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아트 나인원은 화려한 색채의 ‘색띠(컬러밴드)’로 감각적인 추상작품을 선보이는 하태임(Tae Im Ha)의 개인전《Un Passage》을 개최한다. 작가는 1994년 프랑스에서 공부를 마친 뒤, 2012년 홍익대학교 대학원 회화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국내외에서 파리 씨떼 데 쟈르 갤러리 등 총 26번의 개인전과 서울시립미술관을 포함해 200여회의 단체전을 가졌다. 또한,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공사립 미술관이나 기관들이 소장하는 작가로, 다양한 기업체와 공공기관과의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에 다수 참여하여 대중들 사이에서도 인기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2017년 가나아트센터에서의 개인전과 2018년 소마미술관 개인전 이후, 2년만에 여는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블루와 핑크, 이 두 가지 색을 중점으로 새로운 내면의 이야기를 펼칠 예정이다.
하태임은 컬러 밴드 연작을 ‘통로’(Un Passage)라 명명한다. 작가는 프랑스 유학시절, 소통의 어려움을 경험하고 ‘소통’의 개념에 집중하게 되는데, 이는 하태임하면 떠오르는 ‘컬러 밴드’가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된다. 초반에 그는 소통의 가장 기본적인 도구인 문자와 부호 등을 화면에 그려 넣고, 그 위에 곡선의 색띠를 덧칠하는 실험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언어와 문자가 아닌, 색띠와 같은 순수한 시각 요소만으로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에 따라 작가는 선과 색의 만나는 시각적인 구조에 주목하였고, ‘색띠’외에 모든 재현적인 요소들을 배제하였다. 특히 색띠 뿐 아니라 붓이 지나간 흔적 그리고 마르지 못해 흘러내린 물감이 만들어낸 우연적인 조형성 또한 고려했을 때, 하태임의 작업은 재료의 물성 자체에만 관심을 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작업의 형상보다는 붓질의 제스처와 색에 의미를 부여하는 하태임 작업은 작가의 정서적 또는 정신적 깨달음과 직결된다. 즉, 하태임의 작품은 그의 사고와 정서를 감각적으로 구현해 낸 통로로서 작가의 내면을 작품에 투영한 결과물인 것이다.
하태임 작업에서 캔버스에 칠해진 각각의 색은 고유한 상징과 의미로서 존재한다. 본 전시에서 작가는 ‘핑크와 블루’라는 두 가지 색을 통해 새로운 내면을 풀어내고자 한다. 작가에게 블루는 꿈과 이상을 향한 호기심이고 미지의 장소를 여행할 때 느끼는 그리움이며, 핑크는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버리고 시간을 돌아보게 하는 화해와 너그러움의 색이다. 이렇듯 작가에게 색은 개인적 경험과 깊게 관계되어 있다. 작가는 복합적이고 미묘한 감정들의 교차를 표현하기 위해 서로 다른 색상의 컬러밴드들을 화면에 중첩시켜 화면에 구현하였고, 이는 화면 속에 새로운 ‘색 공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또한, 화면에 보여지는 다양한 색상의 크고 작은 곡선들은 보는 이들에게 율동적이면서 경쾌한 느낌을 전달한다. 작가의 손길이 그대로 드러나는 붓질의 움직임, 그로부터 흘러 내려오는 물감의 흔적, 투명성을 표현한 글로스와 다양한 색의 조합은 작가가 화폭에 써 내려간 내면의 일기와도 같다.
하태임은 절제된 화면 속에 물질적이면서도 서정적 감흥을 동시에 구현함으로써, 작가 고유의 조형 언어를 창조할 뿐 아니라 관람자와 개인적 경험을 공유한다. 작가의 개인적 경험을 축적한 캔버스의 기록은 관람자의 색에 대한 경험과 중첩되어 조우한다. 따라서, 본 전시는 다채로운 색의 조합을 화면에 유영시킨 하태임의 ‘컬러밴드’를 보다 새롭게 읽어보는 시간으로, 하태임을 ‘색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단순한 추상주의 작가가 아닌 확장된 의미에서 작가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이다. 또한, 이번 전시는 색채와 곡선의 반복을 통해 구축된 하태임만의 시각적 즐거움을 감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작가의 깊숙한 내면의 풍경을 경험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 가나아트 나인원
When blue meets pink
블루가 핑크를 만나면… 가나아트 나인원 개인전에 부쳐
블루가 핑크를 만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인간이 색을 구분하고 식별할 수 있는 것은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수년간 다채로운 색띠를 화면에 유영시켰다. 흐르는 물고기와 같이, 때로는 우주에 일정한 궤도를 그리는 별과 같이, 몸을 축으로 쭉 뻗는 팔 끝으로 색실을 줄줄 뽑아냈다. 어떤 색 위로 다른 색을 중첩시켰을 때 만들어지는 또 다른 ‘색공간’에 온 신경을 주목하고 색과 색의 만남과 중첩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전혀 다른 존재인 색과 색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진다. 때론 긴장되고, 어느 지점에서는 행복하고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애절하기도 하다. 각각의 화면에는 가사가 없는 클래식 음악처럼 색의 선율이 흘러 넘친다. 색은 상징적 역사적 의미를 뛰어넘어 개인의 역사와 관계되어 있다. 타인에게는 처절할 수도 있는 기억의 색이 나에게는 위로의 색이 된 각자의 경험에서 색에 대한 인상이 결정되었을 것이다.
나에게 블루는 그리움이다. 꿈과 이상을 향한 호기심이며 미지의 곳을 여행할 때 느끼는 설레는 마음이다. 너무 높은 이상을 향한 마음으로 인한 고독한 색이기도 하다. 흔히 우울함을 표현하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나에겐 깊고 푸른 하늘과 바다, 뜨거운 여름 짙은 초록색 사이에 얼굴을 내미는 달개비 꽃과 같이 청량감을 주는 희망의 색이다.
핑크는 화해와 너그러움의 색이다. 깊고 쓸쓸한 겨울을 살아내게 한 핑크는 따스하다.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버리는 다시금 시간을 돌아보게 하는 색이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사춘기에 이르면 유년기에 사랑해 마지않던 핑크를 유치하고 여성성을 드러내는 색이라고 외면하게 된다. 하지만 인생의 거친 풍랑을 지나고 내면을 마주하고서야 만난 자신의 비뚤어진 고집스러움에 용서를 구하는 색이다.
위의 두 색, 블루와 핑크가 나에겐 그랬다.
수많은 색들의 각각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색과 색의 만남에 주목하기 위해 단순한 ‘만곡의 띠’만 고집해 왔다. 두 다리를 얻기 위해 목소리를 포기한 인어공주 동화처럼 형태를 묘사하며 얻는 조형의 ‘쾌’를 색에 집중하기 위해 버린 지 십 여 년이 훌쩍 지났다.
그렇게 펼쳐낸 나의 ‘색 경험’을 통하여 이번 전시에는 블루와 핑크가 주인공이다. 컬러밴드의 반복과 차이로 만들어낸 화폭에 관람자의 색에 대한 경험이 중첩되어 어느 밝은 오후 자신의 찬란한 마음의 풍경과 조우하길 바란다.
■ 하태임
하태임 읽기, 사랑과 존재에 대한 날카로운 집착
지금 보는 작품들이 아름다운가? 단색조의 화면 위에 섬세한 색면의 그리드가 심연을 울린다면, 잠시 눈을 감고 작가에 대해 떠올려보자. 이미 25년차에 접어드는 하태임 작가는 어느 순간부터 한국 여성추상의 대표작가로 떠올랐다. 밀레니얼(Millennial) 이후의 패러다임 속에서 여성주의적 접근은 이미 퇴보된 미학처럼 들리겠지만, 미니멀리스트(혹은 추상표현주의) 작가로 분류되는 애그니스 마틴(Agnes Martin, 1912~2004)처럼, 절제된 화면과 서정적 감흥을 동시에 구현하는 하태임의 ‘이중조화(Double Harmony)’적 태도는 형식주의를 가로지른 내적 차원의 연구가 필요하다. 작가에 대한 대중적 신드롬과 형식미학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진짜 하태임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이는 ‘컬러밴드’라는 전형적인 타이틀에 작가를 가둬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이 글에서는 기존의 비평적 담론과 대중적 평가들은 잠시 유보하기로 한다. 인간 하태임에 대한 고른 시선을 견지했을 때만이, ‘오늘-여기’의 작품들이 ‘대가 하태임’으로 거듭나기 위한 하나의 숨고르기라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Double Harmony, 블루가 핑크를 만났을 때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그러나 차분하고 우울한 색 블루, 이상적이고 감성적인 그러나 정돈되고 꿈같은 색 핑크, 이 둘의 만남은 전혀 다른 세계의 충돌이자 텅 빈 세계(無心)를 채우려는 만물의 생동(生動)을 보여준다. 허실상생(虛實相生)의 미학, 그리는 행위 앞에 자기정체성을 세우는 하태임 작가는 명상과 반복의 차이 속에 ‘시간의 층위’ 이른바 자신의 흔적을 일기처럼 축적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제한된 두 색(Blue/Pink)은 작가가 자신의 의지로 만든 규율적 세계관이다. 아버지의 부재와 홀로 떠난 유학, 생을 고민해야 할 만큼 뜨거웠던 고통, 그토록 갖고 싶었으나 얻지 못했던 자유의지(Free Will)가 비로소 작품에 녹아든다. 존재의 결핍이 ‘하태임 되기’를 일깨웠다면, 예술의 충만함은 ‘하태임 읽기’를 유도한다. 작가는 “비극의 반대말은 희극이 아니라 일상”이라고 말한다. 오롯이 내가 주인인 삶, 개념화된 행위성은 곡선의 밴드를 타고 흐른다. 하태임의 곡선은 색에 담긴 일상이다. 직선을 포기하고 몸의 축에 따라 움직이는 ‘반 곡면의 밴드(Semi-curved color band)’는 자문자답(自問自答)하면서 명상하는 순간의 기록이다. 무위(無爲)와 인위(人爲), 편하고자 하면 소유가 되지만 억지로 갖고자 하면 혼란이 되는, 삶의 이치가 더블하모니 속에 녹아드는 것이다. 스스로 제한했음에도 자유로워진 색의 유영(遊泳)이, 만물이 스스로 그러한 것처럼, 억지로 하지 않는 무위의 미학으로 다가온다. 웃고 즐겨야 자기혁명을 이루듯이 작가의 오늘은 내일의 가능태를 머금고 성장하기 위한 발판이라고 할 수 있다.
하태임 읽기는 텅 빈 화면 위를 메워가는 날카로운 창조력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에게 순수 추상의 길이란, 평온해지고 색이 익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무한한 자유는 길을 잃게 만들지만, 통일된 법칙은 진정한 자유를 만든다. 하태임에게 컬러밴드는 숨이자 생명이고 등장인물이자 관계이다. 단순할 수도 흐트러질 수도 있는 그의 행위들은 25년간 탑을 쌓듯이 인생의 의미가 되었다. 현재 작업은 그렇게 경험하고 느낀 것들이 필터링된 것이다. 반복적인 노동을 통한 정화된 예술체험은 정지된 바탕을 깨고, 이원론적 가치들을 나란히 공존시킨다. 모더니즘 미술사를 돌이켜 볼 때, 추상미술의 등장과 번성은 새로운 과학문명에 부합하는 진보된 형식으로서 역사적 의미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작가에게 추상은 사실 새로운 발견이 아니며 과거의 규칙을 깬 자유의지일 뿐이다. 기존의 추상은 미개/진보 사이의 이원론적 가치체계처럼, 그것은 이성/감성, 문화/자연, 남성/여성, 추상/재현의 대립이 낳은 상상의 개념인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대립구도를 깨고 양성적 가치의 공존을 위한 ‘형식과 내용의 이중변주’를 선택했다. 이는 ‘하태임 읽기’가 기존의 추상미술이나 여성주의 미술로 구획되지 않을 때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단색화 논쟁에서 소모되는 단선적인 경로가 남성적 추상읽기로 대변된다면, 하태임의 작업은 수직이 아닌 수평적 확산을 도모하기 위한 변주의 가능성인 것이다. 이원론적 요소들을 조화시키는 ‘다원적 대안(中庸)’의 가능성, 하태임 읽기는 바로 획일화된 추상의 영웅주의 논리를 벗겨내야 만이 제대로 읽을 수 있다.
존재에 대한 질문들, Re-view & re-View
원래 하태임의 색은 문자로부터 유래했다.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구토에 관한 자전적 이야기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1995년 종로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 출품된 외롭고 쓸쓸한 자화상들, 자기화된 인물추상은 당시를 그대로를 드러낸 현재성의 표현이었다. 한국의 추상을 연 청화(靑華) 하인두(1930~1989) 작가. 해방 후 1세대 작가인 그는 김환기와 함께 한국 추상미술의 장을 열었고, 1957년 이후 한국적 앵포르멜 양식을 주도했던 핵심 인물이다. 1962년 악튀엘(Actuel) 동인으로 명실상부한 실험미술의 거장이 되었고, 70년대 이후 ‘혼불’, ‘만다라’ 등 한국 고유의 사색적 원형을 구심점으로 삼아 작업한 거장이다. 작품은 화가 자신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부친의 영향 속에서 성장한 하태임 작가는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어린 시기에 아버지를 잃어야 했다. 함께 떠나기로 한 프랑스 유학, 홀로 타지 생활을 고집했지만,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 아버지에 대한 상실감이 구토를 연상시키는 자화상으로 환원되었다. 시간의 축적은 보이지 않는 것들과 다른 차원에 대한 모호한 질문들을 그림에 사건으로 고스란히 기록했다.
이후 등장하는 관념성 있는 개념작업들은 문자를 지우는 행위와 연관되었다. 프랑스 교육은 작가에게 늘 “왜 그려야하는지”를 자문케 했다. 이응노가 현실적이고 동양적인 사유의 문자추상을 남겼다면, 하태임은 한국작가를 바라보는 당시 프랑스인의 시선들을 문자 속에 중첩시켰다. 파리 보자르(É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 이후, 익숙해진 프랑스어 속에서 “진정한 소통은 문자와 나의 관계가 아닌 나만의 그릇을 통해 걸러내는 과정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문자와 알파벳의 중첩들, 기호화된 어떤 것을 지우는 작업들, 주변의 기대가 만들어낸 상상의 세계관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인간 존재에 대한 이야기로 거듭났다. 통제된 상태 안에서 자아를 외부와 함께 본다는 인식은 ‘외부 형상성’으로 나아갔고, 이번 전시에 등장하는 ‘이중조화(Double Harmony)’의 원형을 창출시켰다. 나를 중심으로 한 세상을 발견하는 것, 구조화된 언어를 훼손(지우는 행위)하거나 불어와 한글을 통해 중첩시키는 행위들, 원래 가진 표피성을 파괴하고 의심했던 것이다. 알파벳의 첫 글자인 A의 상징성을 도려내거나, 유럽 박물관의 아카데믹한 갈색조의 화면들을 거세하거나 혹은 사전류(불한/한불사전)의 상식적 사이즈에의 저항은 ‘탈(脫)구조화된 시각틀’이 작가정신으로 환원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하태임 작가의 전체세계에서 관통하는 것은 ‘통로(通路)’이다. “그림은 소통을 위한 통로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들은 결국 그가 구상과 추상을 넘나든 계기가 되었다. 닫히고 열리는 관념화된 시각은 관념이 행위를 만들고 행위가 이야기를 만드는 세계관과 연결되었고, 지우는 행위의 시작은 의미를 부정하고 가능태를 여는 ‘컬러밴드’의 전조가 되었다. 귀국 후에도 문자를 그리고 지우는 행위성의 작업들은 이어졌고, 실천주의를 통한 통행은 감상자와의 소통으로 연결되었다. 관념적 기호들을 지우는 작업은 약속한 언어체계들, 이른바 한정하는 행위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작가정신의 발현이었다. 하태임 읽기는 사물을 관찰하고 거기에서 느끼는 흔한 감정들을 예리하게 잡아내는 인식과 연관된다. 사색(思索), 존재에 대한 치열한 생각들, 구토로부터 비롯된 비워내고 생성하는 순환의 미학은 그의 아버지가 펼쳐내고자 했던 치열한 자기 인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우리는 지금-여기로부터 하태임을 읽어야 한다.
“존재란 무엇인가. 끊임없이 주변의 사물에 관한 자신의 감정들을 써내려 간 기록들, 소통되지 않았던 단어와 문장들, 나는 지금까지의 생을 살면서 늘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지금 내가 있는 여기에 진짜 내가 있는 것인지, 그리고 나는 존재하는지 아니면 존재한다고 느낄 뿐인지, 끊임없이 쉬지 않고 생각한다.” - 작가 인터뷰 중에서
■ 안현정(미술평론가, 예술철학박사)
전시제목하태임 개인전 《Un Passage》
전시기간2020.06.17(수) - 2020.07.05(일)
참여작가
하태임
관람시간10:00am - 07:00pm
휴관일없음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가나아트센터 Gana Art Center (서울 용산구 한남대로 91 (한남동, 나인원 한남) 가나아트 나인원)
기획하단비
연락처02-795-5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