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지구상에 현존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하나의 조상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고, 현존하는 모든 생명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유전자라 추측되는 가상의 생명체를 루카(LUCA, 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라 명명했다. 생명의 기원인 루카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생물학자들은 유전자를 추적했고, 물리학자들은 양자역학에 매진했다.
제주 한라산의 ‘백록담’에서 신선이 타고 다니던 백로(白鹿)라 불리는 전설적 영물인 흰 사슴, 생명의 기원과 그 폭발적 분화의 순간을 이정록의 영적 교감으로 완성한 결과물이 바로 < LUCA >시리즈다. 오랫동안 생명나무(The tree of Life)를 주제로 작업해 온 이정록에 의해 나무와 사슴은 빛의 중첩과 얽힘으로 전설과 신화는 다시 < LUCA >시리즈로 완성 되었다. 작가가 제주에서
작업을 할 때, 백록담의 ‘백로’ 전설을 듣고 영감을 얻게 되는데 그는 이 흰 사슴에게 지구상에 현존하는 모든 생명체들의 하나의 조상이라는 뜻의 < LUCA >라는 이름을 붙였다.
< Private Sacred Place 사적 성소 > < Mythic Scape 신화적 풍경 > < Tree of life 생명나무 > < nabi > 시리즈 등을 통해 꾸준히 보이지 않는 세계의 오묘함을 탐구해 오던 이정록은 가시적이지는 않지만 자신을 전율케 하고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에너지, 생명, 자연, 공간을 주제로 오랫동안 작업을 이어왔다. 자신이 추구하던 시각적 경험의 세계 이면에 숨겨진 근본적인 세계에 대한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무엇에 대한 무수한 실험적 과정을 통한 시각화 작업은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려서 이루어낸 작업이다. 그 후 10여년간 그 주제는 다양한 모습으로 스펙트럼을 넓혀가면서 시 공간을 초월해서 작업을 지속해 오고 있다. 즉‘가시적인 세계 이면에 내재된 근본적인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비가시적인 세계에 존재하는 에너지와 영적인 신비’를 작품화하여‘현시(顯示)하지 않는 것(Nicht-Darstellbares)의 현시(顯示)’를 작품에서 드러내는 것이다.
이정록은 2~6시간의 긴시간 동안 촬영하여 완성하게 되는데 지속광과 순간광을 혼용해서 사용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마치 양자역학을 대하는 물리학처럼 오묘하고 신비로우면서 탄성을 자아내는 작품 구현하고 있다.
■ 갤러리 나우
몇 년 간 제주도에서 <생명나무>와 <나비> 작업을 이어갈 때, 흰 사슴에 관한 설화를 듣게 되었다. 한라산은 원래 신선들의 산으로, 신선들은 흰 사슴을 타고 다녔다. 신선들은 흰 사슴에게 한라산 정상에 있는 맑은 물을 먹였다고 전해온다.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은 ‘흰 사슴이 물을 마시는 연못’이라는 의미다.
꽤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나는 2007년에 <신화적 풍경> 시리즈를 발표한 바 있다. 원시적이면서도 시적인 풍경들에서 받은 영적인 느낌이나 상상을 다양한 연출과 설치를 통해 시각적으로 표현해보던 실험기였다.
그 때 나는 온전히 내가 느끼는 숭고함과 경외감이 만들어낸 상상의 결과물인 줄로만 알았던 많은 장면들이 사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해져오는 보편적인 설화의 모티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나는 수많은 신화와 설화를 탐독했다. 고대부터 세계 곳곳에서 유사한 이야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만들어지고 구전되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것들과 꼭 닮은 스토리들이 내 안에서 자연발생했다는 점이 놀랍고 신비롭게 느껴졌다.
그 때 나는 아직 작가로서 뚜렷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열정과 생기가 솟구치고 있었다. 왕성한 에너지로 만들어낸 <신화적 풍경> 시리즈에서 최초의 <생명나무>가 발아되었다. 또 오늘날 나의 작가 언어이자 고유한 메타포로 사용 중인 ‘빛’도, 사진 작업이지만 물질적인 상태를 초월하게 만드는 다양한 방식을 탐색하던 그 시절에 재발견한 소중한 선물이었다.
흰 사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슴이 뛰었다. 자연, 신화, 원시성에 대한 생득적인 애정이 깨어났다.
고대부터 사슴은 신성한 존재로 여겨져 왔다. 이집트 신화 속의 신들은 사슴의 뿔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었다. 고대 유럽에서도 사슴이나 순록을 신의 현현으로 여겼다. 시베리아 유목민들은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사슴의 뿔을 신의 뜻을 감지하는 신성매체로 여겨, 샤먼이나 족장 또는 임금의 머리 장식으로 사용했다. 일본에서는 사슴을 신의 사자로 정중하게 보호했다. 만주나 중국 북방 민족들도 사슴신에 대한 신앙을 품었다. 중국 역사책에는 흰 사슴이 평화와 행운의 상징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슴은 장수의 상징으로 천년을 살면 청록(靑鹿) 되고 청록이 다시 500년을 더 살면 백록(白鹿)이 된다는 재미있는 설화도 전해 내려온다. 경주 고분에서 출토된 금관의 출(出)자 구조도 사슴뿔을 형상화한 것이고,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의 동명왕 신화에서 사슴은 지상과 천상을 매개하는 동물로 그려졌다. 유럽인들은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슴을 신성하게 여겨 도시나 명문가를 상징하는 문장에 사슴을 그려 넣었고, 오늘날에도 유럽에서는 사슴뿔이 집을 지키는 부적이나 악마를 쫓는 의미의 장식물로 사용되고 있다.
<생명나무>에서 <나비>로 이어졌던 작업이 흰 사슴으로 이어졌다. 고대부터 광범위한 지역에서 사슴뿔이 신의 뜻을 감지하는 신성한 매개체로 여겨졌다는 지점이 마음을 당겼다. 또한 뿔의 형상이 나무를 닮았다는 것과, 봄에 돋아나 자라다가 이듬해 봄이면 떨어진 후 다시 돋아 계절처럼 순환한다는 사실이 새삼 신비롭게 느껴졌다. 그러한 사슴뿔의 속성은 그 동안 <생명나무>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모든 의미를 함의하는 것이었고, 사슴의 육체는 그 자체로 대지의 경이로운 원리를 갖춘 기, 숨, 엘랑비탈의 모체였으며, 생명나무의 뿌리였다.
나는 요즘 흰 사슴과 농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베리에이션은 영감의 완전성을 추구해 가는 과정임을 밝혀둔다.
LUCA(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는 찰스 다윈이 만든 용어로, 모든 생명의 공동조상의 약자다. 최초의 생명이자 생명나무의 뿌리에 해당하는 가상의 생명체를 의미한다.
■ 이정록 전시제목이정록 사진전: LUCA
전시기간2021.09.01(수) - 2021.09.28(화)
참여작가
이정록
관람시간10:00am - 07:00pm
휴관일월요일 휴관
장르사진
관람료무료
장소갤러리 나우 Gallery Now (서울 강남구 언주로152길 16 (신사동) )
연락처02-725-2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