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는 한국 현대미술의 발원지 중 하나이다. 대구가 현대미술의 발상지 혹은 현대미술의 중심이라는 말은 이미 대구 미술계에서 자주 거론되어 왔다. 이런 생각의 계기는 바로 1974년 대구 현대 미술제(1974-1979)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총 5회가 진행되었던 이 행사는 당시 한국에서는 유례없던 아방가르드적 행위들을 제시했다. 대구거주 혹은 출향 작가들이 모여 개념을 중심으로 한 전위예술 퍼포먼스를 대구 강정보 강변 일대에서 선보였다. 이 현대미술제가 오늘날 재평가되는 이유는 당시 정치적, 사회적 배경이 유신체제 아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 예술가들이 반 상업주의적이면서도 순수예술을 지향하는 일종의 아방가르드적 예술투쟁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국내에 서양화가 도입된 지 겨우 100여년 남짓 지났을 뿐이지만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한 한국현대미술의 흐름은 대구에서 시작된 현대미술제로 인해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현대미술 개념 확립을 위한 하나의 전환점을 이루었다고 평가될 수 있다. 한국은 숨 가쁘게 개발되고 산업화되어 삶의 많은 부분이 현대화되고 서구화되어 왔다. 우리는 급속도로 서구화되고 글로벌화 된 한국 현대미술의 경향이 전통과 보수의 상징으로 불리는 대구라는 도시에서 앞서 출발하였다는 점을 주목하며 그 시대성과 사회성을 바탕으로 작가와 작품을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메이드 인 대구Ⅱ> 전시는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50여 년간 시대를 공유하고 예술로서 공감했던 그들의 예술에 대한 진정성에 초점을 맞춘다. 이번 전시는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젊음으로 충만한 패기와 청년정신으로 예술의 진정성을 찬양했던 그들의 오늘을 살펴본다. 그들은 항상 새로움을 갈구했고 실험을 즐겼으며 예술에 대한 열정은 무모하리만큼 전투적이었으며 도전에 두려움이 없었다. 이번 전시는 현대미술이라는 개념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화두가 되었던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일관적으로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작가 8명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소개하는 전시이다. 대구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각각의 작품 성향과 표현방식이 다른 이들의 공통점을 한 시대를 살며 예술로서 함께 호흡했던 시대성과 작가로서의 예술에 대한 열정, 그리고 진지하고 전투적으로 예술을 대했던 그들의 예술에 대한 진정성에서 찾고자 한다. 전시에서 소개되는 8명의 작가는 현대미술에서의 매체의 다양성을 그대로 반영이라도 하듯 각각의 작품성향, 주제, 표현방식, 장르가 모두 다르다. 그러나 그들 작품 속에 공통적으로 내재되어 있을 종합적 에너지는 대구가 현대미술의 중심이라는 자각과 그 저력에 힘을 보태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곽훈(b.1941~, 대구)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일찍이 1975년 미국으로 이주, 서양문화 속에서 동양의 정신세계를 담아내는 작업을 통해 물질주의적 주류에 대한 문화적 도전을 제시하며 한국이 아닌 미국화단의 주목을 먼저 받은 작가이다. 새로움을 향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는 작가는 인간사회가 잃어버린 원초적 생명의 근원적인 힘을 강렬하고 힘이 넘치는 회화로 표현해 낸다. 물감으로 그리고 긁어내고 다시 그리는 행위를 반복하는 그의 작품에서는 동서양 문화에 대한 작가적 태도와 작가 내부에 응축된 에너지가 발견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대표적인 할라잇(Halaayt) 회화작품과 드로잉 320여점이 대거 소개된다. 14미터 가량의 wall to wall형식으로 설치되는 드로잉은 마치 보는 이가 그의 회화 속의 일부가 되어 거대한 할라잇(최상의 영) 앞에 서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며 동시에 그림 속 에너지와 함께 요동치는 주술적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권정호(b.1944~, 대구) 작가는 1983년 뉴욕 프렛 인스티튜트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서구문화를 접했던 작가로 학업을 마친 후 한국에 귀국하여 후학들을 가르치며 본인이 생각하는 미술에 대한 지향점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 작가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에서 신 표현주의적인 경향의 작품들을 선보였으며 주로 두개골 형태의 조각과 회화가 많다. 그의 작품은 인간의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일련의 일어난 사건들을 주로 다루며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창조와 미래의 무한성을 표현하고 있다. 그는 2000년대에 들어 회화에 국한되지 않고 입체, 설치, 영상 등 매체에 한계를 두지 않으며 인간을 중심 내용으로 작품세계를 확장해 왔다. 한 예로 1995년 상인동 가스폭발사고와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등의 사건들은 그에게 작품을 제작하는 주요한 모티브로 작용하게 되는데 이것은 인간사회가 조장하는 불의의 사고들로 생명을 잃어가는 삶의 허망함에 대해 강렬하면서도 직접적으로 작품을 통해 시사하고 있다.
김영진(b.1946, 대구) 작가는 대구현대미술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진지하고 투철한 예술정신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작가이다. 대구 현대미술계에서 실험적인 다양한 시도들을 보여줬었던 대표적인 개념미술가이자 설치미술가이다. 예술에 대한 진지한 고찰은 작가로서의 태도로 이어져 한 가지 영역으로 특정 지을 수 없는 다양성을 보여준다. 사진, 영상, 설치, 오브제 등 미술의 거의 모든 장르를 포괄하며 실험성을 보여주는 김영진은 특히 인간의 신체에 대한 집중적 개념을 제시한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world-19’작품은 2019년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 19 상황을 직접적이고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불현 듯 닥친 사회재난 앞에 인간의 무력함 혹은 삶과 죽음에 대한 경의를 표현한다. 40여 년간의 새로움을 추구하는 작가의 실험정신은 끊임없는 추상적 시도로 이어져 오고 있으며 그의 작품세계는 대구 현대미술의 시작점과 함께 사회 문화적 의미를 재고할 수 있는 주요한 자료가 된다.
박두영(b.1958, 대구) 작가는 스스로 ‘불편한 회화’라는 표현을 사용할만큼 강렬한 보색 배치와 줄무늬 형식의 회화 작품을 펼치고 있는 대구 현대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그의 단순한 형식의 회화는 보색의 강렬한 색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규칙적으로 분할 된 화면구성은 관람객이 쉽게 작품에 다가갈 수 없는 냉정함이 있다. 빈틈없이 치밀한 지금의 회화작품이 나오기 까지 그는 설치, 퍼포먼스, 사진, 영상, 드로잉 등 개념미술을 중심으로 다양한 실험과 시도들을 이어왔고 판넬에 안료를 사용하거나 수채화를 그리는 등 재료의 사용에도 국한을 두지 않았었다. 현재 그가 그리고 있는 강렬한 보색의 회화 작업은 철학적 예술이론과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쌓아 온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모든 것은 나로부터 비롯되어 가치를 부여받는다. 예술은 외부세계의 현상적 환상이나 환영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주관적 사고에 의해 결정되고 존재하는 세계이다.”라고 말한다.
박철호(b.1965~, 경북의성) 작가는 대구 계명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 The One Year Postgraduate Independent Study in Printmaking 수료한 후 다시 대구로 돌아와 주로 판화 위주의 작품을 선보였던 작가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판화와 회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형식의 작품을 추구하고 있는데 자연을 모티브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예술적 존재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탐구한다. 그는 작가만의 개인적인 감수성을 작품에 담아내며 그 영역을 확장해 가고 있다. 새, 구름, 하늘, 바다 등 그가 주로 표현하고 있는 그림의 대상은 자연이다. 구름의 흐름, 새의 몸짓, 물결의 파문, 빛살의 파장, 숲의 떨림 등 작가는 자연의 다양한 모습들에서 생성과 소멸, 순간과 영원, 절망과 희망 등의 광범위한 내용을 표현하기 위해 회화뿐만 아니라 설치작품으로까지 그 표현 영역을 확장하고 있으며 대형설치와 회화작품을 시도함으로써 스케일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서옥순(b.1965~, 대구) 작가는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한 고찰과 함께 인간의 ‘존재’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는 작가이다. 이 복잡하고 어려운 주제에 대해 작가는 항상 질문하고 사고하는 자세로 작품에 임한다. 표현방법은 주로 실과 재봉틀, 천 등의 재료를 사용하여 캔버스에 실을 꿰어 메고 늘어뜨리는 방식을 사용한다. 작가는 ‘존재와 자아’ 라는 주제에 대해 독일 유학생활 시기부터 고민해 왔다. 이는 삶에서 인간이 인식하는 있는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복잡한 질문이다. 이 질문은 그녀가 여성으로서 느껴야 했던 보편적 존재로서의 의미 혹은 작가로서의 개인적인 서사의 일부일 수도 있다.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은 예술에서 자주 언급되는 주제이지만 서옥순 작가는 성별을 넘어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인간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우리는 실과 바늘이 여성의 전유물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단지 수공예적인 노동으로만 얻을 수 있는 사고의 결과물을 본다. 그녀는 작품을 통해 복잡하게 얽혀있는 깊고 심오한 인간 내면을 상기시키고 이를 되돌아보게 한다.
송광익(b.1950~, 대구) 작가는 계명대학교를 거쳐 일본 큐슈산업대학에서 미술공부를 한 후 다시 대구로 귀향하여 고향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꾸준히 일관된 작품으로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작가다. 초기에는 주로 현실반영의 회화작품을 선보이기도 했으나 최근에는 주로 한지를 이용한 반입체적 작품을 제작한다. 작가는 이번 대구미술관 전시를 위해 대형 신작 <무위지예(無爲紙藝)> 작품을 선보인다. 이 작품은 한지의 물성을 활용한 작품으로 한지를 붙인 합판과 플라스틱 의자에 고무밧줄을 동여 맨 조형물이 함께 벽에 설치된다. 작가는 종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인간과 밀접한 생명력과 소통성이라고 본다. 이에 반하는 고무라는 재료는 폐쇄적이고 단절을 의미한다. 상반된 물성을 가진 종이와 고무를 이용하였고 집요한 노동력과 시간의 축적으로 만들어지는 작품이다. 작가는 제작 과정 중에 스스로와 대화한다. 이렇게 만들어 진 작품은 작가와 작품의 ‘존재성’ 그자체이다. 화면 안에 한지를 찢거나 오려 붙인 작품들은 평면이면서 동시에 입체이고 회화이면서도 조형적인 작품으로 종이가 가진 변화 용이하고 따듯한 물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최병소(b.1943~, 대구) 작가는 작품 속에 내재 된 개념을 중요시하며 예술적 진정성에 중점을 둔 작가이다. 1970년대 군부독재시절 언론보도에 대한 분노로 시작 된 이 작업은 신문이라는 상징적 재료를 이용, 연필 등으로 지우고 비워나가는 행위 자체를 주목해야하는 작품이다. 그는 무엇을 지우고 있는가? 신문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 그것은 사회 부조리를 포함한 인간사회의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을 것이고 작가는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 신문 자체를 지우겠다는 의지로 연필과 볼펜, 흑연을 이용해 지우고 또 지웠다. 작가는 그 과정 중에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고 연필의 사각거리는 소리, 볼펜을 긋는 소리,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들을 들으며 작가 개인의 삶에서 느꼈던 고통과 분노를 작품에 고스란히 담아내게 된다. 이제 노령이 된 작가는 이런 행위 자체가 스스로를 비워나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생각을 비우고 스스로를 비워나가는 행위, 그것은 당시 물감으로 칠해야한다는 회화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한 실험적인 시도였으며 현대미술의 전위성을 대변했던 행위였다. 집요한 집중력과 수행의 인내가 필요한 이 작업은 신문이라는 종이의 물성을 흑연을 이용해 탄성의 물성으로 변화시킨다. 작가는 이제 과거의 목적의식에서 벗어나 도구와 물성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전시제목메이드 인 대구 Ⅱ
전시기간2020.09.29(화) - 2021.01.03(일)
참여작가
곽훈, 권정호, 김영진, 박두영, 박철호, 서옥순, 송광익, 최병소
관람시간10:00am - 06:00pm
휴관일월요일 휴관
장르회화, 설치, 판화, 영상, 아카이브자료 등
관람료성인 1,000원
청소년, 어린이 700원
장소대구미술관 DAEGU ART MUSEUM (대구 수성구 미술관로 40 (삼덕동, 대구미술관) 1전시실)
연락처053-790-3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