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
생업의 발견 Series - 양명진
나는 작업을 통해 현실 너머의 생경한 주제들을 지양하고, 미술가를 동떨어진 유별난 존재가 아닌, 사회 속의 생활인으로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그래서 가장 가깝고도 가장 절실한 삶의 테마인, ‘생업’의 단면들을 작업에 담아보았다. 대중 위에 군림하는 천재나 스타 작가가 아닌, 투박하고 비루한 생활인으로서 작가의 삶의 모습을 반영하고 싶었다.
수많은 작가들이 프리터로 살면서 part time 아르바이트와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라 수많은 직군을 전전하다가 그 중에서 그나마 작업과 생업을 병행하기 가장 적합한 비정규 아동미술 강사직에 몸담게 되었다.
획일화되고 단순반복적인 이 생업 자체는 나에게 큰 보람을 주지는 못했지만, 어느 날인가부터 나는 이 생업의 과정에서 새로운 시각적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멋지게 완성시킨 아동화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아이들이 버린 망친 그림, 낙서 같은 난화, 미완성의 참고그림, 자투리 재료 등에서였다.
나는 매 수업이 끝난 후 남은 재료와 각종 부산물들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이들을 화면에 꼴라주하거나 잘게 부수고 갈아서 화면에 밀착시켜 보았다. 석고와 미디움 등의 유동성의 재질과 각종 아동미술 재료들 특유의 달콤한 색상들이 한데 뒤엉키면서 고단한 생업을 이어나가는 작가가 뱉어낸 축축하고 번들거리는 토사물과 같은 결과물이 도출되었다.
전시서문
“생업의 발견”: 양명진 제 2회 개인전 - 전시기획자 김김주혜(수수)
‘취미’미술을 하는 ‘여류’작가. 그림으로 먹고 살지는 않으니 아무래도 ‘전문’화가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남성화가와는 분명 다른 부류로써 여성작가를 취급하던 세월은 지나갔다고들 한다. 비록 여성과 남성 성비를 고정하고 미대 입학생을 뽑았다던, 정말 믿기 힘든 ‘불합리’가 2000년도까지 있었지만, 그리고 아직도 미대 등 아카데미 제도 안에서 정규직인 교육노동자 성비가 엄청나게 불균등하지만(그러니까 정교수 중에서 여성 비율이 엄청나게 적은 수이기는 해도) ‘여류’작가라던가, ‘취미미술’을 운운하는 말들은 사라졌다.
그리고 대신 엄청난 수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군이 등장 했다. 졸업 후 여성, ‘작가 지망생’ 들은 미대 입시 미술의 전쟁터로 흡수되거나, 아동•청소년 혹은 미술, 혹은 교육 혹은 출판계 혹은 다양한 국책 산업 속 - 오묘하게도 성별에 따른 직업군과 썩 잘 맞아떨어지는 분야 - 에서, ‘콘텐츠’를 제작하는 작은 나사못, 즉 거대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군이 되는 것이다. 운이 좋은 경우 한 달 100만원은 받는 갑과 을의 계약에서 당당히 ‘을’로써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요즘 많은 여성 ‘작가’군들에게 ‘직업’으로 기능하는 일터는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창의+미술 교육이다. 이미 도래해 버린 21세기에, 상상력과 창의성은 없는 돈도 만들어내는 화수분. 새롭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머리와 이를 통해 투자자를 유혹할 수 있는 기술 - 일명 프리젠테이션 - 이 가장 뜨거운 돈벌이 방법이 되었다. 창의성과 상상력이라는 언어로 표현되는 이것을 키우려고 제도 안 밖의 창의교육 열기는 뜨겁기만 하다. 그리고 이런 아동들의 창의성 개발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작가’들의 일터가 되었다. 미술 ‘작업’들을 보고 비평을 한다는 글을 쓰는 ‘나’ 또한 그런 위치에 있으며, ‘생업’으로써 미술을 ‘한다’는 양명진 작가 또한 ‘직업’으로써 ‘아동미술 선생님’을 하고 있다.
아동미술을 한다, 작품 재료가 값싸다, 작업 소재가 일상적이다, 색깔이 알록달록 오밀조밀하다, 그러므로 ‘여성’작가가 한 것이 분명하다, ‘여성적 감수성’이 넘쳐난다.
고 작업에 대해 말한다면, 이는 가슴 시리도록 적확한 시대적 증언일 수밖에 없다. 먼저 위치와 현존으로 문화를 낳고 있는 지금의 장소, 몸과 그 노동성을 떠나도록 강제하는 창의성이 여성과 남성이라는 두 가지 젠더 구분과 위계를 강화함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 ‘생업’으로써 ‘작업’을 하는 작가군이 젠더적으로 다른 일터와 노동형태를 가져가는 걸 확인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구차하게 설명을 하자면 뭐 이런 거다. 미대 학생의 대부분이 여성이지만 이상하게 미대 교수, 강사들, 미술계의 정책 결정권자들 또한 거의가 남성인 이 불가사의한 확고부동의 현실 같은 거. 코워크(Co-work) 하면서 브레인 스토밍(Brainstorming)하고 프리젠테이션(Presentation) 끝나고 SNS 만들려고 2~3차 가는 창의력 샘솟는 노동현장과 계약조건, 서류없이 임시로 고용인지, 갑을 계약인지 모를 처지에서 아동들과 육체적으로 씨름하면서 시간 단위 노동을 시급으로 계산 받는 노동현장의 차이 같은 거. 말이다.
원래부터 여성유전자가 ‘아동을 좋아하도록’, ‘값싼 재료’와 ‘아기자기하고 알록달록한 색깔’을 선호하도록 시켰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는 말자. ‘생업’과는 별도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를 ‘입은’ 양명진 작가에게 문화의 씨앗이 자라는 곳은 이런 성별화 된 일터이다.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윤리를 강제하는 노동 현장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런 버려진 땅일 것 같은 곳에서 양명진은 흐드러진 자신의 작품 생태계를 키우고 있는 셈. 양명진 작가가 드러내는 작품의 형태들은 버려진 땅에서 자라날 수 밖에 없는 잡초가 아니라, 이제까지 사람들이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생태계의 발현, 그 곳에서 드러나는 문화, 시대적 이야기가 선택한 자가 풀어내는 또 하나의 창의적 생명인 것이다.
자신이 딛고 있는 위치, 거주하고 있는 몸을 직시하고 문화를 배태하는 공간으로 꾸준히 일구어 그녀만의 창의적 작업 생태계를 만들어 냈다. 모두가 자신의 몸과 거주하는 땅으로부터의 탈주만을 꿈꿀 때, 재개발과 리셋이야말로 행복의 절대 조건이라며 지금 자신의 몸을 지옥으로 만들 때 양명진 작가는 풍자와 위트로 독특한 삶의 창의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게 바로 삶의 윤리이며, 오늘날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를 입은 작가가 ‘생업’으로 줄 수 있는 가장 절절한 공감. 감동이 아니겠는가.
전시제목양명진 - 생업의 발견
전시기간2011.09.21(수) - 2011.09.27(화)
참여작가
양명진
초대일시2011-09-21 18pm
관람시간10:00am~18:00pm
휴관일없음
장르회화와 조각
관람료무료
장소영아트갤러리 Young Art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5 2층)
연락처02-733-3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