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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랑스의 발랑시엔에서 출생했다. 1702년 파리로 옮겨 당시 그랑드 오페라극장의 장식화가였던 C.질로에게 배우고 이어 장식화가 C.오드랑의 조수가 되어, 주로 인물사생과 희극배우들을 스케치했다. 오드랑은 당시 뤽상부르궁의 궁정화가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와의 접촉으로 궁전에 있는 루벤스나 플랑드르계 명화를 접하고 감화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후 16세기 베네치아파에서도 영향을 받아, 점차 로코코회화의 창시자로서의 작풍을 확립해나갔다.
1717년 왕립아카데미 정회원이 된 기념으로 그린 《키테라섬의 순례》로 명성을 떨쳤는데 이 그림 속에는 와토 예술의 특색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당시 베르사유궁전을 중심으로 꽃핀 화려한 왕조문화의 궁전풍속을 비롯하여 주로 프랑스 상류사회에서 펼쳐지고 있던, 밝고 우아하며 관능적인 매력을 풍기는 풍속이나 취미에 적합한 작풍을 전개하여 ‘아연(雅宴:fête galante)’으로 불리는 로코코회화 특유의 테마와 정서를 확립해가고 있었다. 자연관찰에 충실하였으며, 그의 작풍을 이어받은 다른 로코코화가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풍요함이 깃들어 있었다.
육체적으로 연약했던 와토는 일찍부터 폐병을 앓아 1720년 요양차 런던에 갔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다시 파리에 되돌아왔다. 그런 환경에서도 친구 제르생이 화상을 시작하였을 때, 가게의 간판그림으로 평생의 걸작 《제르생의 간판》(베를린 샤를로템부르크궁 소장)을 그렸다. 이 그림을 완성하고 얼마 안 가서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나, 그는 18세기의 전 유럽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밖의 작품으로 《전원오락》 《파리스의 심판》 《제우스와 안티오페》, 이탈리아희극에서 취재한 《질》 등 명작들이 파리 루브르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