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은의 용 그림
용의 상징성에 부합하는 화려한 발색의 장엄미
신항섭(미술평론가)
새해가 되면 누구나 새로운 꿈과 희망에 설레게 된다. 궂은일은 다 털어버리고 새로운 기분으로 새날을 맞이하고 싶다는 소망의 불을 지피게 된다. 그러기에 예로부터 누구나 할 것 없이 새해맞이에 부산하다. 미술계도 예외는 아닌 듯싶다. 언젠가부터 12간지에 따른 띠 동물을 소재로 하는 전시회가 어김없이 연초 화랑가를 장식하고 있기에 그렇다. 세시에 볼 수 있는, 띠 동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생활풍습이 어느 틈엔가 자연스럽게 미술계로 침투하게 되었다. 띠 동물을 소재로 하는 전시가 마치 연례적인 미술행사가 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띠 동물의 형상에 부귀장수의 기운을 담뿍 담아 만사형통하리라 서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띠 동물의 특성이 그대로 우리들 일상에 전해져 상서로운 기운이 집안 가득히 넘쳐나기를 기대하는 것이리라.
권지은의 용을 제재로 한 전시도 띠 동물을 내세운 새해맞이 행사의 일환으로 열린다. 용은 용기와 비상 그리고 희망의 상징으로서 예로부터 인간 삶에 이로운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2012년 임진년壬辰年은 간지로 보아 용의 해인데다 60년 만에 오는 흑룡의 해이니 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특히 흑룡은 오행사상과 관련해 북쪽을 가리키고, 물에 해당한다. 물은 만물의 생장의 근원이라 할 수 있으므로 흑룡의 해는 여러모로 좋은 기운이 팽배하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권지은의 용 그림은 흑룡의 해 그 서막을 알리는 장엄한 의식의 상징물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나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결코 해를 끼치지 않는 용의 지혜를 빌려 만사형통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상징적인 메시지와 더불어 시각적인 이미지로서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장식회화로서의 가치를 간과하지 않는다. 기괴한 용의 형상을 보면서도 무섭다는 느낌보다는 시선을 현혹하는 화려한 이미지에 짐짓 마음을 빼앗기는 것도 이에 연유한다.
용의 형상 자체보다도 먼저 번쩍이는 금빛과 은빛은 물론이려니와 밝은 원색적인 이미지에 매료된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동요하고 감정이 고조되는 것을 느낀다.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처럼 화려한 이미지에 자극되어 내면 깊숙이 자리한 잠재적인 욕망이 꿈틀거리는 듯싶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다시 말해 생의 욕망을 일깨워주는데 기능한다. 이렇듯이 그의 용 그림에는 본능적인 생체의 리듬을 촉발하는 에너지로 충만하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그의 용 그림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경계가 아닐까.
용 자체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회화적인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소재가 되기에는 상징성이 너무 강하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존의 용 그림과는 다른 새로운 조형적인 해석을 부여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무엇보다도 이제까지 보기 힘들었던 금과 은이 번쩍이는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 장엄미를 강조함으로써 시각적인 이미지를 강화시킨다. 이는 단순히 장식적인 효과를 겨냥하는데 그치지 않고, 무엇이든지 최상의 위치에 놓이는 용의 상징성에 부합하는 장엄미를 구현하려는데 기인한다.
실제로 그의 용 그림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비록 소품일지언정 화려한 장식적인 미는 공간 장악력이 출중하다. 다시 말해 시선을 집중시키고 압도하는 시각적인 압박감이 크기만 하다. 이러한 시각적인 효과를 조성하는 데는 몇 가지 조형적인 장치가 강구되었다. 금박 및 은박이라는 고급한 재료에다가 부조형식에 가까운 도드라지는 윤곽선으로 하여금 입체감이 느껴지도록 한다. 그러기에 평면적인 이미지보다는 훨씬 실제적인 느낌이 강렬하다. 뿐만 아니라 검정, 자주, 빨강, 파랑 등의 단색으로 처리되는 배경으로 인해 금박과 은박 그리고 원색의 발색이 한층 돋보인다. 이는 시각적인 자극을 부추기는 조형적인 장치들이다.
어쩌면 예로부터 벽사의 의미가 담긴 귀면이나 부적 따위가 지극히 장식적이고 채색이 화려했던 점을 감안할 때 밝은 화려한 장식성에는 벽사의 뜻도 담겨 있는 것이리라. 그러고 보면 초월적인 힘의 화신인 용으로 하여금 악한 것을 물리치고 선한 것을 불러들이는 벽사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의 용 그림은 세시의 희망찬 분위기를 북돋우는 목적화로서의 기능과 함께 회화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한 장식화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이나 중국, 일본의 그림이나 장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용은 원래 중국에서 만들어진 상상의 동물이다. 중국에서는 황제를 상징하는 절대권능의 동물로서 범접하기 힘든 영역에 존재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초월적인 힘과 능력을 지닌 동물로서 권선징악을 주재하는 친숙한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그러기에 세시를 맞아 용의 기운을 받아들임으로써 운수대통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싣게 되는 것이다.
용을 제재로 하는 테마전이다 보니 오로지 용 자체의 형상에만 집중하고 있다. 해룡과 운룡 그리고 측면상과 정면상 등으로 다양한 이미지로 단일 제재로 인한 단조로움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읽혀진다. 배경 속의 구름이나 파도 문양으로 운룡과 해룡을 구분할 수 있다. 그림의 틀도 타원형으로 만들어 한층 부드럽고 온화한 인상을 지닌다. 용의 형상은 대체로 정형화되어 있기에 창의적인 시각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점을 간파한 그는 화려한 발색의 효과를 통해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하는데 의미를 두었다. 특히 기술적인 면, 즉 묘사력과 비례감감에서도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여 그 용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형상이 아주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표현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문헌인 ≪광아 廣雅≫ 익조(翼條)에 묘사된 용의 모습을 다음과 같다. “용은 인충(鱗蟲) 중의 우두머리[長]로서 그 모양은 다른 짐승들과 아홉 가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즉, 머리[頭]는 낙타[駝]와 비슷하고, 뿔[角]은 사슴[鹿], 눈[眼]은 토끼[兎], 귀[耳]는 소[牛], 목덜미[項]는 뱀[蛇], 배[腹]는 큰 조개[蜃], 비늘[鱗]은 잉어[鯉], 발톱[爪]은 매[鷹], 주먹[掌]은 호랑이[虎]와 비슷하다. 아홉 가지 모습 중에는 9·9 양수(陽數)인 81개의 비늘이 있고, 그 소리는 구리로 만든 쟁반[銅盤]을 울리는 소리와 같고, 입 주위에는 긴 수염이 있고, 턱 밑에는 명주(明珠)가 있고, 목 아래에는 거꾸로 박힌 비늘(逆鱗)이 있으며, 머리 위에는 박산(博山 : 공작꼬리무늬같이 생긴 용이 지닌 보물)이 있다.”
전시제목용두용미(龍頭龍尾)展
전시기간2012.01.04(수) - 2012.01.20(금)
참여작가
권지은
초대일시2012-01-04 16pm
관람시간10:00am~18:00pm
휴관일없음
장르회화와 조각
관람료무료
장소장은선 갤러리 Jang Eun Sun Gallery (서울 종로구 경운동 66-11 장은선 갤러리)
연락처02-730-3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