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의와 사실의 접점 안에서
사실성에 기반 한 이상공간
일주의 풍경화는 자연의 사실적 외관을 충실하게 반영하면서 작가의 심상에 의해 재구성된 화면을 보여줌으로써 이상적 공간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러한 그의 그림은 불교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혹은 만법유식(萬法唯識)이란 말과 상통하는 것으로써 ‘이 세상의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창조한 것’이라는 경구를 떠올리게 한다. 그럼에도 그의 풍경은 여전히 현실공간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자연의 일부를 그린 것이건 대자연을 조망한 것이든 아늑한 고향의 서정과 인간의 숨결이 교차되는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결코 대상을 과장하거나 이상화시키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아마도 작가가 대상을 타자화하지 않고 일체화하는 물아(物我)의 자세로 자연에 접근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화면 안으로 사물을 끌어들여 이상화시키고자하는 예술적 상상력과 반대로 예술을 통하여 현실에 접근하고자하는 인문적 접근방식이 예술을 통해 구현되는 것으로 이상성과 현실성이 총체성을 띠는 양상이다. 그가 2000년대 중반에 발표한 <설경>이나 <촌가의 가을>, <촌가의 봄-정선>등에서 고도의 재현기량을 보여주면서도 전체와 부분, 대상과 여백, 먹과 색이 상충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보완할 수 있는 것은 작가가 하나의 가치에 집착하기보다는 전체를 통하여 부분을 보는 안목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사실 정신에 기반 한 사의적 풍경’ 이라는 말로 요약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작가가 이번 개인전에 선보인 <갯가의 서정>은 이러한 예를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전경에 서너 척의 쪽배와 갈대를 배치하고 중경의 수로와 원경의 갈대밭은 몇 개의 돛대로 연결함으로써 유기성을 부여하는 한편, 대기원근법으로 공간을 정의하면서 작가는 관객과 시적 서정으로 소통하고자하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하면 현실에서 있을 법한 풍정에 이상성을 부여함으로써 우리의 감성에 호소하고 공감을 획득하고자한다는 이야기다. 한편 미완의 대작 <포구>는 어로작업을 하기위해 정박 중인 수척의 어선을 작가 특유의 시각으로 포착해내고 있다. 습윤한 목선과 어구는 치열했던 삶의 흔적을 보여주고 잔잔한 바닷물은 개흙과 구분되지 않고 이들을 지탱하면서 또다시 시작될 지난한 삶의 현장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풍정은 낙관적이고 평화로운 모습을 견지하고 있어 작가의 미적 취향이 삶의 긍정적 측면과 이상적 실재를 선호하고 있음을 암암리에 드러낸다.
실험과 모색
작가는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시키며 위기의 한국화가 고유의 예술성을 담보 받고 그 안에서 스스로 갈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러다보니 작가는 전통미술의 범주에 속해 있는 한국화를 실험적 영역으로, 다시 말하면 완성태 로서의 회화보다는 가능태로서의 회화라는 불안한 위치로 한국화를 내몰면서 여기에 다양한 형태의 실험과 물질의 사용을 통하여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화는 그 대상과 내용에 대한 분명하고 구체적인 정의와 이론적 배경이 정립되어져야 할 것이며 큰 틀 속에서 한국화는 변해야하며 변하지 않아야 생존할 수 있다는 이중적 모순에 가치를 선별 수용해야 할 것이다. 과거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과감한 변신과 내면에 투영된 자아의 예술세계가 산고의 아픔 속에서 거듭나야 할 것이며 스스로에 대한 노력이 계속되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방법적 수단으로 작가는 “기초적이면서도 완성되어지는 독립된 회화”로서의 사군자나 화조, 인물, 구조물 등 다양한 소재를 선택한다. 수묵담채로 새로운 조형성을 찾기 위하여 그는 “인간의 한계와 무한함의 혼돈 속에서 정리되지 못한 아쉬움”을 극복하고자 노력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죽 <락(樂)>이라는 작품을 보자. 수직의 긴 족자 속의 참새는 그려졌다기보다는 족자를 타고 노는 것 같이 발랄하다. 대상을 정의하는 필묵은 거침이 없고 쏟아지는 눈밭을 아랑곳 않고 노니는 참새들은 서로 유기적인 관련을 맺으며 서로 속삭이는가하면 모이를 경쟁하며 자신이 살아있음을 강조한다. 화면의 구성이나 참새들의 움직임, 서설(絮說)과 나뭇가지 등 정의된 모든 것이 적재적소에 위치해 있어 작위적인 느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이야기>역시 각각의 참새들이 서로 대화하듯 어울리면서 서로를 보필하는가하면 스스로 존재론적 타당성을 지니면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들이 쉬고 있는 과실나무는 만추의 서정을 은연중에 암시하면서 새삼 작가의 표현기량을 보여주는 척도로 작용한다.
여기서 몇몇 과실의 거친 표현은 그림 전체의 조화로움에 압도되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마도 이는 작가가 이미 조선조 화조화에 깊은 식견을 갖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조형성을 찾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체득된 경지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작가는 혼돈 속에서 정리되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늘 ‘새로움의 전통’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미적 욕망을 보상하는 과정에서 작업을 성취시킨다는 말이다. 이 같은 그의 노력은 자연계 내부에 존재하는 근원적 질서를 찾아내고자 하는 긴장과도 비교되며, 역으로 말하면 그 같은 자연적 체계들의 핵심으로부터 그의 노력이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월의 미학
일주의 조약돌 그림은 귀신도 따라 하기 어려운 사실성과 작가의 독특한 개성적 표현으로 유명하다. 작가는 여기에 <세월의 미학>이라는 적절한 명제를 부여하고 있다. 조약돌은 세월의 풍상에, 혹은 물결의 연속성에 자신을 내맡긴 채 자신의 모난 부분을 갈아 섭리가운데 존재토록 하는 겸손함을 지니고 있다. 아마도 그래서 작가와도 닮아 있는 조약돌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그의 화면에서 일주는 돌이라는 대상을 현미경의 접물렌즈에 놓고 그 근원적인 구조가 과연 무엇인가 파악하고자하는 자연과학자적인 집요함과, 대상의 확대를 통해 해체된 돌들의 순간적 형상을 포착하여 화면에 제시하는 인상주의자적인 직관력을 두루 보여주고 있다. 이를테면 작가는 <세월의 미학>에서 돌이라는 물질이 갖는 단단한 속성과 광택, 물질의 근원, 형태간의 상충과 조화, 대상과 여백의 긴장성, 그리고 순수 실재가 갖는 리얼리티와 모더니즘의 추상회화가 갖는 절대미를 동시에 보여준다. 이는 동양화 혹은 서양화, 추상 또는 구상이라는 편협한 장르개념이나 재료와 기법을 운운하는 형식개념에서 자유로운 작가 특유의 미감으로 걸러진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그러나 하나의 시공간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물리적인 현상들은 어떤 빛이나 내면적인 평형, 또는 공간의 독특한 배치나 대상자체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가운데 우연히 획득 된 것은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이경모는 자연의 대상이 갖는 형상성을 요추(要樞)하여 화면에 제시하고, 물감자체의 변주와 이를 통해 드러난 유․무형의 형태가 갖는 서로간의 긴장관계에 주목함으로써, 재료의 물성뿐 아니라 각각의 대상들이 갖는 의미까지도 재해석하고자하는 인문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작가의 부단한 자기쇄신과 일정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는 개척정신, 그리고 사물을 보고 해석하는 작가의 남다른 시각이 일구어낸 결과이자 작가의 심성이 대상과 물아일체가 되었기 때문에 이룰수 있는 경지일 것이다. 결국 작가는 자신을 대상에 육화시킴으로써 사물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었고 이는 작가가 부단한 연찬과 실험을 통해 완결성 보다는 진정성으로 작업에 접근했다는 것을 완곡히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경모 (미술평론가/미술세계 편집장)
전시제목이경모 초대展
전시기간2013.06.19(수) - 2013.06.29(토)
참여작가
이경모
초대일시2013-06-19 16pm
관람시간10:00am~18:00pm 일요일 12시-오후 5시
휴관일없음
장르회화와 조각
관람료무료
장소장은선 갤러리 Jang Eun Sun Gallery (서울 종로구 경운동 66-11 장은선 갤러리)
연락처02-730-3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