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 비석, 뾰족이의 땅땅한 찡찡거림

2020.11.24 ▶ 2020.12.13

복합문화공간 에무

서울 종로구 경희궁1가길 7 (신문로2가, 복합문화공간 에무) B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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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포스터

  • 권자연

    그의 빛 세라믹, 설치, 가변크기, 2020

  • 권자연

    별무덤 세라믹, 설치, 가변크기, 2020

  • 김철

    충격라인 지름 6.5cm x 높이 14cm, 백자토, 흑유, 산화소성 1230도, 2020

  • 김철

    충격라인 지름 9.7cm x 높이 15.5cm, 백자토, 소성 700도, 2020

  • 이소영

    늦은 오후 혼합매체, 설치, 가변크기, 2012-2013

  • 임상빈

    예절을 위한 체스세트 40x40x8cm, 철, 스텐레스, 산백토, 아이언불루유, 아연-구리 결정유, 산화소성 1250도, 2015

  • 임상빈

    예절을 위한 체스세트_룩, 킹, 폰 40x40x8cm, 철, 스텐레스, 산백토, 아이언불루유, 아연-구리 결정유, 산화소성 1250도, 2015

Press Release

도자기는 예로부터 우리 삶에 가까이 붙어 있으면서도 하나의 예술 장르로 인식되는 만국공통어이다. 인간이 집단을 이루면서 살기 시작할 무렵 음식을 저장하는 과정에서부터 도자기의 역사가 시작되기도 하였지만, 동양이나 서양 어느 곳에서나 같은 언어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과거, 현재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다가갈 수 있는 기표라고도 할 수 있다. 매우 쉬운 접근성에 비해 도자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그리 녹록치가 않다. 만들어가는 과정마다 만드는 이의 숙달된 솜씨가 보통이 아니어야 하며, 상당히 오랜 시간을 높은 온도에서 공을 들여야 한다. 흙을 빚어서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은 창작자에게는 매우 설레는 일이지만 가마에 들어간 다음에 그것이 상상했던 것처럼 그대로 작품이 될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전시 《체스, 비석, 뾰족이의 땅땅한 찡찡거림》은 권자연, 김철, 이소영, 임상빈 4명의 작가들이 모여서 이렇게 수행적 차원의 세라믹 작업을 한 공방에 모여 과정을 공유하면서 만들어온 전시이다. 예측 불가한 흙의 세계를 함께 경험하고 배워가는 것은 자연스럽게 이들을 하나의 예술인 공동체로 만들어갔을 것으로 짐작하게 된다. 서로의 작업을 상세히 관찰하고 기술의 문제를 공유하면서 나누었던 것은 물질의 변화와 변형이 기반이 된 다양한 생각의 시도들이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도자기는 흔하게 보이는 그릇 형태가 아니라 각자의 작업에서 보이는 물질적인 고민의 결과이다.
‘체스’, ‘비석’, ‘뾰족이’는 각각 형태적 닮음과 연동되는 기호들로 놀이가 이끄는 도구의 관습을 뜻하는 동시에 특정 장소의 기념비가 전하는 메시지이다. ‘땅땅한 찡찡거림’이란 작가의 고집스러운 태도와 작업의 고유한 습성을 강조한 된소리 어휘로 ‘땅땅한’은 뚜렷한 자기 주관적 몸짓을, ‘찡찡거림’은 실패의 푸념과 비판적 시선을 의미한다. 기호적으로 세라믹 작업이 갖고 있는 ‘기구(器具)’의 속성을 살리면서도 예술가, 창작자로서의 태도를 함께 담은 제목이다.

권자연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흔적을 세라믹 ‘빛 조각들’의 나열과 중첩의 방식으로 보여준다. 무형의 빛을 세라믹의 단단함에 응축시키며, 산에 올라가 보이는 햇살, 잎사귀 등에서 보이는 수많은 원과 빛의 기억을 서정적인 회화처럼 펼친다. 빛 모양은 붙잡을 수 없는 빛을 눈 앞에 놓고 손으로 만지고 감정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빛 조각들’은 공중에 떠도는 찰나의 이미지에서 땅 위로 내려 앉아 차분하면서도 숨을 고르는 듯한 다부진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작가는 각각의 단단한 빛 조각을 모아 아버지에 대한 흔적을 은유하며, 사적인 감정과 개인으로서의 역사성이 교차하는 시선으로 작업을 해오고 있다.

김철은 세라믹을 다루는 다른 관점의 태도와 접근법에 관심을 갖는다. 도자기를 만들다보면 버려진 기물도 많이 생산하게 되는데, 김철은 그릇을 조각하듯이 깎으면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굽’을 작업의 전면에 등장시키거나 재활용하기 어려운 기물을 다른 관점에서 보는 시도를 한다. 도자기로서의 기능성은 최소화되고 보이지 않는 부분으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깨진 초벌기의 크랙을 매끄럽게 갈아내 라인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확대하여 우연성의 도식 같은 무늬/라인-조형을 만들어낸다.

이소영은 주로 한 지역의 문화와 생활방식이 개인의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이번 전시에서 보이는 <비석> 시리즈는 카자흐스탄 고려인 마을에서 마주한 묘비들을 재현한 형식으로, 철제와 돌이 세라믹 모뉴멘트로 치환되었다. 묘비에는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던 초기 고려인의 소박한 모습과 구소련의 별장식, 한글에서 러시아어로 바뀌어 가는 묘비명, 사진을 인쇄한 시대의 유행 양식이 담겨 있는데, 세라믹이 갖은 긴 역사의 호흡을 통하여 이주민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민족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임상빈은 체스 마니아로 우연히 이란 체스마스터와 게임을 하게 되면서 마스터의 우아하고 정중한 손짓에 매료되어 체스의 예절을 도구의 물성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작고 볼품없으며, 쓸모없는 오브제들의 형태를 수집하고, 이렇게 디자인한 오브제들을 체스 위의 특정한 상황 속에 개입시킨다.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말의 형태이지만, 체스판 위에서는 다양한 전술로 이러한 상황들이 체스의 언어로 다시 태어난다. 무엇보다도 유약의 번들거림으로 고급스럽게 보이는 체스 오브제는 강한 물체와 부딪히면 깨질 수 있는 연약함을 동시에 갖고 있는데, 이런 특성들이 체스를 다루는 몸짓을 정중하게 만든다.

이번 전시는 이같이 4명의 예술가들이 모여 각각 세라믹의 속성과 자신의 작업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고민한 결과물들이다. ‘단단함과 반짝임 그리고 영구성’이란 특성을 바탕으로 개별적 이야기와 흔적을 각각의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 고윤정 (토탈뮤지엄프레스 객원편집장, 이미단체 대표)




개인전 <그의 산>에서 처음으로 보여준 별 도자는 아버지에 대한 은유와 같은 것이다. 우리에게 부모는 한없이 큰 존재이자 우리의 삶을 가이드 해주는 별/빛과 같은 존재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자 그는 더 이상 나를 가이드 해주는, 우리 가족을 보호해주는 큰 방향이 사라진, 그래서 이젠 아무리 우리가 그리워해도 돌아올 수 없는, 마치 땅으로 떨어진 별/빛과 같이 되버렸다.

이번 전시 《체스, 비석, 뾰족이의 땅땅한 찡찡거림》에서는 개인전 <그의 산>에서 보여줬던 별 도자 작업을 확장시켜 보여줄 생각이다. 별/빛과 같은 하나하나의 별 도자가 빛나고 잘 보이도록 디스플레이해보고 싶다. 그것은 마치 지금은 그 빛이 사라졌지만 한때 빛나고 빛나고 또 빛났을 아버지의 젊음과 성취와 인생의 결을 보여주고자 하는 바램 같은 것이다.
■ 권자연


오랜 시간 도예가로 활동하면서 많은 작업과 고민들을 하고 그 과정에서 나온 작품들은 나에게 만족과 실망을 동시에 안겨주었으며 새로운 작업을 다시 시작 하게끔 하였다. 처음에는 흙이라는 재료의 특성인 물성에 집중하였고 전통적인 도예기법을 충실히 따르면서 도예기술의 틀 안에서 스스로를 가두고 기술과 디자인 혁명을 위해 트랙의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이었다. 후회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데 그 아쉬움이 고정된 틀에서 빙빙 돌기만하는 나를 보고도 애써 무시하는태도가 아쉬움이다.

최근 몇 년간 타 전공 작가들과 빈번한 교류를 통해 내가 느꼈던 아쉬움을 걷어내는 데 유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몇 가지 소개하자면 그들이 재료를 보고 느끼는 관점과 조형을 전개하는 어법이 다양하다는 점이다. 도예가에게 흙은 양날의 검과 같은 것이다. 무겁기도 하고 가볍기도 하며 잘 다루면 아름다운 교만에 빠지기도 하며 잘못 다루면 작업과정이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재료의 한계에 봉착하게 되면 작가의 생각이 축소, 변질되기 쉬우며 발상 초기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한계의 울타리를 벗어나고자 이번 전시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나는 지금까지 이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을 해왔고 해야 할 작업들을 보여줄 것이며 동료작가들은 한계가 분명히 있는 재료를 이용하여 본인의 작업을 하고 작품과 제작과정에서 보여지는 변수를 통해 재료를 다루는 방법과 조형언어를 보여주기를 바라며 각자 작업의 확장성에 도움이 되는 전시가 될 것이다.

과거 십여 년 전부터는 작품에서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기능을 하는 도자기그릇의 굽(밑바닥)에 주목하게 되었고 굽을 강조한 조형작업들을 하였다. 그릇의 밑 부분은 신체의 발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기능을 하는데 아주 중요하지만 크게 부각되지 않는 부분이다. 평소에 드러나지 않고 숨어서 기능을 하는 굽을 담기는 윗부분도 이름답게 제작하였지만 작품을 뒤집어 보아도 그 자체가 훌륭한 도예 작품이 될 수 있도록 제작하였다. 이 작품들은 담기는 기능을 없애고 조형적으로 굽을 강조하여도 굽은 여전히 그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현재 나의 관심사는 주연이 아닌 조연, 조연이 아닌 단역의 역할을 하는 약방에 감초 같은 것들에 시선이 쏠린다. 내 주위에 늘 있고 당연히 쓰이며 무의식중의 습관적인 행동 등에 관심이 간다. 집, 자동차, 옷, 가방 등 많은 것들이 나에게 쓰임을 당하고 있고 개중에는 부적 같은 의미의 물건들도 있다. 그리고 쓰임이 다하거나 고장이 나면 버려지는 물건들이 대부분이며 몇 가지는 평생 쓰거나 간직하기도 한다.

이런 일상의 관심사를 작업에 비춰보면 하나의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쓰이는 여러가지 재료와 도구들, 그리고 기존의 도자기 관점에서 보면 버려지는 기물들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그중에서도 버려지는 기물에 주목하였고 특히 깨진 초벌기물을 재활용아닌 재활용하여 깨지기 전 본래의 모습과 의미가 없어진 버려질 초벌기물에 새로운 형태와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 김철


주로 한 지역의 문화와 생활방식이 개인의 역사와 갈등, 감수성과 관계하는 단면에 관심을 두고 작업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작품을 만들며 가장 고민해온 주제는, 개인의 역사 안에 내재한 사회의 문제와 역사, 그리고 이에 얽힌 사건들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이주와 소외, 사회 체제의 변화 등 역사적인 사건과 흐름 안에서 인간의 감수성과 일상의 딜레마가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과 단면을 매번 조금씩 다른 방법과 시도를 통해 다루고자 한다. 또한, 나라마다 겪어온 정치·경제적인 변화로 인해 사회의 틀 안에서 다수와 소수가 나뉘는 현실의 이야기를 지금의 위치와 눈높이에서 짚어보고자 한다. 이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개개인의 이주와 정주에 대한, 즉 지금 사는 곳과 앞으로 살아갈 곳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이기도 하다.

이번 에무 기획전 《체스, 비석, 뾰족이의 땅땅한 찡찡거림》에서 전시하는 작품들은 비석 시리즈와 에스키스처럼 만들었던 작은 세라믹 소품들이다. 비석 시리즈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고려인 4세인 알렉산더 우가이 작가와 함께 진행한 중앙아시아 고려인 디아스포라 프로젝트의 연계 전시를 위해 제작한 작품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카자흐스탄을 방문할 당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소 중 두 곳이 우슈토베의 초기 고려인 집성 터와 고려인 묘지였다. 초기고려인 집성 터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두 개의 묘비는 철판에 한글로 이름이 새겨져 있다. 우슈토베 평야에 자리한 고려인 묘지는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의 추모 장소이자 조상들의 역사가 기록된 장소로, 격변한 시대적 상황과 사회 체제가 이 안에 늘어선 묘비의 형태와 글자의 변화(한글에서 러시아어로)에서도 드러난다. 몇 세대 동안 고려인으로서의 민족성을 지켜왔지만, 정치·사회적인 영향을 피할 수 없이 살았던 그들 삶의 기록이 비석의 다양한 형상에 내포된 것이다. 이방인으로 살아간 고려인 선조들의 묘비는 변화의 흐름을 기록한 기억장치로서도 뇌리에 오래 남았고, 그 특징과 의미를 작품에 담아 재현하고자 선택한 재료/매체가 세라믹이다. 따라서 비석 시리즈 제작 초기에는 전통적인 도예의 기법과 조형성보다 재료의 물질성과 그에 담긴 무게감에 더 집중했다.

흙이 주는 느낌과 질감이 다른 재료와 비교할 때 가볍지 않다는 전제하에 선택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무겁지만도 않았기에, 이후 작품의 주제에 따라 세라믹을 재료로 사용할 때에는 전달하는 내용 또한 그에 맞는 무게의 정도를 조정하고 조율하는 과정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흙과 유약, 또는 화장토(도자를 채색하는 재료)의 종류를 검토하며, 각 작업의 컨셉에 따라 섬세함과 거친 정도를 가늠하는 한편, 가마에 구워지며 변화하는 단계에서 일어나는 상황의 유동성을 고려하게 되었다. 물론, 도예 장인이 완벽한 조형성과 빛깔을 수백 번 연구하고 빚어내는 도예 제작 방식은 다를 것이다. 그러나 결과물의 형태뿐 아니라 무게와 질량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은 오히려 생각과 태도를 조금 느긋하게, 약간 자유롭게 확장하기도 한다. 또 작품의 구조를 지나친 무게감 없이 구성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재료의 바깥에서 도예작품을 볼 때 대부분 정적(靜的)이라고 생각했다면, 과정을 경험할수록 크기 외에도 흙의 물성 자체가 만들어내는 무게와 질감의 차이를 인식하게 되면서 메시지와 뉘앙스를 다채롭게 묘사하고 때로는 유머를 담을 수 있는 전달 매체로 접근하게 되었다.
■ 이소영


임체스라는 닉네임은 강의를 시작하면서 붙여진 이름인데, 체스에 빠져 강의 주제뿐만 아니라 상담 및 평가까지도 체스의 상징과 행마법에 맞춰 미술의 문제를 체스퍼즐처럼 풀려는 시도들을 즐겨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지식 유통업자 같은 강사노릇이 싫어서 그리고 케케묵은 정보를 싸들고 와서 새로운 것인 양 반복하는 보따리장수를 벗어나고 싶은 충동이 크게 작동했던 듯싶다. 아마도 이때부터 미술의 무거움을 조금씩 덜어내고 놀이적으로 접근하면서 교육관과 작업관이 함께 변화한 것 같다.
작업과 교육은 다른 것이었다.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등을 맞대고는 있지만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문제는 교육이라는 밥벌이의 활동반경이 넓어질수록 작업은 구석으로 내몰리면서 먼지가 쌓이다 못해 점점 쪼그라들고 있었다. 반면, 교육현장에서는 학생들의 어처구니없는 생각들과 이상한 습성 그리고 예술에 대한 맹목성이 만들어내는 삽질들을 지켜보면서 저 모습들과 나는 얼마나 다르고 낫다고 허세롭게 말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었다. 학생들의 모습에서 허약한 내 자화상을 엿보게 되니 교육을 작업처럼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탐사는 영역으로 바꾸고 싶었다. 교육과 작업은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이 되어야 했다. 일과 취미는 뒤섞여 하나가 되어야 했다. 작업을 위한 일과 돈벌이를 위한 일이 같아 질수 있다면, 교육이 예술이 될 수 있다면, 예술적 실천과 삶을 위한 창의성이 지향하는 곳이 맞닿아 있다면, 부엌의 창의성처럼 일상의 예술성을 드러낼 수 있다면, 교육이 예술이고 예술이 교육이다라고 믿자! 이후, 예술교육가가 아니라 교육예술을 하는 작가라고 내 정체성을 만들면서 작업을 따로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그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전시를 못하고 있다는 의기소침에 스스로 떳떳할 수 있었다. 그렇게 교육은 프로젝트 작업이 되었고 작업은 교육도구로 쓰이게 되었다. 이것이 지금의 스탠스다.

게임 또는 취미로써의 체스는 생각도구이면서 동시에 하루를 진단하는 성찰도구처럼 쓰인다. 꽤나 오랫동안 게임 중독 상태로 체스클럽과 온라인 세계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직업병이 발동하여 나만의 체스를 만들어 쓰고 싶은 욕망 때문에 솜씨를 부리게 된 것이 체스작업의 출발점이었던 것 같다. 오브제 드로잉으로써의 체스 디자인은 채집의 습성으로부터 시작된다. 길바닥에 나동그라져 뒹굴고 있는 작고 볼품없는 것, 쓸모없는 것, 그냥 버려진 것, 하찮은 것, 무언가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 누군가에게 버려진 것, 경쟁에 뒤쳐진 것, 오래되고 낡아서 새것에 밀려난 것, 의도치 않은 사고로 부서지거나 튕겨져 나간 것, 소화되지 못하고 토해진 것 등등의 것들을 주워 모은다. 이것들은 미비한 신음소리 혹은 은은한 향기 때론 찰나의 번뜩거림과 같은 찌름, 체념의 구호와 같은 한숨으로 내게 말을 건다. 길바닥 쓰레기들로 치부되는 오브제들은 그냥 사물이 아니라 언젠가의 우리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는 경고와 함께 체스판 위의 특정한 상황 속에 놓인 말들과 오버랩 된다. 마치 세상이 체스의 세계로 덮여진 것처럼. 채집된 오브제들은 연결고리가 전혀 없는 것들끼리 파편과 파편이 만나서 조형적 결합이 이뤄지고 새로운 형태를 갖추면 의미와 탈의미의 상징을 부여받게 된다.

이것들은 <표준화에 저항하는 고유성들>이란 이름으로 당신의 직관에 의한 미적선택을 기다린다. 그러면 나는 체스 점술가로 빙의하여 당신의 삶에 대한 방향성을 체스말의 상징과 행마법으로 진단하듯이 숨겨진 차원을 끄집어낸다. ‘혼이 담긴 구라’의 경지에 도달하고 싶은 열망에 빠져서. 아무튼, 나는 체스 게이머, 체스 연구자, 체스 미학자, 체스 디자이너, 체스 점술가가 되어있다. 놀이와 작업과 교육이 하나의 덩어리로 굴러다니고 있다.
■ 임상빈

전시제목체스, 비석, 뾰족이의 땅땅한 찡찡거림

전시기간2020.11.24(화) - 2020.12.13(일)

참여작가 권자연, 김철, 이소영, 임상빈

관람시간11:00am - 7:00pm

휴관일월,공휴일 휴관

장르설치

관람료무료

장소복합문화공간 에무 Art Space EMU (서울 종로구 경희궁1가길 7 (신문로2가, 복합문화공간 에무) B2)

주최복합문화공간에무

주관복합문화공간에무

후원사계절출판사, AGI society

연락처02-730-5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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