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주 블로크의 작품은 지금까지 출판한 수백 권의 그림책은 물론, 매일같이 발행되는 전 세계 인쇄매체에서 언제 어디서나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어느 날 아침 신문에서 그의 삽화를 발견하듯이 예상치 못한 순간의 마주침과 같은 우연성은 그의 작품이 관객과 조우하는 방법뿐 아니라 주제, 표현방식에서도 오롯이 나타난다.
세르주 블로크는 일상 속에서 또는 여행하는 도중에 만나게 되는 아름다운 것들, 역에 버려진 기차표, 오래되어 본체에서 떨어져 버린 조각들처럼 사소하지만 나름의 의미를 지닌 객체들을 모은다. 미리 정해놓은 뚜렷한 목표와 의도 없이 낯선 곳, 낯선 시간에 작가와 인연을 맺게 된 이들은 그의 선 드로잉과 함께 작품의 한 부분을 이루게 된다. 그가 행하는 단순한 선의 드로잉 또한 자신이 그린다기보다 도구가 스스로 움직이고 이를 따를 뿐이라고 말하듯, 즉흥성을 기본으로 한다. 이렇게 모든 요소가 우발적인 행위의 결과이기에 그의 작품에는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꾸밈없는 자유분방함과 재치가 만연하다. 예정된 대로 흘러가지 않는 우리의 삶과도 닮아있는 그의 작품에 관객은 더욱 큰 기대감과 낭만을 느끼게 되며 이러한 의도의 부재가 바로 작가의 유일한 의도이다.
작품의 주제에 있어서도 그는 작위적으로 이야기를 꾸며내려 하지 않고 사람들과 그들 사이의 관계나 감정 등 일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다. 멋진 것을 그리려는 노력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즐거운 것을 그리는 작가는 관객을 미소 짓게 만드는 공감을 주목표로 삼는다. 이러한 바람은 그의 입체 작품 시리즈인
에서도 엿보인다. 본인의 이름과 같은 발음으로 작품을 마주할 때 자연스럽게 그를 연상하게 하는 은 세 개의 정육면체의 한 면에 각각 머리, 상체, 하체를 그린 오브제이다. 위치에 따라 앉아있는 모습이나 누워있는 모습을 띠는 이들은 실제로 미세한 위치 변화에도 인물이 다른 포즈를 취하는 것처럼 보여 재미를 더한다.
1층 전시실에서 인간 삶을 포괄적으로 조명하여 대중적인 소통을 이끌어내는 세르주 블로크의 작품을 만나보았다면 2층에서는 미레이유 보티에의 좀 더 은밀하고 개인적인 작품들이 관객을 맞이한다. 세르주 블로크와는 다른 매력을 지닌 그녀의 작품은 피(blood), 성(sex) 등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붉은색과 비닐봉지, 얇은 종이, 실 등 상반된 성질의 재료들의 조화로 흥미로운 형태를 띤다.
미레이유 보티에는 2006년부터 책, 비닐봉지, 천 등에 수를 넣는 형식의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왔다. 8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초기에 보여주었던 현실의 대상을 모방한 장식적 형태의 수는 차츰 그 구체성을 잃었고 보여지는 결과-시각적 이미지-보다는 과정-예술적 행위-에 집중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만들어내겠다는 목적성보다 행위의 반복, 시간의 흐름 속에 얻어지는 경험과 기억에 몰두하는 작가는 이전보다 자유롭게 손을 움직인다. 반(反)의도와 의도를 적절히 뒤섞어 만들어낸 이미지는 섬세하면서도 자유분방하다.
플라스틱 백은 분해가 되지 않는 영구적 성질을 지니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이를 일회용으로 사용한다. 작가는 쉽게 사용되고 버려지는, 가치 없는 대상에 시간과 노력의 표상인 수를 놓음으로써 또 다른 존재 가치를 만들어낸다. 어디서부터가 시작이고 끝인지 가늠할 수 없는 연속성을 지닌 그녀의 붉은 실은 늘 그대로지만 생기 없는 플라스틱의 몸(body) 속에 온기를 불어넣으며 핏줄처럼 흐른다.
비닐봉지와 같은 방식으로 수 놓여진 책 또한 강렬한 시각적 자극을 유발한다. 책 위에 단단히 묶인 붉은 실의 끝은 밖을 향하여 늘어져 있다. 프레임을 이탈하면서도 책과 엮어져 자유와 속박을 동시에 나타내는 이 섬세한 객체들은 넘쳐흐르는 듯 표현되어 한정된 공간 안에 모두 담을 수 없는 작가의 열정, 정신, 마음 그리고 기억을 상징한다. 이 밖에도 드로잉, 오브제, 설치작품 등 다양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 그녀의 작품들은 모두 개인적 경험과 생각을 반영함으로써 작가 자신의 일부 혹은 기억의 조각들로 보여진다.
세르주 블로크와 미레이유 보티에는 서로 다른 방식과 주제를 따르지만 자유롭게 사고하고 단순한 색과 형태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가진다. 이번 전시의 제목처럼 기대치 않았던 만남, “Unexpected Encounters”로 보여지는 두 작가의 공동전시는 대조와 조화를 동시에 보여주며 색다른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서로에게 영향받으며 유기적으로 연결된 두 예술가 부부의 작품을 만나보며 한국의 관객들 또한 그들과 우연하고 즐거운 인연을 맺기를 두 작가는 기대한다. 전시제목Serge Bloch & Mireille Vautier < Unexpected Encounters - 우연한 마주침 >
전시기간2013.04.12(금) - 2013.05.05(일)
참여작가
세르주 블로크, 미레이유 보티에
초대일시2013년 04월 12일 금요일 06:00pm
관람시간10:00am - 06:30pm
일요일(오전 11시 ~ 오후 6시)
휴관일월요일
장르회화와 조각
관람료무료
장소갤러리 선 컨템포러리 Gallery Sun Contemporary (서울 종로구 소격동 66 )
연락처02-720-57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