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종 초대展

2018.12.01 ▶ 2018.12.17

금보성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평창36길 20 (평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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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ㅣ 2018년 12월 01일 토요일 06:00pm

  • 그대에게

    45.5x37.9cm

  • 130.3x162.2cm

  • 하늘아래

    65.1x50.0cm

  • 80.3x116.8cm

  • 향기가득한 날

    162.2x130.3cm

  • 그곳에는..

    106.5x45.5cm

  • 지금 여기에..

    90.9x65.1cm

  • 산위에 올라

    162.2x130.3cm

Press Release

‘산수풍경’과 마주침, 그리고 단상들 -
이민종 초대전에 부쳐


주성열(예술철학, 세종대 겸임)

1-1. 평문을 부탁받고 공적인 자격으로 3년 만에 이민종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다. 진중하고 성실한 태도와 붓의 잔잔한 움직임에는 큰 변화가 없는 듯했으나 그동안 표현방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었으며, 작가 스스로 짚고 넘어야 할 작품분석에 대한 자기평가로 인해 사유가 깊어졌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그는 자연이라는 존재 앞에서 겸허한 태도로서 작업에 임하는 자세와 신념은 하나도 부정할 수 없다. 어떤 공간이든 화가의 특별한 감응을 밀도 높은 그림으로 되살린다. 그 만큼의 고민도 사유도 없는 그림은 허약하다는 믿음이다.

1-2. 이민종은 자연의 모습을 재현하는 사실주의 화가처럼 보인다. 정확하게는 지각적 인상을 그림으로 조형화하는데, 아카데미 방식을 버리고 자연을 관념적으로 구축한다는 주장으로 보아 나름 특별한 형식을 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짐작하자면 마음에서 일어나는 환상적인 감응(感應)의 발현인데 사실 예술은 현실 세계에 대한 우리의 감각적인 경험의 연장선상이므로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태도라 할 수 있다.

1-3. 자연을 단순히 재현하는 획일적인 구성과 신적인 관점으로 구체화하고 조정하는 그림보다는 인간 밖의 시선을 중심에 두고 해석하려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그의 풍경에도 산과 강이 있지만 서양식의 ‘풍경’과는 내용면에서 차이가 있다. '풍경(landscape)'이나 '그림 같은 풍경(picturesque)'이라는 수식을 피하고 싶었을 것인데 이는 이국적인 가치에 부합하고 싶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작품을 두부 자르듯이 어떤 형식으로 규정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1-4. 저절로 자연의 변화에 몸을 맡긴다는 ‘무위이화(無爲而化)’의 뜻이 화가 이민종에게도 발견된다. 진정한 그림은 인위적으로 그려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고통을 만나고 외적인 것에 성의를 다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증명된다고 그는 말한다. 무관심한 태도로 마주친 자연이 그대로 그림으로 드러난다. 마음에 깃든 본성만을 가지고 바라본 순간 발생하는 감응이라는 떨림을 조형화한다.

2-1. 그는 감정을 억제하듯이 붓을 세워 그리는데 이는 동양화의 준법을 따르는 것이며, 색을 중첩하는 채색 방식은 서양화를 따르는 것이지만 동양화의 관점으로 풍경을 그리고자 함이라 설명한다. 화면의 중첩을 통해 오랜 시간 현상을 구축해야 하므로 자신의 그림이 재현적인 사실주의라기보다는 조형화한 ‘산수풍경화’라는 주장이다. 한 점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대상의 감정을 최대한 간직하려는 우직함이 느껴진다. 그림은 화가에게도 누군가에게도 그렇게 일어서도록 존재하는 것이다.

2-2. 다채로운 빛을 표현하기 위해 물감을 겹겹이 올려 화면을 여러 층위(layer)로 만든다. 그러면 눈이 쌓이듯 작은 붓으로 잔잔하게 찍힌 물감의 흔적들로 화면은 한층 깊어진다. 라이프니츠가 ‘미세지각’ 이론에서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지각은 미세한 지각들이 모여 이뤄진다고 주장했듯이 이민종은 구별할 수 없는 미세한 붓 자국이 쌓이는 시간을 충분히 기다려 공간감을 구축한다.

2-3. 그는 ‘지각 불가능한 막’이라는 얇은 층위를 반복함으로써 공간감을 드러낸다. 마르셀 뒤샹은 알아차리기 힘든 미세한 차이를 ‘엥프라멩스(Inframince)’라고 명명하였다. 부드러운 바람결이 모여 세찬 바람을 만들고, 물결이 만나 폭포 소리가 나듯이 울림이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그의 무기는 미세한 ‘결’ 붓질이다. 그는 미세한 붓 터치에서 시공간에 대한 촉각적인 성질을 발견한 것이다.

2-4. 자연이라는 공간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생명이 잠재된 치열한 장(場)임을 느끼고 대지에서 풍기는 향내까지도 그려야 한다는 임무를 좀 더 촉각적인 형식으로 발전시킨다. 빛이 아른거리는 현상과 바람결 그리고 뿜어져 나오는 대지의 호흡과 시간이 미끄러져 가는 현상들을 오감으로 전달하길 원한다. 아른거리는 미세한 물감의 층위(layer)는 이를 대변하는 촉각적인 형식이다.

2-5. 발터 벤야민은 산도 나무도 숨을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런 현상을 산이나 나무의 ‘아우라’가 숨을 쉬고 있다고 판단했다. 자연은 살아 숨 쉬는 느낌으로 다가와 보이지 않는 힘으로 화가를 붙잡을 것이다. 자연의 고요하고 밝고 숭고한 색채는 태양 에너지에 의해 잠을 깬다. 사물과 빛에서 일어나는 파장으로 수많은 색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 색채 형성 과정의 원리이며, 파장이란 근원적인 색의 원천이고 리듬이다. 화가는 대지(site)가 생명을 잉태하는 무한한 에너지의 잠재적인 영역임을 인식하면서 유기적이고 생명력 있는 ‘아우라’에 매료되었다. 살아 숨을 쉬는 듯한 느낌을 구현하기 위해 시간을 기다리고, 그렇게 완성된 숨구멍은 촘촘하게 짜인 씨줄과 날줄 형식이다.

3-1. 자연풍경이 작가의 심리에 개입하므로 안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풍경을 미세하게 건져낸다는 표현이 이민종에게는 어울린다. 자연의 갖가지 표정들에 대한 순간적인 시각체험은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자연은 유연하고 가변적이며 역동적이다. 그도 작품에 변화무쌍한 대지의 분위기와 생명의 기운을 재현하는 자연주의적인 빛과 색채를 반영한다. ‘예술의 형식이 자연에서 유래하며 자연은 예술의 모델을 제공한다’는 고대 철학자 루크레티우스의 주장이 잘 들어맞는다.

3-2. 들뢰즈도 의식의 동일성을 망각해야만 우리는 세계와 연결할 수 있는 신체적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화가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의식적으로 여행을 한다면 나뭇잎 떨리는 모습이나 바람소리는 들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도시에 대한 기억을 망각해야 자연과의 진정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세상의 일은 우연히 마주친 일에서 역사가 시작된다. 화가 이민종도 분별하여 바라보지 않고 자연과의 우발적인 마주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상에 대한 무관심적인 관조를 통해 얻은 지각과 느낌을 있는 그대로 전할 뿐이다.

3-3. 생명의 기운을 불러오는 황토빛, 구불구불한 밭고랑이나 산세(山勢) 등의 리드미컬한 표현으로 자연스러운 대지의 정서를 구현한다. 주름진 대지의 함축된 역사는 겹겹이 쌓인다. 대지의 주름은 자연을 일구는 인간의 역사가 축적된 것이다. 자연 현상에 순응하며 땅을 일구던 흔적이다. 주름이 가득한 대지의 흔적만큼 인간의 얼굴도 그 주름을 닮아 있다. 화가는 다양한 상황들과의 마주침으로부터 생기는 대지의 흔적인 주름(implication)을 펼치고(explication) 그린다.

3-4. 이민종의 그림은 다중시점, 즉 ‘산점투시(散點透視)’로 상하좌우로 자유롭게 이동하는 시점을 가지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살짝 현기증을 일으킨다. 중심에서 사방으로 확장하는 이 투시법은 화면 속 공간이 확장되도록 심원법과 이동시점을 연계한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구체적인 체험에 더 충실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체적이고 무한한 세계의 공간성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전달하려는 시점이다.

3-5. 시선의 높이는 자연을 하나의 덩어리로 조감할 수 있는 형상의 아름다움과 우리나라 지형에서 느낄 수 있는 미적체험을 돋운다. 그는 큰 스케일의 산수를 그리는 동양화에서 원경의 평면적 시각양식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심원법(深遠法)을 활용한 평면성에 주목하면서 화면의 넓이와 깊이를 강조하고 명암의 변화에 따라 물체의 공간감을 표현한다.

3-6. 원근법을 가능한 한 자제하려는 태도는 시각적인 관점보다는 현상적이고 지각적인 태도를 유지하려는 의도이다. 동양의 화가들은 자연을 그릴 때 직접 거닐며 경치를 탐미하여 감응을 받고 이를 심상으로 화면에 구축하는 과정을 따른다. 산점투시(散點透視)는 풍부한 감동과 인상을 전달하는데 이것은 고정된 시점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산수풍경의 의미는 이상화하거나 가공된 풍경이 아닌 산과 물이 주인인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다. 오귀스탱 베르크는 데카르트 이후 합리화된 공간은 비인간화의 가능성을 가진 것이라고 하면서, 보다 구체적이며 인간의 심리적 생태적 필요에 맞는 산수풍경화의 공간 의식을 통해서 새로운 미래, 토지에 대해서 보다 만족스러운 관계를 열어 줄 것이라고 말한다.

4-1. 매혹적인 자연은 ‘여기 그리고 지금’이 아니라면 볼 수 없는 것이다. 시간, 기후, 습도, 온도, 향기, 소리, 채광, 바람의 세기 등 빠짐없이 느껴지는 것이 자연의 모습이다. 자연의 광경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린다고 해서 완전한 풍경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이민종이 주장하듯이 자연이 본인에게 스며드는 것을 온몸으로 느껴야 한다. 비가시적인 풍경, 빛의 파장, 에너지의 흐름, 바람의 이동 등 미처 감지하지 못하는 것들도 풍경의 일부이다. 또한 세상을 바라보고 자연을 바라보는 일에 소유의 마음이 없어야 바로 보인다. 현상이 있고 그 현상에 대응하는 만물이 있음으로 만물의 이름이 존재하는 것이다. 나를 세우기 위해 남을 헤치는 일은 도의 이치에 어긋난다.

4-2. 어느 곳이건 눈여겨보는 일이 화가의 일상이다. 휴식 중인 빈들의 고적함과 저물녘의 황토색 풍경 위로 포기하고 기다리는 어떤 마음의 하염없는 그리움이 넓게 가라앉아 있다. 조용한 자연의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그림의 목표인 까닭에 그는 회화적 수법으로 사물의 물성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특별한 것이 그의 눈길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자리이건 그가 눈여겨보면 특별한 것이 된다. 메마른 이미지들이 서로를 묶고 있는, 납작하지만 부풀어 오를 풍경인 것이다.

4-3. 자연을 바라보는 화가의 감정은 깊지만 오히려 그의 그림은 사건이 없는 듯 조용한 목가적인 풍경이다. 그림에 특별함이 없다는 것도 중요한 가치 중 하나였을 것이다. 눈여겨보면 특별한 것이 되더라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 이민종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다. 풍요롭지 않아도 가능성의 세계를 인식하는 나그네처럼 망각의 정서가 반영된 그의 그림은 일시적으로 기억되지만 곧 사라지는 나그네의 시선이다. 망각의 풍경은 긍정적인 사유의 탁월한 양식이다. 풍경이라는 기억에 사로잡혔다면 창조라는 유희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니체는 ‘기억이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것이라면 망각은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능력’이라 말한다.

4-4. 자연을 그리는 이유는 길을 잃고 헤매는 자가 안식처를 만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산수풍경은 시각적인 관점보다는 마음의 안정을 찾는 기능을 중시하는 까닭이다. 대자연 속에서 나고 죽는 생물체를 보면서 형성된 여유롭게 생을 살피는 관점이 바로 산수풍경을 보는데서 오는 안정감이다. 이민종은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텅 빔과 고요’라는 여백의 시간을 그린다. 겨울은 가능성의 세계이고 봄은 생동하는 계절이기에 선택되었으나 계절 속 자연은 침묵으로 생명의 흔적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동양 사상의 핵심은 현실 속에서 주변과 자기 마음을 조용하고 화평하게 하는 데 있다. 화가 이민종의 정신은 이러한 자연에서 발견한 감성적인 이미지를 재창조하는 것이다.

전시제목이민종 초대展

전시기간2018.12.01(토) - 2018.12.17(월)

참여작가 이민종

초대일시2018년 12월 01일 토요일 06:00pm

관람시간10:30am - 06:30pm

휴관일일요일, 공휴일 휴관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금보성아트센터 KumBoseong Art Center (서울 종로구 평창36길 20 (평창동) )

연락처02-396-8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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