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안갤러리 서울은 회화의 기본 요소인 점, 선, 면을 바탕으로 한 단순한 도형을 주조로 공간 전체에 다양한 형태의 공명을 유도하는 입체적 페인팅과 설치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홍정욱 작가의 개인전 < plano- >(플라노-)를 2019년 5월 16일부터 6월 29일까지 개최할 예정이다.
이번 전시 타이틀인 < plano- >는 평면을 뜻하는 ‘plan(플랜)’의 연결형으로서 뒤이어 형용할 수 있는 다양한 수식어의 조합과 변용 가능성을 유도한다. 즉 평철의(plano-convex)나 평면․구조적(plano-structural), 평면․용적의(plano-volumetric) 등 작품에 대한 인식 방향에 따라 여러 관점에서의 활용과 해석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홍정욱 작가는 회화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사각의 캔버스 형태와 이를 왜 항상 벽에 걸어야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 의문을 제기하면서 회화의 ‘평면성(flatness)’을 유지하면서도 공간 전체와 호흡할 수 있는 형태와 실현 양식에 대한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전통적인 회화의 개념은 3차원 공간을 재현한 ‘트롱프-뢰유(trompe-l’oeil, 눈속임)’로서 실제의 공간과 분리된 환영적, 독립적 공간을 의미한다면, 홍정욱은 회화의 기본 재료인 캔버스와 틀을 사용하면서도 그 의미와 존재론적 접근에 변형을 가함으로써 실질적인 입체 형태로서 실제의 공간 속으로 직접 개입될 수 있도록 한다.
회화의 지지체로 존재하던 캔버스의 틀은 삼각형, 오각형, 팔각형, 원형 등의 도형으로 다변화되어 그 자체로서의 조형성을 드러내며 그 틀의 내부 혹은 외부의 요소들과 합일을 이루거나 조응한다. 27개의 동일한 마름모꼴 틀로 이루어진 ≪Ulterior≫ 연작은 내부에 볼록한 형태의 틀을 부가하여 캔버스 천 위로 그 선이 두드러지도록 함으로써 원형이나 다각도에서 본 원근법적 정육면체와 같은 3차원적 입체 형상이 연상되도록 한 부조와 같은 회화 작업이다. ≪Infill≫ 연작이나 ≪Cacophony≫ 연작은 캔버스 천을 제거한 회화 작업으로 작가는 나무틀과 삼각형 또는 사각형의 유리, 줄, 발광 아크릴, LED 조명과 같은 상이한 재료들을 조합하여 형상과 색채, 공간과의 상호작용을 실험하고 있다.
안을 채운다는 의미가 강조된 ≪Infill≫ 연작은 작가가 특히 더욱 공들여 제작한 나무틀이 사용된 작품이다. 즉 큰 덩어리로 자르면 용이하게 획득할 수 있는 넓은 단면의 나무 기둥 대신에 1mm씩 각도를 기울여 절단한 작은 나무 조각들을 접착제로 붙여 연결하고 고정시켜 타원형, 원형, 팔각형의 틀로 완성한 것인데, 이는 결과적으로 나무 조각의 넓은 단면이 아닌 얇은 두께 부분이 우리의 정면이 되도록 한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복잡하고 세밀한 제작 과정을 통해 회화 캔버스의 넓은 부분만을 바라봐야 하는 일반적인 정면성에 대한 의식을 새롭게 환기시키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천이 제거된 열린 회화 공간은 내부의 의미를 다른 관점으로 정의한다. 나무 프레임과 그 안에 다른 톤의 색상과 형태로 겹쳐진 유리 도형은 일반적으로 회화 공간의 바깥으로 인식되는 외부의 벽은 물론 공간에 존재하는 다양한 출처의 빛을 투과시킴으로써 회화 공간의 외부적 요소들을 내부로 편입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유리가 아닌 발광 아크릴과 LED 조명을 사용한 작품의 경우 작가가 색채와 빛의 조합을 실험한 것인데, 빨간색의 형광 아크릴과 파란색 조명이 충돌하여 나무틀의 내, 외부로 형상을 부연하는 보라색 후광이 생성된다. 이 오묘한 보라색 조합에서 본래의 빨강과 파란색은 보일 듯 말 듯한 미묘함을 자아낸다.
≪Infill≫과 유사한 형식으로 보이지만 불협화음이라는 뜻의 ≪Cacophony≫ 연작은 작품의 개방 구조 내에서 이질적인 형과 색채가 겹쳐지고 충돌하면서 유발되는 총체적 작용을 더욱 강조한 것이다. 불협화음이라는 말의 본래 의미는 서로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불안정한 느낌을 주는 것을 말하는데, 원형의 나무틀 내부에 결합된 삼각형의 유리 도형과 선은 언뜻 보기에 구조적인 불안정감과 함께 투명성, 일시성, 나약함 등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율배반적으로 이러한 상이한 요소들의 ‘불안한’ 공존은 그것들이 상충되면서 유발하는 극단의 에너지와 역동성을 통한 ‘부조화의 균형’이라는 의미의 모순을 가능하게 하고 가시화한다. 실제로 이러한 균형감은 건축 분야와 마찬가지로 작가의 구조 역학에 대한 충실한 고찰과 실험의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상이한 요소들은 서로를 떠받치고 의지하며 결합하는 상호적 힘의 균형 상태에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갤러리 공간을 수차례 방문하여 공간의 이해도를 높이고 작품의 형상, 색채와 공간 사이의 관계를 탐구했다. 공간 안에 작품이 설치되는 장소를 함께 고민하면서 다양한 작품의 형태를 제작하고 변경하거나 도형과 도형 사이의 합치와 관계성을 탐색했다. 작가는 자신의 이러한 작품 실현 양식을 ‘진화’라고 정의한다. 즉 여러 시도를 통해 작품은 가장 적정화된 형태성과 최적화된 위치를 찾아가면서 최종적인 작품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과 같은 모더니즘 회화의 전시 장소를 일컫는 화이트 큐브(white cube)는 전면균질적(all-over) 회화 공간이 캔버스 틀의 경계를 넘어 벽 공간으로 확장되는 인상을 주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전시 공간 개념으로 일반화된 것이다. 이러한 화이트 큐브는 작품의 주목도와 가치가 가장 잘 드러날 수 있는 벽 중심에 작품을 설치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시선을 벽으로 제한한다. 또한 미니멀리즘(Minimalism) 작가들은 이러한 회화의 평면성과 정면성에 대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회화 작업을 포기하고 조각과 설치 작업으로 전환하였는데, 홍정욱 작가는 벽과 결합된 평면성이 강조된 회화라는 매체의 존재론적 본질을 고수하면서도 기존 갤러리 공간의 3차원적 건축 구조와 합일을 이루는 장소특정적(site-specific) 설치작품으로서의 특성을 동시에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특성은 앞서 언급한 연작들과 동일한 표제를 갖고 있지만 주목도가 낮은 전시 공간의 주변부를 작품의 의미로 더욱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작품들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다. 벽이나 천정의 모서리, 계단의 모퉁이와 같은 기존 건축 구조에 원형, 삼각형, 열린 입방체 등의 형태로 된 작품이 맞물리도록 설치함으로써 공간에 내재되어 있는 보이지 않는 잠재적 볼륨을 실재화한 것처럼 보인다. 작가는 이러한 작품을 통해 일반적으로 작품의 설치 장소로 고려하지 않고 우리의 인식의 바깥에 소외되어 있는 기존 공간 벽의 주변부, 외곽에 대한 의식을 일깨우며 그것을 작품 의미의 중심에 놓는다. ≪Cacophony≫ 연작 중 하나를 살펴보면, 벽의 중심을 비우고 그 주변부의 벽, 천장, 바닥에 작품을 배치했다. 다양한 도형과 색채의 부조와 입체적 회화로 구성된 이 설치작품은 관객의 시선을 아래, 위 그리고 오른쪽, 왼쪽 등으로 이끌면서 자유로운 선, 면, 입체의 조합에 대한 현상학적 지각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앞서 홍정욱의 작품은 진화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러한 관객의 지각 경험을 통해서 작품은 또 다른 의미로 진화하고 있다. 미니멀리즘은 작품의 현전성의 결여, 즉 작품 그 자체로서의 존재성보다는 관객의 내재적 지각 경험 안에서만 진정한 작품의 의미가 발현되는 즉물적 오브제로서의 문제점을 드러낸다면 홍정욱의 작품은 개별적 회화 작품으로서의 현전성과 설치작품으로서의 지각 경험의 내재성을 동시에 충족한다고 볼 수 있다.
전시 디렉터 성신영
전시제목홍정욱: plano-
전시기간2019.05.16(목) - 2019.06.29(토)
참여작가
홍정욱
관람시간10:00am - 06:00pm
휴관일일요일
장르설치
관람료무료
장소리안갤러리 LEEAHN GALLERY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2길 9 (창성동) )
연락처02-730-2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