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의 산전수전

2012.11.02 ▶ 2012.12.16

성곡미술관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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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범석

    산전수전-고달사지(detail) 한지에 먹, 호분, 과슈, 아크릴, 256x192cm, 2012, 성곡미술관

  • 김범석

    산전수전-고달사지(detail) 한지에 먹, 호분, 과슈, 아크릴, 256x192cm, 2012, 성곡미술관

  • 김범석

    산전수전-고달사지(detail) 한지에 먹, 호분, 과슈, 아크릴, 256x192cm, 2012, 성곡미술관

  • 김범석

    산전수전-고달사지(detail) 한지에 먹, 호분, 과슈, 아크릴, 256x192cm, 2012, 성곡미술관

  • 김범석

    전시전경 2012

Press Release

흐르는 풍경
1.

김범석의 작업은 '삶'이다. 산을 중심으로 풀어낸 우리네 '삶의 풍경'이다. 김범석은 서울을 떠나 경기도 여주에 자리 잡은 이후 줄곧 자신이 직접 지켜보고 경험한 주변 풍경과 삶의 진솔한 표정을 산을 통해 묵묵히 힘 있게 담아 왔다. 가족들과 함께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생활하며 자신과 가족의 삶, 작가로서의 정체성, 작업에 대한 자기정의를 돌아보았다. 기억의 저장고에 차곡차곡 쌓여 있던 지난 삶의 에피소드들을 하나하나 불러내어 현재적 삶의 풍경과 중첩시켜 나갔다. 세파에 부대끼며 살아온 녹록지않은 지난 삶의 여정이 흐르듯 화면에 녹아들었다. 이런저런 흘러가버린 시절 추억과 새로운 환경과 삶에 적응하려는 현재적 노력이 산과 함께 하나로 이어졌다.

김범석은 독특하게도 이들 모두를 산을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기실 썩 잘난 산도 아니고 못난 산도 아닌, 주로 동네 주변에서 쉽게 만나는 평범한 산들이다. 가끔 국내외 화첩기행에서 만났던 일부 지형, 지물들도 중첩의 대상으로 불러냈다. 줄잡아 천 여 점 이상의 산그림을 그렸다. 풀어진 마음을 걷잡고 다듬는 극기(克己)의 과정이자 산을 삶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을 여는 과정이었다. 결과물이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 하루 대부분을 작업에 투여했다. 왕성한 창작의욕과 배가된 자신감이 갑자기 우연처럼 생겨난 것은 아니다. 일체의 외부 활동을 접고 대부분의 시간을 오롯이 작업에만 몰두한 작가의 옹골찬 집념의 결과였다.

김범석의 여주행. 과감한 결단이요, 결심이었다. 어쩌면 외진 곳. 커다랗게 다가온 작업실. 한참을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스스로 택한 길이었고 결정이었지만, 왠지 고립된 듯한 생각에 자괴심이 들곤 했다. 김범석에게는 상당한 부담이었다. 기존에 하나하나 다져 놓은 작업, 활동 기반을 과감히 포기하고 내린 과감한 결행이었다. 현실을 가감 없이 받아들였고 자기다짐이 이어졌다. 그러나 한동안 붓을 잡을 수 없었다. 어느 날 문득 산이 눈에 들어왔다. 크게 다가왔다. 마음속 환한 빛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산을 그저 멀리서 바라보다가 산을 직접 밟아 보았다. 과거로부터 밀려오는 소리와 형상들이 김범석을 반겼다. 사생 도구를 챙기고 훌훌 산을 따랐다. 세상과 얽히고설키며 몸부림치듯 이어온 이 땅의 표정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화첩을 들고 화우들과 종종 오르곤 했던 이 땅의 그렇고 그런 산 중 하나였건만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새삼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김범석의 지난 기억과 다짐들도 하나둘 고스란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버릇처럼 지니고 있던 종이와 숯을 꺼내들었다. 역시 세상의 답은 작업실이 아닌 세상에 있었다.

이처럼 산은 그의 작업의 시작이었다. 바닥이 없는 바다와도 같은 깊고도 깊은 심연을 간직한 이 땅의 노래들이 들려왔다. 마른풀, 무심한 바위, 꿋꿋함을 잃지 않은 나무, 그리고 그 속에서 뿌리내리고 살아온 우리네 모습이 들어왔다. 의식(意識)의 단전에서 길어 올린 단단한 기운을 바탕으로 그들을 담았다. 자신을 낮추었다. 마음 닿는 부분을 살짝 강조하거나 디테일은 최소화하며 산의 내재율을 따랐다.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 존경하던 선배들 모두 다 거기에 계셨다. 산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산의 움직임을 닮고자 했다. 이미 산은 김범석 자신이었다. 노여움과 헛기침도 들리기 시작했다. 막연한 상실감과 좌괴감에 시달리던 못난 자신을 타이르고 채찍질하는 소리였다.

수 없이 산을 오르고 담았다. 온갖 세파를 다 겪은, 세상사에 시달리고 부대끼며 자리 잡은 잔주름들이 골짜기마다 출렁였다. 크고 작은 화첩, 종이에 서둘러 옮겼다. 그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동의 물결이 일렁였다. 오랜만에 맛본 행복한 그리기였다. 땅의 냄새, 기운, 존재, 그 속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음이 산과 함께 있었다. 산의 물리적 준(峻)을 먼저 살피던 과거의 버릇을 과감히 버렸다. 산속으로 더욱 깊게 치고 들어갔다. 내려다보거나 올려다보았다. 산은 벌써 김범석의 가슴 속에 커다랗게 들어차 있었다. 크고 작은 그의 화면 속에도 과감하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하늘이 겨우 보일 정도다.

김범석은 산의 생김새를 따라 그리기보다는 산이 들려주는 이야기, 산과 나누는 대화를 풀어내려 노력했다. 산에 안기어 산의 이야기를 담으려 했다. 크게 듣고 크게 담으려 했다. 김범석의 산그림은 하나의 거대한 집적체다. 노동과도 같은 사생과 그림 그리는 행위의 반복, 물감의 중첩이 수 없이 반복된 심리적 매스(mass)다. 그것은 풍경의 힘, 사소하고 익숙한 것들의 힘, 그것들이 간단없이 이어지면서 쌓이고 뭉쳐서 만들어낸 거대한 덩어리요, 기운이다.

여주 정착 당시의 막막함과 먹먹함을 달래주고 풀어준 것은 이렇듯 주변의 산과 야트막한 들판, 그 속에서 살아가는 민초들의 삶의 풍경이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지난 2년 동안 김범석은 일체의 외부 활동을 접었다. 작업만을 생각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하루 일과의 대부분이자 일종의 지식/육체노동이었다. “예술가는 심장을 가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노동자의 손발을 갖고 있어야 한다. 예술은 정신적 세계관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그 정신적 세계관을 떠받치는 것은 온전히 그 육체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농부들이 가지는 씨를 뿌리고 뿌린 만큼 수확한다. 그 노동의 대가에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작업노트)라는 작가의 술회처럼 그러한 인식은 농부들의 일상을 지켜보며 비롯되었다.

종이, 먹, 붓 모두 부드러운, 그러나 질긴 인연의 것들이다. 조상 대대로 끊이지 않고 이어져온 이 땅의 기운과 역사와 다름없다. 김범석의 산그림은 질경이와도 같은 질긴 삶의 상흔을 파노라마처럼 반복적으로 늘어 뜨려 놓은 단단한 풍경이다. 산에서 자신의 현사실성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지난 모두를 뒤집고 다잡았듯이 다시 먹을 갈고 먹을 배웠다. 중력을 역행하며 붓을 가지고 놀았다. 종이의 결과 속이 갈라지고 트여지기 시작했다. 물리를 깨친 듯했다. 여주에서의 지난 8년은 이렇게 지나갔다.

2.
그의 풍경은 크게 보아 산과 나무를 다룬다. 김범석은 산을 중심으로 하지만 어쩌면 나무를 중심으로 풀어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그가 거주하는 여주 장암리의 풍경을 비롯하여 주변 동서남북에 걸쳐 있는 이런저런 산들과 각 마을, 각 지역마다의 표정을 반영한 특유의 이정표와도 같은 학교, 주유소, 유원지, 폐사지, 농원, 배밭, 포도밭, 지방천, 포도밭, 강변의 모래밭, 초등학교 분교, 지방도로, 장암리의 사계 등을 담고 있다.

그리고 마을 어귀의 다리라든가 시냇물, 개천,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인, 산수를 다양한 재료로 불러들였다. 한지, 먹, 호분, 과슈, 숯 등이다. 그의 그림은 숯으로 시작된다. 숯드로잉으로 출발한다. 산이건 사물이건 크게 잡아내었다. 그렇다고 큰 덩어리를 명확하게 담아내거나 드러내지 않는다. 작은 미물이라고 해서 소홀하게 다루지도 않았다. 서로 적당한 균형과 호흡을 주고받으며 비장된 그 무엇을, 화면 가득 전체적인 분위기 안에 효과적으로 녹여내고 있다.

“큰 덩어리라는 것이 시각적으로 확연히 들어나는 형태가 아니라, 그림 속에서 스물스물 베어 나오거나 칼날이나 송곳 같이 뾰족하거나 날카로운 것들이 비장된 느낌인데 눈에 띠거나 강조되어 그려지는 것이 아니고 화면 전반에서 분위기로만 느껴지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정교한 계획과 표현을 위한 인내심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니 그리는 동안 한 순간이라도 긴장의 끈을 놓아버리면 곧바로 막다른 길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손재주의 단맛에 빠져서 중요한 것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뜻이다.”(작업노트)

이렇듯 그가 산에 올려놓은 이미지들은 강하거나 자극적인, 또는 원초적 욕망 구조를 희롱하거나 건드리는 그런 것들은 아니다. 그저 평범하고 나아가 비루할 정도의, 거기에 그런 것이 있었는지 조차도 잊고 살아가는, 존재감이 그다지 미약한 산과 풍경들이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동네풍경이다. 그야말로 흔한 삶의 풍경이다. 텅 빈 초등학교, 높이 솟은 예배당, 구불구불하게 생긴 골목길, 무상하리만큼 황량한 폐사지, 눈에 잘 잡히지 않는 가느다란 실개천, 용트림하듯이 굽이치는 거대한 강줄기, 앙상한 나무, 마른 풀, 땅, 논, 밭, 그들의 꿈틀거림과 마음을 아지랑이는 연민의 감정, 계절의 변화 추이도 담았다. 담아내었다기보다는 그가 먼저 다가간 마음속 풍경이다. 심상 풍경과 물리적 풍경이 힘껏 조우한 살가운 그러나 낯설지 않은 산그림, 삶의 풍경인 것이다.

지필묵, 풍경, 산그림... 왜 남들은 다 버리고 애써 무시하는 것들을 쥐고 고집하고 씨름하는 것일까. 김범석의 작업은, 이를테면, 삶을 부여잡고 삶과 싸우는 과정이다. 그리기보다는 세상의 아픔을, 그러함을, 답답함을, 울분을 삭이듯 새겨 놓은 작업이다. 지지체의 결과 결마다 수많은 합으로 개입되어 있다. 조금은 과하게 사용한 듯한 호분이 주룩주룩 하염없이 화면 위를 흘러내린다. 작가의 살아 움직이는 심상이다. 비단 화면뿐이랴. 그의 삶에도, 마음에도, 전시장에도 가득 흐르고 있다. 살아 움직이는 김범석의 작업은 이른바 흐르는 풍경이다. 단단한 그러나 경직되지 않은 인상으로 그의 산은 꿈틀거린다. 움직인다. 흐른다. 역사가 그러했고 현재적 삶이 그러하듯 간단없이 흘러내린다. 고정된 불변의 것이 어디 있으랴. 역사도 흐르고 계절과 산, 우리네 삶도 흐른다. 역사의 도도한 목도자인 산도 나무도 묵묵하지만 흐른다. 바람도 생각도 흐른다. 산이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도 흐르고 있다. 과연 만물은 흐른다. 세상 모든 것이 흐르는데 가는 세월을 어찌 메어 둘 수 있겠는가. 다만 잠들지 않고 깨어나 바삐 움직일 따름이다.

이번 전시의 특징은 김범석의 이전 작업과 달리 화면이 파격적으로 커졌다는 점과 산을 중심으로 삶의 풍경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전시에 소개하는 근작들은 지난 2011년부터 최근까지 제작된 것이다. 김범석은 2년 동안 무려 600여점의 작품들을 제작했다. 여기 대부분의 작품을 소개한다. 전시장 벽면을 따라 병풍처럼 펼쳐진 뜨거운 호흡과 구구절절한 삶의 파노라마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8년 동안 여주에서 경험하고 지켜본 산과 삶의 풍경은 장면으로서의 산이라기보다는 기억의 중첩, 경험의 중첩,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다양한 표정들이 켜켜이 잠복되어 있는 중층 풍경이다. 그리기의 지속성과 역사의 연속성이 뜨겁게 조우하는 생생한 생성공간이다.

김범석의 그림은 뉘어 놓고 그린 것이 아닌, 세워서 벽에 부착해 놓고 그린 그림이다. 때론 붓을 거꾸로 세운다. 중력을 거스르는 작업이다. 먹이 붓자루와 손을 타고 거꾸로 흘러내리는, 역류를 경험한다. 그렇게 오르내리고 그리고 찍고 또 찍는다. 중국 명나라 말기에 활동한 문인 홍자성(洪自誠)의 어록(語錄), 채근담(菜根譚)에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고 새끼줄로 톱질해서 나무를 자르고 물방울이 돌을 뚫듯이 배우는 사람은 힘써 더욱 구해야 한다. 물이 모이면 내를 이루고 오이가 익으면 꽂지가 떨어지는 법. 도를 얻으려면 사람은 모든 것을 하늘의 작용에 맡겨야 한다."고 적고 있다. 무한반복에 가까운 집요한 노력이 이번 전시에 출품된 결과물들을 만들어 내었다. 산을 만날 때마다 받은 인상, 삶에 부대낄 때면 찾은 산. 그때마다 산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하나하나 차곡차곡 종이에 올려 나갔다. 산과 나누는 이야기. 산이 들려주는 이야기. 산에서 둘러본 세상표정. 산을 바라보고 산속으로 들어가며 접한 기운, 나눈 이야기들을 계속적으로 중첩시켜 나갔다.

김범석은 이른바 ‘지필묵’을 사용하여 이 땅의 산풍경과 산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삶의 풍경을 담았다. 질박하고 칼칼한 화면질감. 종이지만 제법 두툼하고 빳빳하고 꼬들꼬들한 단단한 지지체의 독특한 질감을 보인다. 이 땅의 내음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땅에 배어 있는 민초들의 애환과 삶의 진솔함도 들리는 듯하다. 이른바 포스트 민중적인 기운이 충만하다. 일부 작품에서는 민화적인 모티프와 감흥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땅이 지켜온 힘과 화가 김범석의 힘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화면에는 순리를 거스르려는 고집이 보이지 않는다. 이점이 지난 시절의 작가의 작업과 다른 점이다. 호분을 과도할 정도로 많이 사용하였는데, 수채화의 경우처럼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호분을 되받아 그리며 부드럽게 마무리하지 않았다. 산이 그러한 것처럼 흐르는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용인했다. 존재의 흔적을 그대로 용인하는, 스스로 그러하도록 용인하는 관용과 넉넉함이 인상적이다.

노동이라는 표현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 작가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김범석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의 작업, 즉 그림그리기를 노동으로 규정지었다. 예술이 현란한 손놀림, 즉 기교에 의지하는 손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인간 정신의 산물이라는 고전적 정의를 따르지만, 무릇 작업이란 정신적인 노동이자 육체적인 수고가 더해지는 노동임을 용인한다. 손으로 만지고 발로 밟으며 눈으로 받아들이는 종합적 지각 체험과정을 통해 얻은 복합체로서의 결과물을 지지체에 얹어나가는 작업관을 견지하고 있다.

“일상의 모든 풍경들이 산수가 될 수 있다. 누구나 꿈을 꾸고 있으니까. 그 처절에서 살아온 우리가 산이고 물이지 않을까. 그 산전수전말이다. 나는 그 산전수전이라는 것이 예술가 아니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부분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누군가는 말하지 않던가 그림자가 없다면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작업노트) 작가의 이 말은 결국 그가 담아내려 한 것이 과거의 단순한 산수풍경만이 아니었음을 명확히 해준다. 무릇 나무는 자신이 숲인지 안다. 김범석의 최근 작업에서 공통으로 감지되는 것은 작품이 경직되지 않고 부드럽게 흐른다는 것이다. 그것은 “힘을 주는 게 아니라, 힘을 빼는 법을 배웠다. 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침묵하는 법을 배웠다. 힘을 주고 내지르는 것만이 아니라 힘을 빼고 억제하는 것으로 더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지난 8년 동안 여주 자연으로부터 배운 겸손함과 진정한 의미의 자연정신, 풍경이 의미하는 바에 대한 공감이 뒷받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범석은 숯, 먹, 과슈, 호분, 장지를 주된 안료와 지지체로 사용했다. 아교가 용제로 개입되기도 한다. 그의 작업실, 혹은 그의 작업에서 나는 독특한 냄새는 산과 땅, 흙의 내음을 생각게 하는데 이는 이러한 재료와 기법적인 부분에서 오는 독특한 내음으로 그의 작품을 오감을 통해 받아들이게 해준다. 어쩌면 김범석은 흙의 내음을 작품에 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흙 부스러기를 그리고 싶었다. 내 살의 일부분인 부스러기. 그 속에 생명이 꿈틀거리는 아주 작은 미동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걸 여기에 와서 매일 보고 느끼고 체험하면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 그것, 흙을 그리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은 그가 세상에 대해 작업에 대해 생각하고 담고자 했던 일단의 고민을 돌아보게 한다.

3.
이번 수상전은 200호에 달하는 크기의 작품 54점과 15호 크기의 소품 470여점을 소개한다. 제한된 전시공간의 특성상 작가의 근작을 모두 소개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 이들 모두는 다양한 시간과 공간이 한 자리에서 조우하고 하나된 풍경이다. 이와 같은 독특한 구성 방식은 김범석이 산을 통해 말하고자하는 우리네 역사와 땅에 깃든 슬프도록 질긴 기운을 전하기 위함이다. 김범석의 역사적, 서사적, 시각적 사고와 육체적 지각 방식이 총체적으로 결합된 풍경이다. 그의 대형 화면이 추호의 흔들림도 없이 팽팽한 긴장감과 밀도를 획득, 유지하고 있음은 이 땅에 대한 작가의 분명한 역사인식과 작가의 육화된 지각, 수많은 드로잉이 탄탄하게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소품은 1층에, 그리고 대형작업은 2층 전시실에 설치했다. 1층 소품공간에서는 이른바 민화적인 모티프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산이 등장한다. 그러나 대형작업에 비해 주된 모티프는 나무다. 사람처럼 두팔을 벌리고1전시실 전시광경 ⒸSungkok Art Museum 서 있는 나무, 사람이 등장한다. 한글, 한자의 용례도 보인다. 조선 후기 민화를 오마주한 작업으로 이해된다. 조선후기판화에서 볼 수 있는 부적판화 모티프, 문자도(文字圖) 등도 자주 보인다. 갈필을 사용한 날카로운 목판화느낌의 표현적 화면 구성도 보인다. 작고한 민중판화가 오윤을 오마주했다. 화면에 부분적으로 색을 개입시킨 작품도 있다. 주묵을 사용한 붉은 화면, 청색으로 주조한 화면 등도 보인다.

대형 작업이 산을 중심 모티프로 화면을 꽉 채운 것이라면, 이들 다량의 소품들은 배경을 과감히 생략하고 주된 모티프를 강조한 담백한 화면 구성을 보인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소소한 삶의 기운, 농촌의 사계, 농촌의 일상과 하루의 다양한 시간대와 그 표정 등을 담아 내고 있다. 또다른 의미에서의 밑그림, 드로잉으로 볼 수 있겠다. 이들 작업에는 호분을 사용하지 않았다. 장지가 아닌 얇은 지지체의 특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가능한 모든 것을 불러들였다. 벽면에 거는 방식이 아닌 천정에 철제 와이어를 설치하고 가로로 빨래를 널듯 포개어 진열했다. 어깨 정도의 높이로 그림을 직접 만나면서 마치 나무가 울창한 숲길을 거닐 듯 전시장 벽면을 따라 들어가며 다양한 소재와 내용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2층에는 작업실 대벽에 부착되어 있는 나무 화판을 그대로 옮겨와 전시장 일부 벽면에 부착하고 작품을 설치했다. 김범석의 야심찬 대작을 만날 수 있다. 작업실 분위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모두 파노라마형식으로 설치하였다. 삶의 파노라마와도 같은 변화무쌍함과 묵묵히 그들을 지켜보는 산의 커다란 기운을 유비적으로 바라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들 모두는 장대한 서사적 기록이라기보다는 하루하루의 일기 형식으로 제작된 것들이다. 마치 조용한 숲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멀리서 그저 관조의 대상으로서만 바라보면 산의 참모습을 알지 못한다. 산속으로 들어가 나무를 만나고 산을 밟으며 만난 표정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루하루를 담은 일상의 기록으로서의 작업, 하루하루 이어나가는 작업도 그러하고 풍경도 그러하고 산도 그러하고 획을 하나하나 더해나가는 그의 작업도 그러하다.

“... 이번 설치개념은 완성이 아닌 과정을 거치기위한 일종의 하루하루의 일기 형식이다. 역사의 기록이 과거를 뒤돌아보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한 것처럼 매일매일 한 장씩 그리는 과정이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기록일 것이다. 하나하나 모인 작은 것이 큰 덩어리가 되어 큰 힘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며 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작업노트) 김범석의 이러한 다짐은 ‘마음을 비우고 산을 품어 안는다’는 의미의 허심포산(虛心抱山)이라는 말을 새삼 되뇌게 한다. 먼지가 모여 두께를 가지고 또 큰 덩어리를 이루며 나아가 힘으로 작용하듯, 김범석의 작업이 큰 덩어리, 큰 힘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김범석의 산그림은 단순한 조립 풍경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 이어져 온 삶의 애환과 희로애락의 감정이 켜켜이 중첩되고 배어 있는 살아 있는 진행풍경이다. “멀리서 사람을 보면 사람처럼 보인다. 조금 가까이에서 보면 얼굴이 보이고 더 가까이에서 보면 누군가 확실하게 보인다. 만나서 더 들여다보면 인간이 보인다. 그때는 크고 작은 것이 아주 미세한 감정과 이성에서 인간이 왜곡되어 보이기도 하고 전혀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풍경이라는 것이 꼭 이와 같은가보다. 한없이 넓고 장중하고 큰 것이 체험과 그 곳에서 느끼는 풍경의 아우라가 엄청 큰 진폭으로 다가온다.“(작업노트) 따라서 김범석의 풍경은 삶의 태도와 방식을 고스란히 노정하는 삶의 풍경으로서의 종합적 풍경인 것이다. 그러한 풍경은 무대 풍경처럼 단순 조합에 의한 구색을 갖춘 풍경과는 전혀 다른 특유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삶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그저 저 멀리 존재하는 관조의 대상으로서의 먼 산이 아니라, 나무의 당당함과 꿋꿋함, 세월의 풍상과 그 모든 시련, 그에 따른 흥망성쇠를 함께 한 역사적 동반자로서의 풍경이다.

이번 수상전에서는 지난 20여 년 동안 땅의 문제에 천착해온 김범석 작가가 여주 작업실 주변의 풍경을 비롯하여 실제 답사를 통해 만난 우리네 삶의 현실표정을 오롯이 담은 개성 넘치는 수묵산수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풍화된 조개껍질을 빻아 만든 흰색 안료인 호분(胡粉)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듯 구사된 김범석 특유의 풍경은 그의 농익은 산수미감과 이 가을의 정취를 더욱 풍성하게 해줄 것이다. 좀처럼 한국화 전시를 만나기 힘든 요즘, 작가는 물론 한국화단에 작지만 큰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시제목김범석의 산전수전

전시기간2012.11.02(금) - 2012.12.16(일)

참여작가 김범석

관람시간10:00am~18:00pm

휴관일월요일

장르회화와 조각

관람료어른 및 대학생(20~64세) 5,000원
학생(초, 중, 고교생) 4,000원
20인 이상 단체 1,000원 할인
* 65세이상 어르신, 7세 미만 어린이는 무료입장입니다.
* 장애인, 국가유공자는 단체관람료가 적용됩니다.
* 18기 인턴기획전 <식감: Taste of Life>(2012.11.2-2013.1.6, 2관) 관람요금 포함

장소성곡미술관 Sungkok Art Museum (서울 종로구 경희궁길 42 )

연락처02-737-7650

Artists in This Show

김범석(Kim Beom-Seok)

1963년 출생

성곡미술관(Sungkok Art Museum) Shows on Mu: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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