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미술을 경작(耕作)하다>는 무엇인가. 어떻게 미술을 경작한다는 것인가?
경작이란 ‘땅을 갈아서 농사를 짓는다’는 뜻이다. 농사는 '만든다'라고 하지 않고 '짓는다'고 한다. 여기서 ‘짓-’의 기본의미는 대상의 자연스런 형상화이며, ‘만든-’의 기본의미는 대상의 의도적인 형상화를 뜻한다. 이러한 사전적 의미로 보면 농사는 이미 자연스런 형상화로서 오랫동안 생활처럼 진행되어온 일과이지만 처음에는 생존에 대한 치열한 투쟁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평범해 보이는 농사에는 자연과 식생의 수많은 변화에 대한 관찰과 노동의 노고가 들어있으며 이를 집적(集積)한 고도의 정보체계라 할 수 있다. 『미술경작』은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착안하였다.
『미술경작』은 미술의 포괄적인 범주에서 집적에 의한 제작 특성을 가진다. 이를 바탕으로 공통점이 있는 작가들을 찾아 제작의도를 적확하게 판단하였으며 이 방법론이 현대미술 안에 하나의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는 특징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를 통해 이 작품들이 운용되는 현대미술 구조의 특성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미술경작』을 ‘경작미술’ 또는 ‘경작의 미술’이라 지칭할 수 있지만 이것은 오래전부터 논밭에서 노동을 하는 모습을 그린 경작도(耕作圖)를 칭하는 것이므로 이번에 사용한 『미술경작』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또한 ‘경작술(耕作術)’이라 하여 ‘사진술’이나 ‘인쇄술’과 같은 기술적인 의미도 떠올릴 수 있으나, 이 명칭은 그림의 기능성만 부여하는 성격이 강하므로 참여 작가들의 생각이나 작품제작 의도와는 많은 차이가 있어 전시기획의 취지가 아님을 밝힌다. 따라서 『미술경작』은 집약적인 노고를 쌓아 만드는 수행과도 같은 작가의 창작행위와 이를 운용하는 작가정신을 지칭한다.
2.『미술경작』은 평면을 극한의 인고와 싸우며 정면으로 승부하는 이들, 마치 물감과 표면사이의 이랑을 유영하고 표면을 채워 일궈나가는 ‘지독한 그리기’의 작가들이다. 그리고 또 한 유형은 설경(設經)과 같은 종이오리기의 집중력을 보이는 작가도 있다. 설경은 '경을 이야기한다'는 뜻을 지니며 법사의 굿 장소를 종이로 꾸며 장식한 제반 장엄구를 가리킨다. 이는 매우 섬세한 집중력을 요하는 제작과정을 거치며 전통적인 놀이와도 통하고 전통정신과도 상응한다. 이러한 전통적 오리기를 적용한 작가들의 작업은 얇은 종이를 뚫고 세워 일으켜 전면과 이면을 통하는 기호적인 행위의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미술경작』의 작가들은 다양한 한국미술의 흐름 속에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역사적 인물이나 주변의 이미지를 신 개념의 이미지로 바꾸는 독자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일상의 새로운 해석과 의식의 전환을 추구하며 노동집약적인 방법으로 현대미술의 한 장르를 정립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한마디로 작업방법이 집요하게 반복하여 그리거나 오려내는 것이 이들의 공통점이다. 따라서 집적에 의한 특성을 지닌 제작의도를 적확하게 판단하는 일은 중요하다. 이는 현대미술에서 한 패러다임이며 불변의 특성이기도 하다. 이러한 특성을 새로운 이디엄idiom으로 구축하고, 나아가 미술의 명확한 특징으로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고자 한다.
3. 『부분과 전체』- 김동유의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을 병치 혼합한다. 이 이미지는 냉전시대의 이데올로기나 시대적으로 구현하던 정의의 올바름 속에 감추어진 이중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보이는 외양의 이중적인 이미지 읽기 이전에 그의 작업태도는 '지독한 그리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어떤 풍경』- 노주용의 풍경은 평범하게 스치는 숲의 언저리, 언뜻 보면 나무 그림자 같은 이미지로 보이지만 숲의 한켠을 포착하여 바닥을 실루엣처럼 형성한 다음 가는 붓으로 반복하여 여러 색체들이 전자기기의 회로처럼 정교하게 짜인다. 숲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규격화된 현실을 조금은 떠나서 정서적 이상향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작가 내면의 지향점이다.『현세적 유토피아』- 민성식의 풍경은 이상적이거나 환상에 의한 공간이다. 이공간은 가상적이긴 하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공간이며 아기자기하며 인적이 있는 공간이다. 과감한 구성의 구도에 의해 만들어지는 공간은 조감법과 화면이 커다란 분할로 시야를 트이게 하는 효과를 준다.
『연약한 직립』- 박계훈의 주제는 원초적 형질로 보이는 '콩나물' 형태이다. 90년대 후반 시작한 콩나물 작업은 삼베 천을 손바느질로 만들기 시작하여 나무젓가락의 조각, 그리고 최근의 장지에 콩나물 대가리를 오리기까지 일관적이다. 근래의 종이오리기 '연약한 직립'은 언 땅을 뚫는 연하지만 강한 생명력을 밀어 올리는 싹처럼 삶을 통한 시간의 증식됨을 표현한다.『관조하는 실경』- 박능생은 산을 올라 몇 번이고 스케치하여 장대한 파노라마의 산수로 펼친다. 그의 그림은 산과 물의 것만이 아니다. 그 안에 숨 쉬는 사람이 포함된다. 때로는 번지점프의 자세로 거대한 풍경을 휘감아 돌고, 등산객으로, 계곡의 누드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 저변에 깔린 수묵은 점점이, 또는 반복적인 준법으로 전통을 저버리지 않고 새롭게 태어난다.『사유의 수행』- 오윤석은 한자로 된 서체나 난초를 오려내고 한지의 얇음을 이용해 빛을 투과하거나 오려내 네거티브를 드러내 작은 핵 점을 가진 돌기들이 돋아난다. 마치 생명의 자람은 반복적이고 무생산적인 과정을 거치며 자라듯 시간을 비워낸 자리에 금강경의 서체가 탄생한다. 근래에는 얇은 종이에 따닥따닥 한지표면의 일부분을 드러냄과 동시에 나타나는 무중력적인 빈 공간을 즐긴다. 『이면의 그물』- 윤종석은 점점이 찍은 도드라진 점(點)으로 옷을 표현하고 있다. 이중적의미의 소비적 성향의 대중성과 무관한 동물들이 연출되고 이러한 동물적 의미는 과거 팝아트의 무한정적인 소비의 한계를 넘어 서정적인 현대인의 마음으로 이끄는 매력이 있다.
『현실풍경』- 이민혁은 어두움과 정렬적인 색채로 현세적 풍속도를 그리고 있다. 그림 전반에 깔린 현실을 보는 냉철한 판단은 때로는 도발적이기도 하지만 다수의 입장에서 보면 속 시원한 기록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표현주의적인 그의 표현은 때로는 시니컬하고 어두운 면이 있지만 사람의 심리를 적확하게 읽게 한다.『표면의 감각』- 함명수는 "회화의 문지방이라 할 수 있는 표면에서" 외부 세계를 성찰하여 내부로 끌어들이는 작업을 한다. 화면 전체에 균일하게 도포된 붓질이 꼬불거린다. 「면발풍경」으로 시작된 도시 경관의 파노라마는 다양한 질감을 유발하며 도시의 곳곳을 누비는 피부가 되었다. 털실이나 풀잎, 면발 같은 흔들리는 터치에서 표면의 감각들이 내부의 풍경을 기묘한 세계로 이끌어 간다. 『비대상적 의미』- 허구영은 '시간이란 겹겹이 쌓여져서 누적된 주름의 다발과도 같다"고 인식하며 현재의 시간을 확고하게 구성하는 것에 의미를 둔다. 그의 기억 속에 있는 흔적들을 찾아 확인하고 설정해보는 것이며 그 존재를 구성함과 동시에 해체한다. 못 그림자 작업은 하찮은 시간성에 대한 확인이며 오래된 텍스트의 제시는 지난시간을 곱씹어 현재의 시간을 드러낸다.
이순구
전시제목미술경작(美術耕作)
전시기간2012.03.07(수) - 2012.04.22(일)
참여작가
김동유, 노주용, 민성식, 박계훈, 박능생, 오윤석 , 윤종석, 이민혁, 함명수, 허구영
관람시간10:00am~19:00pm
휴관일월요일
장르회화와 조각
관람료일반 500원 (20인이상 단체 400원)
어린이,청소년,군인 300원 (20인이상 단체 200원)
장소대전시립미술관 Daejeon Museum of Art (대전 서구 만년동 둔산대로 99번지 (만년동 396) 대전시립미술관 )
연락처042.602.3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