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욱진의 삶과 예술세계를 조망해보는 [상설기획전시]
2017년 장욱진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서 개관하는
장욱진 상설전 : 장욱진의 삶과 예술세계
01. 까치의 눈
장욱진이 <까치>그림을 계기로 화가의 길을 들어서게 된 시작점 부터 1990년 작고할때 까지의
화가 장욱진의 전반적인 예술생애를 돌아볼 수 있다.
02. 인간
장욱진 작품의 주된 소재인 '인간'을 주제로 한 작품감상을 통해,
본질을 추구하고자 한 화가 장욱진의 '심플'정신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03. 자연
화가의 순수하고 자연친화적인 자연관(自然觀)을 알수 있는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까치, 개, 나무, 산, 해와 달 등이 함께 어우러진 소박하고 친근한 정경을 감상 할 수 있다.
04. 아카이브 영상실
화가 장욱진의 예술철학과 생애를 면밀하게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유형의 장욱진 관련 아카이브
자료와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아카이브 자료는 8개의 유형(생활기록물 및 문서, 사진, 기사, 전시브로슈어,전시도록,단행본,정기간행물)을 각 주제별로 분류했다.
05. 오브제의 방
장욱진이 생전에 사용했던 유품, 지인들과이 추억이 공유되는 물건등 여러가지 오브제를 통해
인간으로서의 장욱진의 삶을 엿볼 수 있다.
06. 화가의 아틀리에
덕소, 명륜동, 수안보, 용인 4곳을 옮기며 작업실 생활을 했던 장욱진의 모습을 관찰 할 수 있다.
장욱진의 삶과 예술세계
2017년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화가 장욱진(1917~1990)은 동시대 예술가 김환기(1913~1974), 박수근(1914~1965), 이중섭(1916~1956)과 함께 한국 근·현대미술사에 그가 차지하고 있는 독보적인 위상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 세기를 걸쳐 온 작가의 창작 생활과 이후 한국미술화단에 미친 영향,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는 주로 “동/서양의 이분법적 구분을 탈피한 화가(정영목)”, “이중섭과 함께 독자의 길을 걷는 소박파”(이경성), “어떤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 고독한 화가”(조은정) 등 한국의 전통성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면서도 ‘장욱진’ 만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작가로 해석되고 있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은 그동안 이러한 화가 장욱진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다양한 기획전시를 통해 선보여 왔으나, 전반적인 화가 장욱진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언제든지 감상 할 수 있는 상설관의 필요성과 요구는 꾸준히 논의되어 왔던 사항이었다. 미술관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설전시관 구축은 작가의 전반적인 예술생애와 작품세계를 접하고 이해하기 위한 공간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담론을 확장시키고 소통케 하는 공간이기에, 서울여자대학교 산학협력단의 사전연구를 기반으로 하여 체계적이고 심도 있게 진행되었다.
상설전 <장욱진의 삶과 예술세계>는 관람객들에게 화가 장욱진의 ‘삶’과 ‘예술세계’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감상할 수 있도록 크게 6가지 주제로 나누어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는 장욱진이 화가의 길을 들어서게 된 계기점이 된 <까치>를 주제로 하여 전반적인 그의 예술세계를 선보이는 ‘01. 까치의 눈’섹션으로 시작하여, 화가가 지속적으로 반복하여 그렸던 주제인 ‘인간’과 ‘자연’을 기준으로 나눈 ‘02.인간’과 ‘03.자연’섹션에서 그의 대표작품을 상설적으로 선보인다.
‘04.아카이브· 영상실’에서는 화가의 학창시절부터 유학생활, 여행스케치 사진, 전시도록, 학술자료 등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를 수집하고 발굴하여 관람객들이 언제든지 열람 가능할 수 있는 정보공간을 마련하였다. 뿐만 아니라, 장욱진과 함께하였던 제자, 미술동인, 유족, 미술평론가 등 관련인물 22인의 인터뷰 영상 상영을 통하여 그의 전반적인 예술생애를 보다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고자 하였다.
‘05. 오브제의 방’에서는 화가가 평생을 즐겼던 술병, 담배 파이프, 화실도구, 안경, 시계 등 단순하고 소박했던 화가의 유품을 선보여 삶과 예술을 관통하고 있는 그의 ‘심플’한 정신을 보여주고자 했다. 마지막 섹션 ‘06. 화가의 아틀리에’에서는 단 두 번의 사회생활을 제외하고 평생 한적한 시골에서 아뜰리에 생활을 했던 그의 화실 공간을 직접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화실생활을 기준으로 나뉘는 덕소시기(1963~1974), 명륜동시기(1975-1979), 수안보시기(1980~1985), 용인시기(1986~1990)의 아뜰리에 공간을 엿볼 수 있는 기록들과 그의 화실생활에 관련된 다양한 컨텐츠를 제공하여 관람객이 능동적으로 열람해보고 참여 할 수 있는 인터렉티브한 공간으로 기획했다.
장욱진이 살아온 1917년부터 1990년까지 73년의 세월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산업화와 유신체제, 민주화 운동 등 격변과 질곡의 시대적 혼란기였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그러한 시대적 상황을 읽어낼 수 있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을 벗어나 초현실적이고 자신이 꿈꾸었던 이상적인 세계를 함축적으로 단순하게 표현하고 있다.
장욱진, 동아일보, 1969.04.10.
“표현表現은 정신생활, 정신의 발현發現이다. 표현이 쉽고도 어려운 것은 자기自己를 내어놓는 고백告白이 되기 때문이다.” 라는 그의 말처럼 그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삶과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표현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은 개인의 내재적인 성찰뿐만 아니라, 나아가 본격적으로 서양사조가 유입된 전후戰後한국미술화단에 한국현대미술의 주체성을 찾고자 했던 작가로서의 실험과 모색으로 이어졌다.
그의 작품에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실제로 그가 느끼고 접했던 까치, 나무, 강아지, 가족, 아이와 같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가 작품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전체적인 그의 작품세계를 통일하는 이러한 주제의식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장욱진’ 만의 독자적인 양식으로 구축되었고, 이는 곧 그가 한 평생 걸쳐 고민했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또 다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화가 장욱진(1917~1990)에게 ‘까치’는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이자, 그를 대변하는 하나의 알레고리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가 아홉 살이 되던 경성보통학교 2학년 시절(1925년) 도화책의 까치를 보고 세부묘사를 생략한 채 온통 새까맣게 표현하여 ‘병(丙)’점을 받았으나, 이듬해 일본 히로시마 고등사범학교 주최 <전일본소학생미전>에서 일등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까치’그림 일화로 미루어보아 어릴 때부터 자신만의 개성적인 시각을 통해 사물을 바라보았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을 “까치 그리는 사람” 비공선사의“무엇을 하는 사람이오?”의 물음에 화가 장욱진은 “까치를 그리는 사람이오.” 이라 답하였다.
이라고 칭할 정도로, 이후 “까치”는 화가의 전체적인 예술세계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주요 소재 중 하나였다.
<달과 새>(1960)의 평면으로 분할된 산 아래에 위치한 “까치”는 화가의 전반적인 작품세계에 등장하는 화가 특유의 대표적인 까치모습으로, 동그란 원형의 얼굴과 세모난 몸통, 가느다란 선의 팔과 다리의 표현에서 심플한 조형미가 돋보인다.
‘까치’와 함께 화가의 주된 작품 소재 중 하나인 장욱진의 ‘인간’은 자기 자신과 가족, 아이, 혹은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장욱진만의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표현한 ‘인간’을 통해 그의 인본주의적 예술철학을 엿볼 수 있다.
장욱진의 ‘인간’은 집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가족으로, 자연과 함께 풍류를 즐기는 도인으로, 동물들과 함께 노니는 아이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특히 ‘아이’는 인간 심성의 가장 본질적인 ‘순수’함을 추구했던 그의 주된 소재였다.
화가 장욱진의 대표작 <자화상>(1951)은 한국전쟁 당시 고향 충남 연기군 내판에서 피난하던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과 작가로서의 고민이 잘 느껴지는 작품 중 하나이다. 영국 신사 풍 양복을 입고 모자, 우산을 들고 있는 ‘모더니스트’ 장욱진이 황금 보리밭 한 가운데에 당당하게 서 있다. 그의 뒤로는 강아지가, 하늘에는 네 마리의 새가 날고 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한국전쟁이라는 시대적 혼란기를 극복하고 예술가로서 시작하는 자신을 당당히 알리고자 하는 작가로서의 다짐으로 보인다.
실제로 장욱진은 당시 제작 배경을 “이 그림은 대자연의 완전고독完全孤獨속에 있는 자기自己를 발견한 그때의 내 모습이다. 하늘엔 오색伍色구름이 찬양하고 좌우로는 풍성한 황금黃金의 물결이 일고 있다. 자연自然속에 나홀로 걸어오고 있지만 공중에선 새들이 나를 따르고 길에는 강아지가 나를 따른다. 완전고독完全孤獨은 외롭지 않다.” (畵廊, 1979, 여름호)라고 회상 한 바 있다.
이처럼 모든 허례허식을 걷어낸 장욱진의 ‘심플’한 삶과 정신은 그의 작품세계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그는 아주 단순하게, 순수하고 본질적인 요소만을 작은 화면에 응축하고 함축한다. 작품 <집과 아이>(1959) 역시 대표적인 예로 원, 삼각 등의 도형과 몇 개의 선만으로 집의 구조를 그려내고, 천진난만하고 동심어린 아이를 표현하고 있다. 평면적인 집의 처리와 두터운 물감의 마티에르가 느껴지는 바탕에 긁어내는 방식으로 구현한 나무에서 표현의 대비효과를 느낄 수 있다.
화가가 가족과 따로 떨어져 덕소 화실에서 지내던 시절에 제작된 작품 <가족도>(1972)는 단순하고 평면적인 집과 가족, 새 그리고 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한 없이 따뜻하고 소박한 정경을 이루고 있다. 특히 집안에 온 가족 구성원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집과, 아이, 가족은 화가의 창작활동의 중요한 원동력이자 모티브로서 ‘작가’와 ‘가장’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고민과 가족에 대한 자신의 애틋한 마음, 그리고 그의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감수성을 잘 보여준다.
장욱진이 세상을 떠나던 해에 제작된 작품 <밤과 노인>(1990)에서는 수염을 단 도인이 그와 평생을 함께 한 집과 아이 그리고 나무를 뒤로 한 채 하늘을 날고 있다. <자화상>(1951) 속 위풍당당한 모더니스트 장욱진은 이제 세속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초탈(超脫)한 도인이 된 것 이다. 그러나 뒷짐을 지고 하늘을 나는 도인의 여유로운 모습과 <자화상>(1951) 청년의 꼿꼿하고 당당한 모습에서 철저히 고독한 삶을 살며 ‘나는 심플하다’라고 외쳤던 자신만의 확고하고 뚜렷한 작가의식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그가 회고했던 바와 같이 ‘외롭지 않은 완전고독完全孤獨’은 그의 삶을 대변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장욱진은 단 두 번의 사회생활, 즉 2년간의 국립중앙박물관 재직 경험(1945~1947)과 6년간(1954~1960)의 서울대 미대 교수 시절을 제외한 모든 생애를 경기도 덕소(1963~1974), 수안보(1980~1985), 마북리(1986~1990) 등 한적한 시골에 화실을 마련하고 ‘완전고독完全孤獨’을 즐기며 치열하게 창작활동에만 전념하였다. 이러한 행적은 흔히 그를 유유자적한 ‘자유인’, ‘도인’ 혹은 ‘기인奇人’이라는 단어로 신화화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에게 화실은 그림을 그리는 창작공간이자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그의 ‘삶’ 전체였다. “자연은 나의 화실이다.”고 했던 장욱진은 삶과 예술의 가장 순수한 본질을 찾고자 했으며 그러한 근원을 ‘자연’에서 발견한 것이다.
장욱진의 작품에 나타나는 ‘자연’은 그가 꿈꾸었던 초현실적이고도 소박한 이상세계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작은 화면에 해와 달, 산과 나무, 강과 초가집 등 단순하게 응축하고 함축해 하나의 ‘자연’ 그 자체로서 그려진다. 모든 것이 어우러진 소박한 정경은 여유로우면서도 자연으로의 회귀를 꿈꾸게 한다. 시골에 화실을 마련하고 평생을 자연과 더불어 삶을 살았던 그의 생애와도 일치하는 이러한 모습은 마치 자연 속에 은일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추구했던 도인이나, 조선시대 선비를 떠오르게 한다.
장욱진, 강가의 아뜰리에에서, 『현대문학』, 1965.8
“나는 고요와 고독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 자기를 한 곳에 세워 놓고 감각을 다스려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회색빛 저녁이 강가에 번진다. 뒷산 나무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강바람이 나의 전신을 시원하게 씻어준다. 석양의 정적이 저 멀리 산기슭을 타고 내려와 수면을 쓰다듬기 시작한다. 저 멀리 노을이 지고 머지않아 달이 뜰 것이다. 나는 이런 시간의 적막한 자연과 쓸쓸함을 누릴 수 있게 마련해 준 미지의 배려에 감사한다. 내일은 마음을 모아 그림을 그려야겠다. 무엇인가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덕소풍경>(1963)은 말 그대로 장욱진이 바라본 ‘회색빛 저녁이 강가에 번진’ 덕소의 풍경이다. 당시 그가 생활했던 덕소 화실은 한강 가 높은 언덕 위에 위치했으며, 언덕 아래로 완만히 굽이도는 안개 낀 한강 물과 강가의 모래밭이 보이고 건너편으로는 강마을들이 보였다고 한다. 운무가 낀 강가와 해, 하늘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듯하지만 고요하고 고독한 자연 속, 해가 지며 이루어내는 시시각각 변화되는 강가 풍경을 그의 시각에서 있는 그대로 그려낸 듯하다.
<강변풍경>(1987)은 <덕소풍경>과는 또 다른 강가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안개 낀 강가를 배경으로 강물 위에 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 초막 안에 가부좌를 한 도인의 한적하게 앉아 있어 여유로운 모습이 특징적이다. 마치 자연 속에 은일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추구했던 화가 장욱진 본인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장욱진의 작품은 아이와 같이 동심어리고 순수한 울림을 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당시 사회와 현실을 벗어나고자 한 일방적인 회피로 볼 것은 아니다. 장욱진은 그가 처한 시대상 속에서 누구보다도 철저히 자신의 정체성과 작가로서의 끊임없는 고민을 거친 그만의 ‘작가의식’을 통해 장욱진 특유의 작품세계를 구현해내었다.
장욱진이 바라보는 ‘인간’은 천진난만한 아이로, 화기애애한 가족으로, 여유로운 도인의 모습으로 나타나, 인간의 가장 순수한 삶의 본질을 고요히 마주하고 되돌아보게 한다. 장욱진이 꿈꾸었던 인간, 나무, 강아지, 새가 함께 어우러진 ‘자연’이 주는 순수한 울림은 가장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생명의 근원과 자연의 이치에 다시 한 번 귀 기울이게 한다.
‘장욱진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이제 우리는 자신을 성찰하고 되돌아보며 한없이 자기 자신에게 진실되고자 했던 장욱진의 ‘자기고백自己告白’에 다시 한 번 귀기울이고, 고요히 마주하며 그의 작품과 대화할 때이다.
장욱진, 강가의 아틀리에 서문, 1975, 9
가장 진지한 고백. 솔직한 自己의 고백이라는 眞實을 사람들은 一生을 통해 부단히 쌓아가고 있나 보다. 그 참된 것을 위해 뼈를 깎는 듯한 自身의 소모까지 마다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껏 그림이라는 방법을 통해 내 자신의 고백을 가식 없는 손놀림으로 표현해오고 있다. 화가에게는 文章이 있을 수가 없다. 그림으로 자기 고백을 충실히 이끌어 나가고 있다고 여겨지면서, 이제 이곳에 있는 것은 단지 내 그림과의 대화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 윤여진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학예연구사)
전시제목장욱진의 삶과 예술세계
전시기간2017.05.26(금) - 2018.07.31(화)
참여작가
장욱진
관람시간10:00am - 06:00pm
(입장마감 : 오후 5시)
휴관일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날 및 추석날
※ 월요일이 공휴일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 다음날이 휴관일입니다. 설날 및 추석날은 전일 포함 2일 동안 휴관합니다.
장르회화
관람료어른: 5,000원
청소년 및 군인: 1,000원
어린이: 1,000원
영유아 및 65세이상: 무료
장소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Chang Ucchin Museum of Art Yangju City (경기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193 (석현리) )
주최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후원장욱진미술문화재단
연락처031-8082-4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