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를 넘나드는 어제와 오늘의 재료와 형식
날개를 단 소의 무리가 자유롭게 날아가는 형태를 나무에 새기고, 그위에 옻칠을 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설치를 하는 김상연 작가의 작품은 어떤 메세지를 내포하고 있을까. 겉으로 보기엔 너무도 현대적인 설치작업이지만 작가가 풀어가는 ‘소’ 라는 소재는 우리네 정서로 참으로 푸근하다.
예전부터 우리나라와 같은 농경사회에서 소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간에게 아주 고마운 존재였으나, 현대사회에서 소의 역할은 단순히 음식과 가죽을 제공하는 하찮은 존재로의 의미밖에 되지 않는다. 복잡함과 긴박함 갈등이 난무하는 현대사회에서 그러한 해결책으로서 단순히 소의 우직함과 우둔함이 그 문제들을 풀어갈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음을 표현하는 작품이다. 작가는 날아가는 소의 무리를 통해 우리사회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고 해방과 자유로움을 표현하고자 한다.
정광희는 지난 몇 년간의 작업을 통해 한국화의 문제에 대해 고민해 온 작가다. 원래 서예에서 출발한 그는 서예에 바탕을 둔 추상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형식은 좀 독특한 데가 있다. 그림을 그냥 평평한 한지에 그리는 것이 아니라, 두꺼운 장지를 일정한 두께로 접어 이를 다른 것들과 결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두께 약 1센티미터 내외의 수많은 쪽들로 이루어진 일종의 쪽 그림이다. 그것은 가로나 세로로 무한히 확장될 수 있기 때문에 거대한 스케일이 많다.
가장 비근한 소재에서 비범한 감동이 탄생하는 그 무엇이라는 생각으로, 자연과 있는 그대로의 소통을 통해서 자연의 말을 받고 화답을 토해내는 모든 과정들이 붓(물과 기름)으로 또는 한지 조각들로 캔버스에 표현한다는 강운 작가의 한지로 이루어낸 하늘을 만날 수 있다.
강운은 오랫동안 ‘순수형태(하늘과 구름)’를 표현해왔다. 유화작업에서는 시간, 공간, 빛의 문제를 표현했으며 종이 배접작업은 동양의 靜・中・動을 공기와 꿈으로 표현했고, 담채작업에서는 농경수묵민족이 갖는 보편적인 감성과 지향점을 표현하려 했다. 유화작업은 보편적으로 그리는 작업으로서 가장 먼저 시도했었고, 반투명 화선지가 무수히 겹쳐지며 구름층을 형성해가는 ‘공기와 꿈’은 만드는(기도하는) 작업으로 다른 변화를 꾀했다.
그런가 하면, 이정록의 사진작업은 빛이라는 자연재료와 카메라라는 인공재료, 그리고 약간의 설치물을 이용한 디지털 작업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공이 많이 들어간 아날로그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현대적인 소재와 작업을 넘어서 필요한 이미지를 얻기 위해 특별한 의미를 담아 가족사진을 찍듯 필요한 대상들을 무대위로 불러모아 이루어지는 작업이기에 연출된 사진이라고 할 지라도 컴퓨터 그래픽으로 작업한 가공의 이미지는 아니다. 작업과정에서 빛은 사진을 가능케하는 질료로서 뿐 아니라 순간의 깜박임을 통해 영원의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적 매체로 사용되며, 생명나무의 주변에 흩뿌려져서 표현되게 된다.
어제와 오늘의 다양한 이야기로 풀어낸 그들만의 작업세계
이매리의 작품은 언뜻 보기엔 설치 등으로 이루어진 서양의 후기 미니멀 형식으로 보인다. 하지만 작품의 전반에 깔려있는 동양성, 한국성과 더불어 일정한 관념에서 탈피된 또 다른 형식을 추구하는 진보된 실험성과 현대성 등이 내재되어있다. 이번에 전시될 Int0 great Silence 에서 그러한 요소들이 잘 드러나는데, 한국인의 정서가 베인 석굴암을 압축하여 군더더기를 떼어내고 환원시킨 결과로 드러난 정방형의 흰색배열은 석굴암의 감실을 가장 단순히 사각형으로 압축하여 표현하면서도 그 본질로 접근함을 의미한다. 석굴암을 단순화함과 동시에 그 본질을 회복시키는 의미있는 작업이다. 여기에 3차원의 조각설치인 여성의 힐을 배치하여 마치 구두가 불상처럼 보이는 형상화를 거쳐 자연스레 형상이라는 군더더기를 탈피하여 근원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독특한 관점과 시각으로 동양성, 한국성을 펼쳐내는 이매리 작가와 함께 이이남 작가의 경우 전통의 명화를 현대적으로 풀어내어 관람자로 하여금 신선한 재미를 준다. LED화면을 가득 채운 고유명화 앞에서 관객들은 발을 떼지 못한다. 그의 작업은 심장이 멈춘 명화에 전기충격을 가해 작품을 살려냈다고 표현할 수 있다. 그림 속의 나비와 꽃은 바람에 살랑이고 순간순간의 그림 속 모든 움직임들이 그저 신기할 뿐이다. 이러한 그의 작품들은 어제의 회화를 오늘의 기술로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작품이 아닐 수 없다. 그 중 이번 가나부산의 전시에서는 자연의 노래 시리즈가 전시될 예정이다.
대형 트럭에 실려가는 뿌리가 뽑힌 조경수를 우연히 마주하며, 그 처량한 모습에 강한 충격을 받고 이주민 시리즈를 이어온 작가 손봉채의 작품은 뉴욕을 중심으로 한 그의 청년기 체험에 바탕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대학시절 은사의 강력한 권고로 유학 길에 오른 작가는 뿌리 뽑힌 방랑자와도 같았던 자신의 유학생활과 조국에서의 신선한 체험을 바탕으로 독특한 작업을 하고 있다.
폴리카보네이트(polycarbonate)에 유성물감과 가는 붓을 사용하여 직접 이미지를 그려 넣으며, 그가 창안한 특유의 입체회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과 몽한적인 느낌을 전달한다.
LED가 뿜어내는 백색의 투명한 빛에 의해 모습을 드러낸 풍경은 마치 한 폭의 아름다운 산수화를 보는 것 같다. 전통 산수화가 오로지 먹의 농담으로 근경을 표현한다면 손봉채의 산수화는 5장의 폴리카보네이트 위에 나무와 구름을 묘사해 관객의 시점이 이동함에 따라 미묘한 풍경의 변화를 보여주는 입체회화의 특징을 여실히 나타내는 새로운 형식의 입체회화 산수화라 할 수 있다.
일상을 소재로 다양한 미디어작업을 하는 구현모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Wineglass 2007]를 선보인다.
그의 작품에서 카메라는 대게 고정되어있고 풍경이 움직인다. 움직임이 내재된 풍경을 선택한 작가의 시선 자체가 작품인 것이다. 작품은 물이담긴 포도주잔을 달리는 기차의 창가에 배치하여 창밖에 펼쳐지는 스펙터클한 풍경들의 소용돌이를 보여준다. 바깥풍경이 거꾸로 잠겨 빙빙 돌아가는 모습은 계속 펼쳐지면서 동시에 말려 들어간다. 눈앞에 펼쳐지는 이 서정적인 장면은 찻잔 속의 폭풍 같은 것이 된다. 작은 컵에서 시간이 가속도를 내며 소용돌이 친다. 이 작품은 출발과 도착점을 가지는 기차 같은 선형적 매체 내부에 무수한 시공간의 루프가 잠재해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실제와 허구 주관적 사실과 객관적인 사실 그것에 대한 구분을 정의하지 않는다. 그의 작업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그 모호한 상태를 남겨두는 것이 아닌 그것의 구분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질문이다.
전시제목어제와 오늘
전시기간2012.11.08(목) - 2012.11.27(화)
참여작가
강운, 구현모, 김상연, 손봉채, 이매리, 이이남, 이정록, 정광희
초대일시2012년 11월 08일 목요일 05:00pm
관람시간10:00am - 06:00pm
휴관일없음
장르특별전시
관람료무료
장소가나아트 부산 Gana Art Busan (부산 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 292 노보텔 앰배서더 부산 4F)
연락처051-744-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