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 하늘을 닮았거나 바다를 닮은 색, 아니 기호학적 측면에서 인간의 관념 속에 하늘과 바다는 파란 색이라는 언어로 규정지어진 파란색. 태양광의 반사를 통해 분산된 빛의 스펙트럼이 인간의 망막을 지나면서 굳어진 색의 개념은 온전한 것일까.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너무도 당연하게 규정지어진 인간의 계약적 행동에 대해 의심을 품어본 적이 있는가. 실재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의문점, 사물의 본질에 육박한 시선을 투과시켜 당연시 여기던 본질에 시비를 거는 행위. 이러한 지점에서 백정기의 작업이 시작된다.
백정기는 감각적이거나 공상적 표상들을 현실화시켜 나간다. 소위 관념이라고 일컫는, 너무 뻔해서 아무 의심 없이 지나치는 고정관념에 대한 의구심이 그것이다. 백정기의 엉뚱하고 기발한 공상은 최근作인 “단비_Sweet Rain”에서 여실히 들어난다. “하늘에서 단비가 내렸으면 좋겠다.”라는 막연한 상상을 수많은 배관과 스프링쿨러, 대형 물탱크로 설비를 만들고 물에 사카린을 섞어 정말 달콤한 비를 내리게 만들었다. 최근 방영되는 공익적 오락프로그램 중 기근이나 가뭄에 시달리는 나라에 가서 우물을 파주고 학교를 지어주는 “단비”와 제목이 같다. 방송을 잠시 들여다보면 “단비”의 참여자들은 낙후된 지역에 넘어가 현지인들과 소통을 통해 친밀한 유대를 이루어낸다. 궁극적으로 우물을 파는데 성공해 그들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내용이다. 터져 나오는 물줄기는 그동안 가뭄에 시달린 현지인들의 웃음, 환호성으로 퍼져나가며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기근과 가뭄에 시달리는 사람의 바람 속에, 그들의 상상 속에서 하늘에서 내려주는 귀한 빗방울은 달콤한 단비가 아닐까. 세상을 구원하고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소중한 비는 백정기, 그만의 치유적 조형언어의 발현이다.
“단비”가 시지각의 생경한 충돌을 야기 시켜 미각, 청각, 촉각을 자극했다면 이번에 전시될 “Blue Pond”는 2009년에 옛 국군기무사사령부 자리에서 열린
에 출품한 "푸르게 푸르게_Greener Greener"의 완성형 연작이다. “Blue Pond”에서 화이트큐브의 평범한 전시공간은 인공정원으로 꾸며진다. 연못에는 파란색 염료가 풀리고 농도진한 초록의 나무와 붉은 꽃이 정원에 놓인다. 실재하는 자연물이 인간의 관념을 통한 복제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 자리에 놓인 연못의 색은 고유의 색으로 오인된 색으로 칠해진다. 이 부분에서 각각의 사물은 고유의 색을 가지고 있었던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물의 색이 왜 파란색인지. 나뭇잎은 왜 초록색인지. 의심해본 적이 있는지. 이런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조합은 누가 말한 적도 없는데 마치 우리가 약속처럼 알고 있는 색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굳어 버렸다. 비단 사물만이 관념에 의해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은 비시각적 대상 역시 수많은 약속 안에서 정해지며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의심 없이 믿고 있던 진실(관념적인 사고)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자 했다. 본질에 관념적 사고를 극대화하여 오버랩을 시킨 후 관자의 시각으로 해석된 대상에 균열을 꾀한다. 혼란에 직면한 관자들은 이내 그동안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거짓들에 대해 알아차리게 되며 너무도 당연시 여겼던 진실과의 당황스러운 조우는 실재하는 것에 대한 끝 모를 의문점을 생성 시킬 것이다.
백정기는 예술이 가진 목적이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파생시켜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예술의 치유적 역할에 대해 작업한 과거의 ‘바셀린 시리즈’와 같은 작업은 관자에 대한 치유적 측면이 아닌 다분히 ‘셀프-서비스(자위적)’에 가까운 행위로 해석 된다. 백정기는 치유라는 거창하고 공익적인 의미의 착한 예술가라기보다는 탐험가이거나 발명가가 더 어울린다. 그가 진행해온 작업은 쉽게 지나치는 수많은 사고를 비트는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있어 삶이 존속되는 공간은 무한한 호기심의 대상이며 탐험해야할 미지(未知)의 땅이다. 스스로를 예술가가 아닌 자유인이라 부르는 그에게 예술은 꿈꾸는 것을 가능하게끔 만드는 마법 같은 것이다. 앞으로 백정기의 개척해나갈 미지의 대륙에서 그의 마법이 자유롭게 사용되고 통용되어지기를 바란다.
전시비평문 : 글_조은경(GYA 비평가)
백정기는 본질과 현상이라는 관념적 구조에 주목한다. 이 구도 안에서 파생되는 근원과 표피, 실체와 허상 등 형이상학적 주제와 만나는 일을 피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일상의 이미지들과 현상적 형상들의 이면에 자리한 본질과 근원적 형상에 대한 철학적 물음을 던진다.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시뮬라크르(simulacre)적인 개념의 훈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에 의하면 우리가 바라보는 현실의 이미지는 결코 보이는 데로 현실적 관계와 의미를 보여주지 못한다. 따라서,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에겐 모든 현실의 의미와 언어적 사건은 다양한 사회적 관계와 구조 안에서 '생산'된 인위적 담론의 구성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은 본원적 의미와 형상에 대한 인공적 모형에 불과하다.
백정기는 이번 전시의 원작이라 할 수 있는 <푸르게 푸르게>(2009)라는 작품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쉽게 생산된 관습적 이미지를 일상적 차원에서 수용하며 생활하고 있는가를 관객들에게 환기시키려 하였다. 그는 실체적 사실과는 유리된 기호화되고 코드화된 현상적 체험과 인식 구조의 거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푸른 안료를 물에 풀어 푸른 물이 넘실대는 인공 연못을 만든다. 너무도 '푸른 물'을 '만들어'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물은 파랗다'고 자연스럽게 인정한 인식체계는 파시즘적인 폭력에 가까울 수도 있다고 강변한다. 즉, 생산되고 강요된 인식체계를 해체하고, 사물과 존재에 드리워진 시뮬라크르(simulacre)의 표피를 벗기는 과정에 관객들을 참여시키려 하였다.
시뮬라크르(simulacre)와 관련된 작가의 인식은 중요하게 작용한다. <푸르게 푸르게>보다 앞선 그의 작품 <바셀린_Vaseline>(2007) 시리즈 역시, 바셀린은 석유 추출 화합물로 만들어진 보습제일 뿐이지만 개인적,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다양한 의미망을 생산하면서 만병통치약의 효능을 갖는다는 - 다소 개인적 경험으로부터 유추된 - 현상적 사실과 담론에 천착한 작업이다. 벽 틈 사이를 바셀린으로 메우거나 바셀린으로 헬멧, 갑옷, 장갑 등을 만드는 그의 작업은 본원적 실체와는 다른 층위에서 작용하는 담론과 의미망의 생산물로써의 바셀린을 보여준다. 그러나 엄격히 철학적으로 분석한다면 <푸르게 푸르게>와 <바셀린_Vaseline> 연작들은 같은 층위에서 해석될 수는 없다. <푸르게 푸르게>가 시뮬라크르(simulacre)를 벗겨내는 작업에 주목하면서 사물에 대한 본질적, 실체적 인식의 각성과 획득에 주목하고 있다면, <바셀린_Vaseline> 연작들은 바셀린을 단순한 석유 추출 화합물 보습제가 아닌 감성적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시뮬라크르(simulacre)적인 인식과 행위에 비교적 따뜻한 시선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푸르게 푸르게> 이전의 작품들에서 작가는 시뮬라크르(simulacre)적인 세계관에 대한 이성적 통찰 보다는 물과 연관된 생명과 치유인식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관객들에게 ‘치유’에 관한 화두가 작가에게 매우 중요한 시각이자 창작관으로 보였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바셀린(Vaseline)>연작들을 비롯하여 '물'을 주제로 한 일련의 작품들은 ‘치유’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물’이라는 사물이 갖는 원형적 이미지와 근원적 효용에 연결되는 지점을 보여준 작업이었다. 지난 5월, 인사미술공간에서 열렸던 <단비_Sweet Rain>(2010) 작품 역시 물, 원형, 생명 등의 주제와는 떼어져 생각할 수 없는 주제와 형식이었다. 그러나, 작가에게 치유라는 화두는 평생을 짊어질 치열한 문제의식이기도 하면서도 가끔은 내려놓고 싶기도 한 짐으로 존재하는 듯하다. 작가 스스로도 작품 <단비_Sweet Rain>가 생명과 연관된 이미지로 작용하고 또 다른 치유의 이미지로 관객에게 다가가는 것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단비_Sweet Rain>가 갖는 실체와 현실적 담론이 생산한 이미지와의 거리라는 부분, 즉 시뮬라크르(simulacre)를 둘러싼 철학적 함의가 '치유'라는 주제에 묻혀 잊혀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경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그는 철학적 성찰과 고정적 관념의 해체가 가져다 주는 정신적 각성의 관념적 사태 역시, 일종의 정신적 치유의 한 과정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화두를 다시금 품는다. 작가가 한동안 대응하였고 혹은, 앞으로도 지난하게 수행해야 할 치유라는 화두와의 만만치 않은 대면이 시작되는 이 시점에서, 그는 <푸르게 푸르게>를 라는 작품으로 '다시 만들어' 관객에게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백정기의 이번 전은 그의 2009년 작품 <푸르게 푸르게>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리메이크 전시이다. 일반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음악이나 영화에서 '리메이크(remake)'라 불리는 작업의 핵심은 원작의 단순한 반복이나 회억에 잠기는 감상, 원작의 기술적 보수작업의 수행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과거의 원작을 지금 이 순간 현재의 시간과 장소에서 새롭게 재인식한 구조 위에서 재구성, 재해석하는 작업이기에, 리메이크 작업에는 작가의 인식의 전환과 변화, 새로운 가능성의 모색, 창작역량의 성숙과 진화의 행보가 담겨 있어야 한다. 관객들에게는 외형적으로 같은 작업일 것이다. 파란색 염료가 풀어져 일렁이는 푸른색 물결을 담은 인공연못을 설치하는 작업인 는, 따라서 일반 관객들과의 처음 대면을 기다리는 설렘은 감소될 수 있겠지만, 작가에게는 자신의 세계인식과 관념적 태도의 변화를 스스로 재점검하고 재설정하는 의미가 담겨 있어야 할 것이다. 사실, '전시(Exposition)'라는 것은 작가 자신의 인식과 사유가 담긴 작품을 관객에게 밖으로(Ex) 자리 잡아(Position)보이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내면의 자리를 재설정(Re-position)하는 현실화 과정이다. 더구나 이번 백정기의 전시처럼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리-메이크(re-make)'하는 전시는 원작에서 진화된 작가의 태도를 점검하는 기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는 작가 자신을 반추하고, 유학생활 후 전개된 작품들에 대한 작업논리를 재점검한다는 의미를 스스로 부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작품 초기에서부터 진지하게 탐구해왔던 예술의 본질에 대한 물음과, 그것에 대답으로서 찾으려 했던 소통과 치유라는 화두에 작가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에 충실히 대응하며 실존적 무게를 실어왔다. 그러나 <푸르게 푸르게>이후 작가는 시뮬라크르(simulacre)적 세계 인식에 눈떠가며, 이성적 논리와 통찰력에 근거한 정신적 각성에 주목하면서 초기작들과는 구별되는 작업에 천착하고 있다. 전이 단순히 재생산과 되풀이를 넘어 차이와 생성을 잠재적인 에너지로 품은 ‘생성적 반복의 작업’으로 관객들과 소통하길 기대한다.
백정기 작가노트
나는 어떤 대상의 본질보다 그것에서 파생된 상징과 의미 혹은 관념적 이미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때때로 그러한 상징이나 의미들이 그 대상의 본질보다 더욱 큰 설득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한 관념이나 상징들은 일반적으로 어떤 대상으로부터의 지속적인 의미작용을 통해 형성되며, 그것은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와 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소통하기 위해서 혹은 같은 심상을 떠올리기 위해서 그러한 관념적 이미지나 의미 혹은 상징들을 마치 기호처럼 이용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관념적 시스템의 실체를 수면위로 드러내기 위해 매우 실제적이고 즉각적인 방식을 이용한다. 나는 (2010)라는 작업을 통해 “깨끗한 연못을 파랗다” 라고 표현하는 관념적 사고를 실제화 시킨다. 즉, 연못에 파란색 염료를 풂으로써 실제로 파란색의 물을 보여주는 것이다. 푸른 연못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매우 이상적인 연못의 모습이지만, 실제로 연못에 가득 찬 파란색의 물을 관객이 접했을 때, 그들은 실제와 관념 사이에 존재하는 강렬한 괴리감을 느끼고 결과적으로 물이 원형을 상기한다. 전시제목GYA PROJECT 2010 기획전시
전시기간2010.07.19(월) - 2010.08.14(토)
참여작가
백정기
초대일시2010-07-19 19pm
관람시간10:00am~18:00pm
휴관일일요일
장르설치
관람료무료
장소스톤앤워터 supplement space ston&water (경기 안양시 만안구 석수2동 286-15 2층)
연락처031-472-28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