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의도
“나의 주제는 경계 조정이다. 이것은 인간과 동물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린다는 뜻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인간과 동물 사이의 ‘심연의 간극’에 대해 인지하고 타자로서의 동물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윤리적 실천을 의미한다.”
-프랑스 현대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2022년 6월 사비나미술관(관장 이명옥)은 고상우 작가의 < Forever Free - 그러므로 나는 동물이다 (The Animal That Therefore I Am) > 전시를 개최한다. 본 전시는 융복합 전시콘텐츠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사비나미술관과 세계 최대 규모의 자연보전기관인 WWF(세계자연기금)이 공동 주최한다.
본 전시는 생명의 그물망으로 연결된 생태계의 균형을 이루는 공존과 공생의 가치를 예술로 재조명하고 지속 가능한 실천 방안을 모색하려는 의도에서 기획됐다. 부제인 “그러므로 나는 동물이다”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 1997년 세리시(Cérisy)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연설문을 바탕으로 쓰여진 "자전적 동물"이라는 책에서 가져왔다. 데리다는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를 인용하여, ‘인간은 약속을 하는 동물’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그 자체만으로도 존엄하다는 인간 중심적 사고로 동물을 함부로 취급하거나 감수성을 가진 다른 존재 위에 군림하는 인간사회의 종차별주의를 폭로한다.
고상우는 “인간과 생물 다양성을 이루는 종들과의 아름다운 공존”이라는 세계관을 예술로 실천하고 있는 작가다. 사비나미술관은 2019년 <우리 모두는 서로의 운명이다–멸종위기동물, 예술로 HUG>展을 통해 생물종의 다양성과 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다양성이 인류가 지켜야 할 소중한 자산으로 ‘모든 생명은 동등한 가치가 있다’라는 공존과 공생의 메시지를 전한 적이 있다. 당시 참여 작가인 고상우는 본 기획전을 계기로 멸종위기동물이 주제인 작업에 몰두하며 인간과 동물 간의 수평적, 횡단적 관계로의 확장성을 적극적으로 모색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종 공동체의 실현과 지속가능성의 방향성을 제시하며 종 평등을 위한 사회적 투쟁으로서 반종차별주의에 동참할 것을 촉구해왔다.
고상우는 이번 개인전에서 지난 3년간의 실험적 작업인 멸종위기동물이 주제인 작품들을 대거 선보인다. 멸종위기에 처한 20여 종의 동물들이 디지털 회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34점의 동물초상화 연작을 비롯해 열정적 탐구심의 결과물인 138점의 연필 드로잉 ‘#KOHEXIST 연작’,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야생호랑이 보전에 대한 중요성을 알리고 서식지 보호를 위해 매년 7월 29일로 지정된 ‘세계 호랑이의 날’ 기념행사인 “인공지능 ‘칼로’와 함께하는 알고리즘 프로젝트” 등 융복합적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주요 전시내용
고상우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크게 세 가지다.
하나, 정면초상화로 전하는 동물권리선언
이번 출품작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호랑이, 곰, 하마, 올빼미, 토끼 등 멸종위기 동물들이 전통미술에서의 정면초상화 형식을 빌어 디지털 회화로 표현됐다는 점이다. 정면초상화의 특징으로는 인물이 화면 중심에서 똑바로 관객을 응시하는 정면 자세와 정적인 안정감과 통일감을 주는 수직적 구도, 머리 중앙을 중심축으로 한 좌우대칭, 부동성(不動性)이 꼽힌다. 동서양 미술에서 정면초상화 양식은 신성함과 권위 부여, 사회적 신분 과시, 인물의 시선이나 표정을 통한 성품, 인격, 생각, 감정을 강하고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장치로 사용됐다.
이는 인물화에 비해 등급이 떨어진 동물화를 인물화의 수준으로 격상시켜 종의 평등을 이뤄냈다는 뜻이다. 즉 야생동물도 인간처럼 개성과 감정을 가졌으며 다종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예술적 메시지가 담긴 동물권리선언이다. 동물에게도 인격권이 부여됐다는 증거는 작품 속 관객을 응시하는 동물들의 시선이다. 인간이 생물 종에서 가장 우월한 종이며, 동물은 열등한 종이라는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무너뜨릴 만큼 그들의 눈빛은 강렬하고도 당당하다.
대표적으로 아프리카 표범 <레오 LEO>의 왼쪽 눈은 인간이 가장 탐내는 진귀한 보석인 다이아몬드로 표현됐다. 아프리카 표범은 유명 보석 브랜드의 상징물로 선택될 만큼 매우 아름다운 동물이다. 또 프랑스혁명의 불씨를 당긴 것은 세상에서 제일 비싼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이었다. 다이아몬드는 피의 다이아몬드(Blood Diamond, war diamonds)라는 단어가 말해주듯 사랑과 권력, 부에 집착하는 인간적인 욕망을 상징한다. 관객을 응시하는 표범의 다이아몬드 눈은 인간의 탐욕에 의한 무분별한 광산 개발로 인해 동물의 서식지가 심각하게 훼손되거나 파괴되고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다. 단 1캐럿의 다이아몬드 원석 채굴을 위해 256톤의 광물 채굴이 요구될 정도로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은 환경 파괴의 주범이기도 하다.
고상우는 작가 노트에서 정면성을 강조한 동물초상화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뉴욕에 거주하던 시절 뉴욕주 브롱크스(Bronx)에 있는 브롱크스 동물원을 자주 방문했다. 그곳에서 동물과 눈이 마주칠 때까지 몇 시간이고 기다려 사진 한 장을 찍곤 했다. 내게 정면성은 동물과 교감하기 위한 방식이다. 동물과 눈높이를 맞출 때 비로소 동등한 시각에서 그들과 대화할 수 있고, 그런 시도는 인간과 동물이 공생하는 사회에 대한 염원에서 비롯됐다“
둘, 자연은 언제나 영혼의 색을 지녔다
동물초상화 연작에 등장한 멸종위기동물들은 파란색조로 표현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고상우는 파랑을 주요색으로 선택하게 된 계기를 작가 노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2019년 사비나미술관으로부터 멸종위기 동물을 주제로 한 기획전 참여를 제안 받고 가장 먼저 떠오른 동물이 호랑이와 사자였다. 나는 사진의 색과 음영을 반전(反轉)시키는 네거티브 기법으로 작업한다. 이렇게 반전하면, 검은색은 흰색으로, 흰색은 검은색으로, 노란색은 청색으로 바뀐다. 색 중에서 파랑을 가장 좋아한다. 파랑은 뉴욕 시절 암실에서 사진 작업 중 피부가 황색인 동양인의 경우 인화하기 전 반전으로 파랗게 보인다는 점을 발견하면서부터 자주 사용하게 됐다. 당시 괴기하고 우울한 파란색에 깊이 빠져들었다.”
타자로서의 정체성 혼란과 자기인식은 동양 남성인 작가가 금발 백인 여성으로 분장한 모습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퍼포먼스와 해프닝을 비롯한 사진 작업의 바탕이 됐다. 인종차별에 집중됐던 그의 시선은 세대갈등, 성차별, 테러리즘, 폭력, 동물권리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로 확장됐고 갈등과 대립적 구도에 대해 사유하고 성찰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2019년 사비나미술관 전시 참여 이후에는 타자로서의 동물에 대한 차별과 지배가 인간 중심 사회에서 어떠한 구조로 작동되는지에 관한 탐구와 종 차별의 벽을 허무는 작업에 몰두하게 된다.
셋, 어떻게 타자의 고통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가
인간이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하트 문양(♥)은 사람의 심장 모양을 본뜬 형태다. 중세 유럽 필사본 삽화에는 연인들이 사랑을 고백할 때 서로의 심장을 교환하는 의미에서 하트 문양을 주고받는 장면이 나온다. 인간은 왜 사랑을 하트(♥)모양으로 표현했을까? 또 실제 심장 모양과 다른데도 왜 하트 문양을 심장이라고 믿었던 걸까? 심장은 단 한순간도 박동을 멈추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장기다. 모든 신체 기관 중에서 가장 먼저 생겨나서 가장 늦게 기능이 멈추는 장기로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 이유에서 심장은 단순한 장기 이상의 상징성을 지녔으며 인간 생명의 원천이자 마음과 감정, 생각이나 행동을 은유하게 됐다.
사랑의 아이콘인 하트는 고상우의 예술철학을 담은 기호와 상징물이기도 하다. 작품에 등장한 멸종위기 동물들의 눈과 입 주위는 분홍색 하트 문양으로 장식됐다. 대표적으로 매서운 눈발이 몰아치는 겨울날 비무장지대 DMZ(Demilitarized Zone) 철조망 앞에 서 있는 < BLACK STAR(검은 별) >에 나오는 백두산 호랑이의 오른쪽 눈 주변에 분홍색 하트 문양이 새겨져 있다. 호랑이의 두 눈 중 한쪽 눈만 분홍색 하트로 장식해 남과 북, 선과 악, 사랑과 증오, 평화와 폭력 등 서로 다른 가치체계의 대립적 구도를 암시했다. 하트에는 또 다른 메시지도 담겨 있다. 수십 년간 민간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DMZ는 세계 어디서도 보기 힘든 천혜의 자연환경을 간직한 생태계의 보고로 평가받고 있다. 101종의 멸종위기종과 5,929종의 다양한 야생생물이 서식하는 동식물의 낙원이자 생명의 보금자리다. 작가는 통일 이후에도 이 지역을 개발하지 않고 잘 보존하여 평화와 생명의 땅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분홍색 하트로 전한다.
고상우의 ‘멸종위기 동물 연작’은 생명의 원천으로 돌아가는 길을 제시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는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 고통의 크기를 줄일 수 있는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것은 곧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나 자신의 존재의미와 가치를 확인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전시연계 프로젝트
▪ 관람객 참여 AI 드로잉 프로젝트 - ‘호랑이 깨우기’ / 협력: 카카오브레인
‘호랑이 깨우기’는 작가와 관람객, ‘칼로’가 함께 하는 공공 프로젝트다.
작가는 지난 수개월 동안 AI(인공지능) ‘칼로’와의 공동 작업으로 1,000개의 다양한 호랑이 이미지를 생성하고 이를 조합해 하트 형태의 디지털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전시기간 동안 사비나미술관에 마련된 AI 드로잉 체험존에서는 고상우 작가가 AI ‘칼로’와 협업한 방식대로, 관람객이 단어를 입력해 호랑이 이미지를 생성해볼 수 있다. 관객들의 참여로 생성된 호랑이 이미지들은 추후 고상우 작가에 의해 재구성되어 작품으로 공개된다.
▪ 호랑이의 날 행사 : 7월 29일 (금)
WWF-Korea(세계자연기금 한국본부)는 7월29일로 지정된 ‘세계 호랑이의 날(International Tiger Day)’을 맞아 매년 야생 호랑이 보전의 중요성과 의미에 대해 홍보하는 행사를 개최한다. 고상우 작가는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인공지능 ‘칼로’와 협업하여 제작한 디지털 작품 ‘알고리즘’을 NFT로 발행하여 판매 수익을 환경 단체에 기부할 예정이며, 멸종위기동물을 모티브로 한 퍼포먼스 등 특별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
WWF 소개
WWF(World Wide Fund for Nature, 세계자연기금)는 1961년 설립된 세계 최대 비영리 국제 자연보전기관으로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에서 500만 명의 후원자와 3,000만 명의 서포터즈와 함께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WWF는 지구의 자연파괴를 막고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미래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이를 위해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고, 재생 가능한 자연자원을 지속가능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또한, 불필요한 소비와 환경오염을 줄이는 인식 개선 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WWF-Korea(세계자연기금 한국본부)는 2014년 공식 설립되었다. 자세한 활동 내용은 www.wwfkorea.or.kr 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시제목고상우 - Forever Free : 그러므로 나는 동물이다
전시기간2022.06.15(수) - 2022.08.21(일)
참여작가
고상우
관람시간10:00am - 06:00pm
(5:00 pm 입장마감)
휴관일매주 월요일
장르디지털 회화, 드로잉, 영상
관람료성인 : 7,000원
어린이 / 청소년 : 5,000원
65세 이상, 국가유공자, 장애인 및 동반 1인 (증빙자료 소지) 50% 할인
* 은평구 지역주민 할인 1,000원 (타 할인과 중복할인 불가)
* 사비나미술관 블루멤버쉽 가입회원 무료입장(가입일로부터 1년)
* 20인 이상 단체 : 코로나19 거리두기에 따라 변동운영 중, 미술관으로 문의
장소사비나미술관 Savina Museum (서울 은평구 진관1로 93 (진관동) 2층, 3층, 4층 전시실)
기획사비나미술관 학예실
주최사비나미술관, WWF(세계자연기금)
후원협찬: LG디스플레이 / AI 드로잉 프로젝트 협력: 카카오브레인
연락처02-736-4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