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획 의도
학고재는 예술과 건축 등 사회공동체, 도시공동체 형성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예술장르를 통합적으로 연구하고 담론해보는 특별 프로젝트를 기획하였다. 프리즈 서울 개막기간인 2024년 9월 3일 (화)부터 10월 5일 (토)까지 열리는 이 프로젝트의 제목은 《잃어버린 줄 알았어!》이며, 전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자 미술이론가인 이용우 교수(상하이 통지대학교)와 독립 큐레이터 왕리인의 공동 기획으로 이뤄졌다.
참가 예술가는 오늘날 한국, 중국, 일본 현대미술현장의 주요 예술가들인 엄정순(嚴貞淳, b. 1961), 딩 이(丁乙, b. 1962), 시오타 치하루(塩田千春, b. 1972) 3인이다. 그리고 시인, 미술 이론가, 건축가, 건축 이론가, 큐레이터 등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포럼이 개막일에 열리게 되며, 건축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주최하는 프리츠커재단의 마누엘라 루카 다지오(Manuela Luca-Dazio) 디렉터가 이번 포럼의 주제발표자로 참가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우리가 꿈꾸는 탄력적인 사회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예술과 건축은 어떤 사회적 합의에 기여할 수 있는가”를 조명하기 위해 다양한 토론 주제들을 발표하게 된다. 그리고 예술의 공동체 정신과 사회적 포용성 등 예술과 사회의 관계항들을 검토하는 플랫폼으로 기획되었다.
2. 전시 주제
이 프로젝트가 “포럼으로서의 전시”, “전시로서의 포럼”을 지향하는 것은 오랫동안 현대미술과 건축이 추구해 왔던 특정한 개념이나 형식, 스타일 중심의 엘리트적 실천으로부터 한발 물러나, 인류가 풀어야 할 다양한 형태의 ‘물려받은 상처(inherited wound)’들을 비롯하여 정치적, 사회적, 생태학적 숙명들을 회고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더 기억하기 위함이다.
이 프로젝트가 제안하는 예술의 공동체 정신이란 예술과 사회의 관계론적 함의(relational implications)를 말한다. 즉 예술이 개인이나 공동체의 역사와 기억, 사회적 시스템 사이에서 어떤 연대 의식을 형성하고 사회적 합의에 참여하는지에 대해 토론한다. 앞에 언급한 ‘물려받은 상처’란 개인이나 공동체, 국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적, 역사적 매듭들을 포함하며, 부지불식간에 발생하는 수많은 우발적이거나 기획된 폭력으로부터 파생된 개인적, 공동체적 파괴의 사슬을 말한다.
예술은 국경이나 이질 문화를 초월하여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우선적으로 선언하고 주장하는 표현공간이다. 아울러 배타성을 경계하는 자유와 상상력의 산물이다. 우리의 생생한 경험과 절망, 기억을 개별적, 집단적으로 묶어내고, 개인과 집단을 소통하게 하는 예술과 건축의 가능성은 그것의 메타 사회적 기능에서 나온다.
과거 모더니즘이 주창했던 선명성과 파편화는 과거와 미래, 남과 북, 진보와 퇴보, 급진과 보수를 가르고 결별시키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생태학적으로 고통스러운 변화들이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오늘날의 현실을 고려할 때, 그러한 파편화된 담론의 항해 기술은 유효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 포럼은 급했던 걸음을 멈추고 우리들의 판단력이 호소하는 감지 장치들을 다시 점검해 보기 위한 협의체 역할을 하고자 한다.
3. 포럼 발표자
마누엘라 루카 다지오 (프리츠커상 재단 디렉터)
타테하타 아키라 (야요이 쿠사마 미술관 관장, 시인)
조민석 (건축가, 매스스터디즈 대표)
리샹닝 (건축비평가, 통지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심상용 (미술이론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샤오 슈 (중국 허미술관 관장)
딩이 (참여 작가)
엄정순 (참여 작가)
포럼 사회: 이용우 (본 프로젝트 큐레이터)
4. 작가 소개
이번 프로젝트에는 한국의 엄정순, 중국의 딩 이, 일본의 시오타 치하루가 참여한다. 이 예술가들의 공통점은 인간이 숙명적으로 안고 살아가는, 매우 암시적이지만 도피할 수 없는 자아정체성에 대한 도전과 실천을 주제로 한다. 그리고 예술이 사회적 변화와 포용성에 대하여 어떻게 수용, 중재,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발언한다. 특히 동기가 분명한 민주화된 오늘날의 관객들이 어떻게 예술, 도시, 건축을 재발견해야 하는가를 안내하는 맥락들을 짚어본다. 참가 예술가들은 또 급속한 기술 발전을 바탕으로 과속 성장한 사회적 시스템이 초래한 인간의 부재와 생태적 위기를 진단하고 검증한다. 특히 우리가 학습하지 않는 이데올로기와 학습되지 않는 기억에 대하여 자기성찰의 목표를 찾는다는 점에서 중요한 맥락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예술가
딩 이는 1986년부터 40년 가까이 수학적 기호를 연상케 하는 십자(+)와 격자(x)를 표현 매체로 설정하여 1980년대 이후 중국 현대미술사에서 기하학적 추상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는 문화혁명 이후 1980년대부터 급속하게 등장한 아방가르드 운동의 실천적 1세대에 해당한다. 당시 신세대 현대미술가들은 문호 개방과 더불어 서구 현대미술의 영향을 강하게 받거나, 반대로 중국의 문화적 전통을 다시 들여다보고 중국성을 재발견하는 데 집중했다. 이와는 반대로 딩 이는 서구 영향도, 중국성에도 거리를 둔 채 예술 자체가 호소하거나 진단하는 본질적 문제를 질문하면서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고 있었다. 당시 젊은 예술가들은 새로운 것 자체를 가치로 보았으며, “더 과격하게, 더 실험적으로”를 외치던 시절이었다.
그는 다수의 젊은 예술가들이 더 크고 의미 있는 것들을 찾아 나설 때 오히려 의미 없고 하찮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수학기호와 같은 “+”, “x”를 일종의 표현과 전달 매체로 활용하여 추상 회화를 시작하였다. 모두가 거대한 ‘의미’를 찾던 시대에 ‘무의미’를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역설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그가 시작한 추상예술은 문화혁명기에는 자본주의의 퇴폐예술로 간주하여 금지되었던 장르이다. 그러나 그는 추상의 메타포가 내포하는 메시지들을 시대를 읽고 증언하며, 포용하는 표현적 대안으로 설정하였다. 그의 예술은 중국의 개혁개방에 따른 사회적 변화, 경제 발전, 대도시화의 모습들을 다양한제와 구성, 색상을 활용하여 기억하고 저장하는 메신저 역할을 했다.
시오타 치하루는 1996년부터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으며, 퍼포먼스와 실을 사용하는 설치미술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녀가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표현하는 메시지들은 특정 공간과 그 공간을 차지하는 물질과의 상호 연관성을 연구한다. 특히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절실한 기억이나 신체, 경계영역, 소외 등 매우 개별적이면서도 사회적 상관관계를 질문하는 맥락들을 섬세하게 노출하고 해석한다.
붉은색, 검은색, 흰색 등의 실이나 호스를 활용하는 그녀의 설치작품은 작품이 놓이는 공간(방)에 대한 설정이 매우 중요하다. 실을 활용한 그녀의 설치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소품들은 열쇠, 창틀, 헌 옷, 신발, 보트, 여행 가방, 플라스틱 튜브와 같은 일상적이면서 예술가의 개별적, 또는 집단적 기억과 연결된 구체적 물건들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색상과 소재는 중요한 암시적 요소이며, 이러한 소품들 가운데는 생명을 상징하는 붉은 피 색깔의 실이나 소품들이 다양하게 얽혀 있다. 이러한 구성과 전시에 사용되는 작은 소품들은 삶의 주변이나 우리들의 DNA에 살아서 꿈틀거리는 기억들을 연상하도록 한다.
전시장에서 절대로 금지된 터부는 천재적 예술가들의 손을 거쳐 제작된 숭고한 미학적 세례품인 예술 작품을 관객들이 만지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가
엄정순은 역으로 관객들에게 작품을 만질 수 있도록 권유하면서 작가가 설정한 주제로 참여를 유도한다. 가령 시각장애인들에게 코끼리를 만지는 것은 코끼리를 보는 것이다. 불교 경전인 『열반경』에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말이 있다. 코끼리는 손의 감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작은 물체가 아닌 거대한 볼륨을 가진 짐작 불가능한 물체이다. 전체를 만질 수 없는 거대한 물체는 만지는 부위의 특성만 손으로 볼 수 있다. 본다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 사이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크다. 예술이 소수자들을 돕고 치유할 수 있는 사회적 포용성은 절대적이며, 그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 또한 예술의 사회적 동의나 참여와 관계가 있다. 보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 사이의 사회적 격리는 거대한 것이며, 소수자를 돕는 제도적 장치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예술가 엄정순이 자주 언급하는 사회적 포용성이란 관용이나 양보와 같은 겸양의 미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약자와 그들의 삶(생명)과 연결된 제도적 장치와 참여의 문제이다. 그가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소수자들의 세계를 위해 행하는 예술적 실천이나 전문적 연구는 가상이나 상상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이다. 시각장애인들이 이해하는 코끼리의 코와 귀는 비장애인이 생각하는 동물 코끼리가 아니라 거대한 물체에 대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축소되거나 확장된, 비현실적이거나 추상적인 대상이다. “또 다른 보는 방법(Another Way of Seeing)”으로 명명된 엄정순의 프로젝트는 오차가 배제된 현실인 동시에 상상력이 동원된 예술이자 사회적 수단이 된다.
6백 년 전 한반도에 처음 들어온 코끼리를 처음 본 정부 관리가 그것의 괴기한 외모를 조롱하고 학대하다가 코에 맞아 죽는 일이 발생하자 그 코끼리는 남쪽에 있는 외딴섬으로 유배되었다. 이를 보고받은 세종대왕은 “물과 풀이 좋은 곳으로 보내어 병들고 굶어 죽지 않게 하여라”는 교지를 내렸으며 이 사실이 세종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코끼리에게 코는 권력이자 위계이지만 그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비예술가들, 사회적 약자들이 만들어내는 예술은 중요한 사회공동체적 참여와 포용의 예술이 된다. 권력의 상징인 코를 본 적이 없거나 잘 모르는 사회적 약자들이 코가 없는 코끼리를 만드는 아이러니는 권력이나 위계와는 관계없는 우화가 된다.
참여 작가들의 작품은 시간과 역사, 개인과 집단의 기억, 진화와 발전, 포용성과 배타성 등 사회인류학적 메시지의 상호작용을 포착한다. 그들의 메시지는 예술이 건물, 도시, 기술 발전, 환경 등의 학습된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공하면서 사회적 의미를 전달하고 개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참여 작가들은 20세기 후반부터 서구보다 빠르게 진행된 동아시아의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함께 살아감’의 정신을 상실한 둔한 도시문명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도시인의 소소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앗아가는 대도시화와 그 소비주의의 그림자를 기억하게 한다.
5. 작품 소개
엄정순은 실제 코끼리 크기의 대형 조각 작품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작가는 수년간 인도네시아, 일본을 거쳐 한반도에 처음으로 들어온 코끼리의 수난 여정을 따라가는 작업을 지속하며 시각장애 학생들과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시각장애 학생들이 청각과 촉각, 후각으로 느낀 코끼리를 재해석하여 대형 설치 작품으로 재구성하였다.
<얼굴 없는 코끼리>는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되었다. 코끼리의 상징이자 가장 큰 무기인 코는 물론, 얼굴이 없는 형태를 띠고 있다. 네 다리의 움직임을 유추하지 않으면 앞뒤의 구분이 모호하다. 전시장에서는 관객에게 등을 돌린 채 걸어가는 모습으로 배치되어 기나긴 코끼리의 여정을 따라가도록 제시된다. 텅 비어있는 코끼리의 앞모습과 거친 질감의 석회로 완성된 표면은 태고의 자연과 동굴을 연상시키며, 문명 이전의 자연적 감각을 극대화한다. 엄정순은 ‘코끼리’를 코끼리라고 부를 수 있게 규정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사유하게 하며, 국적, 성별, 시대를 초월해 세상을 인지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제안한다.
<들리지 않는 속삭임> 연작은 문명의 발전과 이성적 세계관 이전의 본질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반영한다. 비록 우리에게 들리거나 보이지 않지만, 모든 생명체가 고유한 언어로 의사소통 한다는 사실을 작품의 핵심 주제로 삼았다. 어느 날 작업실에 우연히 들어온 새를 관찰하며 시작된 이 연작은 단순한 움직임의 포착을 넘어, 몸짓과 소리를 통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흔들리는 이미지로 표현한다. 작가는 세상에는 인간이 인식하지 못하는 다양한 소통 방식들이 존재하며, 인간 중심적 이기심을 걷어냈을 때 비로소 그 미세한 신호들을 감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움직이는 영상을 캡처한 듯 흔들리는 화면은 우리의 삶이 흔들림과 떨림, 울림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작가는 세상에 고정된 것은 없으며, 보이지 않는 것조차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속성을 지닌다고 말한다. 이처럼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대상의 새로운 의미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2021년 겨울,
딩 이는 이듬해 라사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준비하기 위해 티베트를 방문했다. 티베트 종교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벽화를 신앙과의 대화를 위한 출발점으로 삼아, 예술적 언어 처리와 재료를 통해 고도로 개인화된 표현을 시도했다. <십시 2022-10>은 매우 고전적인 원형 제단의 구성을 가지고 있다. 티베트의 종교적 제단 이미지를 형식적으로 참조한 것뿐 아니라, "오불(五佛)"의 독특한 색상 배치도 사용되었다. "오불"은 탄트라 불교에서 유래된 것으로, 중심과 동서남북의 다섯 방향 각각에 부처가 존재한다. 그림에서 흰색, 파란색, 노란색, 빨간색, 초록색은 불교에서 탐욕, 분노, 어리석음, 게으름, 의심을 나타낸다. 불교는 이 "다섯 가지 독(毒)"을 순전히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탄트라 불교 이론에 따르면, 이것들은 단순한 정신적 에너지이며, 적절히 활용하면 "다섯 가지 지혜"로 변형될 수도 있다.
딩 이는 종교적 색상 배치를 수용하여 자신의 창작에 적용했다. 그림 속 색상들은 서로 맞물려 평면 위에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오온(五蘊)"의 변화를 상징하는 듯하다.
최근 몇 년간, 딩 이는 '위를 향한' 시각을 통해 회화의 영적 차원을 탐구하는 시도를 지속해왔다. 이러한 영성에 대한 추구는 그의 새로운 작품에서 자연의 미지와 신비에 대한 경외감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 작품은 '별자리'를 주제로 한다. 기하학적으로 변형된 별자리 기호들이 서로 연결되어, 중심에서 시작해 캔버스의 가장자리까지 대각선으로 펼쳐진다. 이전의 푸른 색감의 별자리 작품들과 비교할 때, 색상의 구상적 연상이 완전히 제거된 이 무채색의 작품은 후 더 차분하고 안정된 느낌을 주며, 추상 이미지의 영적 특성을 더 많이 담고 있다. 이 작품은 또한 작가의 내면 에너지를 투사하는 의미를 내포한다.
시오타 치하루는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에서 영감을 받아 삶, 죽음, 관계와 같은 인간의 보편적인 주제를 다룬다. 벼룩시장에서 발견한 책, 엽서, 열쇠, 드레스와 같은 일상적인 사물을 실로 얽힌 구조물에 배치하여 기억과 의식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한다. 오브제들은 직사각형 틀 안에서 마치 부유하는 듯한 형상을 띄며, 현실과 비현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넘나든다. 익명의 누군가의 기억이 담긴 오브제이지만, 인간의 기억과 무의식이라는 보편적 주제로 확장되어 마치 거대한 그물로 엮인 우주적 세계를 상징하는 듯하다. 검은 실은 태초의 칠흑 같은 어둠과 모든 것이 연소되고 사라진 상태, 즉 시작과 끝을 암시한다. 죽음을 ‘끝’으로 바라보지 않고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해석하는 작가의 철학을 반영한다. 그의 작품은 이렇게 시작과 끝, 존재와 부재, 의식과 무의식, 소우주와 대우주 등 이분법적으로 구분되는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비가시적 영역에 존재하는 진리의 세계를 가시화한다.
시오타 치하루는 어린 시절부터 지속된 죽음에 대한 사유를 미세 혈관을 연상시키는 붉은 실로 시각화한다. 이러한 조형적 언어를 조각, 드로잉, 설치 등 다양한 매체 적용해 온 작가는 캔버스에 물감 대신 실을 엮은 평면 연작 또한 수년간 제작해 왔다.
은 세 점의 캔버스가 전체를 이루는 트립틱이다. 휘몰아치며 약동하는 붉은 핏줄이 캔버스를 가로지르며 마치 그 너머의 공간으로 무한히 뻗어 나가는 듯하다. 붉은 실은 중국의 고대 설화집 『태평광기』에서 인연을 맺어주는 끈으로 그려져 오랜 시간 동아시아에서 인연을 의미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에서도 붉은 실은 얽히고설킨 인간의 삶을 상기시킨다. 어머니의 탯줄로부터 시작하여 태어나는 순간부터 인간에게 숙명적으로 주어지는 인연을 암시하고,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이 인연화합(因緣和合)의 원리에 따라 일어난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전시제목《잃어버린 줄 알았어!》 엄정순ᆞ딩 이ᆞ시오타 치하루 한중일 3인전
전시기간2024.09.03(화) - 2024.10.05(토)
참여작가
엄정순, 딩 이, 시오타 치하루
관람시간10:00am - 06:00pm
휴관일매주 월요일
장르회화, 조각, 드로잉 총 60여 점
관람료무료
장소갤러리 학고재 Gallery Hakgojae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 (소격동, 학고재) 학고재 본관 및 신관, 학고재 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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