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의 반격? 이미지와의 충돌!
시각예술은 대게 이미지를 통해서 잠정적인 혹은 잠재적인 감각들을 끌어내는 것으로 상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명확한 표현에 대해서 반대하는 경향들이 있다. 시각예술 작업에서 특히 언어가 개입하게 될 때 무수히 다양한 관객들의 상상을 제어한다고 말해지기도 하고, 작가의 단일한 목소리로 해석될 여지에 대한 비판이 가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언어가 이미지를 규정하는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언어, 즉 텍스트와 이미지의 만남은 이 둘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하며, 그것이 단일한 개념으로 규정될 수도 있지만 새로운 해석을 끌어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텍스트의 반격>전에서 텍스트가 이미지를 포섭하기 위한 전략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이와 달리 최근 문자를 이용한 작업들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은데, 대부분 문자의 차용은 이미지를 보완하거나 문자 자체가 이미지처럼 보이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작업에서 문자는 모두 이미지에 구속되거나 환원되기 일쑤이며, 또한 문자와 이미지의 충돌보다는 디자인이나 타이포그라피와 같은 형식들도 두드러진다. 이는 이미지가 텍스트를 잠식하거나 텍스트가 이미지에 포섭되는 형국이기 때문에 의미를 생산하는 텍스트 자체의 가능성이 사라져 버린다. 따라서 텍스트가 단순한 상징이나 이미지로 환원되는 것을 경계하며, 이 둘의 만남을 새롭게 의미화하려는 경향을 가진 작업들을 소개한다.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업에서 특정한 주제를 이끌어 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텍스트가 이미지를 보완하거나 조형적인 미에 접근하는 수단이 아닌 적극적으로 의미를 생산하기 위한 과정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개별 작가마다 다른 주제를 가지고 접근하지만 텍스트와 이미지의 만남이 만들어 내는 다른 효과를 생성해 낸다. 거대담론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거나 개인의 경험을 진술하거나 때로는 고백의 행위가 되기도 하고, 단어들의 자리이동이나 말장난을 통해 유희를 만들어 내는 등 주제적인 면에서 일치하는 것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텍스트와 이미지의 충돌은 어떤 문제를 던지는 것. 텍스트와 이미지의 충돌이나 보완적인 관계를 탐색한다.
황지희는 단어들을 퍼즐의 형태로 짜깁기해서 이것을 문장의 형태로 구성하는 작업들을 최근 해왔다. 이번 전시 작품인 <2010년 6월, 반디에서 애를 쓰다>는 말 그대로 ‘애’라는 낱말을 연필을 이용해서 벽에 “쓰는” 작업이다. 그런데 작가는 “애를 쓰”기 위해서 열흘 동안 12시간(매일)이 넘도록 시간을 투여한다. “애를 쓰다”라는 짧은 문장으로부터 출발했지만, 그 “애를 쓴” 시간이나 흔적들은 전시장의 벽면을 빼꼭히 덮어 버린다. 이 지난한 과정은 “애를 쓰다”라는 짧은 문장으로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수행하는 과정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박제된 ‘작품’을 넘어서며, 전시 이후 사라지고 소멸할 “애를 쓴” 시간에 대한 기념이 될 것이다.
새람은 사회화를 거치면서 통념적으로 배우게 되는 음성기호인 ‘말’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을 보여준다. 작가는 음성기호인 ‘말’의 동음이의어인 동물 ‘말’을 연결 시켜 퍼포먼스, 조각, 사진 작업을 통해 언어유희를 극대화하는 작업을 보여주었다. 조금은 단순하고 직설적일 수 있지만 작가는 ‘말’을 끊임없이 변주함으로써 위트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이번 전시는 목욕탕에서 벌어지는 상황극을 만들어 이를 조형작업으로 만들고, 진술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어쩌면 새람의 이번 작업은 개인의 신체적인 상처나 숨겨야할 비밀(통념적으로 비정상적으로 규정되는)에 대한 어떤 발언의 형태를 띤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진술 혹은 설명은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타인의 상처를 만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황지희와 새람의 작업은 기존의 문법 체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차적으로 이를 수용하고 그것으로부터 작은 균열을 가하면서, 기존의 한계로부터 최선의 반격을 가한다고 볼 수 있다.
황지희와 새람이 단어나 문장이 주는 의미들을 비트는 작업을 보여주었다면 김선좌의 영상작업<검은우유>는 문장이 구성될 때 단어가 형성되는 방법을 비트는 작업이다. ‘외투검정’과 ‘우유하양’이라는 단어는 원래 ‘검정외투’, ‘하얀우유’로 말해지는 것이지만, 작가는 형용사가 명사와 맺는 관계에서 한정적인 용법을 무시하고 그것을 자리바꿈으로써 기존의 문법체계를 바꾸어 버린다. ‘외투검정’과 ‘우유하양’의 대화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이미지는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확정적이지 않은, 미끄러지는 의미를 생산해 내는 것이다. 대화를 뒤따르며 변주하는 이미지, 그래서 이 둘의 관계는 새로운 텍스트+이미지를 구성하는 것이다. 포섭되지 않는, 그래서 열려 있는 의미로 귀결되는 것이다.
일상의 기록이나 자기진술은 개인사적인 의미를 구성한다. 이러한 작업은 김병철과 이현정의 작업에서 두드러진다. 하지만 이 둘은 전혀 다른 방법을 고안한다고 볼 수 있다. 김병철은 일상을 통해 경험한 소소한 사건들을 보여주고 기록하는 작업을 해왔다. 의미가 부여된 사물들은 작가의 목소리를 빌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이러한 선택된 물건(오브제)은 텍스트와의 만남을 통해 일치하지 않는 의미를 만들어 낸다. 사물들의 작은 역사를 기록하는 김병철은 사소할 수 있지만 섬세한 기록을 통해 자신에게 친숙했던 대상이나 기억들 안에서 새로움을 찾아내는 기록적인 작업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이현정의 평면 작업들은 캔버스를 마주했을 때, 자신의 심정을 아주 간결한 문장인 ‘부끄럽습니다’라고 진술하면서도 일기를 옮겨 놓은 작업에서는 문장들을 애써 지우려고 하는 태도를 보인다. 일기를 쓴다는 것, 자신의 심정을 타인에게 고백하는 것 등은 언제나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녀는 이러한 진술을 캔버스라는 장치를 통해 수행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써 나가고 있지만 지우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것은 문자를 이미지의 지평으로 재배치하는 작업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그래서 문자가 이미지로 환원되어 버릴 수 있는 한계를 가질 수도 있지만, 아직 그녀는 이 두 개의 끈을 조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강태훈에게 텍스트는 이미지를 동반하면서 조금은 확정적인 전략을 구사한다고 볼 수 있다. <경제성장>, <악세사리>는 사회적인 위약 효과를 보여주는 일련의 작업들이다. 작가는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 만들어낸 환상을 여러 가지 오브제들을 이용하여 제시한다. 국가, 자본, 종교와 같은 거대 권력을 비웃음거리로 만들기 위해 이미지를 보완하는 텍스트는 아주 적절한 장치이다. 칼을 들고 있는 동상 뒤에 ‘경제성장’이라는 단어, ‘자유수호’, ‘선진일류국가창조’, ‘정의사회구현’라는 문구가 새겨진 반지, 목걸이, 팔찌, 귀고리를 착용하고 있는 사진작업들은 국가가 제시하는 이념을 패러디하는 작업으로 볼 수 있다. <배제된 것들을 위한 샘플링>은 온전하지 않은 ‘컵’들에 ‘몫’이 없는 인민을 투영시킨다. 아마도 이 작업에서 텍스트는 한정용법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의 정치적 발언 가능성을 상상하는 작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텍스트와 이미지의 관계에서 기존의 체계를 수용하고 그것으로부터 넘어서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들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텍스트”는 “이미지”에 반격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둘의 관계를 고민하는 지점을 찾기 위한 과정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 작업들은 최근 시각예술에서 텍스트가 이용되는 지배적인 경향을 비판하는 지점에 놓여 있다. 그것이 완전한 전복이 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지만 말이다. 텍스트의 적극적인 의미 생산은 이미지를 새롭게 사유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며, 이미지가 텍스트에 가한 억압이나 왜곡이 아니라 서로가 충돌함으로써 만들어낸 의미들은 아마도 다른 것을 보게 만들 것이다.(신양희)
전시제목텍스트의 반격 counterattack of text
전시기간2010.06.11(금) - 2010.06.25(금)
참여작가
강태훈, 김병철, 김선좌, 이현정, 새람, 황지희
초대일시2010-06-11 18pm
관람시간11:00am~18:00pm
휴관일월요일
장르설치
관람료무료
장소대안공간 반디 Space Bandee Non-Profit Organization (부산 수영구 광안동 169-44 )
연락처051-756-3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