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itor-s ; 기표(記標)와 기의(記意)의 관계를 묻다
- 손청문(미학박사)
“...하지만 내 작업들이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의 표현으로 보여 지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장소로서의 의미를 갖는 작품을 통해 관객들의 감성과 감수성을 불러일으키고 그들만의 고유한 기억들과 추억들을 떠오르게 하며 이러한 기억들과 추억들을 생각으로 언어로 또는 이미지로 상기시키는, 즉 그들 개개인의 고유한 장소들을 불러내고 만들어 내고자 하는 시도이다. 보는 이로 하여금 그의 추억들을 불러내고 작은 사건들을 다시 떠오르게 하기 위해 과거의 어느 한 순간, 어느 한 공간으로 관객을 다시(또는 새롭게)돌아가게 하는 역할을 위한 연결고리로서 작품은 제시되고 이렇게 제시된 각각의 작품은 전혀 다른 공간인 관객 개개인의 장소가 만들어 질 것을 희망한다...” (2007년 3월, 전시도록, 작가노트)
한국화의 구조와 소재를 해체하고 재구축해 왔던 이행순의 금번 전시는 문자 조형의 요철효과가 도드라진 한지 부조를 전시장 벽면에 반복적으로 배열한다. 그로 인해 한지에 새겨진 문자 혹은 기호에 대한 어떠한 이해의 단초도 제공하지 않은 채 관람자와 대면하는 전시 공간은 각기 다른 이미지와 감성을 환기하면서 다양한 이야기 거리를 연상케 한다. 작가에게 있어 한지 부조는 형태인 동시에 내용이며 개별적인 동시에 보편적인 것으로서 하나이면서 여럿으로 기능한다. 또한 그것은 봄으로써 읽는 것이며 시각적 대상임과 동시에 의미론적 대상으로 현시된다. 따라서 작가의 작품을 그림으로 보아야 할 지 다만 문자를 옮겨 놓은 즉물적 텍스트로 보아야 할지, 그 구분 역시 애매모호하다. 예컨대 그것은 기호의 즉자적 의미와 암시적 의미가 교직되는 의미론적 부유과정을 거치는데 거기에는 암묵적으로 문자와 의미, 기표와 기의의 상호 내포적이고 상호 연관적인 틀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한지에 새겨진 각각의 이름으로서의 기호는 작가와의 특별하면서도 상이한 인연, 다른 기억과 두께를 지닌 관계 혹은 다른 강도의 리듬을 함축하고 있다. 그로인해 텍스트는 단순한 물질이 아닌 감성화 되고 개별화된 사물이자 비질료적인 아우라를 지닌 특유의 힘을 발휘한다. 관람자가 응시하는 순간 텍스트는 작가 개인의 범주에서 탈피하여 다수에 의해 공유되면서 그들 각자에게 고유한 체험을 제공한다. 예컨대 관람자는 전시공간을 그들의 개인적인 기억과 추억을 투사하는 특별한 장소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관람자는 단순한 정보의 수동적인 수신자라기보다는 해독자의 입장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경험과 기분, 감정 안으로 몰입하여 그 의미효과를 창출한다. 이를테면 텍스트의 기원으로부터 발신자와 수신자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기호 혹은 문자는 의미의 다변화를 지향한다. 따라서 그의 텍스트 내부에는 수많은 틈들이 존재하고 이 틈에서 일련의 또 다른 해석이 파생된다. 그것은 실증적이면서도 명료한 것을 추구하는 행위에 내재된 모종의 분열성을 드러내는데 이러한 분열성은 일반적으로 명확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고 믿는 언어에 대한 소박한 이해를 의심한 결과이다. 말하자면 문자와 의미, 기표와 기의의 연쇄적 분열을 함의하고 있다는 말이다.
작가의 텍스트는 다채로운 구조로 짜여진 복수언어적 양상을 띠고 있다. 그로 인해 텍스트에 내재된 무한한 역동성이 발아하는 코드들의 유희는 다기한 의미내용을 가능케 함으로 그의 텍스트에는 결코 단선적인 논리성이 주입되어 있지 않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 대신 전시공간에 함몰되어 있는 무수한 암시와 기억 및 과거와 현재성의 편린들이 텍스트의 의미를 추출하거나 복원하는데 기여한다. 나아가 형식면에서는 개체들의 합목적성을 고수하면서 부분이 강조되다가도 어느 순간 전체가 강조되기도 하고 부분과 부분이 연계됨으로써 부분과 전체가 상호 공명하는 유기적 관계를 견지하고 있다. 이러한 복수언어적 조합체들은 요철에 의한 기호의 유사성과 상이성이 반복적으로 구조화되면서 다양한 변이현상을 만들어 내는 무한 연쇄의 파노라마를 펼쳐 보인다.
결론적으로 보아 작가의 전시 공간은 차이와 지연의 유희공간으로서, 그곳은 기표와 기의의 위계적 질서가 와해되고 차이들의 놀이를 통해 동일성의 확보를 연기하는 터전에 다름 아니다. 무엇보다도 작가에게 있어 기호의 근원은 기표와 기의의 자기동일성이 아니라 의미의 미끄러짐, 즉 차연(差延)이 자기동일성의 힘이 되고 텍스트는 차연의 양식을 통해 남겨진 흔적을 매개로 하여 비로소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발현하기에 이른다.
전시제목visitor-s II
전시기간2011.03.16(수) - 2011.03.29(화)
참여작가
이행순
초대일시2011-03-16 17pm
관람시간10:00am~19:00pm 주말: 11am ~ 6pm
휴관일없음
장르회화와 조각
관람료무료
장소미술공간 현 Art Space Hyun (서울 종로구 인사동16길 6 창조빌딩 B1)
연락처02-732-5556 / 732-5546