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이 펼쳐진다. 그것은 시간이라는 숫자로 말할 수 없는 풍경이자 오후와 밤이라는 경계만으로는 구분할 수 없는 풍경이다. 이곳에는 오직 화가의 눈에 비친 이미지만 있을 뿐이다. 오직 표면에서만 온전한 예술인 ‘회화(painting)’라는 장르 안에서 화가는 본 것을 그리되,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표현하곤 한다. 가시성 안에 비가시성이 중첩되어 있는 이들의 그림에는 화가의 의미 있는 시선이 담겨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엘스티르’가 그러했듯이, 우리가 익숙하다고 여기던 풍경일지라도 화가는 자신만의 독특하고도 고유한 시선으로 일상을 바라본다.
신리라와 이효연의 시선은 오후의 풍경에 머물러 있다. 이들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미온의 공기 속에 따뜻한 햇살과 잔잔한 바람을 느끼며 어느새 낮잠 속으로 빠져들 것만 같다.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정적인 이미지 안에 무한히도 아날로그적인 일상들이 차곡 차곡 정리 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것은 이른 아침도 아닌, 늦은 저녁도 아닌, 적당한 그 시간의 오후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함이다. 조금은 무료해 보일지라도 평화로운 분위기가 감도는 이곳은 텅 비어 있는 듯하면서도 충만하고 가득하며 풍요롭기 그지 없다. 여기에 잘 정돈된 색채와 군더더기 하나 없는 구획의 변형은 평면적으로 깔끔함을 강조하면서도 차분하면서 절제된 화가의 감정을 조용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이채영과 장경애가 바라보는 시선은 밤이다. 이들의 밤 풍경은 항상 바라보고 지나가던 보통의 거리인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특별하고 새롭게 느껴진다. 어둠 속에서도 미묘하게 빛나는 그림을 통해서 낮의 시선과는 다른 밤의 시선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적이 흐르는 이 모든 밤들은 ‘먹’에 의해 피어난다. 오로지 ‘먹’에 의존해야만 하는 그림인지라 자칫하면 단조로울 수도 있겠지만, 이 흑백의 풍경을 통해서 단순히 검은 색 만은 아닌, 다양한 밤의 매력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이처럼 복잡한 낮의 시간이 끝을 맺고 어둠이 시작된 밤의 시간 속에서 조용하고 깊이 있는 화가의 손끝을 탐지할 수 있다.
적막하고 고요하여 시간을 잃어버린 채 마치 정지해 있는 듯한 이들의 그림을 통해 화가의 시선이 담긴 ‘회화(painting)’의 매력을 다시 한 번 발견할 수 있지 않은가. 침묵의 언어로, 세심한 붓질로, 그리고 또 그려대는 화가의 모습을 통해 ‘그리기’라는 수행의 과정을 상상해 볼 수도 있겠다. 지식이나 이성에 의한 사고가 아닌 본능에 의한 인상에 충실한 이들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많은 것을 비워내면서도, 화가의 시선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시간을 잃어버렸다 했지만 어쩌면 이들은 그림에서 드러나지 않는 모든 시간들까지 담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신한갤러리 큐레이터 김남은 전시제목시간을 잃어버린 마을
전시기간2010.08.04(수) - 2010.08.28(토)
참여작가
신리라, 이효연, 이채영, 장경애
초대일시2010-08-04 18pm
관람시간10:00am~18:00pm
휴관일없음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신한갤러리 Shinhan Gallery (서울 중구 태평로1가 62-12 4층 신한갤러리 광화문)
연락처02-722-84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