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시개요
아트비트갤러리에서는 2020년 2월 26일부터 3월 17일까지 김근중 개인전 ‘Natural Being’을 개최한다. 김근중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학사, 대만문화대학교 예술대학원 석사 과정을 거쳤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가천대학교 교수 퇴임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첫 전시라 더욱 뜻깊다.
이번 전시 제목은
이다. 작가는 전시를 통해, 선과 악중 선 만을 고집하는 분열된 주체가 아니라 스스로 악이라 부정하며 억압해왔던 자신 안의 타자, 미지의 세계를 이끌어내어 원래 선악이전의 온전한 주체로 현현하게 표현하고자 했다.
존재를 탐구하는 화가, 김근중은 여전히 존재 자체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을 멈추지 않고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이번 전시 또한 그의 평생 화업의 화두로, 해체하면서도 현상을 거스르지 않고, 순간의 포착 속에 자연스레 흘러가고 있다.
2. 전시주제
‘존재란 무엇인가?’
'세상에 선악이란 없다. 다만 선악이라는 생각만이 있을 뿐이다.'
인간이 삶에서 느끼는 고통은 상대비교의 이분법에서 온다. 선악의 이항대립적 구도는 인류역사와 괘를 같이하고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에덴에서의 추방은 선악구조의 시원을 간명하게 보여주고있다. 종교와 예술, 철학 등에 있어 에덴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지혜를 얻는 것이야 말로 인간의 삶에 있어 궁극과제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끊임없이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순간, 공간, 존재를 찾는다. 사람들은 종내 자연으로부터 그 답을 찾아왔다. 인간을 제외한 삼라만상 즉 자연에는 사실 고통이 없다. 그 자체로 현현하다 사라지는 과정만이 있을 뿐이다. 뜰 앞에 있는 나무와 꽃 그리고 잡초들, 풀벌레와 새소리 살랑거리는 바람과 햇살, 나아가 자연이 펼쳐져 있는 거기에 무슨 정해진 방법이나 길이 있겠는가? 혹은 되어져가는 우리 삶 그 자체에 무슨 문제가 있으며 고통과 행복이 있겠는가? 그러하기에 자연은 그대로 자연인 것이다.
김근중이 지향하는 Natural Being(존재)은 이렇듯 자연이 된 그 무엇을 말한다. 나의 마음이, 나의 몸이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상하좌우 경계나 틀이 없이 흐르는 상태, 선이 오건 악이 오건 나의 것으로 수용하는 존재 자체의 자유로운 모습이다. 그것이 꽃이 되었든, 추상이 되었든 아니면 개념이 되었든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 자체로 흐르는 것으로 존재한다. 삶에 있어서의 환희와 고통 모두가 생동하는 열린 존재의 지혜의 장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에 희노애락 모두가 선정(襌定)이요, 영적 축복이다.
영국 속담에 석달 행복하면 불행해지고 싶다는 말이 있다. 인간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선악이 적절하게 조응하는 삶, 현재 우리들의 삶처럼 그것이 작품에서 구현되는 것이 바로 작가의 작품이며 이번 주제 Natural Being이다.
2. 3.제작방법
김근중은 이번 전시의 작업을 두 가지 스타일로 진행하고 있다. 하나는 캔버스위에 돌가루를 바른 후 안료와 펄을 사용하여 제작했고 두번째는 캔버스 위에 석고붕대를 붙히고 안료와 펄을 사용하여 제작했다. 두 가지 모두 착색이 완료된 후 물을 뿌리며 수세미로 문질러 벗겨내어 최종마감색 밑에 켜켜이 쌓여 있는 색들이 얼핏 얼핏 보이게 만들었다.
3. 대표 작품
김근중의 20-2 작품은 꽃에 대한 내면의식을 추상적으로 표현했던 연장선상에서 꽃이라는 개체를 모든 존재들의 양태로 보고 그것들이 갖고있는 생태적 요소와 움직임과 주변상황 등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아무리 복잡하게 보이는 대상이라 하더라도 그 생물학적구조와 기능은 단순하다. 이러한 구조와 기능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면 활동 중에 야기되는 자생적움직임과 주변을 흐르는 공기와 바람, 습도와 기온 등 특히 예측할 수 없는 생명체들의 출현하면서 이루어 내는 생명력과 존재성이라 하겠다. 눈 앞에 보이는 대상을 통해 이러한 것들을 감지하며 무한한 상상력과 예민한 감성이 절로 발동되어 감을 관조할 때 마치 명상에 드는듯 하다.
이러한 존재성은 화면위의 흔적의 다소와 별 관계가 없다. 상징적으로 메시지만을 드러내면 된다고 생각한다.
두번째 작품 19-2는 삼라만상의 대자연의 무한한 갈피들, 곧 살아오면서 겪은 현실의 문제들, 현상들에 관한 것들이 켜켜히 쌓여 있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현실을 살아가면서 부딪는 수많은 일들, 목도하고있는 중에도 한 눈에 들어오는 풍경들과 사물들의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각양각색의 이야기들, 그러나 그것들도 일어났다 사라졌다 하기엔 실체가 없기에 있었다고 할 수도 없고 없었다고 할 수도 없는 겹쳐진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원래가 하나인 색과 공이 화면 위에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4. 전시서문
색면회화의 깊은 울림
김근중의 근작들을 청람(淸覽)하러 양평 청계리 산속 기슭에 자리한 작업실 가는 길에는 나뭇잎을 떨구어 낸 나무마다 겨울의 스산한 태세들이 가득했다. 필자는 그날, 작업실에서 정제된 색조 그러나 마음의 표정을 오롯이 담고 있는 다채로운 빛의 바다를 보았다. 대체로 청색, 보라색, 노란색, 붉은색 등으로 조율된 화면들은 미묘한 환영성을 창출하면서 나의 비평적 시선을 고정시켰다. 형식적으로 볼 때, 그의 이번 근작들은 가로줄의 부조적 겹침들이 빚어내는 시각적 환영성과 마치 하늘 혹은 우주 속에서 내려다 본 지표면의 흔적과 같은 형상들이 포치된 가시성/불가시성에 관한 중층적 구조화로 함축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이러한 표현형식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려는 주제의식(subject matter)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우리 마음속에 흐르는 변화무쌍한 색(色)의 세계, 즉 삼라만상(森羅萬象)의‘은유적 드러냄(metaphoric revelation)’이라고 말하고 싶다. 여기서 은유적(隱喩的)이라 한 것은 사물의 상태나 움직임을 암시적(暗示的)으로 나타내려는 문학적 표현을 지시하는 것인데, 김근중의 근작에서의 은유는 이러한 암시의 극단을 넘어서 관객들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가능성의 지평을 향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무엇보다 ‘본다’는 주체를 염두에 둔 오브제의 제시로서의 회화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연금술사처럼 물질적 질료를 예술적 대상으로 전환시켜 어떤 초월적 사유의 길로 열고 들어서게 하는 유혹의 지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하나의 도표로 압축하자면, [작가의 세계관의 표상화-은유된 오브제로서 작품-관객의 다기한 해석가능성]이 하나의 순환적 체계를 이루면서 상호작용을 가능케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상호작용을 가로지르는 작가와 관객과의 약속된 언어 혹은 사유의 오아시스는 각기 다른 자아(自我)의 이데아(idea)로의 항해지도이며, 내면을 향한 관조성(觀照性)으로의 권유(勸誘)라 달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앞서 언급한 비평적 표현 중 ‘오브제의 제시’라 말한 것은 그의 근작들이 수많은 덧칠 혹은 겹겹이 부착한 거즈의 응결된 집합체로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질료들의 가시성은 직관적으로는 색채의 향연으로 읽혀지지만,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은 수많은 덧칠된 색면의 레이어(layer)가 은닉되어 있다. 필자는 이를 축적된 시간의 다층성(多層性) 혹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부재증명이라 본다. 다시 말하자면 김근중은 우리의 현재는 흘러간 과거의 수많은 사연, 서사, 사유들이 표면화되지 못하고 ‘오늘(aujourd'hui)’이라는 존재성의 현존(現存) 혹은 표상(表象)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맥락에서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가《다른 곶(L'Autre Cap)》에서“새로운 곶이란 끊임없이 미끄러지면서 시간 속으로 그 모습을 다르게 드러낼 수밖에 없는 하나의 기호이며 상징이며 차연(差延, la différence)이다”라고 한 언급은 김근중의 근작과 관련하여 참조할 가치가 있다. 데리다는 나아가 우리의 곶(notre cap)을 넘어서 곶의 다른 곶(l'autre du cap)을 향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심지어 반대편 곶(anti-cap) 혹은 탈곶화(décapitation)의 형식, 기호 혹은 논리에도 따르지 않는 타자와의 어떤 동일성 관계까지도 도달해야 한다.”고 했다. 데리다는 이 책에서 유럽중심주의의 한계와 모순을 직시하면서 ‘오늘, 당신은 무엇을 하실 겁니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결국 <나>는 매일 어제와 다른 오늘의 <나>에 의해 변별되고 또한 타자들과의 차이를 통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나>를 김근중의 회화작품에 자연스럽게 대입한다면, 그의 작품은 결국 새롭게 그려진 작가인 <나>의 기호이며 상징이며 차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들이란 새로운 혹은 다른 곶을 향한 끝없는 내면의 소리인 셈이며, 우리는 그 작품이라는 물질적 표상 앞에서 그 개별적 차이의 근거들을 음미하는 것이 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김근중의 근작들은 "Natural Being" 즉,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회화적 사유의 또 다른 화신(化身)이자 이전의 곶을 벗어나 다른 곶을 향한 끝없는 항해라 할 것이다.
김근중의 근작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중국 돈황 막고굴 벽화에 매료되어 천착했던 미니멀적 형식들을 재소환하면서도 새로운 변주(變奏)를 시도한 것이다. 그가 작업노트에서 스스로 회고했듯이, 수묵풍경(1987~1990), 전통벽화의 재해석(1990~1995), 벽화의 미니멀적 시도(1996~2005), 모란의 현대화(2005~2014), 모란 및 꽃의 추상화(2014~현재)로 이어져 온 변주성의 산맥 속에서 배태된 것이다. 그러나 비록 회화적 문법이 달라졌을지라도 그의 평생 화업의 화두인“Natural Being" 이라는 기표(記標)는 대하(大河)의 숨결처럼 흐르고 있다. "우리는 과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그의 근작들은 이러한 화두를 품은 채, 보이지 않는 수많은 색면의 층위들 위로 마침내 정착한 마지막 색조로 우리들을 향해 묻고 있다. 세상의 삼라만상 역사 이래로 유전(流轉)해 온 우리 인간사의 궁극적 극락정토(極樂淨土)가 어디냐고. 그것은 당신의 이전과 이후를 통괄한 마지막의 ‘오늘’그 태어남도 사라진 바도 없는 무극(無極)의 경지에서 찾으라고. 김근중은 이러한 화두를 금강경(金剛經)의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마땅히 머무는 바가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에서 이끌어 내고 있다. 김근중의 근작들은 변화하고 생멸하는 인간의 필연적 존재성, 번뇌와 의문으로 가득 찬 자신의 삶에 대한 회화적 성채(城砦)들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가 빚어내는 색면회화의 유연(幽然)한 향연 속에서 문득 자신의 존재이유를 깨닫게 된다면, 그 순간 우리는 사바(娑婆)의 세계 너머, 그 어떤 ‘다른 곶’에 당도해 있을지도 모른다.
■ 장동광(큐레이터, 미술평론가) 2020년 1월 전시제목김근중: Natural Being
전시기간2020.02.26(수) - 2020.03.17(화)
참여작가
김근중
관람시간11:30am - 06:30pm
휴관일월요일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아트비트 갤러리 ARTBIT Gallery (서울 종로구 율곡로3길 74-13 (화동) )
연락처02-738-5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