장난감(오리, 코끼리, 풍선 등)들이 부유하는 사랑 충만한 분위기의 화폭으로 구성되었고, 2000년도를 넘어서면서 지금의 제유성 작가의 상징적 작업의 형태와 형상들이 본격화되고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화폭 안의 구성물들의 양감적 형태들이 서서히 구축되는데 그 전보다는 꽉 채워진 화폭 안의 구성물들은 얽히고설키며 채워진다. 다정다감하게 부유했던 장난감들의 형상들로 이루어진 화폭조차 전반에 걸친 작품의 기저 정서는 어두워 보이고, 이후 밀도 있게 구축된 공간을 함유한 조합된 유닛 및 블록들은 밝은 원색임에도 여전히 차분히 가라앉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서로 엉켜있는 퍼즐들은 건물과 집 등의 통통한 형태로 점차 변모했고 빽빽하게 들어찬 형상 하나하나에 시선을 두고 읽다 보면 제유성 작가의 예전 작업보다는 퍽퍽하게 소화를 시켜야 하기에 다소 시간이 소요된다.
< A Journey into Another World >(2009)는 한 편의 디즈니 영화를 보듯 빼곡한 작은 공간들이 군집되어 있어 앞으로 쏟아져 버릴 듯 집약되어 있는 구성이며 동화적 판타지를 그득 작가가 우리에게 선물Present 하는 듯 보인다. 특히 화폭 중앙에는 시선을 안으로 끌어들임과 동시에 가장자리로 퍼져 나가며 구성된 건축물들과 집들은 작가만의 감각으로 볼륨을 넣어 왜곡시켰고 한 화폭 안에 시선이 부지런히 입체적으로 부유하게 해 시각적 읽는 재미를 더한다.
< The Invisible >(2011)에서는 부드러워진 곡선과 식물의 유기체와 같은 형태들이 나타나 피어나며 이제는 여유 없이 꽉 들어찬 크고 작은 장난감 같은 블록들 사이 틈틈이 자라나는 식물들의 생명체는 작가의 예전의 작품들에서 느껴진 생기와는 또 다른 생명력이 부가되어 움튼다. 2018년부터는 현재 작품으로 이어지는 < 프로토타입(Prototype : 원형) > 시리즈가 등장한다. 생명의 원천은 어떤 형상일까에 대한 작가의 해석으로 보인다. 피어나는 생기가 있으며 꿈틀거리며 에너지를 품고 발산하여 감지되는 형상이다. 시각적으로 완전하게 인지되지 않고 알 듯 말 듯한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는 모호한 형태는 축적되어 온 모든 경험과 지각을 동원해 최대한 존재할 법한 근사한 형태로 조합하여 인지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여전히 정의할 수 없는 형태의 구성물들은 우리들의 시지각을 간질거리며 무한한 상상의 공간으로 유도한다. 작가의 고유한 감각으로 구축되거나 버무려진 물성의 힘을 이용한 완전한 추상도 아니며-혹은 아니도록- 감질나게 호흡하고 있는 듯한 형상이다.
2013년부터 이어 온 현재까지의 작업은 이러한 형상들이 패턴화되어 반복되거나 흐물거리는 유기체의 모습으로 유쾌하고 즐겁게 우리의 시지각과 상상력을 작가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조율하며 발란스를 맞추고 있다. 작가는 재미있고 즐거운 가상의 공간으로 우리를 유도해 그만의 공간에서 충분히 유희하는 듯 보인다. 각각의 작품마다 새로운 공간에서의 색다른 세계를 조형하고 있어 흥미롭지만, 유쾌하고 발랄하고 동화적이며 따듯하도록 오묘한 발란스를 타고 있는 작품에는 작업에 대한 그리고 삶에 대한 반전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만약 저한테 일상의 삶 없이 오롯이 작업에만 열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생각해 봅니다.”
- 제유성 작가 인터뷰 중 -


잔혹한 삶, 빛나는 생명력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절망의 끝에서 그 나락으로 떨어지는 육체와 정신이 얼마나 처참할 수 있는지를 마음이 베일 정도로 날 선 조형 언어로 아프게 할퀴는 프리다 칼로의 작품은 감정이 휘몰아치게 하는 격정적임에도, 사랑하는 딸을 잃고 본인의 건강에도 심각한 문제가 생긴 완벽주의자 구스타프 말러의 감당하지 못할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작곡한 강렬한 비탄이 담긴 <현세(대지)의 노래>에도, 우리의 마음은 헤어 나오지 못할 거대한 슬픔 속으로 침잠되지만은 않는다.

“색을 발견했다. 다른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서가 아니라 빛이 자연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을 통해서 말이다. ...그림에 홀렸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나는 비로소 파라다이스로 옮겨진 듯한 착각에 빠졌다... . 뭔가가 나를 몰아갔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인간으로서 나의 평범한 삶에는 빠져 있던 어떤 것, 어떤 힘 같은 거였다.”
- 필립 샌드블롬, 『창조성과 고통』, 중 -


그림에 홀려 그만의 파라다이스 속에서 황홀하고 눈부신 색채 감각을 보였던 앙리 마티스, 그의 말년에 거동조차 쉽게 못 하는 상태에서 종이로 겨우 오려 만든 가벼운 질량의 종이 조각이 막대하고 벅찬 슬픔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것은 경이로울 정도다. 통탄의 슬픔과 걷잡을 수 없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아픔을 품고 창작해 낸 이들의 예술은 소멸해 가는 세상의 모든 것들 속에도 찬란하게 살아있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여러 은유적 방식으로 직감하게 한다. 물리적 소멸이라는 것은 약한 것이 도태되는 것도 아닌 영원히 사라짐도 아닌 다른 어떠한 에너지로 변환되어 존재한다는 이치를, 그 자연스러운 생태를 가장 부드러운 예술적 언어로 우리를 설득하고 위로해 주는 것은 아닐까. 물러설 곳 없이 맞닥뜨려진 절박한 상황과 환경, 그리고 병마와 싸우며 통증을 이겨내는 사투에 가까운 몸부림은 본인만이 아는 고독하고도 치열한 싸움이겠지만 작가 본인과 그리고 세상과 화해해 나가는 과정이 상흔의 궤도로 남겨지는 작업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인간이 만든-창작물일 것이다.
심리적 통점이 예민한 예술가가 감내하는 삶은 예술과 분리될 수 없고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것 자체가 예술가의 삶이며, 삶 속에서 배출되는 진주와 같은 작품은 그가 빚어낸 가장 찬란한 생산물일 것이며 몰입해 들어가는 작업은 다시 그가 살아내는 일상 곧 삶이 된다. 얼마나 힘겨운 삶이든 최소한의 역치 자극에도 반응하는 초 예민한 창작자든 불문하고, 잔혹한 삶을 살아내는 이야기가 곧 작업일 것이며 힘겨운 만큼 세상에서 가장 포근하고 안락한 자신만의 안식처와 공간을 만들어 구축하고 구성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작가가 체감되는 통감이 깊을수록 작업에 대한 몰입도 깊어질 것이며 우리를 그의 공간으로 이끄는 힘도 바로 이 지점일 것이다.

희망의 노래, 야릇한 프로토타입
음악에서 악보의 음표, 캔버스 안에 잘 구성된 물성의 형태와 형식을 넘어선beyond, 창작자의 창발적 호흡과 의도를 우리는 알아차릴 수 있을까.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의 바쿠스 작품 그리고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이 우리의 영혼을 홀리는 지점은 발그스레한 얼굴의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우리를 쳐다보는 바쿠스의 요염한 표정보다, 엉켜서는 안 될 것 같은 색의 범벅과 전통적인 구도 따윈 우습게 뭉개버린 병적에 가까운 열정적 녹진한 물감의 붓질로 화석처럼 굳어 버린 드라마틱한 마티에르보다, 그 너머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 바쿠스의 손톱 밑에 잔뜩 까맣게 낀 과실주 찌꺼기, 물감을 짓이겨 집요하게 덧칠한 캔버스 중심이 아닌 가장자리는 채 칠해지지 않고 그대로 노출된 날 것의 천이 민망하게 드러나 있다. 그림을 잘 그리려는 의지 보다는 그토록 그렇게라도 그리지 않으면 안 되는 긴박한 상황이 우리에게 전달된 지점은 그렇게 표출된 캔버스의 가장자리, 살짝 숨겨놓은 작가의 슬픈 익살스러움이 화폭 너머를 바라보게 한다. 창작자들은 얄궂게도 모두가 쏠리고 주목하는 지점을 노출하는 대신 발견하는 자만이 공감할 수 있는 일종의 환희의 여지를 숨겨놓는다. 심지어 본인도 인지가 불가능한 깊이로 몰입된 상황에서라면 더 은밀한 곳일 것이다.
제유성 작가의 작품 속 형상들은 유쾌하고도 기괴하고 오묘하면서도 나름대로 명징하게 존재하는 유기체의 형태로 재미있게 응축되어 꿈틀거리고 있다. 때론 경쾌하기도 해 동심 속 판타지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으며 움트는 원형질(Prototype)의 모습은 야릇하기까지 하다. 삶 속에서 그의-삶과 예술이 엉킨-고뇌는 녹록지 않아 보이기에 안쓰럽기는 해도 그에게 강한 희망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작품과 작업을 기대하는 건 예술이 우리에게 늘 기대 이상으로 선사해 충족시켜 온 강력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생명과 원초에 대한 시각예술창작자로서의 연구와 탐구는 자신이 세상을 살아내며 겪고 회복해 내는 과정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존경과 경외를 표하는 일일 것이며, 제유성 작가만의 언어로 찬양하고 찬미하고 있다.
그의 삶, 예술가로서의 예민한 통점으로 모든 것을 맞아 이겨낸 한 인간의 위대한 강함의 결정체로 그의 작품을 음미하는 것도 우리의 잔혹함은 아닐는지. 한낱 벽에 걸려있는 두께 10센티미터 채 안 되는 평면화에서 우리의 원대한 상상과 꿈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더욱 끊임없이 깊숙하게 파고들어가기에 여전히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예술이 태초에 탄생하게 된 그 지점에서의 태고·선천적 요소이기에 전승되어 온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천연덕스러운 뻔뻔함일 수도. 창작자의 소통을 위한 지독한 필요와 욕망도 큰 몫이라는 핑계도 염치없지만 그대로 작가에게 미뤄본다. 제유성 작가의 작품으로 몰입되어 들어가 위안을 받고 나온 우리의 모습에 그는 또다시 그의 삶을 녹여 그의 작품에 또 다른 공간을 지을 것이라는 믿음에 의심은 없다. 삶과 예술, 그 처연한 랑데부!

■ 고연수(미술평론)

전시제목제유성: Play And Its Connnection

전시기간2024.04.18(목) - 2024.05.25(토)

참여작가 제유성

관람시간10:00am - 06:00pm

휴관일일요일 휴관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갤러리 마크 GALLERY MARK (서울 서초구 사평대로20길 3 (반포동, 신화빌딩) B2)

연락처02.541.1311

Artists in This Show

제유성(Jhe, You-Sung)

1963년 서울출생

갤러리 마크(GALLERY MARK) Shows on Mu: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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