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개요
국제갤러리는 한국의 대표적인 중견작가이자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인 우순옥의 개인전 <잠시 동안의 드로잉>을 개최한다. 그 동안 개념적인 작업으로 한국적 여백의 미를 보여주었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설치와 드로잉, 영상작품으로 그 사색적인 작업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우순옥 작업의 특징은 구체적인 사물을 표현하기보다, 공간이나 시간과 같이 비물질적인 상태에 관심을 가지며 이를 구현하는 것에 있다. 일상의 순간적 시간 혹은 먼 우주적 시간으로 보면 꿈 같이 짧은 우리의 인생을 ‘잠시 동안의 드로잉’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잠시 머물다 떠나는 무형의 존재에 대한 흔적을 표현하고자 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어디에도 없는 곳에 대한 사유, 보이지는 않지만 어딘가에 있을 우리의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환상과 그리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전시안내 및 작품세계
우순옥 작가의 <잠시 동안의 드로잉>展은 1993년과 2006년에 이어 국제갤러리에서 세 번째로 갖는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먼 동경의 대상에 대한 꿈과 상상력을 보여주었던 지난 전시에 이어 보다 사색적이고 시적인 은유의 공간을 구현하고 있다. 전시장 입구에 있는 텍스트 작업 <우리는 모두 여행자>가 보여주고 있는 것과 같이, 이 세상에 머물다 떠나는 우리의 인생을 ‘잠시 동안의 드로잉’ 이라고 생각하는 작가는 이번 전시 전반에서 그 사유의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1층 중앙 공간의 작품 <12편의 신기루>는 각기 다른 12개의 영화필름에서 차용한 영상과 부드러운 들꽃 식물들을 함께 설치한 작업이다. 작가가 독일 유학시절부터 많은 관심을 가지고 보아온 영화들 중, 마음 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영상 이미지를 선택하여 반복해서 보여주는 이 작품에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Andrei Tarkovsky)의 <노스탈지아>, 베르너 헤어조크(Werner Herzog)의 <파타 모르가나>, 루치아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의 <베니스에서의 죽음>,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Michelangelo Antonioni)의 <여행자> 등과 같은 작가주의 감독들의 영화가 포함되어 있다. 각각의 화면에는 영화의 특정한 한 장면이 반복되고 있는데, 이 영상 클립들은 공통적으로 존재와 부재, 장소와 기억, 판타지와 이상향에 대한 갈구를 드러내는 순간을 보여준다. 환영으로 존재했다가 금새 사라져버리는 신기루와 같이 이미지 혹은 잔상으로만 남아 있는 상태를 삶과 동일시하는 작가는, 관람객들이 영상과 자연이 있는 공간 사이를 마치 미로의 정원처럼 산책할 수 있도록 하여 잠시나마 어떤 세계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준다.
한편, 갤러리 2층의 공간은 사유의 장소로서 작가의 방을 보여준다. 이는 2006년 국제갤러리에서 있었던 개인전 <아주 작은 집>에서 기억의 장소로서의 작가의 방을 불러왔던 것과 비견될 만 하다. 영상작업 <예술은 이미 우리 마음 속에 있다>는 작가가 본인의 아틀리에에서 행한 사유의 퍼포먼스를 담은 것이다. 영상 속의 작가는 작품을 바라보다가 문득 작업실을 느리게 서성이며 6세기경의 짧은 시 한편을 한 구절, 한 구절 마치 보이지 않는 영혼을 부르듯 읊조리며 발화한다. 이는 작가가 오래 전 보르헤스의 책 속에서 발견한 윤회사상이 감도는 시로서, 여기서 그는 이전 전시 <아주 작은 집>에서 보여줬듯 “무엇을 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본다는 것 자체가 결국 심연을 본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라고 다시 한번 묻는다. 드로잉, 오브제, 퍼포먼스 영상 등으로 구성되는 이 공간에서 관람객은 각자 마음 속의 이야기를 불러내며 시적 드로잉의 산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순옥의 작품 전반에 등장하는 ‘달’의 존재는 작가에게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영혼이 사는 이상적인 세계를 상징하며 어떤 깨달음의 의미로 작용한다. 이와 같은 의미의 기원은 이전 작품인 <달-산책>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작품은 추운 겨울 한밤중에 인적이 드문 숲길을 지나 집으로 돌아갈 때 자신을 따라오는 밤하늘의 달을 비디오로 찍은 것이다. 이때 가지게 된 “변화무쌍하며 덧없이 흘러가 부서져버리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면, 그것의 저편에 우리가 그리워하는 고귀한 본질은 불변하는 영원과 같은 그 무엇일 것”이라는 성찰은 작가의 이후 작품 세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전작 <루나 오아시스>는 달에 소형 우주 온실을 개발한다는 기사를 접한 이후 이에 대한 상상력을 펼쳤던 작업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어딘가에 있을 우리의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준 바 있다. 같은 맥락에서 NASA에서 찍은 달의 모습을 느리게 반복하여 보여주는 이번 영상작업 <그 곳>은 계속 변화하는 달의 모습에서 우리가 한 순간도 가질 수 없는 어떤 존재에 대한 동경을 상기시킨다.
우순옥은 이번 전시를 통해 장소, 기억, 존재와 부재, 기다림, 동경과 같은 가치와 의미를 마치 드로잉과 같이 쓰고 지우는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형상을 만들어 나가면서, 이미 ‘없는’ 그러나 그 없음으로 인해 존재하는 것을 환생시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 노트
지난 겨울, 베르너 헤어조크(Werner Herzog)의 아주 오래된 영화, 파타 모르가나(Fata Morgana)를 다시 보았다. 마치 신기루 같은 사막에서 광활하면서도 담담하게 펼쳐지는 죽음과 폐허의 시적 엘레지가 너무 나도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무언가 알리려고 하지도, 또 증명하려고 하지도 않은 채 있는 그대로 모든 사물을 실존적 차원에서 접근하여 오래도록 바라다보는 시선의 신비로운 풍경이 주는 강렬한 여운. 릴케가 노래했던가. 어찌 삶이란 시간은 시작부터 사라져가는 것일까. 잠시 동안의 신기루 같은 삶과 예술. 난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끌어내고 싶고 무엇보다 세상을 시적(詩的)으로 만들고 싶으며 사라져가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대학 시절부터, 그러니까 예술가로서 30년의 경력 동안 나는 구체적인 사물을 그리는 것을 피했고 덧없고 만질 수 없는, 심지어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집중해왔다. 특정한 대상을 그리기보다는 늘 어떤 상태, 그 마음을 담아내고자 했다. 나의 작업은 언어가 잡아낼 수 없는 빔(emptiness)의 상태이고 언어 이전의 태초의 상태이며 흘러 사라져가는 현실의 그림자와도 같다. 나는 그림이 세상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거나 그 너머 진실을 담아내기 위한 그 무엇이 아닌 우리 마음 속에 이미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지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예술은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잠시 동안의 드로잉 Drawing for a while>의 ‘잠시 동안’은 일상의 순간적 시간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먼 우주적 시간으로 보면 꿈같이 짧은 우리의 인생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듯 나의 드로잉이란 나의 삶과 예술을 지칭한다. 지난 전시 <달과 그의 친구들 Lunar Oasis>에서 보여줬던 먼 동경에 대한 아름다운 꿈과 상상력은 <잠시 동안의 드로잉 Drawing for a while>에서 詩的 은유의 산책을 한다. 이것은 내 마음의 숨이며 쉼이다. 나는 그 동안 여러 작품과 글을 통해 어디에도 없는 곳에 대한 사유, 보이진 않지만 어딘가에 있을 우리의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환상과 그리움을 이야기하곤 했다. 이번 전시 <잠시 동안의 드로잉 Drawing for a while>은 그 근원적인 그리움에 과연 얼마만큼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우순옥 2011.10 전시제목잠시 동안의 드로잉 (Drawing for a while)
전시기간2011.11.10(목) - 2011.12.06(화)
참여작가
우순옥
초대일시2011년 11월 10일 목요일 05:00pm
관람시간10:00am - 06:00pm / 일, 휴일 10:00am - 05:00pm
휴관일없음
장르회화와 조각
관람료무료
장소국제갤러리 Kukje Gallery (서울 종로구 소격동 59-1 국제갤러리 1관)
연락처02-735-8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