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유리상자 다섯 번째 전시인, 전시공모 선정작 「유리상자-아트스타 2017」Ver.5展은 조소를 전공한 이기철(1981년생) 작가의 설치작업 ‘토끼시대-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입니다. 이 전시는 자신과 분리되어 낯설어진 ‘현실’에 대한 심리적 대응으로부터 출발한 허구적 상상想像에 의한 서사敍事의 ‘실제화實際化’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시간을 거슬러 개입하는 작가의 주관적이고 창조적인 상상을 통하여 분리되었던 자기 내면성과 외부세계를 통합하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나려는 행위이며, 또한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조각으로서 지식과 정보의 수집과 기록, 가공, 보존, 전시 등으로 이어지는 신체행위의 응축이며, 기획된 시․공간적 사건에 관한 새로운 사실로의 인식을 권하는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 설정은 자연사 박물관에서처럼 4면의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안과 밖의 시선이 통하는 커다란 쇼 케이스 안에 오래된 뼈 화석을 설치하는 것입니다. 거대한 공룡의 뼈 화석을 조립하여 실물크기로 복원해놓은 것 같은 이 전시물은 가로440×세로130×높이430㎝ 크기의 짙은 암갈색 뼈 구조와 철제 지지대, 그 구조를 올려놓은 1m 높이의 전시대, 설명 자료 등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커다랗고 튼튼한 뒷다리로 지면에서 일어서서 앞발을 들고 포효咆哮하듯 입을 벌리는 모습은 토끼를 닮았으나 지금의 토끼와 전혀 다른 위협적인 토끼의 화석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이 화석을 통하여 작가가 확신하려는 서사는 자신이 상상하는 토끼시대의 ‘새로운 토끼’ 중에서 ‘사라진 토끼의 흔적’입니다. 그 흔적에 대하여, “현재의 토끼와 모습은 거의 흡사하나 몸길이는 3m에서 무려 6m까지며 두개골 길이만 해도 82㎝가 넘는다. 몸무게는 약 1.5t 정도로 무겁다. 토데노돈(卯龍, Thodenodon)은 강하고 큰 앞니를 지니고 있어서 상대방을 위협할 수 있다. 토데노돈은 신생대 팔레오세(약 6600만년전)에 아프리카에 살았던 거대한 초식성 포유류이다. 화석은 1923년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서 발견되었다. 이들은 주로 군집 생활을 하였지만 짝짓기를 할 때만 따로 지냈을 것이다. 이들의 큰 몸짓과 강한 턱으로 보아 천적은 거의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설명하는 작가의 서사는 전시를 통하여 관객의 신뢰 속으로 스며듭니다.
이번 전시 작업은 먹이 사슬의 아래 단계에 속하는 연약한 토끼를 대상으로, 현실에 대응하는 작가 자신의 위축된 심리를 투영하고, 또 우리가 알고 있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자연법칙을 뒤집어 토끼가 자신의 포식자인 여우를 사냥하는 등, 동물 세계의 최상위 존재로 설정되는 상상을 기반으로 합니다. 이 같은 작가의 상상과 창조적 기억의 서술은 이미, 건물 내부로 숨어든 야생 토끼를 다루었던 전시 ‘Hello! Contemporary art-야생 서식지’(2014)를 비롯하여, ‘개인사 박물관’ 전시(2015), ‘토끼시대’ 서적 출간(2016) 등으로 이어지며 사건의 기억 스펙트럼이 과학적인 근거와 학술 용어를 토대로 구체적이고 정교하게 가공되어 실제의 사실인 것처럼 착각을 일으킵니다.
이렇듯 작가는 현대미술의 역사 속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제거되었던 기억으로서 ‘서사’에 주목하며, 물성을 다루는 입체조형으로서 조각이 아니라 고착된 인식에 변화를 가하는 서사의 기획 행위로서 새로운 조각을 실험합니다. 강인한 힘을 가진 토끼를 상상하는 작가의 서사는 세계를 이루는 ‘관계’와 ‘균형’에 관한 창조적 기억이며, 이 주관적인 서사의 원천은 우리의 욕망과 구조적 모순에 대한 생각, 잃어버린 자신에 대한 갈증에 다름 아닙니다. 작가의 사실적이고 현실감 있는 조각 행위와 타인을 향한 공감의 제안은 동시대 예술의 힘에 대한 기대이며, 세계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교감하려는 예술의 은유입니다.
눈앞에 펼쳐진 유리상자는 리얼리티를 지향하는 새로운 서사적 조각행위의 실험이며, 물질 혹은 비물질적으로 가공된 정보와 지식, 인식을 대상으로 신뢰를 재촉하는 다각적인 미술 설계입니다. 또한 상상과 창조적 기억을 잇는 작가의 신체행위이고, 인간 삶의 과정에 관한 정서적 균형의 염원이기도합니다. 충만의 경험을 기억하며 미래의 균형을 회복하려는 이번 유리상자는 미적 신념을 소통하려는 예술의 실험적 가치를 떠올리게 합니다. ■ 봉산문화회관 큐레이터 정종구
이번 전시에 앞서, 본인이 작업 초기부터 계속 해오던 래빗 시리즈라는 연작들은 현실에 뛰어든 자신이 먹이 사슬 속의 토끼처럼 연약한 존재임을 느끼고, 상상 속에서 만큼은 강한 존재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염원을 담고 있다. 여우를 사냥하는 토끼, 개미핥기 젖을 먹고 크는 토끼 등 기존 동물세계의 질서를 전복시키고 토끼가 그 세계 안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가 되어 펼치는 장면은 본인에게 무한한 카타르시스를 안겨 주었다. 또한 이 허구적 상상은 피그말리온 효과같이 점점 실제가 되길 염원하게 되었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작업의 목표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무한한 능력을 가진 ‘그 토끼’에게 구체적인 설정을 부여하고 실제 현실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감으로써 기존의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그 토끼’가 어쩌면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동물로 만들어 가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 일환으로 래빗 시리즈 작품을 토대로 한 ‘토끼시대’라는 설정 집을 출간하게 되었는데 이 책의 내용은 본인이 상정한 그 토끼- 새로운 토끼의 연구 자료집 형태를 띄고 있다.
이번 전시는 토끼시대의 첫 작품으로 제1장 ‘사라진 토끼의 흔적’ 편에 등장하는 거대 토끼에 대한 내용이다. ‘토데노돈’이란 학명을 가진 이 토끼는 공룡들이 살던 신생대에 살았으며 키는 약 4m 정도로 현재의 토끼와는 매우 대조적인 크기를 보인다. ‘유리상자 전’에서는 토데노돈을 화석형태로 전시하게 되며, 자연사 박물관형태의 디스플레이를 통해 토끼시대의 연구 자료를 전시하는 장소 같이 꾸미고 있다. 이를 통해 전시된 작품이 단순히 동물 뼈를 조각한 작품이 아닌 토끼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증거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며, 이런 일련의 작업들은 토끼시대의 실존가능성을 가늠케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본적이 없는 공룡을 모두가 그 존재를 알고 있듯이, 언젠가는 토끼시대를 알고 있느냐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생기길 바란다. ■ 이기철
꿈꾸던 신화의 복원과 실현-이기철 조각
복원된 신화
한 마리의 거대한 공룡 뼈를 복원해 놓은 것 같은 이기철의 이번 작품은 사실성과 무관하게, 미술작품으로서 아름다움과도 거리를 두고 있어 보인다. 그러나 작가가 의도한 대로 과거에 살았던 어떤 생물체의 실재감 있는 재현이 아니고 사랑스런 대상을 모델로 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인상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방향이 맞지 않다. 그래도 아주 임팩트 있는 규모나 짜임새 있는 밀도감에서 아쉬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제한된 설치 공간 탓이거나 혹은 이 비실재적 캐릭터에 더 이상 공들여 묘사할 디테일이란 사실상 필요치 않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이런 선입견부터 버리고 눈앞에 버티고 서있는 이 괴물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이 작품의 제목은 ‘토데노돈’이다. 다소 황당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거대 초식 공룡을 닮은 토끼의 먼 조상쯤 되는 짐승이다. 물론 작가가 창조한 상상의 동물로서 일찍이 그가 만든 일련의 동물 캐릭터들 가운데 한 종(種)이다. 그러니까 비록 가공의 존재지만 지난 10여 년 전부터 제작해오던 작가의 동물가계도에서 엄연히 계보가 있는 당당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가진 피조물인 것이다. 작가는 이제 그의 화석으로부터 복원된 수만 년 전의 신화를 재생하고 있다.
동물 이미지의 유래
앞서 2011년과 2015년 두 차례 이기철 전시회의 주제를 만나면서 이렇게 동물을 이미지로 창조하는 고대미술의 사례를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그런 동기의 배후에 대해서도 설득력 있는 해설을 인용하며 간략히 짚어봤었다. 인류가 최초로 만든 이미지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들이 동물상이었고 어쩌면 가장 흔히 만나는 대상일 것이다. 특별히 휴머니즘이 작동된 시기를 제외하고는 예외 없이 동물의 이미지가 섬김의 용도로 또는 각종 장식에까지 널리 사용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수렵이나 농경생활을 통해서 더 세밀하게 관찰되었고 세련된 형태를 창조했었다. 특유의 움직임과 형태의 특징들은 정확하게 포착되어 아름다움과 사실성을 함께 구현하였다.
그런데 동물의 형상 가운데는 추상화되기도 하고 인간의 이미지와 상상력으로 결합시켜 난해하게 왜곡된 예도 있었다. 상상력으로 탄생시킨 독창적인 양식 가운데 옛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 문화의 원류에 나타난 소위 ‘루리스탄 양식’은 그 형식이 미술사에서도 아주 예외적이다. 사람얼굴과 결합해 기묘하게 융합한 그 양식이 만들어진 정확한 의도나 상징의 의미는 아직도 알 길이 없다. 다만 거기에는 장식이상의 어떤 마법적인 것에 대한 암시가 분명 담겼으리라 추측될 뿐이다.
그러나 점차 현대와 가까운 역사시대에 와서는 많은 동물이미지들이 이솝우화에서처럼 주로 뻔한 계몽적인 주제에 비유적으로 활용되면서 그 황홀하면서도 신비한 마술적인 매력은 사라지게 되었다.
현실을 비추는 거울
이기철 작가의 작품 목록에는 자연사 박물관을 방불할 만큼의 많은 동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화석 같은 형태로 복원되어 있지만 생명력을 지닌 모습으로 재현된다. 그는 이렇게 창조한 캐릭터들의 세계를 관리하고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려는 야심이 있다. 그렇다고 편집증적으로 공룡왕국의 이야기에 매달리는 작가는 아니다. 물론 그것은 상상 속에 가공된 허구이면서 완전히 없는 사실을 꾸며낸 것도 아닌 바로 또 하나의 현실로서의 상징이다. 작가가 경험하고 살고 있는 오늘날 인간 세계의 거울인 것이다.
이기철 작가의 이런 태도는 ‘토끼 시리즈’의 대척점에서 만드는 ‘Fat Pet’ 시리즈에서도 잘 드러난다. 소위 ‘살찐 애완동물’ 주제로 또 다른 관점에서 현실감 넘치는 풍자적인 조각들을 병행하고 있는데 그것으로 작가는 이미 자기 브랜드화한 하나의 모티프에만 매달리려는 것이 아님을 입증해 주었다. 그래서 그의 가설이 타당성 있게 들리고 꿈같은 작품세계에 신뢰와 기대가 간다.
꿈꾸는 세계의 가시화
이기철 작가는 재료나 규모에서 아직까지 중력을 다루는 조각가의 힘을 보여주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도 나약해진 현대인의 잃어버린 꿈과 과거의 찬란한 신화를 되살려내고 싶어 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독일의 한 위대한 아방가르드 작가가 ‘죽은 토끼’를 안고 어떻게 회화를 설명하지라며 퍼포먼스를 벌인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그 작가도 야생 코요테까지 등장시켜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설화나 전설이 지닌 가치를 상기시키려 했다. 이기철 작가 역시 이런 비유의 방식으로 자신이 목격하고 있는 세계에 개입하고 현실에 참여하고자 하는 점이 돋보이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의지가 결연할수록 그 비유는 더 생생해지고 긴장감 가득한 캐릭터로 완성돼 갈 것이다. ■ 미술평론가 김영동
전시제목토끼시대-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전시기간2017.10.27(금) - 2017.12.24(일)
참여작가
이기철
초대일시2017년 11월 02일 목요일 06:00pm
관람시간09:00am - 10:00pm
휴관일월요일 휴관
장르설치
관람료무료
장소봉산문화회관 Bongsan Cultural Center (대구 중구 봉산문화길 77 (봉산동, 봉산문화회관) 2층 아트스페이스)
연락처053.661.3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