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대하고 강렬한 힘 앞에 마주한 인간의 욕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강렬한 힘이란 늘 우리 주변에서 마주칠 수 있는 것들로 지진, 해일 같은 자연의 힘이나 사 고, 죽음과 같은 운명 혹은 인간에 의한 폭력, 사회적 정치적 권력 구조 등 다양하다. 삶 속에서 일어나는 강렬한 힘들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마주치며, 피 하기에는 ‘예측 불가능’하다.
이번 전시는 ‘현재의 세계는 어떻게 진행되어 왔고, 나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복잡하고 거대해진 현재 세계는 서로 영향을 받으며 시시각 각 변하고 진행된다. 그런 세계를 내가 온전히 이해하는 일이란 사실 상 불가능에 가깝다. 전시 타이틀인 <말려진 상상>에서 ‘말려진’은 에스키스나 드로잉을 벽에 걸어 놓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습도와 온도 차이로 종이가 점차 말려진 현상에서 발견한 단어다. 또 한 거대한 힘이나 예측 불가능한 사건을 있는 그대로 직시할 수 없는 나의 시선을 의미한다.
이 세계와 내가 처음 접촉하는 순간인 1976년을 기점으로, 현재까지 연도별 사건, 사고, 매스미디어 등 다양한 자료를 수집했다. 수집한 이미지와 사건 관련 자료를 연도별 로 분류해서 새롭게 재구성했다. 한 연도의 사건들을 재구성할 때 사건과 사건 사이에 틈이 생기는데, 이 틈은 수집한 사건 속 과거의 기억과 감정이 현재의 나와 만나며 충 돌하거나 왜곡되어 상상으로 메웠다. 예를 들면, 작품
은 1976년 DMZ에서 일어난 도끼 만행 사건을 모티브로 했는데 이 사건은 내 초등학교 시절 반공 교육의 단골 메뉴로, 처음 계획은 북한 군에 의해 죽은 미국장병을 중심으로 구성하려 하였다. 그러나 한반도 전쟁의 위기 직전 정도의 거대한 이 사건이 시작과 마무리가 단 지 미루나무 한 그루의 벌목을 빌미로 진행됬다는 것은 자료 수집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어쩌면 배웠지만 기억에서 지워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원래 계획의 미군병사 대신 잘려나간 미루나무를 화면 안에 자리잡게 하여 기억하기로 했다. 이러한 예측 불가능성 앞에 인간의 욕망이 개입하여 만들어지는 현상을 조형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 노현탁 작가노트 中에서
H 에게
한국에서 태어나 사십대의 한 남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당신과 이 전시를 함께 보고 싶습니다. 당신과는 다른 삶이었겠 지만 같은 시대를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당신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살 아냈으나 잊고 있었던 기억과 경험들을 떠올리며 그 동안 열심히 살아온 당신 곁에 잠시 머물며 힘이 되어주고 싶습니 다.
- 당신을 좋아하는 Z 로부터
“이 세상의 모든 H와, H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
갤러리1
이번 전시는 1976년 생 꼬마 노현탁 작가의 어린 시절 기억과 무의식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전시입니다. 작가는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일어났던 주요 역사적 사 건으로부터 자신의 몸과 마음에 각인된 그 흔적들을 감각적으로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자전적 경험과 기억을 조형적으로 탐구해나가는 그의 작업은 기존의 작가 자신의 내면에 대한 탐구를 넘어 외부와의 접속을 시도하며 확장합니다.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은 특정 역사적 사건과 그 당시 시대적 분위기를 이미지로 접하며, 시각적 체험을 통해 과거와 현 재 사이의 틈, 간극, 긴장, 불화 등으로 인한 소통의 단절을 넘어서고자 하는 용기를 느낍니다.
그간 노현탁 작가는 자신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던 불안, 죽음, 두려움과 같이 피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 주로 다루어왔습니다. 이제 그는 내면으로 향했던 시선을 외부로 돌려 세 계와 소통하려고 합니다. 1970년대 태어난 작가는 유년기를 보내는 동안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남북분단, 반공이데올로기, 냉전, 천안문 사건, 올림픽과 같은 굵직한 역사적 시기를 통과하면서 외부로부터 향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외부의 불가항력적인 일들과 내면의 틈을 바라봅니다. 작가는 그 ‘틈’에 주목합니다. 이 틈은 작가의 내면과 외 부 세계에 벌어진 화해 불가능한 공간처럼 보입니다. 작가는 이 틈을 역사적 사건, 그것에 반응하는 작가의 무의식과 상상력의 이미지 들로 채워나가며 평면의 캔버스를 입체적 으로 변화시킵니다. 기존의 이차원적인 캔버스에 공간감을 부여하는 것에서 나아가 이제는 시간성을 획득하고 3차원적인 체험을 가능케 합니다.
그의 틈은 언뜻 균열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결코 단절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 틈은 생의 흐름이 일시적으로 정지하거나 그 자리에 머무는 것과는 무관합니다. 비극적 웅 처럼 운명에 저항하고 쓰러지는 것처럼 보여도 작가의 자유의지는 외부 세계와의 만남 속에서 부단한 움직임을 시도합니다. 노현탁의 틈은 호흡입니다. 그것을 채우는 것은 미세 하지만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무의식에 접속된 그의 삶과 작업일 것입니다. 캔버스 안에서의 인물들은 그의 작품 안에서 최초 진동이 일어나는 출발점입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 진동은 여기와 저기 그리고 이곳과 저곳의 연결을 꾀하고 들숨과 날숨 반복처럼 고유의 리듬을 찾으려 합니다. 화해 불가능한 두 세계의 만남과 접속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용 기가 필요하고, 그에 앞서 삶에 대한 사랑이 앞서 존재해야 하는 작업입니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따뜻합니다.
갤러리2
평소 호기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머물다 갈 수 있는 공간입니다. 작업 과정의 흔적들이 곳곳에 다량으로 놓여져 있습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학자의 오 래된 서재 같은 느낌입니다. 작가가 자신의 작업 과정을 드러낸다는 것은 큰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완벽을 추구하지만 완벽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결과 앞에서 작가는 과정 으로 말합니다. 그의 작업 과정은 그의 성실함과 정직함의 반입니다. 그 과정이 적혀 있는 종이 들의 끝은 외부환경에 의해 말려진 상태의 모습을 보이며 지나간 작업의 시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전시 제목인 말려진 상상에서 ‘말려진’은 작가의 작업 시간을 압축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노현탁 작가는 관찰하고 분석하고 연구하고 끊임없이 사유하고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 성실한 애스키스(esquisse)가 그것을 말해 줍니다. 그는 기존의 다양한 이론을 도구로 활 용해 자기가 궁금해 하는 것에 질문을 던지고 그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새로운 관점, 방식을 찾아냅니다. 물론 모든 작가들의 작업방식은 제각기 다릅니다. 감각적 직관을 고 나 가는 방식이건 이성적 통찰에 집중하는 방식이건 모든 예술은 기록과 끈질긴 사유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한 이유로 노현탁 작가의 앞으로의 작업은 호기심을 더욱 자아냅니다.
요즘 키덜트(kidult)의 취향이 늘고 있는 것은 아마도 빠르고 각박한 현실에 적응하고 열심히 살아야만 했던 성인들의 정신적인 허기와 결핍이 커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 다. 특히 40대 남성 직장인들은 대부분 감정과 정서적인 부분을 잠시 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바쁘고 무거운 삶을 조금만 바라보면 그럴 수 밖에 없는 현실과 사회 임을 알게 됩니다. 예술은 그들 대부분에게 먼 이야기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현탁 작가의 작업처럼 미세하지만 끊임없이 움직여보는 것을 애정을 담아 조심스레 제안합 니다. 현실을 잠시 벗어나 과거의 향수를 느끼고 추억의 공간으로 되돌아가 보면 좋겠습니다. 오래 전 작가는 인터뷰에서 “스스로에게 따뜻한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에게 존 경심을 품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희망 한다”라고 했습니다. 노현탁 작가의 이번 전시 <말려진 상상>은 잠시 머물며 스스로에게 따뜻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전시가 될 것 입니 다. 신지아 전시제목말려진 상상
전시기간2017.11.11(토) - 2017.11.30(목)
참여작가
노현탁
초대일시2017년 11월 11일 토요일 05:00pm
관람시간12:00pm - 07:00pm
휴관일월요일 휴관
장르회화
관람료무료
장소플레이스막 placeMAK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622 플레이스막 2)
연락처+82.17.219.8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