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광조 YOON KWANG-CHO

2022.05.03 ▶ 2022.05.29

가나아트센터

서울 용산구 한남대로 91 (한남동, 나인원 한남) 고메이 494 한남 103호 가나아트 나인원

Map
  • 전시포스터

  • 윤광조

    혼돈 混沌 2013 Red clay, white slip, coiling, dripping 36.5 x 36.5 x 44(h) cm / 14.4 x 14.4 x 17.3(h) in.

  • 윤광조

    산동 山動 2017 Red clay, white slip, slab built, adding mud, reduced firing 34 x 13.5 x 58(h) cm / 13.4 x 5.3 x 22.8 in.

  • 윤광조

    심경 心經 2020, Red clay, white slip, coiling, lnlay coiling, lnlay 37x31x58(h)cm, 14.6x12.2x22.8(h)in

  • 윤광조

    환희 歡喜 2021

  • 윤광조

    관 觀

Press Release

윤광조의 예술세계

전시장 입구에 걸린 작가의 노트북에 있는 스케치의 확대사진을 지나 도예가 윤광조의 세계로 들어선다. 그 스케치는 단순하다. 산과 강줄기가 고요한 점으로 모아지는 풍경이다. 이 스케치의 고요한 힘은 바로 일말의 과도한 기교나 꾸밈도 없는 그 단순함에 있다. 순백의 공간 안 검은 선. 소음은 정적이 되어 가라앉았다.

이것이 바로 윤광조의 세계이다. 현재 시애틀 아시아 미술관에서 그의 전시가 오픈 중이다.

1946년생인 윤광조는 시애틀아시아미술관 큐레이터가 언급한 다양한 업적 외에도 일본으로 국비유학을 떠났으며, 한국의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려면 먼저 분청사기에 대해 알아야 한다.

분청사기는 조선왕조시대(1392-1910)를 풍미했던 한국 고유의 전통도자기법을 이르는 말로, 한국과 일본을 비롯, 더 멀리까지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변화하며 체계화된 방대한 양식과 기법을 포함하는 용어이다. 분청사기의 특색은 적점토로 몸체를 만든 후 하얀 화장토를 분장하는 데 있다. 몸체를 만든 후 하얀 화장토를 입힌 다음 인화, 음각 혹은 상감기법을 사용, 다채로운 디자인을 표현한다. 귀얄로 백토를 칠하거나 백토물에 담가 분장하기도 하며 철화기법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모두 소성 전 단계에서 마무리된다.

그 결과물은 매우 정치하거나 소박하고 거친 에너지로 넘쳐난다. 즉 적점토로 만든 몸체가 겉으로 드러나며, 그 자체의 가치가 인정받는다. 전시장에 초입에 늘어선 대여섯 작품은 윤광조와 과거의 유물 사이의 밀접한 관련성을 분명히 드러낸다. SAAM의 영구컬렉션에 포함되어 있는 작품-두 개의 고전적인 항아리, 둥근 뚜껑이 덮인 사발, 배 모양 철화병, 아름다운 상감으로 꾸며진 잔-들과 비교해 보면 둘 사이의 연관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양자간에는 어떤 대립이나 갈등도 없다.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이가 옛 영광의 얼어붙은 목소리를 다시금 내어 보지만 돌아오는 메아리는 눈에 띄게 희미해졌을 뿐이다. 과거의 무게를 떨쳐내고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몸부림 끝에 윤광조는 물레의 기계적 완벽성에서 벗어나, 물레를 돌려 만들어낸 그릇을 뒤틀고 왜곡시켰다. 그러나 아직 부족했다. 그는 아직 조선의 굴레에 매여 있었다.

서구의 예술가, 특히 50년대 후반-60년대 초 ‘기능성’의 굴레를 산산조각내고 추상표현주의 운동의 영감과 개념을 정력적으로 섭렵했던 미국의 도예가-지금은 이미 전설적 존재인 몇몇 선구자들의 예를 들자면 보트루바Wortruba의 조각이나 작품이 피터 볼코스Peter Voulkos 및 존 메이슨John Mason의 수직 점토 조각 혹은 헨리 다케모토Henry Takemoto의 타래 쌓기 기법을 이용한 작품에 미친 영향을 떠올릴 수 있다-들에게 있어 윤광조의 작품은 예스럽거나 약간 회귀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성급한 평가로 인해 관객들이 윤광조의 작업의 핵심을 놓치지 않을까 싶다. 그의 최근작은 모두 손으로 빚은 비대칭의 대형 작업들로, 그를 새로운 영역으로 옮겨놓고 있다. 이 조각들은 강렬히 담재된 기를 발산한다. 다듬어진 작품 안에 사로잡힌 자연의 생생한 힘이 작품의 존재감을 강화시키고 있다. 작가는 새로운 자유를 찾았다. 그 증거는 평행을 이루지 않는 면, 전면과 후면을 따라 흐르는 갑작스럽고도 충격적인 변화, 굽이쳐 흐르며 속도감과 가속에너지를 얻었는가 하면 곧 정관의 고요한 국면으로 충돌해 들어가는 가장자리의 선을 통해 드러난다.

자연의 모든 힘이 분청에 대한 새로운 해석, 즉 아취어린 간소함과 미니멀한 느낌으로 연출되었다. 작가는 구름, 폭풍, 그림자, 강, 비 그리고 바람에 담긴 사색들을 붙잡아 흙으로 빚은 작품 안에서 이야기하도록 한다. 아마도 이것이, 윤광조의 근작들이 닫히지 않고 열려 있는 이유이리라. 이 조각들은 자신의 비밀을 서서히, 그리고 고요히 털어놓는다.

전시공간 건너편에 자리한 두 개의 대형 수직 조각이 마치 파수꾼이나 산등성이라도 된 듯 다른 작품들 위에 우뚝 선 모습으로 자신의 가치를 웅변한다. 크림빛 화장토를 입힌 거친 표면에 윤광조는 못으로 반야심경의 262자 전부를 새겨넣었다.

골짜기마다 텅 빈 충만함으로 가득한 그 산등성이 맞은편에는, 내 짐작이 맞다면 다관, 차완, 접시, 사발, 술잔과 작은 삼각형 모양의 술병을 비롯, 흑, 백, 갈색 유약으로 산을 표현한 일상의 기물들이 놓여 있다. 끝으로 대형 스케치가 까만 벽을 빛내고 있었다. 마치 그와 함께 삶의 즐거움-음식, 벗, 술-을 누리자며 청하듯 야외에서 작가의 작업실 ‘급월당汲月堂’을 그린 것이었다. 인간의 창조성을 극도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완전한 촉매인 자연과의 완전한 융화. 마치 ‘분청 한 잔을 마시자’ 며 천진난만하게 권하는 윤광조의 웃음소리가 그 산중으로부터 들려오는 듯했다.
■ 필립 루이스 l 미술평론가


山中日記, 일상을 ‘통한’ 일상의 초월

최근 몇 년 동안 도예가 윤광조는 한국을 탈피하여 국제적인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2003년 세계적인 도예전문 갤러리인 영국의 베쏭갤러리의 초대로 런던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같은 해 미국의 메이저 미술관 중 하나인 필라델피아미술관에 동양작가로서 최초로 초대되는 영예를 누렸다. 그리고 이 전시회는 이듬해 시애틀로 이어져 시애틀아시아미술관에서 큰 호평을 받으며 2005년까지 계속됐다. 한국에서도 국립현대미술관이 2004년 올해의 작가로 윤광조를 선정하고 전시회를 엶으로써 그는 국내외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전시회에 그치지 않고 필라델피아미술관과 시애틀미술관, 그리고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이 윤광조의 작품을 구입했다.

1991년 호주의 맥쿼리갤러리에서 개인전으로 세계도예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지만,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과 유럽의 유명갤러리와 미술관에서의 그의 전시회는 그를 국제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기에 충분했다. 그에 대한 평가는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좋았고, 한국작가에 대한 이러한 관심과 호평은 다른 장르에서도 매우 드문 일이었다. 사실 우리는 너무 가까이 있는 가치들에 대해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새로움을 향한 끝없는 질주로 정처 없이 흘러가는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 그들이 아시아의 작은 나라의 도예가에게 주목한 것은 무엇일까? 또 한국인만이 지니고 있는 독특하고 미묘한 정서가 그들에게 해석되고 이해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들은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시킨다.

서구인들에게 전통 회귀적으로 비췰 것 같았던 윤광조의 작품이 우려와는 달리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것 같다. 에드워드 J. 소잔스키는 Philadelphia Inquirer지에서 “현대 도예는 과도한 장식과 복잡함이 만연하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도예가 윤광조의 기품 있고 차분한, 자연 그대로의 그릇은 관람객의 감각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고 적고 있다.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은 서구의 현대도예는 기능성을 버리고 격정적 내면을 과장된 몸짓으로 표현하여 기존 양식에 충격을 주고자 했다. 이러한 충격에 익숙해 있던 그들에게 기능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단아한 기품과 우아한 격조를 지닌 윤광조 작품은 안목 있는 서구인들에게 오히려 신선한 충격으로 보였던 것 같다.

사실 서구인으로서 이러한 안목과 코드를 지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전통적인 한국의 예술품들은 서구미술에서처럼 인간의 위용을 뽐내는 화려하고 세련된 기교나 개인주의적이고 천재주의적인 발상과는 거리가 있다. 그것은 그렇게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예술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가 달랐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통 예술은 본래 생활과의 밀접한 관련 속에서 출발하며, 걸작에 대한 의식조차 없는 무심한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즉 생활에서 필요한 기능적 관심에서 출발하지만, 곧 그것에 대해 ‘무관심’하고, 초월적인 세계에 도달하고자하는 수단이었다. 그럼으로써 생활상의 필요를 만족시킴과 동시에 사회화되기 이전의 인간 본연의 꿈과 이데아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그것은 자연으로서의 물성과 인간으로서의 작가자신의 대화와 합일을 통해 가능한 것이고, 이 두 힘의 게임 같은 작용을 그대로 반영함으로써 드러난다. 그럼으로써 작가는 너와 내가 없는 무아지경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으며, 작품은 아름다움과 추함, 혹은 좋음과 나쁨 같은 이성의 이분법적 구분조차 생기기 이전의 필연적 결과물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작품의 가치는 막연한 아름다움이나 아방가르드적 충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능적 요구와 물성의 소리, 그리고 작가의 자유의지가 만나 이루어지는 삼각관계를 얼마나 리얼하고 긴박하게 드러내느냐에 있는 것이다. 기능적 요구와 물성의 소리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제어하고, 인간의 자유의지는 기능의 경직성과 물성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한다. 이러한 복잡한 힘의 역학 관계에서 나온 작품은 세련될 수 없고 어정쩡하게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미는 기술적 개념이 들어가는 미술(美術)이라기보다 민예(民藝)적인 것이다. 여기서 민(民)의 개념은 단순한 서민이나 민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제도화된 인위적인 이성, 즉 도구적 이성의 상태에서 벗어나 보다 본능적이고 근원적인 자유에 도달한 사람을 말한다. 그것은 사람을 놀라게 하는 기술이 아니라 자연에 귀의하는 인간 수행의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미술은 ‘예도(藝道)’가 되며, 윤광조의 도예는 바로 그러한 한국의 전통적인 민예 정신과 분청사기의 미학을 계승한 것이다.

시애틀 타임지에 전시평을 쓴 패트릭 쿨리컨은 “윤광조는 그저 자신의 예술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창조 과정 바로 그 안에서 예술을 몸소 살려내고 있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그의 작업은 종교적 발견의 과정인 동시에 일찍이 사라졌던 옛 도예조각 기법을 되살리는 데 일조했다는 점에서 한국 예술의 재발견의 과정이기도 하다.”고 평하고 있다. 이 말은 작가의 위치를 서구처럼 주체가 되어 창조자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로 제한된다는 점, 또 미술의 본질이 인위적 기술이 아니라 일종의 종교적 귀의라는 점, 또 그것이 한국전통예술의 본질이라는 점을 정확히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서구미학과 전혀 다른 한국적 미의식이 서구인들의 눈에 의해 읽혀지고 있는 점은 윤광조의 양식 언어가 국제적인 소통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세련된 미감을 가진 사람들에게 윤광조의 작품은 조형적으로 어설프고 만들다 만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과의 긴장된 교류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오는 것으로 그러한 불완전함에 생생한 ‘기(氣)’가 살아 숨 쉬는 것이다. 일찍이 고유섭 선생이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이라고 불렀던 이 고도의 전략을 서구인들이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은 여간 기특한 일이 아니다.

버트 워서맨은 아트뷰스지에서 “윤광조는 매끈한 도자기 특유의 세련미를 비껴가는 대신 심미안을 가진 관객에게 풍부하고 견고한 흙의 느낌과 심오한 정신적 반향으로 살아 숨 쉬게 한다.”고 적고 있다. 또 “어떤 작품들은 각 부분이 이뤄내는 놀라우리만치 완벽한 조화가 전체로서의 작품의 혼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몇 번이고 관객의 눈앞에 보여준다.”고 적고 있다. 그가 말하는 ‘심오한 정신’이나 ‘혼으로 거듭난다.’는 표현은 윤광조의 작품이 기능성이나 물성에 매몰되지 않고, 그들과 대화하고 타협하며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려는 작가의 의지와 정신을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또 그는 그러한 세련되지 못해 보이는 작품들이 주는 효과가 “관객에게 자칫하면 흐릿하고 막연한 채로 사라져버릴 수 있었던 감정에 집중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윤광조 작품이 이성으로 포착하거나 언어화 될 수 힘든 미세하고 미묘한 감정을 해방시킬 수 있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서구적 개념으로 인식하기 어려운 ‘기(氣)’를 말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버트 워서맨은 전생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한국인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는 코드를 지고고 있는 듯하다. 특히 다음의 낭만적 구절은 윤광조와 한국인의 미의식에 대한 그의 놀랄만한 통찰을 드러내 주고 있다. “인간의 기질 안에는 하늘에 걸린 별에 이르고자 하는 무언가가 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오만한 소망이라 할는지도 모른다. 아무렴 어떤가! 윤광조가 내놓는 결과물에 강렬하게 반응할 준비가 된 이들에게, 윤광조의 예술은 하늘의 별에도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하는 것을. 그 소망의 충족이 완전히 현실적인 가능성으로 다가오는 것을.”

그렇다. 이것이 술을 좋아하고 어린이 같이 천진난만한 인간 윤광조의 일상의 모습이다. 그는 매우 현실적인 인간이면서 현실을 초월하고자 한다. 그에게 초월은 현실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제약과 도구적 이성으로부터 벗어난 인간 본연의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술을 즐기고 작품제작을 즐긴다. 현실을 ‘통한’ 현실의 초월, 일상을 ‘통한’ 일상의 초월이야말로 윤광조 예술의 궁극적 지향점이자 한국미술의 터전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는 사실주의나 현실을 인위적으로 초월하려는 초현실주의나 추상미술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현실적 삶에 충실하면서 이성의 이분법적 대립과 갈등 이전의 본향에 대한 동경은 한국인 특유의 낭만이다. 한국인들이 술을 좋아하는 것도 그러한 낭만적 세계에 대한 이데아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한국 전통예술에서 그러한 낭만적 정서는 분청사기나 조선 민화, 그리고 박수근, 김환기, 이중섭, 장욱진의 회화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한국적인 민예 미학의 정수이며, 차갑고 비인간적인 혹은 그린버그의 용어대로 자기지시적인 서구 미니멀 아트와 전적으로 다른 점이다. 서구 미니멀리스트들은 재현 대상과 인간내면을 재거하고 차가운 물질만을 현전시킬 때 현상학적 몰입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상학적 몰입은 그렇게 일방적인 물성의 승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물성이 서로의 힘이 비등하여 긴장된 게임과 같이 될 때 가능한 것이다. 서구 미니멀리즘은 비인간적이면서 초월적이지만, 윤광조의 작품은 인간적이면서 초월적이다.

필립 루이스가 International Examiner지에서 윤광조 작품은 “마치 ‘분청 한 잔을 마시자’ 며 천진난만하게 권하는 윤광조의 웃음소리가 그 산중으로부터 들려오는 듯하다.”고 표현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일 것이다. 윤광조는 속세에 묻혀 살려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속세를 완전히 떠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가 거주하는 경주의 산곡은 번잡한 속세도 아니고, 인간이 범접하기 불가능한 곳도 아니다. 가기는 어려우나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그런 곳이다. 그곳에서 쓰는 그의 산중일기는 인간적이면서 초월적이다. 이번 해외 전시회는 자신의 일기가 곧 한국의 일기이고, 세계의 일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전통의 현대화에 골몰하는 한국화단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 최광진 ㅣ 미술평론가



윤광조, 분장회청사기 중흥조

펜데믹의 긴 터널이 끝나려는 2022년 봄, 신작도 포함된 윤광조 회고전은 바야흐로 분청 예술성 재발견의 우리 역사가 응축된 자리다. 임란 즈음에 이 땅에서 절멸한 사기그릇은 일본 사람의 지극한 애완으로 숨어드는 사이 이름마저 미시마(三島)로 바뀌었다.

그 일본 이름이 2011년 이 시대 ‘문화제국주의’의 총본산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제 이름을 내세웠음은 획기적이었다. 삼성박물관 소장 60 여점 옛 명품과 현대 명품의 대규모 전시에서 드디어. 조선조 전반에 생산이 활발했던 사기를 ‘분장회청사기’, 줄여서 ‘분청’이란 말로 전시 타이틀 Korean Buncheong Ceramics(from Leeum Samsung Museum of Art, 2011)을 삼았다. 분명하게 분청의 정체성을 확인해준 일대 거사였다.

거기 출품한 현대작가는 윤광조가 단연 으뜸. 앞표지를 장식한 조선분청에 대비되게 책 뒤표지는 윤광조 작품을 실었다. 그때 『뉴욕타임스』(2011년 4월 7일자)는 “수세기 전 찰흙으로 빚은 그릇이 현대성을 말하다(Vessels of clay, centuries old, that speak to modernity)”라고 격찬했다.

윤광조가 그런 위상에 오르기 까진 선각 미학자의 애호와 격려가 있었다. 대학에서 도예는 전공했지만 막상 진로를 놓고 애매한 시간을 보내던 그에게 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분청의 길을 제시했다.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듯, 예도(藝道)엔 끝이 없음을 당부하는 당호로 급월당(汲月堂)을 점지했다. 분청 이름을 지었던 개성박물관장 고유섭의 아호를 그대로 따왔다.

최순우의 외우 둘이 윤광조를 감쌌다. 고향사람 김광균 시인이 수장의 깃발을 높이 들었고, 박물관 옛 동료 장욱진 화백이 윤광조의 귀얄로 붓을 들었다.

이들 걸출한 현대한국 명인들의 밝은 눈길이 우연처럼 윤광조를 감싸 돌았던 것. 지금 이 시점에서 바라보면 분청이란 한국도예의 한 장르가 우뚝 서는 필연이 되고 있음이었다. 이 전시는 그 필연을 감득(感得)하는 자리. 애호가의 고람을 고대한다.
■ 김형국(가나문화재단 이사장)

전시제목윤광조 YOON KWANG-CHO

전시기간2022.05.03(화) - 2022.05.29(일)

참여작가 윤광조

관람시간10:00am - 07:00pm

휴관일없음

장르도자

관람료무료

장소가나아트센터 Gana Art Center (서울 용산구 한남대로 91 (한남동, 나인원 한남) 고메이 494 한남 103호 가나아트 나인원)

연락처02-795-5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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