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유리상자 첫 번째 전시, 전시공모 선정작 「유리상자-아트스타 2018」Ver.1展은 회화를 전공한 홍정욱(1976년생)의 설치작업 ‘nor’입니다. 이 전시는 공간을 수용하는 입체적 회화 혹은 확장된 회화의 논리를 제안해온 작가의 최근 작업 보고서입니다. 작가는 자신이 탐구하고 경험한 회화적 논리의 확장, 즉 전시 공간의 형태와 주변 조건 등 상황 전체를 그림의 화폭으로 설정하고, 평면회화의 표면에서 점, 선, 면, 색채 등 회화의 기본요소를 분리하여 캔버스 틀의 변형과 함께 해체하고 재구축하는 기본으로서의 회화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회화의 본질이 세상과 자연의 원리, 인간과의 관계성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어느 한 방편에 귀속된 것이 아니라 서로 내포된 것이라는 예지叡智적 해석과 새로운 변화와 또 다른 균형의 가능성을 시각화하는 것입니다. 또한 지금, 여기의 서정적 상태狀態를 발견 가능하도록 오랜 시간동안 보이지 않는 이면裏面을 탐구하며, ‘진화’를 진행해온 자신의 미술행위가 관객과 만나서 서로 ‘신뢰’하게 되는 시․공간적 상상想像이기도합니다.
이번 전시는 우리시대 예술의 어느 지점과 삶의 어떤 상황에 대처하는 작가 자신의 ‘다름’에 관한 태도들을 조형화하려는 미술 설계를 사방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상자 공간에 담으려는 제안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도(또한) ~아니다’라는 의미의 부정 논리합에서 빌려온 전시명, ‘nor’는 건물의 내부도, 외부도 아닌듯한 이곳, 유리상자 공간에서, 평면회화로부터 입체로 진화해온 자신의 조형적 탐색과 보이지 않는 것에 가치를 두는 ‘신념’을 통하여 미술을 행위하며 과정의 가치를 기억하려는 명제입니다. 이 명제는 ‘faith’와 ‘infill’, 이 두 가지의 설계를 또 다른 하나의 공간에 구현하는 시도에 기여합니다. 별을 닮은 200×200×200cm크기의 ‘faith’는 평면에서 공간 속 입체로 진화하는 회화의 절정처럼 보입니다. 시간차를 두고 여러 색상의 빛이 변화하며 은은하게 내뿜는 빛 덩어리 ‘faith’는 수공으로 정교하게 다듬은 정12면체 나무구조 틀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 구조물 표면의 5각형 형태와 5각형 밑면에서 시작하여 또 다른 꼭지 점까지 그림을 그리듯 직선과 곡선으로 연결되어 솟은 삼각뿔 형태는 서로 자석으로 결합하여, 공학적인 이성의 형식 논리가 유기적인 감성의 빛으로 발산하는 상징처럼 천장에 매달려 있습니다. ‘신뢰’, ‘신념’, ‘바램’ 등 인간의 희망과 신앙을 대변하듯 유리상자 공간의 중심, 높은 곳에 위치하면서, 전시공간과 멀리 떨어진 주변의 거리에서도 밤하늘의 별처럼 관찰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닥에는 ‘공간을 물들이다’는 의미의 3가지 ‘infill’(76×103×105cm, 76×124×47cm, 38×57×43cm)이 별을 따라 수행한 3개의 개체처럼 ‘faith’와 조응하듯 위치해있습니다. ‘infill’은 화면의 표면이 아니라 이면에 채색된 핑크와 연두 등 형광색이 자연스럽게 반사 빛을 발하는 현상에서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에 대한 작가의 감성이 스며있고, 평면 화면을 면분할하여 구성하듯 입체적인 선과 면으로 개체를 구축하면서 평면의 표면 내부로부터 곡선의 입체가 돌출되는 평면회화의 진화 과정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홍정욱은 ‘nor’ 상태처럼 자신의 작업을 통하여, 회화와 조각, 이성과 감성, 현상과 실체, 균형과 불안정 등을 제시하고, 우리가 공존하며 대면하는 불완전한 현실 시․공간에서 근원적인 세계의 균형을 획득하려는 에너지의 흐름을 과정의 가치와 함께 제안합니다. 적합한 작업 재료를 선택하여 자르고 갈아서 붙이고 입히는 수공의 작업 과정, 또 점과 선과 면을 연결하여 작은 단위 덩어리를 만들고, 이들을 결합하여 커다란 전체 덩어리를 만드는 과정, 그리고 그 위에 색채와 빛을 더하는 작가의 미술행위는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동원해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또 다른 무엇을 찾는 창조적인 ‘놀이’에 다름 아닙니다.
눈앞에 펼쳐진 유리상자는 점, 선, 면에서 입체로 나아가며 조형의 본질을 찾아가는 작가의 미술행위와 그 이면에 충만하게 깃든 세계의 원리를 발견하고 참조하려는 태도이며, 인간 삶의 변화 과정에 관한 정서적 균형의 기대입니다. 가치 있는 과정으로서 다름의 경험을 기억하며 현재의 균형을 회복하려는 이번 유리상자는 미적 신념을 소통하려는 예술의 가치를 떠올리게 합니다.
■ 봉산문화회관 큐레이터 정종구
nor
‘공간(空簡)에 면(面)을 두다.’
‘nor’의 사전적 의미는 ‘~도(또한) ~아니다’이다.
본인의 작품도 보는 바에 따라 2차원의 평면도, 3차원의 입체도 아닐 수 있다.
이것은 역(易)으로 2차원의 평면도 내재하기도하고, 3차원의 입체도 내포할 수도 있다.
낱장의 종이를 한번 접어 세우면 그것이 평면일까? 입체인가? 라는 단순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의문처럼, 작품이 놓이는, 보이는 공간과 시간에 따른 다른 관계 속의 이면(裏面)을 탐구하는 것이 본인의 작업이다.
■ 작가 홍정욱
존재와 시간, 그리고 공간
처음 작가의 작품을 만났던 것은 영국에서 뉴 컨템포러리스(New Contemporaries)¹ 라는 영국에서 젊은 유망 작가에게 수상하는 전시에서였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2018년 한국에서의 작가의 작품세계를 접하며, 이 글에서는 2008년에서 2018년 현재의 홍정욱 작가의 작품을 통해 그가 사회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가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물음
홍정욱에게 작업한다는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적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2003년 첫 개인전 이래 세상과 인간의 관계성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채택했던 조형언어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이해할 수 있다. 사회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작업의 과정으로 제시한다. 관객이 만나게 되는 선, 색채, 빛, 나무와 자석을 이용한 조형적인 설치물은 그가 세상을 향해 이야기하는 언어로 작용한다. 처음 작품을 시작했을 때부터 작가는 회화의 기본인 사각의 캔버스에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그 질문의 진화는 캔버스를 왜 벽에 걸어야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져 2017년 경기도 미술관 <이면의 탐구자 Inside out> 전시에서 작품을 천정에 설치하는 시도로 이어진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본질을 ‘현 존재로서의 심려’라고 하였다. 여기서 현 존재는 하나의 세계 안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구현하려고 하면서 다른 존재자들과 관계하면서 존재한다. 하이데거는 그런 지각과 이론적인 인식 이전에 사실은 우리가 타인들과 관계하면서 우리들은 사물들을 이해하고 파악하고 있다고 본다. 오히려 사물들을 눈앞의 대상으로 주체화시키지 않고 사용할 때 그 사물들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과 더불어 살며 이 관계에서 갈등의 문제는 불가피하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기본 물음에는 “타인들과 함께”라는 말이 이미 포함된 것이다. 타인과 함께 있는 세계인 것이고 안에-있음은 타인과 더불어 있음[공동존재]을 의미한다. 타인의 세계 내부적인 자체존재는 공동현존[함께 거기]에 있음이다.² 작품에는 인간의 구체적인 형상이나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제안 혹은 이미지는 사용하지 않았다. 다만 작가의 작품을 진행하는 과정 과정에는 작가의 사회의 구성원이 지녀야 할 철학과 자세가 반영되어 있기에 작가는 공간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홍정욱의 ‘common(2009)’ 작품은 어떤 접착제를 쓰지 않고 타원형으로 모든 구성 요소를 지지하도록 해서 작업한 대표적으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작가의 삶에 대한 태도를 작품으로 구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0년이 지난 ‘INFILL(2017)’의 작업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중요한 것인 수록 그 중심을 부각 시키는 방식보다 뒷면의 색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그 캔버스를 지지하는 것에 더 중심을 두었을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더 강조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작가의 캔버스 주변과 뒷면은 화려한 색채가 칠해진 철선과 면으로 받치고 있다.
진화하는 조형
작가는 마치 이미 설치를 시작점으로 삼았던 것처럼 전시실 공간 전체를 화폭으로 삼는다. 점, 선, 면, 색과 같은 회화의 기본 요소들과 사물의 기본이 되는 형태인 삼각형, 사각형, 원이 화면에 머무르지 않고 전시 공간 전반에 펼쳐지게 함으로써 회화의 영역을 확장한다. 또한 직접 볼 수 없는 면에 색을 입히고 반대편 벽면에 비쳐 드러나 보이도록 하는 구성은 '외양 너머의 실재, 현상 너머의 실체'를 탐구하는 작가의 관심사를 반영한다.⁴ 스페이스 오뉴월에서 보여 주었던 스무 개 삼각 거울 조각으로 입면 체를 이룬 (2016) 작업은 벽 드로잉뿐만 아니라 갤러리 바깥 풍경을 끌어들이기도 하였다. (강성훈, 2016) ‘작품은 발전하기보다는 변화와 진화를 가지는 것 같다.’ 작가의 말은 현재의 작품을 보면서 이전 작품의 변화를 궁금하게 한다. “기본은 현상의 이면에 내재하여 있기에 그것이 작품에서 발현된다 하여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홍정욱 작품의 실루엣은 삼각, 사각으로 더 단순화되어 왔지만, 그 내부 구조만큼은 전작(前作)을 만들면서 거쳐온 실험의 과정을 포함하는 복잡한 요소로 구축되어 있다.”(김소라, 2017)
Faith, 보여지것이 보이는 것이 아니다.
‘Möbius(2008)’은 자석과 전선을 정리는 타이 선으로 공간에 형태를 만드는 설치작품, 그리고 영국에서 주목 받았던 ’common(2009)’과 현재 전시에서 선보이는 ‘INFILL(2017)’은 서로 조형적 결과물은 다르지만 내재하여 있는 작가가 사용하는 재료의 사용방식에서 작가의 생각이 재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홍정욱은 초기부터 자석을 작품 곳곳의 구성요소로 사용해 왔다. 그는 접착제라는 화학적인 방식보다는 자성이라는 물리적인 방식의 결합을 선택하였다. 이 선택은 그가 추구하는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다른 성질의 자성이 서로 결합하는 힘이 얼마가 강한지를 그리고 그 힘을 가치 있게 하는 방식을 작품화한다. 그 때문에 작가가 만든 시각적 형태에만 주목해서는 이 작품의 의미를 놓칠 수 있음을 그래서 그저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보여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 재료들의 선택, 사용 방식, 그리고 결과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세상을 공간에 선보인 ‘보이지 않는’ 태도에 가치를 둔 작품이었다. ‘faith(2017)’ 작품은 강한 자성의 단위체가 모여서 천정에 설치된다. 이렇듯 홍정욱은 사회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이지 않는 작업의 과정으로 진행하고 작품으로 전시를 통해 제시해왔다.
홍정욱은 서로 관계하는 요소들의 결합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예술가의 미학적인 감각으로 풀어낸다. 인간과의 관계성을 생각하면서 삶을 공간에 녹여내는 작품은 공간이 바뀔 때마다 시간이 지나며 변화한다. 2008년 영국에서 만난 작가의 생각을 2018년 봉산문화회관의 전시를 통해 새롭게 만나리라고는 10년 전에 알지 못하였다. 그 순간을 재회하게 되었고 다시 먼 훗날 이곳에서의 작품들이 그 누군가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시간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10AAA 디렉터, 송요비
전시제목유리상자-아트스타2018 Ver.1 「홍정욱 - nor」展
전시기간2018.01.12(금) - 2018.03.18(일)
참여작가
홍정욱
초대일시2018년 01월 16일 화요일 06:00pm
관람시간09:00am - 22:00pm
휴관일없음
장르설치
관람료무료
장소봉산문화회관 Bongsan Cultural Center (대구 중구 봉산문화길 77 (봉산동, 봉산문화회관) 봉산문화회관 2층 아트스페이스)
연락처053.661.3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