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연을 모티브로 작업을 시작하나, 끝날 때가 되면 색채만 남는다. 나는 ‘색채는 곧 형태’라는 지론을 갖고 있다. 굳이 자연을 묘사하지 않아도 색채라는 덩어리가 캔버스에 발려지는 순간부터 또 다른 ‘자연의 형태’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가나아트는 손가락을 사용해 추상화면을 구축하는, 박영남(朴英男, b.1949-)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12년 개인전 이후 가나아트센터에서의 7년 만의 개인전으로, ‘흑백 회화’로 대중에 각인된 작가의 잠재되어 있던 다채로운 색의 표현이 담긴 신작,
연작을 공개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자 신작의 작품명이기도 한 ‘Monet before Me’는 ‘나’, 박영남이 있기 이전에 실존했던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에 대한 언급이다. 1860년경 프랑스에서 시작된 인상주의는 자연에 존재하는 빛과 색채에 대한 순간적인 인상(impression)을 회화로 남긴 미술 경향이다. 특히 인상주의의 창시자 중 한 명인 모네는 자연을 주제로 하여,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의 모습을 포착한 구상적인 회화에서부터 종래에는 두터운 마티에르로 표현된 수련 연못을 통해 추상으로 나아갔다. 해가 뜨면 작업을 시작해 해가 지는 시간이 되면 멈추고, 전등을 켜지 않은 채 작업실에 들어오는 햇빛에 의존하여 작업을 하는 박영남에게도 ‘자연’은 주된 작업의 영감이자 주제이다. 그렇기에 , 등 그가 사랑한 자연의 풍광과 날씨를 내포하는 작품명을 짓고, “캔버스는 곧 대지”라고 말하며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캔버스, 즉 대지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일군다. 그렇기에 그는 ‘자연’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자신보다 시대적으로 앞서 풀어냈던 대가에 대한 오마주(hommage)로서, 이번 작품의 이름을 모네에 헌사했다.
연작은 2016년부터 시작한 드로잉 작업에서 출발했다. 흑백 작업을 주로 하던 그는 판화지 위에 파스텔과 물감을 둥글리며, 종이 위에서 다양한 색이 섞이고 만들어지는 과정을 실험했다. 그리고 작가는 미완성인 채로 화실 벽에 세워져 있던 작품 위에 드로잉에서 사용했던 색들의 조화를 옮겼다. 그것이 연작의 시작이었다. 와 같은 이전 작품에서도 흑백 외의 색을 사용한 적이 있으나, 이는 캔버스를 분할하는 선인 그리드(grid)에 의해 구획되어 규칙적이면서도 기하학적인 패턴의 일부로서 존재했다. 그러나 신작 속 그리드는 뭉개지고, 색면 간의 경계는 무너져 서로 간섭한다. 유기체가 부유하듯 생동하는 무정형의 형태들 가운데, 자연의 빛이 색채로써 피어난다. 박영남의 그림은 그리드와 흑백이라는 형식적 제한에서 벗어나 더욱 자유로이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그의 신작이 이전까지의 작품과 단절된 것이라 볼 순 없다. 실패작이라 여기고 미완성인 채로 화실 벽에 세워 두었던 2012년의 작품이 신작의 전신이 되었던 것이 일례이다. 그렇기에 흑백 회화와 드로잉, 신작을 함께 구성한 본 전시를 통해 가 탄생하기까지의 여정을 시각적으로 관람자의 앞에 풀어내고자 한다. 2015년에서 2018년까지 그려진 흑백 회화에는 여전히 그리드가 남아있지만, 화면 속 선들은 진동하며 서로의 경계를 침범한다. 또한 흑과 백만으로는 규정할 수 없는 그 사이의 색 입자들이 화면에 남아 그의 전작에서부터 신작이 태동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되는 그의 드로잉 속, 종이가 곤죽이 될 정도로 거칠게 문대어진 물감이 만들어낸 질감과 색채로 구성된 화면은 신작의 축소판과 같다. 이를 거쳐 관람자는 다채로운 색감이 약동하는 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번 전시를 기념하여 출간되는 화집을 위해 박영남은 이제껏 모아둔 작업노트 속 한 구절을 꺼내었다. “그림. 무언가로 보이면 그것으로 족하다(Painting/If it looks like something else, it’s good enough).” 자연을 닮은, 그러나 자연을 재현한 것은 아닌 그의 작품 앞에 관람자들은 각자가 상상한 그 ‘무언가’를 발견할 것이다. 나무와 꽃이 본연의 색을 자랑하는 5월, 가나아트센터에서 박영남이 가꾼 연작을 감상하길 바란다.
■ 가나아트센터
천지창조, 그 시원의 순간을 전해주는 그림
- 박영남 전에 붙여
이주헌(미술 평론가)
I.
내가 방문했을 때 장흥 가나 아틀리에의 박영남 선생 작업실은 불이 꺼져 있었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마치 박영남 선생이 작업을 마치고 돌아간 뒤 내가 박 선생의 작업실을 방문한 것 같다. 그러나 때는 오전 11시. 박 선생은 좀 더 일찍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수십 년째, 작업할 때는 불을 켜 놓지 않아요.”
박영남 선생은 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에만 의지해 작업을 한다. 인공광과 달리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광, 게다가 빗각으로 들어오고 그 양도 매우 제한되어 있다. 그림 그리는데 불편하지 않을까?
“익숙해져서 아무런 불편이 없어요.”
화가들은 빛에 매우 민감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빛의 밝기나 색채, 각도, 직·간접성 등에 따라 그림이 전혀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가들은 대체로 작업실 공간의 빛을 자신이 선호하는 상태로 균일하게 유지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박영남 선생은 변화무쌍한, 그것도 제한된 양의 자연광에만 의지해 그림을 그린다. 그러니 해가 지면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다. 여름이면 오후 6~7시, 겨울이면 그보다 좀 더 일찍 ‘퇴근’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
인공광이 없는 그의 작업실은 처음에는 다소 어둡게, 그래서 적적하고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느낌은 점점 안온하면서도 아늑한 것으로 바뀌었다. 공간에 일률적인 빛이 없어 오히려 풍부한 뉘앙스를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그림 자체가 다채로운 뉘앙스의 덩어리인데, 이렇듯 작품 생성의 모태(母胎)가 되는 공간부터 그런 특질을 지니고 있었다. 불을 켜지 않는 그의 태도에 점차 공감이 갔다.
이번 전시에 그는 크게 두 가지 시리즈를 출품한다. 하나는 ‘달의 노래’ 연작이고, 다른 하나는 연작이다. 전자는 흑백, 후자는 컬러 작품이다. 박 선생의 작업실에 들어섰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벽에 세워진 대작 세 점이었다. 한눈에 봐도 이전의 대형 흑백작품 시리즈인 와 크게 달랐다. 는 기본적으로 ‘그리드’ 혹은 수평, 수직의 존재를 의식하게 하는데, 연작은 그런 조형패턴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다. 이지적인 요소가 많이 덜어지고 감성적인 요소가 더 풍부해진 그림이다. 짓이겨지고 부서져 가루로 점착된 목탄은 먹의 심원함을 느끼게도 하고 우주의 광활한 풍경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는 드로잉 작업에서 출발한 그림이다. 판화지 위에 몽당 파스텔들을 손으로 둥글려 시작된 드로잉은 캔버스 위에 안료를 바르는 작업으로까지 나아갔다. 그 풍부하고도 미묘한 색채의 교향곡은 컬러의 잠재력을 최대로 발휘한 근대의 대가 모네를 떠올리게 한다. 어릴 적 그의 아버지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은 서양화가 함대정 화백이 그의 집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고 자랐던 그로서는 서양화의 다양한 컬러가 거의 생래적인 것으로 몸 안에 스며들어 있는 듯하다. 추상화가로서 늘 기원 혹은 근원을 향해 나아가던 그가 자신의 조형적 뿌리를 돌아보았을 때 흑백보다 더 아래에 있는 컬러를 외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마침내 그 컬러를 최고로 분출할 때가 왔고, 연작은 탄생했다.
II.
추상화는 본질적으로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그림이다. 그것이 자연의 순수한 구조나 원리든, 인간 내면의 정신이나 정서든, 혹은 신적, 초월적 영역의 풍경이든 추상 화가는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적으로 드러내어 우리로 하여금 눈앞의 현실세계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를 엿보게 한다.
이처럼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화가로서 박영남은 그만의 독특한 조형기법을 구사한다. 붓을 쓰지 않고 손에 직접 안료를 발라 그리는 것이다. 미술을 흔히 시각예술이라 하지만, 그는 시각뿐 아니라 다른 감각도 매우 중시한다. 손으로 그림으로써 촉각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도 그렇고 시각의 전일적 지배를 의도적으로 피하려 한다는 점도 그렇다. 이는 그가 창작에 공감각적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매우 인상적인 부분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그는 변화하는 자연광에 의지해 그림을 그린다. 뿐만 아니라, 화포를 바닥에 눕혀 놓고 그림으로써 그림의 전체상을 파악하는데 스스로 한계를 둔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작품이 백 퍼센트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캔버스 주위로 돌아가며 그리니 신체에 가까운 부분과 먼 부분 사이에는 보는 각도나 비례, 사이즈 등에서 큰 차이가 난다. 다양한 시각적 차이에 따른 불명확성을 경험하며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다. 관객이 자신의 그림을 볼 때 느끼는 시각 경험은 작업을 멈추고 그림을 벽에 세운 뒤에야 비로소 가질 수 있다.
이렇게 시각의 능력은 제한하는 반면, 촉각의 잠재력은 최대한 활용한다. 목탄이나 안료는 그의 손을 통해 신체가 가하는 다양한 힘과 마찰, 압력을 받고 다채로운 표정으로 화포에 정착된다. 그리는 동안 그 결과가 어떻게 귀결될지는 그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특히 몽당 파스텔을 한꺼번에 여러 개 굴려 색채를 빚어낼 때는 상상도 못했던 색깔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런 그의 조형기법 앞에서 나는 불현듯 시각장애인들을 떠올렸다. 시각장애인들은 세계를 볼 수 없다. 그러나 촉각이나 청각 같은 감각은 비시각장애인들보다 훨씬 발달해 있다. 비시각장애인의 경우 눈을 가린 뒤 지팡이를 주고 이동해보라고 하면 설령 익숙한 공간이라 하더라도 큰 두려움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시각장애인들은 시각 외의 감각을 매우 능숙하게 활용해 보다 쉽게 오간다. 특히 지팡이를 통해 얻은 촉각적 감각으로 공간의 형태와 성질을 훨씬 명료하게 지각한다.
박영남은 시각장애인들처럼 예민하게 자신이 표현하려는 세계를 촉각의 힘에 의지해 손으로 더듬어 찾아간다. 그의 손 운동은 비록 제한된 화포 위에서 펼쳐지는 것이지만, 그것만 느끼는 게 아니라 현실 너머의 비가시적인 영역까지 섬세하게 지각하고 파악한다.
사람들이 회화를 평면이라고 하지만, 생각해 보자. 진짜 평면으로서의 회화라는 게 존재하는가. 지금 눈을 감고 눈앞의 평면적인 사물을 더듬어보라. 책과 책상, 종이, 헝겊, 컴퓨터 화면, 그 무엇이어도 좋다. 동일한 질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다 질감이 다르다. 이는 그 평면이라는 것들이 제각각 다른 요철들을 갖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고, 사실상 입체라는 점을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게다가 화포 위에 물감이 발리면 일반적으로 그 요철의 진폭은 더욱 커지고 다양해진다. 관념은 그것을 평면으로 의식한다 할지라도 감관은 부지불식간 그 요철과 물성을 예민하게 감지한다. 그 사이에 풍부한 뉘앙스가 존재하는데, 박영남은 바로 그 뉘앙스를 다채롭게 활용해 우리로 하여금 저 무궁무진한 ‘너머의 세계’까지 포착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그림 앞에 선 우리는 가능한 진득하게 그 그림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비록 우리의 손을 갖다 댈 수는 없지만, 모든 감각을 동원해 그의 그림을 느껴볼 필요가 있다. 다른 감각이 보다 활성화될 수 있도록 그의 그림 앞에서 눈을 감아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떠 보자. 단순한 시각적 대상물에 그치는 것이 아닌 그의 그림은, 그 안에 광원을 갖고 있는 양 스스로 빛을 발하는 느낌마저 준다. 이 땅에서 저 먼 성단(星團)을 바라보는 느낌, 혹은 저 높은 하늘에서 까마득한 대지를 바라보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일종의 천지창조를 목격하는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좋은 예술작품으로 인해 감동을 받을 때는 시각이나 청각, 어느 한 감각이 아니라, 온몸의 모든 감각이 동시에 열리고 동시에 떠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작은 우주가 우리 안에서 새로이 창조되는 것이다. 손으로, 아니 온몸으로 그리는 박영남은 그 울림의 계기를 충만히 제공해주는 화가다.
III.
“내 그림은 일종의 ‘자기복제(self-replication)’입니다.”
박영남은 생명체가 스스로 복제의 과정을 거쳐 진화해왔듯 자신의 그림 또한 그렇게 진화하고 있다고 느낀다. 사람들은 예술가가 예술작품의 창조과정을 온전히 다 통제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화가들, 특히 추상화가들 가운데는 그림이 스스로 창조의 주체가 되어 자신을 창조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수 있다. 아니, 그림이 어떻게 스스로를 창조하는가? 그러나 로버트 마더웰은 말했다.
“내가 반을 그렸고, 그림이 그 스스로 반을 그렸다(I should also say that I half painted them and they half painted themselves.).”
잭슨 폴록이 한 다음과 같은 말도 유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림은 그 스스로의 삶이 있다. 나는 그것이 이뤄지도록 할 뿐이다(The painting has a life of its own. I try to let it come through.).”
박영남은 자신의 그림이 스스로 진화하므로 그 그림에 대해 자신은 아무런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한다. 그만큼 그는 의식으로 작업을 통제하려 하지 않고 무의식에 많은 것을 맡긴다. 그런 까닭에 살아오면서 그가 겪어온 많은 경험들과 기억들, 추억들이 그의 무의식 속에서 저류로 흐르다가 창조의 순간 화면 위로 마구 분출하는 것이다. 이때 그의 손에 의해 만져지고 비벼지는 안료의 알갱이들은 그 기억과 추억을 잉태하는 수정체들이 된다. 그림은 그렇게 그의 기억과 정서를 품은 그의 또 다른 몸, 그의 또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가 손으로 작업하는 행위에서 ‘섹슈얼리티’를 느낀다고 말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그는 단순히 대상을 베껴 재현하는 예술가가 아니다. 순수하게 개념과 아이디어를 전하는 데만 관심이 있는 예술가도 아니다. 그는 안료를 두들기고 비비고 문질러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 무언가(something else)’를, 그가 운명적으로 표현해야 할 ‘그 무언가’를 생성해 우리 앞에 드러내놓는 예술가다.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잉태되는 과정, 곧 ‘성육신’의 과정이 필요했듯 박영남의 ‘그 무언가’도 그 나름의 고유한 섹슈얼리티 과정을 거쳐 우리 앞에 ‘육화’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게 몸을 입은 그의 무의식은 우리의 무의식을 건드리는 힘이 있다. 생생한 실재로서, 우리의 이성과 관념이 반응하기도 전에 우리의 무의식 저 깊은 곳에서부터 정서적인 반응이 먼저 일어나게 한다. 우리가 보고자 하나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세계, 그는 그것을 보여준다. 누구도 본 적이 없어 설명할 수 없지만, 보면 알 수 있는 것, 그는 그것을 형상화한다.
탐방을 마치고 늦은 점심을 하기 위해 박영남 선생과 함께 작업실을 나섰다. 작업실 문이 닫히고 공간은 내 눈에서 가려졌으나 왠지 공간의 그 독특한 표정은 계속 눈에 남았다. 은은한 빛과 그만큼의 어둠을 품은, 저 스스로 사유하는 듯한 공간. 작가가 자리를 비워도 공간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계속 할 것 같았다. 그의 예술이 보여주는 그 풍부한 뉘앙스는 그렇게 공간에서 먼저 생성되고 있는 것 같았다. 진정한 창조자는 홀로 창조하지 않는다. 공간과 함께 창조한다. 그 공간을 대표하는 이름은 영감일 수도 있고 열정일 수도 있고 관조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거기에서는 무언가가 발효되거나 배양된다는 것이다. 박영남 선생의 공간은 그런 기운으로 충만했다. 그의 캔버스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전시제목박영남: Monet before Me
전시기간2019.05.17(금) - 2019.06.16(일)
참여작가
박영남
초대일시2019년 05월 17일 요일 05:00pm
관람시간10:00am - 07:00pm
휴관일없음
장르회화
관람료.
장소가나아트센터 Gan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평창30길 28 (평창동, 가나아트센타) )
주관가나아트
연락처02-720-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