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적의 비례와 조화로운 색감, 동양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한 이지적인 작품세계로 널리 알려진 중견작가 최선호의 19번째 개인전이 3월 10일부터 갤러리 선 컨템포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시적 추상>전에는, 후기 산업사회를 살며 가치의 파편화와 예술적 유행에 지친 관객의 눈과 마음을 달래 줄 신작 30여 점이 전시된다. 작가는 엄정된 미감의 추구와 인문자연에 대한 지적 호기심, 견문과 깨달음을 시적으로 풀어낸다.
작가 최선호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력이 본격적으로 대두되던 1980년대 뉴욕에서 유학하며, 여전히 미니멀리즘의 열풍이 한창이기도 했던 그곳에서 고민하다가 마크 로스코, 엘스워스 켈리 바넷 뉴면의 그것과도 같은 차가운 미니멀리즘 추상을 선택한다. 그는 구상적 전통을 버리고, 기하학적 면 분할을 통한 가로와 세로의 직선이 나누는 완전한 추상성을 획득하려고 노력하였으며 그것은 문학에서 보이는 시적 극명성을 회화의 단순성으로 표현하려는 노력이기도 했다. 그러나 서구 모더니즘의 극단이라고도 할 수 있는 미니멀리즘을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한국인이라는 사실과 동양사상은 어쩔 수 없이 그만의 작업에 물들어 간다. 최선호 작품의 색과 면의 조화는 긴장감과 이성적 이미지를 보여주지만 여유롭고 그윽한 동양적 색감과, 감각적 서정성도 감추지 못하고 여지를 남겨놓았다. 형식의 극단과 감각의 여유를 동시에 보여주는 미니멀과 맥시멀의 공존이다. 특히 신작 30 여 점은 작가의 지난 20년간의 수고와 역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미니멀과 맥시멀, 동양과 서양, 고전과 현대, 문학과 예술, 시와 산문, 격정과 냉정, 이성과 감성, 내용과 형식을 티없이 조화시키려는 이상주의자적이며 인문주의자적인 작가의 면모와 이를 동반하는 고독과 열정의 세월이 그대로 보여진다.
차갑고도 뜨거운 이번 전시작들은 작가의 삶과 맥락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작가는 3년 전 히말라야 에베레스트베이스캠프(해발5400m)를 등정하며 그것은 문명이 결코 정복할 수 없는 절대자연의 경외와 신비였고, 그 앞에 선 작가는 고독과 자유가 자신의 것이며 존재의 무게를 이루는 것임을 알았다. 그의 소중한 체험은 예술의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자신만의 예술철학을 화면에 마음껏 담을 수 있는 깨침의 순간이었다고 한다. 3년이 흐른 후에야 탄생한 이 작품들은 작가가 존재와 자연에 대한 감흥과 영감을 찰나적인 것 그 이상으로 객관화시키고 개념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을 거쳐, 화면 위 은유적으로 표현한 시적 추상이다. 이 은유의 과정은 단순히 수사학적 도구로서의 감성적 은유가 아닌, 최선호가 세계와 예술을 개념적으로 인식하고, 그것과 관계 맺는 방식으로서 작가의 삶의 매일을 차지하는 사유적 과정이다. 그리고 이런 은유적인 삶과 그것을 담아내는 작품은 시적이다. 이러한 ‘맥락’적 시적임은 최선호 작품의 ‘형식’적 시적임, 즉 최소한 형식요소를 동원한 아름다움과 조화로움을 동반한다. 이번 전시에 보일 단색조의 색면 추상작품은, 겹겹이 입혀진 색이 서로의 경계를 스미는 듯, 침범하는 듯 보이며 마치 먹의 농담이 번질 때의 술렁임과도 같은 고요한 요동이 느껴진다. 작가가 히말라야에서 경험한 자연과 존재의 진동율과도 같다. 당시의 목청 높은 감탄사에서 전환된 고요한 깨달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작가는 에베레스트에서 이미 자신의 내면과 작업에 있어서의 변화를 예견했다고 한다. 이상적 예술과 객관적 미는 도달이 아닌 추구에, 그리고 예술적 삶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은 작가는 젊은 여정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전시제목시적 추상
전시기간2011.03.10(목) - 2011.04.03(일)
참여작가
최선호
관람시간10:00am - 06:30pm
휴관일월요일
장르회화와 조각
관람료무료
장소갤러리 선 컨템포러리 Gallery Sun Contemporary (서울 종로구 소격동 66 )
연락처02-720-57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