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를 위한 거창한 포장이나 수식어는 없다. 말 그대로의 면.역.력.이 이번 전시의 주제이자 말하고자 하는 담론이다.
어느 시대나 역사 속에서 조명되는 사조는 있었고 주류와 비주류의 스펙트럼이 공존하며 역사를 기록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미술계에는 그러한 맥락에서 비춰지는 보편적인 유행사조를 넘어 상업을 위한, 혹은 작가적 명예를 위한 창작이 아닌 제작이 난무한다. 수면 위로 올리는 말만 없을 뿐 피부로 와 닿는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이러스와 같이 강력한 유행을 물리치고 자신만의 힘으로 오롯이 설 수 있는 작품을 산출하는 작가가 절실하다.
‘면역력’은 그러한 내공의 힘이 잠재되어 있거나 표출되고 있는 작가들을 주목하여 만들어진 전시다. 시대의 유행패턴과 주류를 인지하나 그것에 편승하지 않고, 용감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즉 면역력을 보유한 작가를 위한 전시다. 그들이 보유하고 기르는 면역력으로 인해 한국미술계는 우울하지만은 않다는 전제조건을 성립시킬 수 있고, 자생력을 지킬 수 있게 된다. 또한 그들의 면모를 통해 신진이라 불리우거나 학습중인 예비 작가군들은 면역력을 갖추어 나가길 바라며 이번 전시를 진행하고자 한다.
실제와 같은 상황의 허상, 속임(fake)에 익숙한 현대인의 시선은 어쩌면 진짜로 까발려진 현실을 차마 목격하길 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기다려도 등장하지 않는 인물, 영화 속 부분 화면 같은 <강이연>의 작업을 보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리석은 익숙함과 학습받은 기다림에 대한 결말을 현실의 참담으로 목격하고 만다.
현실에 대한 우리의 어리석은 자세는 <박주욱>의 반전된 이미지를 통해 더욱 세기말적으로 묘사되곤 한다. 빛에 대한 안티(anti)적 성향의 작가는 그간 네가티브(negative)기법으로 미술계의 신선한 충격을 주며 작업을 지속시키고 있다. 이제 그의 네가티브적인 시선마저도 새롭지 않은 미술계에서 박주욱이 던지는 메시지는 기법적 특색을 넘는다. 그가 주목하고 있는 오늘날 우리의 반전된 이미지와 현실을 목격함으로써 얻어진다. 그러한 카테고리는 심층적 분석을 통해 객관화 과정을 거치며 진짜의 모습으로 우리를 긴장시킨다.
그 반면 <강유진>의 작업은 도시와 현재의 모습을 환상이미지로 표현하여 제시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것은 실상의 조각과 허상의 조각을 동시에 제공하고, 각 개의 제시어를 다른 방식을 통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분리된 시선 사이에서 현실과 환상이 주는 경계를 작가는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부수거나 공존 시키며, 자신만의 어법을 드러낸다. 더구나 그러한 가운데 느껴지는 화면의 확실한 회화성은 강유진 작업의 중요한 구심적 역할을 한다.
<이이립>의 소설 같은 혹은 환타지 영화의 세트 같은 이미지들은 미디어에 익숙한 현대인만이 취할 수 있는 속임에 관한 진실된 예술의 방식을 갖는다. 게다가 붓과 화면의 운용은 아카데믹하게 가져가고 있기 때문에 작업 전반을 통해 느껴지는 감정은 양가성(兩價性)을 유지한다. 전통적 회화에서 느낄 수 있는 흐믓한 감상, 신조형언어로 탄생된 소재와 회화의 상상력이 바로 그 두 갈래의 대한 이이립의 가치이다.
위의 작업들은 대부분 인물이 삭제된 공간만을 가지고 이야기 한다. 그렇다면 주인공쯤 되는 인물은 화면 속에서 어떻게 발현되어야 현실과 환상의 경계 지점, 날카로운 상상을 전달할 수 있을까. <이샛별>이 제시한 작업에 그 해답의 단초들이 있다. 사실의 조각들이 이합집산하며 만들어 놓은 상황 아래 가면성(假面性) 인물들이 등장한다. 낯선 인물들이 대신하는 화면 속 현실들은 백퍼센트 가상이 아닌 현실의 꼴라쥬라는 지점이 우리를 두렵게 하며, 그 두려움은 또 다른 미감으로 우리의 폐부를 찌른다.
작업 속에서 현실의 쓴맛을 작가는 달콤한 상상으로 제시한다. <구성연>의 달콤한 사탕시리즈는 사진매체를 사용하면서도 한껏 부풀려진 환상에 대해 기막힌 현실과의 착각과 괴리를 안정적으로 이끌어 낸다. 현실을 담는 장치인 카메라와 그리고 사진 속에 담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통해서. 아름답기는 매한가지인 꽃에는 자연의 향기가 아닌 그 보다 진한 달콤함이 담긴다. 그 허망한 달콤함은 일차적으로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이차적으로는 그 내면의 허무함을 맛보게 된다.
깨지기 쉬운 현실은 <황선태>의 작업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우리가 현실이라 믿고 사는 사회와 그 개인은 규칙을 통해 이루어지고 기록되어진다. 그러나 사실의 기록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역사 역시 황선태의 작업처럼 깨지기 쉬운 유약한 유리의 구조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류의 기록이 담긴 문자언어를 종이가 아닌 유리에 세공시켜놓은 작가의 손끝에서 수없이 사라졌을 패자의 기록이 담겨있다. 남겨진 문자 언어는 진정한 역사가 아닌 승자의 언어이므로.
그래서 때로는 원론을 벗어난 선적(禪的) 명상 같은 작업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한진수>는 조각과 설치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보는 관점에 따라 세련된 현대 조어일 수도 있다. 적요(寂寥) 속 허망하게 날아오르는 버블들이 오래 날지 못하고, 곧 벽에 부딪혀 사라진다. 붉은 흔적이 남아 짧은 실존을 알린다. 차곡차곡 쌓아올린 작가의 개념 단상이 구체적 현물로 탄생된 작업이다.
현실과 환상은 허구를 예술로 승화시키고, 상상을 작가의 덕목으로 삼고 살아가는 작가들의 필요충분조건 같은 애매한 경계이자 사실인 두 단어이다. 그 경계 위에서 작가들은 면역이라는 자생의 바이러스를 생성하기 위해 고전적 아름다움을 버리거나 실존의 인물을 변형하여 보다 새롭기 위한 각 개의 방식을 모색하며, 치열하게 작업을 유지해 낸다. 그리고 그것이 어떠한 방식이던 간에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유지해야만 진정한 예술가로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공간과 시간이라는 물리적 이유로 이번 전시에 참여치 못한 무수한 면역력을 보유한 작가들에게 섭섭한 마음을 전하며, 모쪼록 면역력이 왕성한 한국미술계가 되기를 꿈꿔 본다. 면역력을 갖춘 그들이 이루는 한국미술계는 비형식이라는 조형언어로 무수한 담론이 탄생하고, 단지 그것으로만 멈추지 않고 논증의 과정을 거쳐 하나의 스펙트럼을 형성해 나가길 바란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스펙트럼은 학습 받지 않았으나 무수히 존재하는 가치들의 행간을 수면으로 올려놓는 긍정의 해피엔딩을 이루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게 이루어가는 몫이 바로 오늘의 한국 미술의 자생력이 될 것이며, 반드시 갖춰야할 면역력이 될 것이다.
전시제목면역력
전시기간2010.08.03(화) - 2010.08.31(화)
참여작가
강유진 , 강이연, 구성연, 박주욱, 이샛별, 이이립, 한진수, 황선태
초대일시2010-08-03 18pm
관람시간10:00am~18:00pm
휴관일없음
장르회화, 사진
장소자하미술관 ZAHA Museum (서울 종로구 부암동 362-21 )
연락처02-395-3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