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축적된 균열에서 삶의 생명성을 담아내다
장준석(미술평론가, Space inno 관장)
현대 문명이 낳은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등의 구조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거칠면서도 단단한 표면을 이루며 세월의 흔적과 더불어 많은 이야기들을 함축하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웅장하고 깔끔한 이 대형 축조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도시 안의 흉물스러움을 한꺼번에 보여주기도 하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균열이나 흠집은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들은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할 것만 같은 이 현대 문명의 산물들에서 생활의 손때와 삶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박상남은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자연 발생되는 도시의 흔적들에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지니고 그 속에서 인간의 숨결과 자연의 위대함을 발견하고자 한다. 파리에서 미술 공부를 할 무렵 그는 유학 생활을 통해서 삶에 대해 깊이 사색하였던 것 같다. 어느 날 아침에 거리에서 커피를 마시던 그는 길바닥의 물뭍은 비둘기 발자국을 보며 흥미로운 동선을 발견하였다. 비둘기 발자국은 햇살 속에서 금세 사라졌지만 이 아름다운 동선이 마음에 와 닿았다. 동선의 이미지는 도시의 길바닥이나 콘크리트의 건축물들에서 나오는 균열 자체와 더불어 박상남의 작품 제작에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하게 되었다. 박상남은 이처럼 하찮은 것 같은 길거리의 이미지를 조형화시키는 작업에 몰두해왔다. 특히 현대문명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건물의 콘크리트나 아스팔트 등에 자연스럽게 생긴 균열이나 흠집에서 독특한 작업 모티브를 발견하여 이를 밀도 있게 조형화시켜 사각의 캔버스 안에 함축시킨다. 건물이나 도로의 크랙을 모티브로 하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는 재료적인 특성이 단순하게 드러나지만은 않는다. 작품에서 질료와 함께 드러나는 형식은 단순히 형식의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 내용을 위한 형식으로 존재한다. 세월의 흔적이나 삶의 흔적이라는 의미 있는 내용을 간직하면서도 시각적인 깊이감이나 기교에서 비롯된 조형미가 공존하는 동시에 삶의 리얼리티를 담아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러기에 그의 색이나 추상성을 지닌 형태들은 현대 문명의 산물이라는 재질적인 가치를 지닌 상징적 구성 요소로서 생각의 장을 여는 장치이자 대화를 위한 조형이라 하겠다. 그는 현대의 건축물이 시공 속에서 변질되는 시각적인 화두를 제공하기 위해 실재하는 듯한 콘크리트나 오래된 거리의 균열 등을 과감하게 하나의 작품 공간에 압축시키며, 그 이미지를 조형 언어를 통해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때 부각되는 이미지는 단순한 외적 형태라기보다는 내적이며 정신적인 존재를 강하게 환기시켜 준다. 이 정신적인 존재는 현대 문명이 낳은 콘크리트가 자연 속에 동화되어 자연의 이미지처럼 인간 친화적으로 탈바꿈한 모습들이다. 그러기에 작가의 최근 작품들은 외관상 은은하고 깊이감이 흐르며 고풍스럽다. 그의 작품에서는 이처럼 근원적인 깊이감과 스케일 및 현실적인 건축의 재질이 회화적 조형적인 이미지로 환원되어 흥미롭다. 이는 의도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재료나 질료적인 의미가 농밀한 표면의 축약으로부터 시공을 초월하여 자연의 부산물처럼 실재하는 듯 드러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러기에 박상남의 작업은 현대문명의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 자연 발생적이면서도 인위적인 일련의 현상들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그 형태 자체를 미적으로 투영시켜 알 수 없는 내면에 있는 조형적인 존재를 미적으로 이미지화하는 것이다. 작가는 인위적인 건축물 등에, 세월의 흔적으로 드러나는 이미지와 절대적 진리라 할 수 있는 존재를 담아 조형화시키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작품은 마치 오래된 건축물 속에 함축된 세월들이 세상에 드러나며 새로운 빛을 보듯 함축적이면서도 투박하고 은은한 특성을 지닌다. 시공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삶과 자연으로부터 비롯된 진리와 세월의 흔적들이 오롯이 조형적 이미지로 승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세월의 흔적들을 함축한 여러 건축의 산물들은 작가의 독특한 감각과 개성으로부터 비롯된 그만의 조형 세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초감각적인 시공을 새롭게 인식하고 그것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간들을 향유하고자 부단히 노력해왔다. 그리고 인위적인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견지하고자 많은 노력을 해오면서, 그동안 관심을 가져온 과거의 시공으로부터의 이미지와 엑기스를 담고자 하였다. 이처럼 단순해 보이면서도 상상력이 풍부한 작품의 이면에는 복잡한 내적인 의미가 자리하고 있다. 이 의미는 내면으로부터 충만한 시공간의 신비와 자연의 비밀을 간직한, 다양한 각도에서 드러나는 생명성을 담아낸 실험성이 다분한 이미지라 생각된다. 그러기에 여러 인공물들이나 건축물들의 균열과 파손의 형태 및 이미지는 절대적 존재로 나아가는 또 하나의 표현 수단이자 또 다른 세계와의 연결 고리라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거리의 콘크리트 바닥 균열과 석조 혹은 퇴화된 인공 건축물의 벽면을 매개로 하면서도, 이를 통해 더 많은 관조적인 상상과 가능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예술세계로 통할 수 있는 연결고리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박상남이 표현하고자 하는 현대 건축물의 균열 등의 흔적들은 그 자체로서의 재질적인 표현이라기보다는 그것들을 조형적으로 극복한 가운데 이루어진, 현실에서 벗어난 상상과 자유함의 실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현실을 벗어난 자유함 속에서 비롯된 조형세계인 만큼, 드러나는 표현 역시 깊이가 있으며 자유롭다. 여기에는 미적 감흥과 감성이 무의식적으로 발현되어 하나의 무한한 이미지를 담은 생명력을 축약하고 있다. 시각적으로 흥미를 느끼게 할 정도로 오래된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지만, 진짜 현실에 존재하는 느낌을 표현하려고 했는지, 아니면 이들의 이미지를 통해 시공을 초월하는, 세상 저 너머에 있는 실체와 하나가 되고자 했는지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처럼 박상남의 조형은 자신의 삶 너머에 있어 보이지 않는 실존을 찾아 나서는 작업이다. 현실에서의 내가 아닌, 현실 너머의 진실이 그의 작품 속에 배어있는 것이다. 아스팔트나 시멘트 등 차가운 것을 통해 인간의 따스함을 찾고자 하는 그의 작업 세계는 다분히 진취적이며 실험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견고하면서도 오랜 시간의 흔적들로 이루어진 터프한 표면 밀도는 심층으로의 침투를 거부할 만큼 깊이가 있고 은은하다. 이것은 단순한 시각적인 효과나 흥미를 유발하는 차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작품 자체의 완성도나 작품 속에 존재하는 대상들의 필연성이나 개연성, 혹은 상상력이나 추진력 등이 작가가 의도했던 대로 진행되지 못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들의 진실과 실체를 표출시키는 예술성을 작품 속에 함축시키고자 미적 질서와 존재를 확인하는 시간들을 끊임없이 갖고 있다. 이처럼 실재하는 듯한 형태 사이로 추상적인 패턴이 공유되는 가운데 펼쳐지는 이 존재의 신비로움은 곧 물성의 깊이를 가늠하는 것이 될 것이며, 진리 자체와의 소통이자 물 자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제목박상남: 보행선물 Walking present
전시기간2010.04.27(화) - 2010.05.11(화)
참여작가
박상남
관람시간10:30am~19:00pm
휴관일일요일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빛갤러리 VIT GALLERY (서울 종로구 소격동 76번지 인곡빌딩 B1 빛갤러리)
연락처02-720-2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