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나만의 사랑은 순수하고 유일하다 믿곤 하지만 그것이 시작되는 모습은 우발적이거나 우연적인 특성을 보인다 또한 어떤 이유에서 시작되었건 간에 그 사랑을 자발적으로 철회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번의 키스가 존재의 균열을 낸다' 는 장 뤽 낭시(Jean Luc Nancy)의 표현에서 느껴지듯 한 번 시작된 사랑은 모든 것을 중지시키고, 산산조각 내어 전혀 다른 존재로 변화시키는지도 모르겠다.
온전한 나만의 사랑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작업은 크게 두 가지 형식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텍스트를 소재로 시각화한 작업 다른 하나는 사랑의 이면을 이미지화한 작업이다. 세 개의 전시 층에 나뉘어 전시되어 있는 17개의 텍스트 작업은 모두 노래 가사에서 추출한 사랑의 문구들로 이루어져 있다. 국가, 군가, 찬송가, 유행가의 가사에는 사랑의 대상에 대한 맹세와 다짐, 애증과 연민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이 노래들은 시대와 세대의 경계를 넘어 불리고 또 불러진다. 사랑을 담은 가사들은 반복되어 불리는 횟수만큼 변질되고 오염된 언어가 되며 또다시 누군가의 '나만의 순수'를 고백하는 수단으로 영원히 인용되는 반복의 속성을 보여준다.
전시의 또 다른 축인 이미지 작업은 텍스트 작업들 사이에서 조금은 다른 결의 모습을 보여준다. 텍스트 작업이 노래 가사에 녹아 있는 사랑의 맹신을 담고 있는 표현들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이미지 작업은 맹신의 이면 혹은 대척점에 주목하고 있다.
1층 전시장의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작업 <피에타> 는 미켈란젤로의 3대 걸작으로 꼽히는 조각상 이미지를 차용한다. 십자가에서 죽음 당한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에는 신과 인간 아들과 어머니 남성과 여성 등 복합적인 관계 사이에서 극복할 수 없는 사랑의 단절 죽음과 애도의 현장이다. 120개의 조각으로 나누어 분절된 이미지로 재구성된 <피에타> 는 작은 망점으로 또다시 파편화되어 있다. 이 작업에서 망점 기법은 분절되고 벌어진 틈을 보여주며 부식되어 파고들어 간 존재의 균열을 담아내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2층의 정면은 삼면화의 형식으로 걸린 <아마 우리는 다시 마주치더라도 서로를 알아보지는 못할 것입니다1)>가 차지하고 있다. 이 작업의 바다 이미지는 3개의 화면으로 나뉜 것이 아닌 같은 바다의 조금씩 다른 세 가지 다른 모습이다. 자신의 사상이 바그너로부터 기인한다고까지 했던 니체가 바그너에게 절교의 의미로 보낸 편지의 내용에서 인용한 작품 제목은, 채울 수 없는 틈을 공유하는 필로스의 관계를 자발적으로 청산하려는 순간 쓰여진 니체의 이 문장으로, 스스로 사랑의 범주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느낄 수 있다.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인지 불가의 상태가 되려는 니체의 비정함처럼, 무언가를 기억하기는 보다 무언가를 잊은 상태가 되어야 하는 분절된 바다는 어떤 이에게는 극복할 수 없는 거리에 대한 잔혹한 질문처럼 보인다.
16개의 이미지로 나열된 < Better than Future >는 '드로우 드로잉' 이라는 방식으로 제작한 작업이다. 주사위 놀이처럼 철판 위에 자석을 하나씩 던지고 자석을 붙여 놓은 채로 작업을 완성해가는 이 방법은 우연한 생성과 지속적인 흔적들 사이에서 별자리 이야기를 엮어내는 방식과 유사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이렇듯 최기창의 개인전 <한 번의 키스>는 우발적이고 우연적인 관계 맺음에서부터 연인과 친구 국가나 군대, 종교와 신에 대한 사랑의 흔적과 이면들을 동시에 내포하며 이중,삼중 겹쳐져 있다. ■ 최기창
전시제목최기창: 한 번의 키스 (One Kiss)
전시기간2020.02.11(화) - 2020.03.08(일)
참여작가
최기창
관람시간11:00am - 06:00pm
휴관일월요일 및 공휴일 휴관
장르설치
관람료무료
장소원앤제이 갤러리 ONE AND J. GALLERY (서울 종로구 북촌로 31-14 (가회동) )
연락처02-745-16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