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의 이름 the unknown name for K

2023.02.16 ▶ 2023.04.01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서울 금천구 범안로9길 23 (독산동)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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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ㅣ 2023년 02월 16일 목요일 14:00pm -18:00pm

  • 전시포스터

  • K의 이름

    전시전경2F ⓒ2023. Art Centre Art Moment All rights reserved.

  • K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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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Release

K의 이름
the unknown name for K


주시영(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디렉터)

태어남과 동시에 소속되는 공동체, 가족은 단순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집단이다. 저마다 다른 가족 이야기가 있고, 어떤 모습이든 각자의 근원이 되는 그곳이 있다. 《K의 이름》은 가족 공동체안에서 성장한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전시 제목 《K의 이름》에서 K는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성 the castle』에 등장하는 인물에서 가져왔다. 성의 부름을 받은 측량사 K는 정작 성에 접근하지는 못하고 근처 마을에서 기약 없이 머무르며 자신이 왜 거기에 있는지 알고자 한다. 공동체는 주로 역할로 존재를 규정하지만, K는 마을이 요구하는 역할의 규칙이나 기대에 부응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 카프카의 또 다른 작품 『가장의 근심』에 등장하는 ‘오드라덱(Odradek)’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존재다. 오드라덱은 ‘형체를 알 수 없이 마구잡이로 헝클어진 무엇’으로 묘사된다. 이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왜 집 안을 돌아다니는지 알 수 없으나, 가정의 질서를 세우고 자녀들을 책임져야 할 가장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큰 근심은 없다. 카프카의 소설 속 ‘오드라덱’과 ‘K’는 그의 작품 『변신』에서 드디어 흉측한 해충이 되어 등장한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젊은 아들이, 어느 날 아침 자신이 한 마리 벌레로 변해 있음을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가족 안에서의 개인의 자리, 그리고 현대사회의 핵가족에 관한 존재론적 질문에 다다르게 한다.
《K의 이름》은 프란츠 카프카의 몇몇 소설들로부터 키워드를 찾았다. 카프카의 세계에서 메타포로서 유영하는 K-오드라덱-흉측한 해충과 같은 존재들을 통해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이 가족 공동체 기저에서 교묘하게 작동하는 지금의 현실을 보고자 한다. 그리고 사랑과 책임을 전제하는(한다고 가정하는) 가족 관계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는지,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는지 묻고자 한다.

맹성규, 민진영, 배지인, 임윤경, 현세진, 황예지는 그들 각자가 가진 가족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이들은 탈(脫) 가족을 시도하거나 가족과 거리를 두는 것으로 그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기도 하며, 다시 가족에게로 파고드는 시도를 이어가기도 한다. 여섯 명의 작가는 현대사회 핵가족의 한 구성원인 K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그의 존재를 확인하고, K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게 될 그의 가족에 관한 숨겨진 질문에 스스로 답해보기를 권한다.

가족의 개념을 정서적으로 접근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의 결혼에서 핵심적으로 고려할 사항은 경제적 관계의 성립이었다. 사회관계망 안에서 벌어지는 재해, 사고, 불행 등 모든 일들에 있어 개인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 ‘집안’이었던 시대에는 사람이 ‘개인’으로 존재한다기보다 ‘가家’의 일부로 존재했다. 종족, 씨족 개념의 ‘패밀리’가 경제 공동체로서 사회의 안전망 역할을 감당했다면, 근대에 와서는 핵가족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공동체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 핵가족은 스위트홈 판타지와 맞물려 그 형태가 더욱 단단하게 완성되었는데, 자유로운 연애를 통해 결혼 상대를 고르고, 가족을 이룬다는 사고방식이 핵가족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로 작용하게 되었다. 가족 안에, 이전에는 없었던 애정 관계가 성립되면서 가족은 사랑을 기본으로 하는 집단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의 완성은 사랑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집이다. ‘사랑’과 ‘집’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속되고 있는 스위트홈의 필수 요소이다. 현대 핵가족의 모습과 그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을 비추어 볼 때, 시대의 흐름에 따른 가치 기준의 변화가 가족에 대한 가치 판단에 영향을 끼친다.

18세기 이후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발달이 가족 간의 유대를 약화시켰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자유주의시대, 산업화시대 이후 가족의 유대감과 결속은 약화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팽배하다. 가족 의식도 결국엔 산업화 시대의 산물이며, 학교의 등장으로 자녀의 성장과 교육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가족 의식으로 나아가게 한 동력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근대에서 승리한 것은 개인이 아닌 핵가족이 아닐까? 남편-회사, 아내-가정, 자녀-학교 세 기둥의 순환 구조는 근대 산업사회를 받치는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더 이상 가장 혼자만의 노동으로 가족을 풍요롭게 부양하기 어려워졌으며, 임금만으로 가족 단위의 생활을 충당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와 불안의 증폭은 어떤 형태, 어떤 속도로 나의 가족에게 닥칠 것인가.

관계는 점차 좁아지고 집중되었다. 초연결 시대의 전 세계적 연결망 속에서는 촘촘하고 빠른 관계망을 경험하면서도, 정작 한 개인의 실제적 관계에서는 일 촌 이상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를 보여주고, 맡길 수 있는 관계의 경험이 가능한 곳이 집이고 가족이다. 이러한 안정적 경험으로의 집중은 핵가족 외의 관계들, 예를 들어 엄마, 아빠, 자녀 1-2명으로 구성된 가족 밖으로 손을 뻗지 못한다. 따라서 더 넓고 깊은 관계가 형성되는 경험이 부재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에너지 대부분을 가족이 흡수한다. 한편, 핵가족 안에서 공유하는 경험이 주로 ‘외식’인 것을 생각할 때, 현재의 가족은 소비하는 것, 필요를 돈으로 채워주는 것 외에 더 깊은 방식의 관계 맺음이 부자연스러운 문화를 누린다. 핵가족은 경제적, 사회적 에너지를 내부로 가져와 서로를 먹이고 쓰다듬는 일에 과도하게 집착한다.

들뢰즈Deleuze-가타리Guattari의 자본주의적 가족의 해석에 따르면, 가족이나 욕망 모두 지극히 개인적인 친밀감을 담보로 하는 사적인 영역이다. 이를 전제로 핵가족은 침범하거나 건드리면 안 되는 ‘신성한 가족’이 된다. 이 지점에서 핵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를 소유의 메커니즘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가정 안에서 어떻게 관계를 독점할지, 부모로부터 인정받고자 시달리는 인정 욕망과 연결되는 소유적 경험이 우리 안에 결핍을 장착시키고, 끊임없이 소유하려는 욕망은 삶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 욕망을 해결하려는 순환은 존재적 결핍을 핵심에 두고 자본주의의 핵심인 소비와 만나게 되는 것이다. 존재적 결핍이 사회를 뒤덮고 있다. 여기에서 또 다른 질문에 다다른다. 나는 작은 인간에서 큰 인간으로 성장했는가, 아니면 작은 아이에서 큰 아이가 된 것인가.

이 시대는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었다고 판단할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 현재 우리의 판단 기준은 오로지 경제적 독립의 여부이다. 사람 구실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사회에서 쓸모 있는 자기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으로 이어진다. 사회적, 도덕적, 윤리적 규범의 역할이 자본주의적 시스템 안에서 그 가치를 상실한 시대에서는 한 인간의 성장을 알아보고 평가할 수 있는 기준도 모호해진다. 이로 인해 스스로 벌어서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가에 대한 판단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이런 자본주의와 결합된 결과주의적 사고방식이 팽배한 사회에서는 어떤 일을 하게 되든지, 그 일로 돈을 벌고 있는가라는 질문만 남게 된다. 독립에 대한 질문은 경제력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되고, 개인의 능력과 잠재력을 판단하는 지표로 작용한다. 칸트Immauel Kant는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여 스스로 생각할 때 모든 외부의 구속에서 해방되어 사유하는 주체, 즉 계몽 주체가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의 현대인은 자신의 경제력을 사용할 수 있을 때 모든 외부의 구속에서 해방되어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주체, 즉 독립적 생활의 주체가 된다는 착각에 빠진다.

카프카는 아버지와의 관계 안에서 풀리지 않은 문제들을 자신의 여러 소설에 비유적으로 심어 놓았다. ‘돈이 안 되는 글쓰기’는 끊임없이 아버지에 대항하거나 주변에 머무르는 그 만의 방식이었고, 이는 아버지를 향한, 당시 독일 사회를 향한, 그리고 작가 자신을 향한 존재론적 질문들로 이어졌다.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에서 자신의 모든 글은 아버지를 상대로 쓴 것이며, 평소 마주하고 토로할 수 없었던 것을 글로 적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카프카는 아버지 중심으로 돌아가는 자신의 가족관계 안에서 자신만의 작은 왕국을 건설한 아버지를 보았다. ‘가족’이라는 대의를 지킨다는 명목은 어떤 탐욕과 위선도 ‘도덕’으로 위장될 수 있었다. 넘어설 수 없는 가치, 벗어날 수 없는/벗어나지 않은 그늘이었던 아버지를 향한 글쓰기는 그의 소설 도처에서 ‘아버지-나’의 은유와 상징으로 드러난다. 『성』에서 K는 성에 진입하지 못한 채 성 주변을 배회한다. 하지만 그가 주변에서 존재하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힘없이 포기하거나 주저앉은 모양새가 아니다. 『공동체』에서 다섯 친구는 그들에게 다가오는 여섯 번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밀쳐내도 여섯 번째는 다시 온다. 『변신』에서 흉측한 해충으로 변한 그레고르는 아버지에게 굴복하지도 않고, 공격하지도 않는다. 아들의 변신은 가족들을 변신하게 만들 뿐이다. 카프카의 소설 속 아들들은 집을 박차고 나가거나 상황을 전복시키지 않는다. 다만 많은 ‘발을 쳐들고 방 안을 기어 다니기로 결심’한다. 점차 방 안의 벌레가 아들/오빠가 아니라는 합의에 이르고, 경제적 상황과 흐름에 자신들을 맡긴 채 차분하게 미래를 준비해 나가는 이 가족은 현시대의 인간이 처한 비극적이지만 동시에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을 엿보게 한다. 소설의 마지막은 이제 막 돈을 벌기 시작한 딸을 아름다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장면이다.

카프카는 ‘우리에게 주어진 최고의 구원은 타인과 함께하는 삶’이라고 했다. 그는 반드시 ‘나’라는 견고한 세계를 박차고 나가야만 타인과 함께 할 수 있는 독립적 존재가 된다는 결론으로 우리를 이끈다. 카프카의 이 말은 핵가족의 구성원으로서의 한 개인이 진정으로 독립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한다. 그의 말에 담긴 철학은 모든 가치가 자본으로 환원되는 이 시대에 한 인간의 진정한 성장을 가늠할 수 있는 잃어버린 우리의 지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집으로 돌아왔다. 벌판을 가로질러 와 주위를 둘러본다. 내 아버지의 해묵은 뜨락이다. 한가운데 작은 웅덩이, 쓸모없는 낡은 가구 등이 잡동사니로 나뒹굴어 다락방 올라가는 계단으로 난 길을 바꾸어 놓고 있다. 고양이가 난간 위에 도사리고 있다. 언제던가 노느라고 막대기에 매어 놓은 찢어진 수건 하나가 바람결에 펄럭이고 있다. 내가 돌아왔다. 누가 나를 맞아줄 것인가? 누가 부엌문 뒤에서 기다리는가?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고, 저녁 식사 때 마실 커피가 끓고 있다. 그대는 아늑한가, 집에 있는 양 느껴지는가? 모르겠다. 아주 애매하다. 내 아버지의 집이기는 하지만 물건 하나하나가 그 나름의 용무에 골몰하고 있기라도 하듯 냉랭하게 서 있다. 그들의 용무를 나는 더러는 잊었고 더러는 알았던 적이 없다. 내가 그것들에게 무슨 소용이 닿겠는가. 내가 그것들에게 무엇이겠는가. 내 비록 아버지의, 늙은 농부의 아들이라 해도 말이다. 나는 부엌문을 두드릴 엄두도 못 내고 그저 멀리서 귀 기울이고 있다. 그저 멀리서 선 채로 귀 기울이고 있다.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 「귀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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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성규는 목사인 아버지가 세운 ‘세계로 교회’의 건축적 형태를 본떠서 세계 여행용 어댑터를 만들었다. 어댑터의 사용을 위해 내장된 단자를 꺼내려면, 교회의 외관이 열리고 접히고 꺾이는 등의 물리적 해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세계로 트래블 어댑터〉의 구조는 종교적 슬로건인 ‘세계로’가 해체되어 통상적 의미의 ‘세계로’로 재구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대만에 거주하는 부모님이 직접 어댑터 사용을 시연하는 영상을 앞뒤로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자신의 성장 배경이 된 교회 건물과 아버지의 세계관을 해체, 재조합, 변형하고자 시도한다. 관람자는 아버지가 해석한 어댑터 영상과 작가가 해석한 어댑터 영상을 겹쳐서 바라봄으로써 ‘세계로’가 갖는 아버지-아들의 관점 사이에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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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성규(b.1990)는 서울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동 대학교 서양화과에서 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2021년 개인전 《SUNDAY ELEVEN》(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서울), 2018년 개인전 《상징: 두개의 동그라미》(우석갤러리, 서울)를 개최했다. 주요 그룹전으로 2019년 《노이로제-리드미컬》(SeMA 벙커, 서울), 2018년 《우로보로스 딴전에 빠지다》(우석갤러리, 서울), 2016년 《THE FIRST – Beyond the Frontier》(서울예술재단, 서울) 등에 참여했다.


민진영은 가족에 관한 자신의 이야기를 코라chora와 테트라포드tetrapod를 연결하여 해석한다. 그의 작품 〈Overcome Chora>와 〈Chora〉에는 근원이자 시작인 태초의 공간으로부터 진정한 독립을 시도하는 작가의 삶의 과정이 숨겨져 있다. 자궁을 뚫고 뻗어 나온 광선과 자궁 주변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맴도는 형상은 작가 자신의 고단한 싸움과 오버랩된다. 민진영은 연약한 한 인간의 성장을 위한 긴 여정을 위대함의 선상으로 끌어올려 놓았다. 이는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지혜를 ‘연민’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는 작가의 시선과도 연결된다. 자신의 경험적 서사를 담은 〈Between roof and roof〉, 트레싱지를 겹쳐 환부를 가리고자 시도한
드로잉 연작을 통해 민진영은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관점을 제안함과 동시에 자신의 고통 역시 치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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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진영(b.1981)은 홍익대학교 조소과에서 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개인전으로 2021년 《CHORA》(CHA Studio, 인천), 2014년 《공기의 내면》(OCI미술관, 서울), 2012년 《CHORA》(CHA Studio, 인천)를 개최했다. 주요 그룹전으로는 2022년 《밤을 넘는 아이들》(서울대미술관, 서울), 2015년 《육감 六感》(OCI미술관, 서울), 《아티스트 포트폴리오 Ⅱ》(사비나미술관, 서울), 2014년 《팔로우 미》(북서울시립미술관, 서울) 외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하였다.


배지인은 가족사진을 들여다본다. 모두 12세 이전의 사진들이다. 누군가의 집, 한 구석에서 발견할 수 있을법한 앨범 속 사진들이 조금은 왜곡되거나 가려진 채로 그려졌다. 배지인은 추억의 장면들을 선명하게 밝히거나 흩트리면서 자신의 기억을 찾아간다.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을 원했지만, 결국 도착한 곳은 가족이었다고 말하는 배지인의 회화에는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안식처이지만 동시에 불안이 사그라지지 않는 대상들이 가득하다. 인물은 모두 가족, 또는 가족처럼 가까운 이들이다. 작가는 이들의 얼굴을 선명하게 묘사하거나 알아볼 수 없게 지우는 과정을 통해 ‘가족’과 ‘가족처럼 가까운 이들’의 경계를 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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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인(b.1992)은 경희대학교 한국화과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개인전으로 2022년 《비, 밤, 별》(갤러리그리다, 서울)과 2020년 《잊혀진 별》(아트스페이스그로브, 서울)을 개최했다. 2022년 그룹전 《셋이 모여 하나》(옥상팩토리, 서울)에 참여했다.


임윤경은 〈이름던지기〉에서 자신의 가족과 함께 공놀이 퍼포먼스를 한다. 관람자는 각각의 등장인물이 서로의 호칭을 호명할 때 그들이 가족인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가족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할 때 관계의 구조는 걷히고, 등장인물 각각을 개인으로서 볼 수 있게 된다.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이 한 개인으로서의 삶보다 우선하는 현재의 가족 구조 안에서, 임윤경은 가족주의를 걷어내고 개인으로서의 자신의 이름을 찾을 수 있을지 질문한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 사이의 거리에서 개인의 자리 찾기와 균형 잡기를 위해 서로의 이름 던지기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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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경(b.1982)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학과에서 학사를 졸업하고, UCLA 엘에이 주립대학교에서 뉴장르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휘트니 미술관(뉴욕) 독립연구프로그램을 이수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2020년 《개인의 자리》(더레퍼런스, 서울), 2016년 《친숙한 집단, 낯선 개인》(스페이스 윌링앤딜링, 서울) 등이 있다. 주요 그룹전으로는 2022년 《나너의 기억》(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21년 《돌봄사회》(경남도립미술관, 창원), 2018년 《히든 워커스》(코리아나미술관, 서울) 등에 참여했다.


현세진은 〈지우고 그리고 지우기-나의 방〉에서 이혼한 부모 각자의 집에 있는 자신의 방 평면도를 겹쳐 그렸다. 엄마의 집에 있는 작가의 방과 아빠의 집에 있는 작가의 방의 중첩된 구조는 이혼한 부모님을 가진 자신의 상황을 나타낸다. 전시장에 횟가루로 그려 겹쳐진 도면은 넘어 다닐 수 없는 단단한 벽을 상상하게 하지만, 이것은 단지 가루로 그려진 선일 뿐이기도 하다. 현세진은 전시 기간 동안 관람자들이 경계를 흩트리거나 선명하게 그릴 수 있도록 작품에 참여시킨다. 이는 관람자로 하여금 가족의 단절을 바라보는 그들의 관점을 드러내게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현세진은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한 구조적, 심리적 변화를 재해석할 수 있는 작가 나름의 경계를 찾아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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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진(b.1987)은 서울대학교 서양화과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하고, 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개인전으로는 2017년 《Exhibition in Exile》(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 발렌시아, 캘리포니아), 2015년 《Generally Personalized》(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 발렌시아, 캘리포니아) 등을 개최했다. 주요 그룹전으로는 2022년 《The Doers 2022》(CICA Museum, 김포), 2021년 《285.9km이긴 하지만 그래서 29.8일》(인디아트홀 공, 서울) 등에 참여했다.


황예지는 〈파파 papa〉에서 그의 ‘아빠’를 인터뷰한다. 아빠는 말하지 못할, 또는 충분히 설명할 시간이 부족한 사연에도 딸이 이해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대답해 나간다. 아빠는 딸에게 자신을 온전히 보여주고자 하며, 딸은 오롯이 아빠에게 집중하고 있다. 관람자는 화면 속 파파papa를 보고 있지만, 어느새 아빠의 삶의 역경과 살기 위한 투쟁을 경청하고 있는 딸의 얼굴을 상상하게 된다. 황예지는 일찍이 엄마와 언니에 관한 사진 작업으로 그의 가족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가족을 보는 새로운 프레임을 보여주었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수 있겠다. 그의 작업으로부터 가족과 유대하는 방식을 배운다. 각자에게는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세상이지만 함께 할 때 발휘되는 가족의 연대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이 가족에게 가능한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아빠의 ‘반갑습니다.’라는 인사가 우리에게 실마리를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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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예지(b.1993)는 계원예술대학교 사진예술과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2019년 개인전 《마고》(d/p, 서울)를 개최했다. 주요 그룹전으로는 2022년 《춤추는 낱말》(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22년 《Skyline Forms On Earthline》(두산아트센터, 서울), 2022년 《말괄량이 길들이기》(뮤지엄헤드, 서울) 외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산문집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바다출판사)과 사진집 『절기』(그리고 갤러리) 등을 출판했다.

전시제목K의 이름 the unknown name for K

전시기간2023.02.16(목) - 2023.04.01(토)

참여작가 맹성규, 민진영, 배지인, 임윤경, 현세진, 황예지, K의 이름

초대일시2023년 02월 16일 목요일 14:00pm -18:00pm

관람시간월-금 10:00~18:00 / 토 12:00~19:00

휴관일일요일, 공휴일 휴관

장르혼합매체

관람료관람료 없음, 사전 예약 없음

장소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Art Centre Art Moment (서울 금천구 범안로9길 23 (독산동)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주최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연락처02-6952-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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