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의 평정(平靜)의 시학
1. 사유의 태도
사물을 깊이 있게 관찰하고 이치를 찾고자 하는 것, 즉 이는 사색하는 자세를 일컫는데, 이러한 사색의 계기는 예술가에게 우연처럼 다가온다고도 하지만, 기실 그것은 우연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끊임없는 도정(道程)을 통해 찾아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동양의 예술 철학에서 말하는 예술가의 “산이 고요하고 해가 긴” 체험은 사실 영원에 관한 형이상학적 사고이자, 예술적인 방식의 사고다. 다시 말해, 사물을 깊이 있게 관찰하고 이치를 찾고자 하는 사색하는 자세는 특히 동양에서 중시되는데, 이는 인간 중심의 서양철학과 달리, 동양은 생명의 체험과 양생(養生)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즉 서양의 철학이 이성과 지식에 중점을 두는 것에 반해, 동양의 철학은 생명적이고 체험적인 것에 바탕을 두기 때문이다. 또한 동양에서는 고요함을 예술의 최고의 경지라고 여긴다. 왜일까? 이는 외부 세계 즉 만물은 근본과 본성이 본래 고요하고, 깊이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노자(老子)는 이에 대해 “뿌리로 돌아오는 것을 일러 고요함이라 하고, 고요함을 일러 생명을 회복한 것이다”라 했다. 아마도 이러한 연유에서 고요함은 외부 세계의 적막이 아닌, 만물의 깊이와 근원을 파악할 수 있는 마음속 깊은 곳의 평화의 상태를 일컫는 것 일 것이다. 작가 김우영은 감동의 대상을 찾고, 그 감동 속에서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여, 그것에 자신의 미적 사유를 투영시켜 펼쳐나가는 작업을 한다. 필자가 김우영의 작품을 논하기 앞서 이렇듯, 본연 탐구에 관해 다소 길게 언급한 이유는 그가 대상을 대하는 태도 즉 관찰하고 이치를 파악하려는 작업의 자세와 이를 통해 사물의 근원과 본성을 찾아내고자 하는 (그의) 기다림의 시간이 작품에서 그가 택한 대상의 본연을 예리한 통찰력으로 드러내고자 함으로 보여지기 때문인데, 이는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예술철학이 그러하기 때문일 것이다.
2. 안(內)
“하얀 눈 사이 미세하게 보이는 한옥의 선과 구조를 발견하고 ‘바로 이거구나!’” - 김우영-
한옥은 사실 우리나라의 자연환경과 산천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체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우리네 가옥이다. 골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본다고 해도, 한옥의 구조와 모양새는 어떤 식으로도 서양식 미감과는 차이가 많다. 이는 재료를 취하는 방식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한옥의 재료로는 종이, 흙, 돌, 나무를 기본으로 이외에도, 볏짚 기와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러한 재료들은 인간에 의해서 꾸미거나 기교를 부리거나 재단된 서양의 석조 건축과는 궤를 달리한다. 이는 서두에 언급한 바와 같이 서양의 철학이 이성과 지식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에 반해, 동양의 철학은 생명에 기반하기 때문인 것이다. 즉, 동양의 미(美)에는 직선보다는 자연스러운 곡선을, 정교함보다는 서투름을, 날카로움보다는 모나지 않음을, 화려함보다는 소박하고 질박함을 추구하는 겸손함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일컬어 흔히들 고졸한 미, 질박하고 담박한 미 혹은 겸허의 미학이라고도 하는데, 특히 유불선(儒佛仙) 사상이 지배적이었던 한국에서는 이러한 미감을 매우 숭상했다.
작가는 담양의 소쇄원(瀟灑園)에서 폭설로 잠시 갇히게 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는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올 무렵, 온 세상이 새하얗게 덮인 대지 속에서 한옥의 선과 구조를 발견했다 한다. 그리고 ‘바로 이거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 이러한 본의 아니게 어쩔 수 없이 대자연에 갇히게 되는 체험을 통해 발견한 가옥의 선과 구조는 분명 그에게 일종의 생명체처럼 다가왔던 것으로 보인다. 즉 대지는 온백색으로 물들고 천지가 적막한 가운데서, 작가는 기와의 열주로 만들어 낸 지붕의 고아한 선, 세월의 흔적을 품은 기둥과 보, 놀랍도록 자유분방하지만 질서 있는 대자연의 리듬을 간직한 서까래와 기단, 그리고 벽 속의 자연스레 안착된 천진한 주춧돌, 등이 한옥의 소박하고 질박하며 고졸한 미감을 만들어 낸 것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사실 한국의 전통가옥은 만물이 도생하고 알록달록한 천하에서 제멋대로 우뚝 서서 자신을 내세우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전통가옥에서 지붕은 뒷산의 능선과 조화를 이루고, 주변 산과 들의 나무는 온전히 기둥, 보, 서까래가 되며, 천과 개울에 여기저기 박혀있는 돌들은 기단과 주춧돌이 되어 기실 자연의 일부와 다름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보일 듯 말 듯 이 자신을 낮추고 드러내지 않는 이러한 한옥의 고졸(古拙)한 미의 구성체는 대지가 잠들고 인간이 비움과 평정을 찾아가는 때에 비로소 그 각자의 존재를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을 작가 김우영은 놓치지 않고 대자연에 무심한 듯 묻혀있었던 한옥이 품고 있었던 미감의 근원을 소환시켜 생명을 부여했다. 즉 김우영에 의해 한옥에서 분리되어 나온 추상적인 선들은 그가 구축한 화면 속에서 또 다른 조형언어를 만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제 대자연의 내재적 리듬의 체현을 통해 구성된 그의 추상적인 선 속에서 한옥이라는 표면적인 대상이 아닌 그것이 내재하고 있었던 자연의 이치로서의 변화, 통일, 균형, 리듬 등의 심층 질서에 다가서게 된다.
3. 밖(外) – 하늘이 만든 정원
폭설로 천지가 고요에 빠진 순간 계곡과 평야,
눈보라가 치는 순간 조감(鳥瞰)된 숲,
바람이 바닷물을 쓰다듬는 순간의 해안가 모래밭
한국의 전통적인 가옥은 건물과 건물 사이 비어 있는 공간에 자연을 담는다. 이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분임을 강조하여 자연과 밀접히 결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한국의 전통정원은 서양의 정원처럼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라 여기는 것과 달리, 대자연의 작은 단위와 부분임을 생각해서 천공(天工)의 리듬을 온전히 들인다. 단적인 예로 서양 정원의 분수와 한국 정원의 연못만 비교해봐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정원에 드린 분수는 웅대하고 기교를 부린 곡선이나 재단된 직선으로 되어 주변과의 경계를 명확히 한 반면, 연못은 아담하고 주변 사물과의 경계가 모호하다. 즉 제멋대로 자란 것처럼 보이는 풀과 화초, 이끼와 나무로 둘러진 연못은, 분수처럼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우연히 자연스레 존재한 듯한 모습을 취한다. 이러한 안팎의 모호함은 사실 동서양의 시간개념의 차이와 관계가 있는데, 시간은 일종의 감각이기 때문이다. 이는 서양 정원이 인공적으로 자연의 형태를 모방하여 분절된 시간성을 표하는 것과 달리, 한국의 전통정원은 자연의 정취(情趣)를 들여 아득한 태고 속으로 이끄는데, 이것은 동양의 시간개념이 서양처럼 일직선으로 흐르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구불구불하게 엉키듯 원을 그리며 흐른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태고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다른 말로 비유하면 적막과 고요 속에 빠진다는 말인데, 이러한 체험은 속세를 단절시키고, 시간 또한 격리시킨다. 김우영의 자연 풍경 사진에는 이러한 동양의 시간 개념이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점 때문에 그의 작품은 일반적인 풍경 사진과 차이를 만든다. 즉 김우영이 붙잡아 놓은 자연의 정(靜)과 동(動)의 질서가 그대로 담긴 ‘폭설로 천지가 고요에 빠진 순간의 계곡과 평야’, ‘눈보라 시작된 순간 조감(鳥瞰) 된 숲’, ‘바람이 바다를 쓰다듬는 순간의 해안의 모래밭’ 작품 속에서 대자연의 영원성 즉 생명 그 자체의 그윽함, 깊음, 광활함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의 본성과 근본을 성찰하면서, 우리는 인간의 애간장을 녹이는 사랑, 견디기 힘든 구속, 버리기 힘든 욕망을 잠시나마 고요 속으로 묻어버릴 수 있을지 모른다.
■ 김미령 <독립 큐레이터, 예술학>
전시제목김우영 : Poetics of Tranquility
전시기간2021.05.05(수) - 2021.06.12(토)
참여작가
김우영
관람시간10:00am - 06:00pm
휴관일일, 월요일 휴관
장르사진
관람료무료
장소JJ 중정갤러리 galleryjj (서울 종로구 평창10길 7-12 (평창동) )
연락처02.549.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