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곳(虛)에 정하기(定)
강태성(예술학)
Mathesis 와 Mimesis 사이
건축적인 선이 작품에 가로 세로, 사선으로 교차되며, 평면도 같은 다양한 건축 도면의 투시가 등장한다. 그 투시는 단면도나 입면도, 측면도, 조감도와 유사한 측면들이 교차되어 제시된다. 이 다양한 측면은 도면으로 남아있기보다 어떤 공간을 암시적으로 이해하는 회화로서 다가온다. 작품을 관찰하는 사람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하게 된다. 하나는 그려진 건축물로 인해 건축의 의미로 접근하고, 다른 하나는 그린 행위로, 회화라는 측면으로 다가간다.
본다는 것은 일상적인 감각 중 하나이면서도 새로운 지각과 인식의 시작이 된다. 작가는 화가로서 보는 행위를 건축을 전공했던 경험에 기초한다. 즉, 그의 작품에서 보면, 건축적인 “보기”의 의미가 많이 관여된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조금 전 언급했던 입면도, 평면도, 측면도, 단면도, 조감도, 투시도 등 여러 도면적인 시점이라 할 수 있겠다. 작가는 하나의 회화 속에서 여러 공간들의 종합을 꾀하고 있다. 다양한 관점은 입체파 작가들의 공간에서 실현하였던 것이기도 하지만 작가는 이와 다르게, 보다 건축적인 측면을 살피고 있다. 또한 공간은 단순하게 하나의 제시가 아니고, 여러 관점들이 얹혀지고 있어서(Overlap), 공간의 대위법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즉 객관적인 건축도면 (dessins)들의 개념들이 들어오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건축적인 도면은 공간을 객관적•사실적으로 재현하고 설명하는 매우 수학적인 것(응용수학)이다. 실제 텐느(Hypolyte Taine)는 건축은 시각적인 수학이라고 하였다. 이 수학적인 언어의 어원, mathesis(배우다, 연구하다, 수학의 어원)로 수학이 공간 속에 나타나는 것을 지시한다. Mathesis는 배우는 것, 배우고 싶은 욕망, 지식, 교육, 과학으로 이어지는 개념이다. 작가는 바로 이러한 관측과 연구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이 단어가 갖고 있는 “욕망”에 집중한다. 즉 수학적인 연구는 그것의 객관성에서만 끝나지 않고, 주관적인 열망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작가의 주관성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단서가 된다. 원래, 이 Mathesis의 공간은 회화의 모방(Mimesis)과는 미학적으로 구별되는 것이나 작가는 작품
처럼, 주관성의 개입으로 Mathesis와 Mimesis의 공간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또 원래 건축적인 공간은 파괴에 반대하여 구성되고 건축되기를 좋아한다(Boudon). 이와 달리, 회화는 구성과 파괴를 자주하며, 자유롭게 가상성 내에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낸다.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도, 구성과 파괴(construction/deconstruction)는 작가의 주된 이중적인 방법론으로 제시되어, 공간 속에 요소들을 정하면서도 열어놓는다. 이를 작가는 ‘해체’라고 설명하였다. 사실 그러한 공간은 작가에게서 파괴의 공간으로 해체의 공간으로 나타나, 건축적인 정황을 다르게 하여 회화화시키는 것이다. 그러한 공간은 분절의 공간을 다층적으로 제시된다.
건축은 공간(空間), 즉 空-間처럼, 여러 부분들이 단절되고 관절처럼 구성된다. 데카르트를 비롯한 많은 철학자들이 논의했듯이, 건축을 개념적으로 분절을 통해, 잘라내었던 것이 생각난다. 그러나 작가는 건축적인 것을 이미지로 해체한다. 이러한 해체는 테이프를 붙여놓고 채색한 후, 다시 테이프를 떼어내는 과정에서도 나타나는데, 공간적인 분절만이 아니라, 실제로, 아래 층과 위 층 사이의 지층적 분열을 보여주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가능하지 않았던 공간, 예를 들어, 그 밑에 공간과 위의 공간이 가까워지게 된다. 이렇게 다양하게 제시된 분절 속에서 색채가 가미되어 새로운 공간들의 종합과 이질성의 종합으로 이뤄내고 있다.
이 글은 이렇게 다양한 구성과 해체, 건물과 회화, 도면과 그림 등으로 제시되는 과정 속에서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 들어가고 있음을 살펴보게 되고 그 시간과 공간은 더 이상 실제 공간과 시간이 아니다. 그러한 공간은 존재의 시간, 정유(定有, Dasein)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제시되는 시간성과 공간성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며(Louis Kahn의 지적도, 그리고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70도 연관된다), 작가 허정의 문제가 생각보다는 더 깊은 부분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더 새로운 의미로, 주관의 개입이 섬세하게 발전되기 기대한다.
‘내 작업은 건축물이 투명하다고 생각하였고, 그 건축물을 구성하기 위한 요소들을 해체한 다음 다시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 작가노트 中
굉장히 넓은 공터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철근 구조가 세워지고 바닥 층수가 올라가고, 유리창이 끼워지더니 지붕이 얹히고 완전한 건축물이 생겨 났다. 건축물 주변에 큰 풍선이 달처럼 떠올랐고 사람들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또 어느날은 모든 사람들은 사라지고, 건설기계가 나타나더니 해체되어 뼈대와 같은 앙상한 철골 프레임과 전선으로만 남았다. 그렇게 어느새 넓은 공터로 다시 돌아왔다.
집앞을 나서 오가며 본 하나하나의 기억은 완전한 건축물이 마치 의학용 X-ray화면처럼 투명하게 보이기 계기가 되었다. (완성된 건축물 - 짓고 있는 건축물 - 해체된 건축물) 슬라이드 필름처럼 한 장씩 한 장씩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고, 나를 둘러싼 모든 건축물들이 모두 다 투명하게 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작품은 ‘나를 둘러싼 건축물이 무엇으로 구성되었을까?, 만약에 투명하다면 어떻게 보일까?’에서 초점을 둔다. 예를 들면 해파리, 엑스레이 사진, 고전 만화 기법인 셀 애니메이션 과 같다. 작품에서 공간은 만들어지고 있는 건축물이다. 만들어지고 있는 건축물을 첫 레이어로 하는 이유는 우리가 보고, 살고 있는 공간이 표면으로만 보이는데 시선을 표면(Skin)을 투과시켜 바라보고 표면과 (내부)구조물 사이에 둔 것이다.
이를테면 바닥이나 벽면이 투명하다고 가정하였을 때 보이는 요소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것처럼 *나를 둘러싼 모든 마감재들이 투명하다고 가정하고 그 속에 있던 철골구조, 석재구조물, 레일, 전선 등등을 계속해 더 드러내게 된다. ‘모두 보인다’는 것은 개별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에 작품에서 보여지는 층(layer)이 이뤄지고 겹쳐지고 이어지는 것을 화면으로 표현한다. 단순히 보기에는 건축의 해체로 보여지는 것이지만 사실 존재하는 요소들이다.
■ 허정 전시제목jig
전시기간2018.01.03(수) - 2018.01.15(월)
참여작가
허정
초대일시2018년 01월 03일 수요일 05:00pm
관람시간10:00am - 06:00pm
휴관일없음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인사아트스페이스 INSA ART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6 (관훈동) 3층)
연락처02.734.1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