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시 개요
학고재는 7월 27일(수)부터 8월 20일(토)까지 청년작가 단체전 《살갗들》을 개최한다. 동시대 미술의 다양성 속에서 회화의 의미를 새롭게 고민해 보는 자리다. 김은정(b. 1986), 박광수(b. 1984), 이우성(b. 1983), 장재민(b. 1984), 지근욱(b. 1985), 허수영(b. 1984) 등 6인의 작품세계를 선보인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청년 세대이자 회화를 중심으로 작업하는 작가들이다. 학고재 신관에서는 32점, 온라인 전시공간인 학고재 오룸(OROOM) 에서는 35점의 회화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학고재는 국내외 청년세대 작가들을 조명하는 전시를 꾸준히 개최해 왔다. 2016년 허수영 개인전, 2017년 이우성 개인전에 이어 2019년 박광수 개인전, 2020년 장재민 개인전, 2019년과 2021년에 톰 안홀트 개인전을 선보였다. 《직관 2017》(2017), 《모티프》(2018), 《프리뷰》(2019), 《아이콘》(2021) 등 청년작가 단체전을 지속적으로 열었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는 팔판동 소재의 한옥 전시 공간 ‘학고재 디자인 | 프로젝트 스페이스’에서 총 17인의 신진작가 개인전을 선보이기도 했다. 오는 10월에는 학고재 본관에서 허수영 개인전을, 11월에는 신관에서 김은정 개인전을 연다. 내년 이후 이우성, 지근욱, 박광수, 장재민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다.
2. 전시 주제
회화의 ‘살갗들’ – 동시대 회화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가상화폐 기술을 미술의 영역에 접목하는 시도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데이터 형식의 미술 작품을 창작하는 일뿐만 아니라 그것을 거래하고, 소유하는 일도 놀랍지 않은 것이 되었다. 그러한 상황을 마주하니 회화가 사뭇 다르게 보인다. 회화의 물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비단 오늘의 새로운 관점은 아니지만, 조금은 낯선 마음으로 화면을 대하게 되는 것이다. 복제 이미지가 범람하는 지금의 매체 환경 속에서 회화는 이미지 자체의 유일함과 영원성의 가치를 설득하는 문제로부터 한걸음 떠나온 것 같다. 회화가 주는 감동은 오히려 사람의 손이 닿은 흔적과 물감이 엉킨 그림자, 붓이 지나간 자리들을 살피는 애틋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영원하지 않은 물성과 완벽하지 않은 행위, 살아 숨 쉬는 현재에 대한 애착이 회화의 이유가 된다. 그것들이 모여 만들어낸 총체적 장면이 주는 직관적인 기쁨 때문에 우리는 회화에 감명한다.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미술의 세계에서 고전적 매체인 회화는 여전히 호소력을 지닌다. 손에 잡히는 물성과 부피, 질량을 지닌 회화의 표면은 마치 우리의 살갗을 닮은 것 같다. 몸에 의해서만 행해지고, 몸을 통해서만 감각되는 회화는 촉각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는 이의 정서가 물감에 실린 채 그날의 붓 위에 올라탄다. 물감을 겹겹이 포개 올린 화면 아래 비밀스런 이야기들이 숨쉰다. 전시는 회화의 살갗들, 온기 어린 화면과 그 아래의 생명력을 낯설게 감각해 보자고 제안한다. 오늘의 회화를 통하여 그리는 이와 보는 이의 다양한 마음이 정서적으로 공명하기를 꿈꾸는 일이다.
3. 기획의 글
살갗들
박미란(학고재 기획실장)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을 생각한다. 물결과 바람, 시간의 지나감과 같은 일들에 대하여서다. 가상을 사유하고 또 소유하는 문제의 모호함 속에서 손가락을 꼽아 보고, 다시 펼쳐 본다. 그리고 오늘의 애틋한 눈으로, 우리의 살갗을 보듬듯 회화의 화면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다.
멈추어 있는 회화를 마주하는 순간에 생동하는 것은 오직 마음이다. 감각은 언제나 논리 이전에 온다. 회화의 살갗에 머무르는 시간과 기억, 소리와 감촉의 총체적 만남이 빚어내는 낯섦으로부터다. 닿을 듯한 가상의 감각, 보일 듯한 환영의 실체를 한 장의 가벼운 평면 위에서 발견하려는 노력은 몸을 가진 존재의 연민일까. 회화에게 주어진 임무가 있다면 그것은 보이지 않는 힘을 보이도록 하는 일이다. 그 투명한 힘은 신체라는 파동의 장 위에서만 감각된다. 그리는 이의 몸에서 출발하여 보는 이의 몸으로 되돌아오는 힘의 재질은 회화라는 특별한 매개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변환된다. 여정의 가운데 재료가 있고, 도구가 있다. 화면과 장소의 규모가 관여하고 그날의 온도와 습도 또한 동참한다. 어제의 사건과 오늘의 정서, 내일의 상상이 은연중에 묻어난다.
하나. 보이지 않는 힘
세상의 일부만을 겪어내며 전체를 꿈꾸어 본다. 너무나 멀리 있어 잡히지 않으므로 오롯이 관념적인 꿈이다. 일렁이는 바다의 표면과 아득한 밤하늘의 피부는 그 안에 무수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깊이로부터 올라온 생명의 숨이 빛을 만나 색채가 되고, 모양이 된다. 허수영(b. 1984)은 우주의 생김새를 천진하게 상상하고 진솔하게 그려냈다. 〈우주 02〉(2022)의 화면은 파도에 실려 온 바닷가의 모래알 하나하나를 우주 속 별들처럼 빚어낸다. 무수히 쏟아지는 별들의 존재를 손가락 사이 흩어지는 해변의 모래에 빗댄 시도다. 허구적인 것들을 충실하게 묘사한 화면이 무거운 천체의 역설적인 가벼움을 드러낸다. 또는 반대로, 덧없는 모래알들이 지닌 저마다의 중력을 시사한다. 〈우주 03〉(2022)은 조금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장면의 중첩을 시도한다. 화면은 두터워지고 형상은 보다 추상적인 것이 된다. 실재하지만 온전히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화가의 직관이 물감에 용해된다. 특유의 질감과 색채의 진동을 머금은 존재로서, 회화는 그만의 몸을 얻는다.
지근욱(b. 1985)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본다. 화면은 대상을 묘사하지 않으며, 선의 반복으로 이루어진 구조의 환영만을 드러낸다. 〈진동수(원기둥)〉(2022)과 〈진동수(곡선 #2)〉(2022) 연작은 빗금과 곡선들로 낱낱이 분해된 기하학적 형상들을 선보인다. 〈팽창하는 원기둥〉(2022)에서는 색선들이 나선형 구도를 이루며 눈의 착시를 유도한다. 제도용 도구를 활용하여 규칙에 따라 제작되는 화면 특유의 호소력은 도리어 계획이 무너질 때에 생겨난다. 완벽에 닿을 수 없는 몸과 재료의 협업이 회화의 이유를 역설한다. 시시각각 부스러지고 미끄러지는 색연필 가루가 손에 의한 그리기를 증언한다. 정해진 목표를 향해 도구를 밀어붙이는 작가의 힘은 호흡의 강도와 정서의 높낮이에 따라 매 순간 변화한다. 원하는 방향으로 치닫다가도 한 순간 흔들리고, 여러 번 멈추어 선다. 그러다 마음을 가다듬고는 이내 본래의 궤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감정의 보풀을 단 선들은 오늘의 날들 속에서 진동한다.
둘. 오늘과의 공명
회화의 화면이 전달하는 감각은 때로 내밀한 정서에 침투한다. 또 다른 때에는 집단적인 힘으로서 공명한다. 이우성(b. 1983)이 천에 그린 회화는 캔버스 작업에 비하여 확장된 관계를 매개한다. 그에게 있어 지지체의 선택은 우선 규모에 관한 문제이다. 회화를 바라보는 시선과 마주하는 거리의 다름에서 비롯되는 경험의 차이를 고려한 선택이다. 일렁이는 천의 재질은 보는 이로 하여금 회화의 주변을 의식하도록 유도한다. 화면의 뒤편을 상상하고, 가장자리의 실밥을 발견하도록 하는 것이다. 회화가 현재와 조금 더 관계 맺도록, 그리하여 모두가 〈지나치게 환상에 빠지지 않도록〉(2015) 말이다. 그가 그리는 사람들과 사물들, 풍경들은 저마다 은유와 상징이 되어 다수의 화면 위에서 호응한다. 〈경계를 달리는 사람〉(2018)은 무등산 바위 위에 선 두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멈추어 있는 바위와 지나가는 삶을 잇는 매개적 존재다. 환영과 실재, 과거와 미래, 그리기와 살아감의 경계를 달리는 작가 자신의 투영이기도 하다. 이우성의 회화는 삶에 관한 진솔한 고백이자 오늘에 대한 증언으로서 그와 닮은 이들의 일상에 공명한다.
김은정(b. 1986)은 일상의 경험과 정서를 소재로 작업한다. 보고 겪은 매일의 사건을 캔버스 위에 짜깁기하는 일이다. 〈여름, 봄〉(2022)은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날씨에 떠난 산행의 경험을 소재 삼은 회화다. 평범한 풍경을 재구성한 화면이 이유 모를 신비함을 자아낸다. 인물과 동물의 얼굴들은 모두 화면 뒤편을 향하거나 원경에 놓여 어렴풋한 실루엣만을 드러낸다. 화면 중앙에 한자로 적은 입춘대길의 소망은 매일같이 떠오르는 태양의 언저리에서 정처 없이 부유한다. 〈손의 모양〉(2022)의 화면 위에 드러나는 손들은 서로를 가리키고, 무언가를 지시하며, 타인을 감싸 안거나 거부한다. 너무나 일상적이라서 의식하지 못하는 손짓들 뒤로 또다시 매일의 달이 뜬다. 회화를 현재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어쩌면 단순히 지금의 이야기이다. 미시적인 날들을 바라보는 화면은 더 이상 지난날의 유령이 아닌 숨 쉬는 오늘의 살갗이다.
셋. 촉각적인 세계
뜨거운 금속을 긴 막대로 휘저어 금세 사라질 연약한 얼굴들을 그려본다면, 화면을 대하는 박광수(b. 1984)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을까. 도구를 쥔 그의 손은 상처 내지 않을 정도의 힘으로 물감의 점성을 가로지르며 기억하고 싶은 만큼의 속도로서 화면 위를 나아간다. 〈구리 인간〉(2022)의 세상은 색으로 뜨겁고 붓질로 소란하다. 검은 숲을 향하던 걸음을 잠시 멈춘 채 그간 모은 색채를 찬란하게 쏟아내는 것이다. 화면의 중심에 두 몸의 형상이 등장한다. 그리는 이와 그려지는 이는 작가와 작품, 인간과 비인간의 은유인 동시에 같은 물성을 공유하는 존재의 닮음을 보여준다. 〈수집가〉(2022)의 원근 없는 세상 한편에 색이 빗방울을 뿌린다. 인물은 비에 젖어 들지 않으며 불안한 표정으로, 그러나 또렷한 눈빛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한 손에는 커다란 알처럼 보이는 덩어리를 지니고 있다. 부화하지 않은 생명을 화면 바깥으로 꺼내어 놓기 위하여 유유히 나아가는 걸음일 테다. 풀과 돌, 선과 색, 사람과 그림은 엉키어 하나의 촉각적인 세계를 이룬다. 사라짐 때문에 영원한 기억, 불완전해서 의미 있는 만듦의 가치를 녹여 그린 회화다.
장재민(b. 1984)은 보는 일과 그리는 일 사이의 여정에서 고민하고, 탐험한다. 시각적 풍경에 대한 의심이 청각, 후각, 촉각에 의한 경험을 증폭시킨다. 화면은 분방한 손의 흔적들로 가득하지만 완전한 추상으로 부서지지는 않는다. 윤곽은 형태를 놓아줄 듯 위태롭게, 그러나 꾸준하게 지탱한다. 모양을 흐트러뜨리고 짓이김으로써 행위를 역설적으로 강조하는 것이다. 최근의 화면들은 이전과 달리 장소에 대한 실제적 경험을 탈각하는 시도를 보여준다. 〈꽃병 #5〉(2022)과 〈수족관〉(2022)은 작업실 안에서 빈 화면과 독대하며 그린 회화다. 머릿속의 장면을 회화로 옮기는 과정에 집중하기 위해서 평이한 소재를 선택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주변 상황에 의해 처지가 달라진 대상’들이다. 화면은 대상화된 자연의 풍경을 회화의 언어로 번역한다. 다만 보기 좋게 묘사하지 않으며, 그리기의 불가항력 속에 모두를 끌어들인다. 관념에 물성을 부여하는 일이다. 또는 그저, 모든 존재가 하나의 촉감이 되게 하는 일이다. 화면은 창작자와 재료, 환경이 동등하게 상호작용한 결과물로서 드러난다.
오늘의 날들을 살아가는 회화는 사람의 몸을 닮은 예술이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매일의 한편에서 회화의 물성은 여전히 자라난다. 영원에 대한 바람을 미루어 둔 채, 오롯이 그 몸을 대하여 본다. 회화의 살갗이 지닌 자아는 비단 화가의 것이 아니라 현재의 것이다. 겹겹이 쌓여 이룬 살갗들, 그 아래의 생명에 대하여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도록 하는 붓질의 속도와 색채의 진동을 대면하는 일이다. 잡히지 않는 가상을 감각하기 위하여 다시, 실재하는 회화를 말갛게 본다.
전시제목살갗들
전시기간2022.07.27(수) - 2022.08.20(토)
참여작가
김은정, 박광수, 이우성, 장재민, 지근욱, 허수영
관람시간10:00am - 06:00pm
휴관일매주 월요일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갤러리 학고재 Gallery Hakgojae (서울 종로구 삼청로 48-4 (소격동, 학고재) 학고재 신관)
연락처02-720-1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