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는 바다
금빛 바다에 꽃이 피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모호한 금빛 형상은 서서히 금빛 바다가 되었고, 다시 그 금빛 바다는 화려한 색채를 허락 받은 찬란한 꽃들을 피워냈다. 언제부터인가 가슴속에 웅크리고 있던 표출의 욕망 그리고 그것과 투쟁하면서 맺힌 고통. 어두운 시간은 밝은 빛으로 채워졌고, 단단한 가슴의 표면은 막 갈아놓은 봄날의 흙처럼 보드라워졌다. 홀로 이 세계를 떠돌며, 버리고 또 버렸기 때문이다. 버린 만큼 마음에는 방이 생겼고, 그 만큼 찬란한 에너지가 그 방을 채워줬다. 김지수가 꽃을 피워내기까지는 이렇듯 긴 시간과 깊은 고통이 함께했다. 이방의 땅에서 꿈을 좇으며, 예술적 행위의 필연성을 발견하려 했던 그녀에게 생의 참 이유와 작업의 참 목적을 알려준 건 결국 작업실을 가득 채운 음악이었고, 반야심경 사경이었으며, 희로애락이 펼쳐지는 뮤지컬 무대였다. 음악을 가득 채운 음 하나하나와 만나자 좁은 작업실은 거대한 공연장이 되었고, 세상 전체가 되었다. 반야심경을 수기로 하나하나 옮기는 그 행위가 거듭될수록 "모든 공허한 것들은 빛났고, 온갖 괴로움은 사라졌다(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그리고 온 감각을 열어 뮤지컬에 빠져들자 작품에는 새로운 내러티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상상 속에 존재하던 흐릿한 형상들은 잔상이 되더니 어느덧 구체성을 획득했고, 결국 그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주인공이 되었다. '나'를 버리자 수많은 '나'가 나타났고, 주체는 분열되어 수많은 주체가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쪼개어진 주체가 되어서야 세상 만물이 눈에 들어왔고, 그들이 펼쳐내는 수많은 이야기가 귀로 들렸다. 아파트 앞에 만개한 벚꽃의 속삭임까지도 감지될 정도로 말이다.
김지수가 초기 작업에서부터 몰두해온 '금빛'은 확실히 물질성보다 정신성을 띄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세의 연금술에서 비금속이 금으로 화하는 과정이 인간성이 원초적인 순수함을 획득하는 성스러운 과정으로 해석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고로 그녀의 '금빛'은 단단하면서도 유연하고, 화려하면서도 소박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금빛은 언제나 여러 의미를 동시에 머금어왔다. 화려함과 부유함의 상징이었고, 태양의 피였으며, 자애로운 신의 눈동자였다. 이 중에서 김지수의 금빛은 유형의 존재가 무형의 신적 존재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획득하게 된 숭고한 날빛으로 해석된다. 휘슬러의 <검은색과 금색의 야상곡>에서 암흑을 뚫고 소금처럼 빛나던 그 숭고한 금빛처럼 말이다. 휘슬러의 금빛이 김지수의 금빛과 조우하는 지점은 정확히 그녀의 경험 속에 존재한다. 영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경비행기에 몸을 실은 그녀는 하늘에서 내려다 본 밤의 에딘버러에서 지상의 금빛을 목격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어둠을 이기고 드러난 그 인공의 금빛에서도 자연에서나 얻음직한 숭고함을 느꼈다. 실제로 작가는 자신만의 금빛을 얻어내기 위해 많은 여행과 실험을 거듭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날빛을 캔버스 곳곳에서 존재성을 공고히 하는 점들로 박았고, 거친 바다를 달래는 살갗으로 촘촘히 덧입혔다. 그리고 드디어 그 금빛 바다 위에 실재적인 형상들을 구현해냈다.
김지수의 그간의 작업에서는 그 무엇도 들어설 수 없거나 등장한다고 해도 금빛의 찬란함을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보여줄 것들은 확실히 다르다. 현실적인 색채와 형상을 당차게 거머쥔 현실계의 요소들이 힘 있게 자신들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선 플라스틱 장식용 꽃 위에 색을 덧입힌 벚꽃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들은 색채나 형상뿐만 아니라 평면을 뚫고 당당하게 입체성까지 획득하고 있으니, 이전 작업과 비교하면 실로 엄청난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녀가 사랑하는 벚꽃은 희소성과 특수성을 지닌 '신비로운 꽃'이 아니라 4월이면 누구나 볼 수 있는 도심의 가로수에 피어있는 '주변의 꽃'이라는 점이다. 허나 그녀는 그 주변의 꽃들에 일종의 신성을 부여하면서, 개별적 가치를 재인식시켜 주고 있다. 세상 그 무엇도 소홀히 바라보고, 대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 듯 말이다. 고로 그녀는 다른 요소들보다 소박한 벚꽃에 수고스러움을 더했고, 엄숙함을 덧입혔으며, 그런 연유로 그 꽃들은 고요한 사찰의 문창살 무늬처럼 고귀하고 성스러워졌다. 사실 김지수의 작업 곳곳에는 그녀가 소중히 여기는 불교적 메시지들이 함께 머무르고 있다. 한 글자 한 글자 종이 위에 소중하게 써내려간 반야심경이 고스란히 마음에 박힌 것처럼 말이다. 고로 그녀의 작품에는 금각사와 석가탑이 등장하기도 하고, 봉은사의 장식적 요소들이 나타나기기도 한다. 그리고 <꿈>에서 작가는 필연적으로 반가사유상으로 화하기도 한다. 여기서 김지수는 머리 위에 짊어진 지구의 온갖 고뇌로부터 해방되었으며, 잠옷을 입고 단꿈을 꾸고 있다. 이렇게 어느 순간, 그림을 그리는 모든 행위는 명상이 되었고, 자유로운 상상의 여행이 되었다. 이의 단초가 되는 것은 금사(金絲)로 자수를 하며 만들어낸 조각배다. 모든 작품에서 하나같이 뱃머리를 앞으로 향하고 있는 조각배를 타고 작가는 <여행자>에서 유학 시절 즐겨 입던 빨간 트렌치코트를 입고 현실계를 벗어나 이상계로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로부터 아름답고 행복한 여정이 펼쳐지게 되었다. 정적이고 관조적이던 김지수의 작업이 뮤지컬의 재기발랄한 율동과 리듬을 얻게 된 것이다.
실제로 작가는 뮤지컬을 보면서, 작업의 영감을 얻고 있으며, 그 요소를 차용해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감미로운 러브스토리가 등장하며, 로맨틱한 결혼식의 한 장면이 펼쳐지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의 행복에 집중하게 된 계기를 뮤지컬을 통해 얻었고, 실제 삶에서도 이를 만끽하고 있으며, 작품에서도 과감 없이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발랄하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가 마지막 작품 <두 코미디언>에서 스스로 희극인이 된 것처럼 말이다. 또한 김지수의 회화는 뮤지컬의 총체예술성을 담고 있기도 하다. 작업하는 내내 향유했던 음악적 요소와 연극적 요소가 버무려져 그녀의 작업은 단순히 손끝에 머무는 스킬을 벗어나 각각의 장르와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보다 입체적이고 개방적이게 된 것이다. 그러한 연유로 김지수의 이번 작업은 바라보는 이들과도 활발하게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된 것 같다. 즉 누구나 그녀의 작품 앞에서 화자가 되고, 청자가 되며, 소외와 고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시인 송창호는 "우리가 이 지상까지 흘러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빛을 잃은 것이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 중에는 빛을 잃어버린 자들이 많다. 김지수는 우리가 잃어버린 그 소중한 '금빛'을 소생시키는 작가다. 그리고 누군가의 생을 진심으로 위로하듯 작품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인다. 그 위로와 치유가 이번 작업에서는 상상의 꽃이 되어 화사하게 피어올랐다. 아마도 김지수는 홀로 암흑의 그늘을 헤엄치는 것보다 타자를 위로하고 사랑하는 게 더 의미 있음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버린 만큼 채워진 강한 에너지로 이를 실천하고 있는 듯하다. 그 노고가 온전히 녹아내려 완성된 작품들이기에 그것들은 우리 마음을 깊숙이 어루만져 주고 있다.
김 지혜( 미학)
전시제목꽃이피는 바다
전시기간2010.05.05(수) - 2010.05.18(화)
참여작가
김지수
관람시간10:00am~19:00pm
휴관일일요일
장르회화와 조각
관람료무료
장소목인갤러리 Mokin Gallery (서울 종로구 견지동 82 목인갤러리)
연락처02-722-5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