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꿈, 사랑은 시
-회상된 기억속의 또 다른 환상
기억과 문화: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문화 속에서 살고 있고, 문화에는 기억도 큰 역할을 한다. 누군가 말했듯이, 문화란, ‘상징적 의미 세계’로서, 인간의 유한적이고 무상한 상태를 초월해 의미있는 행위와 체험을 지시하는 지평으로, 집단과 그 구성원의 정체성을 표시해주는 ‘의미 저장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는 바로 ‘상징적 현재화의 능력’, 즉 거리와 조망의 능력을 지닌 ‘기억’에 존재의 기반을 두고 있다. 따라서 기억이 없는 문화란 존재 할 수 없다. 기억은 상징적 의미 세계를 구성하고, 전승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집단이나 개인의 정체성 구성에 필수적인 기능을 한다.
기억속 일상의 재해석: 우리의 나날의 삶은 과연 우리 눈에 비치는 것처럼 무정형하며 무의미할까? 우리의 일상은, 애초부터 우리가 별다른 자각도 의식도 없이 그 속에 안주해도 될 만큼, 낯익은 것인가? 나의 작업은 어느 순간 회상된 일상의 기억을 바탕으로, 즉 나만의 공간속 세계의 탐구와 환상이라는 주제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생활의 중심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우리가 그냥 지나쳤던 공간속에서 새로운 여행을 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숨바꼭질을 좋아해 가장 일상적인 집 안에서의 다른 공간, 즉 우리가 매일 아무렇지 않게 보고 지나치는 장롱의 겉모습이나 속, 매일 앉는 의자 아래, 거실 선반 위의 작은 소품들, 몇 년 동안 무엇이 들어있는지도 모르는 채 잘 안 열어 보는 서랍 공간 등은 구석구석 숨기를 즐겼던 나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앤틱가구와 민화 - 과거와 지금, 현실과 허구의 공존: 나의 고가구(앤틱) 오브제 시리즈 작업은 가장 일상적이며 공간을 표현할 수 있는 오브제로 가구를 선택하면서 시작되었다. 가구는 원래 실내에 배치하여 사용하는 생활 도구로써, 오래전부터 우리일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더불어 살아왔다. '앤틱' 이라는 단어는 영어 'antiquity'의 변형어로, '오래된 물건'을 뜻한다. 여기서 '오래된'이라는 개념은 서양에서 '100년 이상'을 의미한다. 이것은 물론 그 집안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물건일 경우가 많은데, 몇 대를 거쳐 전해 내려오는 많은 물건들이 우리의 삶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나는 나만의 가구 속 공간에 옛 그림, 민화나 벽화를 그려 넣어 보았다. 그러면서 한국의 민화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생각해보았다. 정확하게 알려주는 문헌은 없지만, 미학은 그것이 인간 본유(本有)의 예술충동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고, 미술사를 들여다보면, 주술적인 기능도 갖고 있었다. 석기시대 암각화에 그려진 호랑이, 물고기, 사람과 같은 그림에서 보듯이 고대인의 삶의 일부였던 앤틱가구 속에도 우리민족의 미의식과 정서가 스며들어있다. 나의 그림 속화면 속에는 현대와 과거의 일상, 동양과 서양의 일상이 공존하고 있고, 또 현실과 허구도 공존한다. 예를 들어, 나만의 공간속에 가상의 현실화가 이루어져 벽장에서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 (金剛全圖)>나 <통천문암 (通川門岩)> 산수가 나오는가 하면, 커튼 속에서 산수 속의 사냥꾼이 등장하기도 한다.
사냥꾼과 여인- 허구속의 꿈 : 20살 후반이 된 어느 날, 내가 무심코 열어본 책상 서랍 속에서 나는 나의 중, 고등학교 시절의 다이어리와 편지, 사진들을 발견하고, 그때의 친구들과 첫사랑에게 느꼈던 순수한 감정과 설레임을 그리워했다. 요즈음 초식남, 된장녀, 골드 미스, 돌싱 남녀 등의 신조어가 생겨 날만큼 우리는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으로 상처받고, 사랑에도 지쳐 점점 개인주의화 되어가는 현대인들에게 누군가를 향해 열정적이고 저돌적으로 큐피트 화살을 쏘는 민화 속 사냥꾼이 있다면 어린 시절 순애보 같고 순수했던 사랑의 감성이 다시 일깨워 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처음 나의 작업에는 화장대 위에 화장품들이 빼곡히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도 매일 화장대 앞에서 많은 화장품을 바르는 것이 외출하기 전의 일상의 한부분이 되었지만, 어렸을 적에는 엄마의 화장대 위에 있는 화장품을 바르기만 하면 어른이 될 것 같았고, 모든 남성들이 나에게 큐피트의 화살을 쏠 것만 같은 동경과 환상에 빠지곤 했다. 러시아의 톨스토이(Leo Nikolaevich, 1828-1910)는 '예술은 사람이 자기가 경험한 느낌과 감정을 타인에게 전달할 목적으로 재차 이를 자기 속에 불러일으킨 다음에 동작이나, 선, 색, 음, 말의 형태로 타인도 경험할 수 있도록 표현 하는 것이다'라는 전달 이론을 말한 적이 있다. 나도 삶의 일상적 현상으로부터 나를 살짝 분리시켜 내 그림 화장대 거울 속에 닮고 싶은 여배우의 시상식장에 서 있는 여성스럽고 매력적인 뒷모습, 즉 나의 허상을 비춘다. 그것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앞모습은 잘 보이지만 뒷모습은 잘 볼 수가 없어 항상 거울을 통해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뒷모습을 바라본 경험에 연유한 것이다. 현대에 살고 있는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인물풍속화를 상상해본다.
이렇게 아름답고 여인을 어떤 남자가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마치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서 보듯이, 호랑이와 사슴사냥을 하던 사냥꾼들이, 뒤로 돌려 화살을 쏘듯이 여인을 향해 큐피트 화살을 쏘며 돌진하는 역동적인 모습을 상상해 본다. 특히 활시위를 당기며 달리는 기마인물과 동물들의 생동감 넘치는 표현은 활달하고 기상이 넘치는 고구려인의 기질을 잘 반영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나의 그림 속 사냥꾼들은 이목구비가 그려져 있지 않는데, 그 이유는 몸동작과 그림 속 상황 안에서도 얼마든지 표정이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상'이란 '긴장'의 반대말이기 때문에 그 긴장 속에서는 얼마든지 또 다른 세계의 환상이 존재할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오늘도 나는 샤워를 하고 화장대 속 서랍을 열어둔 채, 정성스레 화장을 한다. 화장을 하는 행위는 민화 속 사냥꾼을 만나기 위한 나만의 의식이다.
전시제목인생은 꿈, 사랑은 시-회상된 기억속의 또 다른 환상
전시기간2010.06.23(수) - 2010.06.29(화)
참여작가
김선애
초대일시2010-06-23 18pm
관람시간10:00am~18:00pm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동덕아트갤러리 THE DONGDUK ART GALLERY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68 B-1 동덕아트갤러리)
연락처02-732-6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