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은님의 50여년 간의 예술 여정을 돌아보는 추모전
1973년 초기 드로잉부터 2021년 작품까지 40여점 출품
자연에 대한 탐구와 자유에 대한 “깨달음”이 담긴 강렬한 표현의 작품 구성
가나아트는 자연물을 작업의 근간으로 힘찬 생명력을 표현하여 ‘생명의 화가’로 불리는 노은님(Ro Eunnim, 1946~2022)의 추모전 《내 짐은 내 날개다(Meine Flügel sind meine Last)》를 4월 28일(금)부터 5월 28일(일)까지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최한다. 노은님의 작품 40여점이 공개되는 이번 전시는 ‘자유’를 향해 내면의 에너지를 거침없이 터트렸던 50여 년간의 예술 여정을 조망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특히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 작가 노은님이 이전의 투쟁적이고 강렬한 작품에서 읽히는 깊은 고독과 방황에서 벗어나 끝내 ‘날개’를 달고 자연으로 자유롭게 날아가는 과정을 작품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1946년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난 노은님은 1970년 독일로 이주한다. 간호사로 일하다 우연한 기회에 가지게 된 첫 전시회는 1973년 한국인 최초로 국립 함부르크 조형예술대학(HFBK)에 입학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대학에서 바우하우스(Bauhaus) 출신이자,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의 제자였던 독일 표현주의 거장 한스 티만(Hans Thiemann, 1910~1977)에게 사사했다. 이후 한국 작가로서는 최초로 국립 함부르크 조형예술대학 정교수로 임용되어 20여년간 재직했다. 활약상은 계속 이어졌다. 1990년 프랑스 파리 피악(FIAC)에 선보였던 〈해질 무렵의 동물〉은 프랑스 중학교 문학 교과서에 수록되었고, 1997년에는 함부르크 알토나 성 요한니스 교회(St. Johannis-Kirche)의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진행했다. 또한 2019년 11월에는 독일 미헬슈타트 시립미술관(Stadtmuseum Michelstadt)에 노은님만을 위한 영구 전시실이 마련되었는데, 이는 비(非)독일 출생의 현대미술 작가로는 유일한 업적이라 화제가 되었다.
2022년 10월 노은님이 하늘의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날아가고, 2023년 생명의 기운이 충만한 봄에 가나아트는 《내 짐은 내 날개다》라는 제목으로 예술가 노은님을 추모하는 전시를 연다. 전시명은 작가가 2004년 발표한 동명의 그림 에세이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노은님은 예술가로서의 자유를 얻기까지, 현실적으로 또 내면적으로 겪었던 고난, 곧 ‘짐’이 결국은 ‘날개’가 되어 스스로를 흐르는 물이나 공기와 같이 가볍고 자유롭게 한다고 책에서 서술한 바 있다.
가나아트는 2019년 개인전 《힘과 시》를 시작으로, 해마다 다양한 접근으로 작가 노은님의 예술 세계 탐구를 시작했다. 작업을 관통하는 화제인 “생명”과 “자연”에 대한 이야기, 삶의 계기마다 변화하는 “색”의 운용 등이 그 주제가 되었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깨달음”이다. ‘생명의 화가’ 노은님이 남긴 궤적에서 1989년의 다큐멘터리 제목에 등장하는 “짐”과 “날개”가 2004년 수필집에 다시 화두로 등장하며 자유를 논하는 것에 주목했다. 다큐멘터리의 독일어 원제 〈 Meine Flügel sind meine Last 〉를 보면 “날개(Flügel)”가 주어의 자리에, “짐(Last)”이 보어의 자리에 놓여있다. 작가의 ‘날개’, 다시 말해 ‘날고 싶은 의지’인 표현의 욕구와 심상이 해결해야 할 ‘숙제’ 곧 ‘짐’으로 받아들여져 작업의 주제인 생명과 자연에 대한 고뇌를 엄청난 에너지의 퍼포먼스로 표출하고자 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작가는 ‘날고자 하는 그 의지 자체가 날개’라는 깨달음과 확신을 얻은 듯하다. 해결해야 할 숙제는 애초에 없었고, 이미 날개가 달려있기에 그냥 날면 된다는, 자유롭게 표현하면 된다는 깨달음 말이다. 이것은 작가의 글 「내 고향은 예술이다」(1997)에서 말한 ‘내 앞을 가로막던 벽이 사라지고 내 뒤에 있었다’는 깨달음, 그리고 ‘내 앞의 높은 담벼락만 쳐다보고 담벽을 더 높이 쌓았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자기 고백과 상통한다.
대작 위주의 초기 작업들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
80년대 초 아프리카 여행 이후, 검은 배경에 거침없이 쏟아낸 8.5m 길이의
대작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후〉,
한층 자유로워진 표현력과 과감함을 느낄 수 있는 가로 330cm, 세로 262cm 크기의
대형 색면 추상 〈무제〉 공개
이번 전시는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의 영역을 확장해 온 노은님의 1973년부터 2021년까지의 작업들을 만나볼 수 있다. 먼저 전시는 함부르크 미술대학 시절의 초기 드로잉과 80년대 초반의 색면추상 작품들, 다큐멘터리 〈내 짐은 내 날개다(Meine Flügel sind meine Last)〉와 80년대 퍼포먼스 사진 기록들 그리고 작가의 ‘자유’에 관한 에세이 일부를 소개하며 시작한다. 이어서 2, 3전시장에서는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여 응축된 에너지를 생생히 쏟아낸 1980~90년대 대형 회화와 2000년대 이후 색과 선의 사용, 생명의 형태에 대해 훨씬 자유로워진 회화와 모빌 등을 선보인다.
이번 추모전은 대작(大作) 위주의 초기 작업들을 집중 조명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주요 작품으로는 검은 종이에 흰 분필로 짧은 선만을 그려 화면을 구성한 1976년 작품 〈무제〉와 80년대 초에 떠난 아프리카 여행에서 느낀 생명과 자연에 대한 인상을 검은 배경에 거침없이 쏟아낸 가로 길이 8.5m의 작품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후〉(1983)가 있다. 또한 원시미술에 대한 흥미와 탐구, 즉흥성과 단순함의 표현에 몰두해
있었던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의 대형회화도 소개된다. 가장 유명한 것은 프랑스 중학교 문학 교과서에 수록된 〈해질 무렵의 동물〉(1986)인데, 사실 이 작품은 ‘초배지를 4시간 동안 붙이고 그림은 5분만에 완성했다’는 작가의 말과 함께 노은님 회화의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한 즉흥성과 단순성을 극명히 읽을 수 있기에 더 중요하다. 그 외에도 노은님의 예술에서 이례적인 표현인 서정적 색감이 돋보이는 〈하얀 눈의 황소〉(1986)와 아프리카 원시미술의 현생과도 같은 〈밤중에〉(1990)를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다.
‘날개’와 ‘자유’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던 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 시기의 작품으로는 마치 불교의 ‘윤회(輪廻)’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 〈무제〉(1998)가 있다. 수레바퀴가 연상되는 검은 도형 위에 붉은색 물감으로 손바닥을 돌아가며 찍어낸 강렬한 인상의 작품이다. 당시 작가의 머릿속을 지배했던 생과 죽음, 자연의 섭리에 대한 고뇌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빨강과 짙은 녹색, 노랑과 파랑 등의 강렬한 색채 대비, 단순하면서도 강한 붓터치 등 파울 클레의 조형 방식과 유사한 측면이 인상적인, 가로 330cm, 세로 262cm의 작품 〈무제〉(2003) 앞에서는 그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은 한층 자유로워진 표현력과 과감함을 느낄 수 있다.
노은님은 “나는 그림 속에서 세상의 많은 것들을 깨달았고, 내가 큰 대자연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작은 모래알 같은 존재임을 알았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있는 것, 없는 것, 사는 것, 죽는 것 모두 마찬가지다” 라고 말하며 해탈의 연장선상에서 작업을 전개해왔다. 그 “깨달음”에 대한 전시 《내 짐은 내 날개다》전을 개최하며, 가나아트는 맑고 순수한, 그 누구도 근심이 없는 노은님의 예술 세계가 창조된 깊고 긴 과정을 보여주려 한다. 이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예술 본연에 대한 고뇌를 하며 작업해 온 노은님이 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본질을 탐구한 예술가임을 다시 짚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또한 관람자에게도 작가 앞의 벽이 사라진 어느 날의 새벽처럼, 골몰하던 나의 괴로움이 결국 나의 자유를 위한 ‘날개’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다가오기를 기대한다.
■ 가나아트
『내 짐은 내 날개다』
노은님
어제 하이니의 초대를 받았다. 쉰 여덟 살인 그를 처음 만난 건 1984년 봅스베데에서 지낼 때였다. 그는 스무 살 때 목수 일을 하다 오른팔 하나를 잃고 작가가 된 뒤 지금껏 혼자서 다 허물어진 집을 고쳐서 조각가로 살고 있는 사람이다. 말이 쉽지 왼손 하나로 혼자 화가촌에서 다른 화가들의 눈총을 받으면서 살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이 사람이 무슨 상을 받았을 때도 다른 화가들의 질투가 대단했다고 들었다.
눈이 번쩍거리는 그는 아직도 젊은 청년처럼 혈기가 넘친다. 그는 자신을 에너지 자체라고 한다. 다른 일 하지 않고 작품 활동만으로 38년을 먹고 살았으며, 앞으로의 일도 걱정이 없다고 한다. 그가 준비해 준 요리는 어찌나 맛있고 고급스러운지 정신없이 먹었다. 그는 저녁을 먹으면서 인생은 용감한 사람에게만 열리는 거라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팔을 잃고 나서 행복한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팔을 잃고도 행복을 찾을 수 있었던 그의 영혼이야말로 용기 있는 영혼일 것이다. 그런 그에게 인생은 스스로 문을 열어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예전에 프랑스에 살고 있는 한 발레 무용수에 대한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어렸을 때 나무 계단에 발이 끼여 부러지는 바람에 어려서부터 발 운동을 많이 해야 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고, 스무 살 때는 파리의 유망한 발레 무용수로 뽑혀 활약하기도 했다. 여기저기 초대받는 화려한 발레리나가 되긴 했지만, 그에 따른 허무감을 못 이겨 그녀는 모든 것을 버리고 수녀원으로 들어가 10년을 살았다. 그러나 춤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다시 수녀원장의 허락을 받아 양로원 같은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춤을 추었다. 그녀의 춤은 정말 아름다웠다. 어둠 속 십자가 앞에서 촛불을 켜놓은 채 하얀 옷을 입고 춤을 출 때, 그것은 영혼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예술가에게 재산이라고 하면 이런 영혼뿐인 것 같다.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할 자격이 없다. 살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고통 속에서 인생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것을 알고 나면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 사는 이치이다. 고통을 모르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도 무척 힘이 든다. 경험이나 체험은 남과 바꿔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상대방에게 아픔을 호소하더라도 아픔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내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픔은 누구나 싫어하는 것이지만, 이 아픔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아직 불이 되지 않은 당신이 어떻게 재가 되길 바라는가?”라고 니체는 말했다. 그렇다. 우리 모두 불이 되어야 한다. 활활 타오르는 불이. 아픔도 슬픔도 기쁨도 다 그 속에 넣고 함께 타서 녹아야 한다. 좋은 음악, 좋은 그림, 좋은 문학에는 잘 갈무리된 아픔이 조용히 숨어 있게 마련이다. 이것이 내면 깊숙이 흐르는 또 하나의 리듬이다.
벌을 받는 기분으로 많은 고통의 시간을 나 역시 보내왔다. 고통 속에서 내가 바란 것은, 이 고통이 그냥 흔적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니겠지 하는 것뿐이었다. 부잣집 딸도 아니고, 나이도 다른 학생들보다 한참 많은 스물 여덟에 시작한 그림을 붙들고, ‘대체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나?’ 하는 물음 속에서 괴로워했다.
내겐 없는 것이 있는 것보다 많았다. 그런 내가 살면서 느끼는 부담이 컸던 것은 당연하다. 남들은 다들 남자 친구가 있어 사랑을 받고, 성격도 밝아 아무하고나 잘 어울리고, 돈 걱정도 없고, 나처럼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나 하는 걱정도 없이 지내는 것 같은데, 나는 그 어느 것 하나 해결된 것이 없었다. 내게는 봄도 지루하고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마찬가지였다.
왜 살아야 하는가? 근본적으로 알 수가 없는 이 물음에 항상 허탈하여 중심도 없이 헛바퀴를 빙빙 돌았고, 그래서 항상 아파하는 여자였다. 사람들은 날 보고 제발 한번 웃어보라고들 했다. 웃으면 참 예뻐 보일 것 같으니 웃어보라고.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웃을 일이 없어 그런 것이니 웃음거리를 좀 달라고 대답했다. 그 소리가 우스워 사람들은 웃었다. 나는 이들의 웃는 모습이 우스워 따라 웃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웃는 날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런 일은 꽤 오래 계속되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아픔 속에서 지내야 했다. 갈 곳을 몰라 방황하는 젊음은 내게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는 비교적 평탄하게 자란 것 같은데 사춘기 때부터 방황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이렇게 시작된 방황은 서른 두 살이 될 때까지 아픔만을 키워주었다. 아픔을 같이할 사람도 없었다. 달래 줄 사람도 없었다. 다만 자연만이 유일하게 나와 함께했다.
어느 날 새벽에 일어나 앉으니 내 앞에 있던 큰 담벼락이 갑자기 내 뒤로 가 있고 내 앞은 텅 비어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 오랜 세월을 나는 담벽 아래에 앉아 높은 담벼락만 쳐다보며 벽을 더 높이 쌓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내가 아무 것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때가 초가을이었다. 갑자기 온몸에 뜨거운 열이 나면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뜨겁게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용솟음쳤다. 나뭇잎이 노랗게 물드는 시간, 나는 갑자기 신이 이 순간에도 잠을 자지 않고 나무들에 조용히 노란색 붓질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후로 나는 모든 것을 힘닿는 데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예술가로서의 자유, 그것을 얻기까지 나는 많은 것을 지불한 셈이었다. 이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내가 얻은 만큼 지불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평한 것이다.
이제 나는 산이나 혹은 흐르는 물 같다. 공기처럼 가벼움을 느끼며 끝없이 땅과 하늘 사이를 떠도는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 짐은 내 날개였던 것이다.
한국인 그림 멋 계보의 한 일경(一境)
김형국(가나문화재단 이사장)
절대가난에서 절치부심 경제성장을 꿈꾸던 그때, 누드 첼리스트와 어우러진 백남준(白南準, 1932-2006)의 비디오아트 소문이 왁자지껄한 사이로 현대 표현주의 미술의 ‘주축국’ 독일에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여류의 활약상이 우리 화단의 화제가 되고 있었다. 바로 노은님(盧恩任, 1946-2022)이었다.
간헐적으로 활약상을 전해들은 바 있지만, 그림만을 유심히 보았던 것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주관의 《SIMPLE 2018 : 장욱진∙노은님》 전시였다. 전시장 입구 통로 벽면에 물고기를 그린 노은님의 큼직한 종이그림이 길쭉하게 걸려 있었다. 한지 종이에 먹물을 찍어 물고기가 뛰어오르는 형용의 ‘어약(魚躍)’을 곧잘 그리던 장욱진 먹그림과 주고받는 그림 문답이구나, 그런 느낌이 확 들었다. 장욱진과 노은님의 화업은 공통분모가 많았다. 대단한 환경주의자, 순도 높은 생명주의자였다. 장욱진은 화제(畵題)로 소, 닭, 돼지 등을 열심히 그렸다. 노은님은 강고기 친구였다.
“어느 날 내 그림 속 창조물들이 모두 눈이 없는 장님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놀랐다. 그 뒤로 나는 모든 물체에 눈을 그려 넣게 되었다… 오늘도 어릴 적 앞개울에서 헤엄치던 물고기들은 내 그림 속에서 동그란 눈을 달고 먼 시간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잡아온 물고기의 생명을 그림으로 이어주었다는 말이다. 새를 좋아한 장욱진, 물고기를 좋아한 노은님은 환경주의자 가운데서도 고수(高手)다. 생명주의자라 부름이 옳다. 생명주의자 가운데서 생명체 보호 수준의 “소극적 미덕(passive virtue)”소유자가 아니라 “더불어 놀고 즐기는” 수준의 “적극적 미덕(active virtue)” 소유자들이다.
노은님의 화풍은 한 화면에 모티브의 윤곽이나 이미지만을 덜렁 띄웠다는 느낌을 준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나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 같다는 인상을 주는데, 동굴이나 암각은 원시라는 말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프리미티비즘(primitivism) 곧 원시화라는 말을 듣는다. 프리미티비즘풍 그림은 단순하다. 단순한 점이고 선이다.
현대미술에 대한 세상의 관심은 항상 그림의 가치에 대해 눈에 불을 밝혀왔다. 수준급의 그림을일컬어 ‘위대한’ 그림이라 이름하며 그 구성 기준을 도출하려 했다. ‘위대한’이란 거창한 말 대신 ‘좋은’ 그림이란 말로 순화한다면 노은님 그림이 좋은 그림인 것은 진작 사계(斯界)가 평가했다. 보고 있으면 자유감과 함께 위로를 받는 느낌이다. 노은님이, 노은님 그림이 그렇다는 말이다.
전시제목노은님: 내 짐은 내 날개다(Meine Flügel sind meine Last)
전시기간2023.04.28(금) - 2023.05.28(일)
참여작가
노은님
관람시간10:00am - 07:00pm
휴관일매주 월요일
장르회화, 모빌
관람료.
장소가나아트센터 Gan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평창30길 28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1, 2, 3관)
기획김지은
주최가나아트
연락처02-720-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